I. 개요

‘악스트’는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잡지는 우리 안의 얼어붙은 분노를 불붙이는 불쏘시개여야 한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시작은 카프카의 저 문장에서부터였다. 소설시장의 위기와 침체가 어느덧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있는 지금, 소설독자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깨고자 『Axt』는 출범되었다. 이 『Axt』가 독자와 소설을 잇는, 3류 소설가들이 1류 SF 작가를 다구리하는 하나의 뒷골목 소설과 소설가를 잇는 하나의 놀이터이자 가교가 되는 잡지이기를 편집부 전원은 믿고 있다.”

중2스런 선언과 함께 창간한 소설 전문 문예 서평지입니다. (소설 전문이면서 왜 문예 서평지이며 그러면서 왜 또 만화 “원펀맨”과 싱글 몰트 위스키를 다루고 있는지는 궁금해하지 맙시다.) ‘악스트’ 사태는 이 잡지의 2016년 1월호에서 듀나를 인터뷰하며 같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무례와 무식과 무대뽀의 3무 정신을 꽃피움으로써 멀쩡하게 정상적인 일코 일상 생활을 영위하던 듀나 팬, SF 팬, 장르소설 독자들에게 불가역적인 정신적 피해를 대량으로 확산시킨 사태입니다.

II. 발단

‘악스트’ 편집위원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가나다 순)이 듀나에게 다음과 같이 이메일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참고 :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주간 편집 회의’란 제하의 소개글에선 “편집위원인 소설가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이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소설가’ 듀나를 만났다. 백가흠의 소설론과 듀나의 소설론이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배수아와 듀나는 SF소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스스로를 ‘듀나의 영화 낙서판’회원으로 소개하는 정용준은 영화 칼럼니스트로서의 듀나의 면모에 대해 주로 묻는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날카로운 비평들이 오가며, 소설을 읽고 쓴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지점을 자극한다.”라고 소개합니다. 과대광고의 전형적인 예 :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합시다. 이게 다 거짓말인 줄 아시죠, 여러분?


 [경고] 이하에는 ‘악스트’ 2016년 1월호 커버스토리 ‘듀나+백가흠 배수아 정용준 : 운좋게 살아남을 무언가를 위해’의 인터뷰 기사 중 질문만을 발췌하여, 일반적인 교양 상식에 의해 정상적인 사고를 영위하는 일반  대중 독자들의 이해를 위한 번역 자막을 본지에서 첨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질문 원문을 읽은 뒤의 정신적 충격, 피해, 상처에 대해서는 본지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

‘악스트’가 책임져야지 우리가 왜?


 

1. 백가흠+듀나

(그나저나 이 기호 도대체 무슨 의도입니까? 동인지에서 x 쓰는 거랑 같은가요, 다른 건가요?)

가. 듀나는  대한민국의 영화평론가 겸 과학소설 작가이다. 정체불명의 인물. 이십 년 넘게 활동하고 있으나 본명이나 성별, 나이, 학력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이 알려져 있지 않으며 공개적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작업에 관한 협의나 인터뷰도 주로 서면으로 진행한다. 위키백과에 나온 당신에 대한 설명이다. 어떠한가? 덧붙일 말이 있거나 바로잡고 싶은 말이 있는가?

alt. SF 번역 : 나 위키백과도 안다. 너 왜 여기 왔냐. 죄 지어서 여기 나온 거 맞지?

나. 90년대에 출판된 소설집 등에서는 이영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실명인지 가명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영수는 누구인가? 당신이 속해 있는 그룹의 리더인가?

alt. SF 번역 : 너 누구냐. 이영수랑 무슨 관계냐. 이영수가 너네 주모자 맞냐?

다. 나는 당신이 한 개인이 아니라 어떤 집단 내지는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이십여 년 동안 이러한 비밀이 지켜지고 있는데 특별한 노하우는 무엇인가? 한 명의 개인이라면 포장되지 않은 진실한 이유를 말해달라.

alt. SF 번역 : 독하구나, 조센징! 죄가 없으면 왜 가명을 쓰고 있나? 빨리 너희 조직의 배후를 불지 못할까? 네가 배후냐?

라. 내가 당신을 개인이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당신이 활동하는 영역 즉, 영화평론, 에세이 등이 소설과의 관계에서 어떤 개인의 일관된 철학이 읽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듀나’라는 작가는 각 분야에 소질 있는 사람 여럿이 그때그때 모여 회의를 하고 일을 배분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음으로써 비즈니스의 관계에 놓인 집할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alt. SF 번역 : 씨바, 나는 소설 하나 하나 쓰기도 힘들고 이딴 거지 같은 잡지 인터뷰어하는 것도 힘들어서 다 아웃소싱하는데 너는 소설도 쓰고 칼럼도 쓰고 혼자 다 한다는 게 말이 되냐? 난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 시험만 내가 치고 나머지 과목은 다른 애들 시켜서 대리시험 보게 하고 대신 딱지 사주는 비즈니스 관계를 맺었는데?

마. 나를 알지 않는가? 우리 지면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나는 당신이 문단을 잘 아는 또 다른 이름의 작가라고 확신하고 있다.

alt. SF 번역 : 나 알지? 나 봤지? 야, 너 배수아 맞지?

바. 사람들은 당신이 얼굴이나 그 밖에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그런 통념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처음엔 신선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조금 식상해진 것도 사실이다.

alt. SF 번역 : 야, 너 못생겼지? 다 알아. 못 생겼어도 그냥 얼굴 보여줘. 수아 누나, 그만 해요.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지금은 재미 없어요.

사. 모두 결혼은 했는가? 일상적인 생활의 패턴을 말해달라. 당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상은 무엇인가?

alt. SF 번역 : 수아 누나, 결혼했어요? 누나 요새 뭐해요?

아. 소설을 쓰는 우리는 소설이 단지 그냥 상상력으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작가의 선험적인 경험과 체득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소설에서는 당신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당신의 과거를 어떻게 짐작해야 하는가?

alt. SF 번역 : 야, 너, 초등학생 때 아빠 죽여서 좀비 만든 거 맞지? 그리고 아빠 영혼을 유리병에 가두기도 했고? 너네 아빤 카오스 이론을 사용하는 초능력자인데 나비 전쟁에서 진 거지? 너 면세 구역에 살면서 “스핑크스 아래에서”라는 영화 찍었지? 남편은 태평양 횡단 특급 이사였다가 외계인 우주선 무덤 발굴하다 죽었고 너는 부천에서 관광사 직원하고 있는데 죽은 여자 애인이랑 이상형을 알아보는 남친이랑 계속 붙어서 짜증나지? 뭐?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어떻게 소설을 상상해서 써? 소설은 그냥 자기 얘기 하는 거 아냐?

여기서 잠깐, 백가흠 씨 소설들의 주요 내용을 훑어봅시다. 

[광어]의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술집에서 그녀를 빼내 함께 떠날 것을 꿈꾼다. 이를 위해 그녀를 임신시킨 남자에게 돈을 받아낸다. [귀뚜라미가 온다]의 스물여섯 남자 역시 사랑하는 서른넷 여자와 가정을 꾸리려 하고, [밤의 조건]에 등장하는 여동생은 남과 다름없는 오빠에게 청혼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백가흠 여자였어?

키가 15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데다 회사에서는 무시를 당하는 마흔넷의 이혼남 영업사원의 이야기를 담은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로 사회적으로 거세된 원덕 씨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고통스러운 몸의 이미지로 신랄하게 그려 보이는 [통(痛)]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지방 소도시 S읍 문화센터의 문학 강사로 내려온 대학교수 학규. 퇴락한 놀이공원의 매표소 직원으로, 고여 있는 일상에 신물이 난 스무 살 처녀 덕이. 이 두 사람은 예고 없이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 학규는 대학교수로 복직이 되자 서울로 되돌아가버리고, 덕이는 세상 전부였던 학규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시간이 지나 학규는 교수로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지만 점점 눈이 멀게 되는 병에 걸린다.

[웰컴, 마미!]의 유아 유기와 영아 매매 사건, [매일 기다려]의 노숙자 노인과 가출 청소년 이야기, [웰컴, 베이비!]의 신생아 유기 사건 등

(출처는 모두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책소개들입니다)

백가흠 씨의 소설에서는 백가흠 씨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백가흠 씨의 선험적인 경험과 체득, 과거를 어떻게 짐작해야 할까요?

자. 작가는 재밌는 얘기만 독자들에게 전하는 데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철학적 책무와 당위가 존재한다. 당신에게서 소설만으로도 그것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여겨진다면 그것은 실패한 작가가 아닌가.

alt. SF 번역 : 야, 니가 쓴 소설이라는 거 보니까 우리 사회 이야기 별로 없더라. 맨날 우주랑 외계인 얘기만 하는데 너 그럼 소설가로선 꽝이야. 좋게 말할 때 말 들어.

차. 한때의 이슈로 남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소설의 생명력은 어디에 근거한다고 생각하는가.

alt. SF 번역 : 너 이제 한물 갈 때도 되지 않았냐? 왜 안 가냐?

카. 처음 당신의 존재를 알았던 때가 벌써 십오 년이 넘었다. 특정한 작가 혹은 가능한 작가를 떠올리곤 했었다. 그러다 곧 사라지고 말 허상이라고 여긴 적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도 작가로 존재하고 있다. 물론 나는 처음의 그 듀나가 지금의 듀나가 아니라 여러 듀나가 듀나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작가로 남은 듀나. 어떻게 가능했다고 보는가.

alt. SF 번역 : 나 2001년에 신춘문예 등단 먹은 다음에 너 이름 처음 들어봤다. 그땐 내가 뜨고 너가 질 줄 알았는데 안 그러네. 비결이라도 있냐? 너 그때 너랑 지금 너랑 다르지? 배후가 누구야, 도대체!

타. 당신의 소설보다 당신의 얼굴이, 신상이 없는 게 더 유명하다. 그것은 당신이 처음 출현한 때보다 현재 익명의 SNS 시대에 더 잘 맞는 것 같다. 이런 세계를 예상한 적이 있는가. 모두 익명이다 보니 당신의 존재가 더 미비해지거나 평범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 같다. 본디 작가는 어떤 전략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당신들은 그렇지 않다. 이제 전략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는가. 당신들이 이름과 얼굴을 숨기고 활동을 시작하며 처음 내세웠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alt. SF 번역 : 난 너 소설 하나도 못 읽어봤고 얼굴 없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그걸로 유명한 거 같더라? 그치만 이젠 좀 그만 하지?

파. 글을 발표하던 시기에 당신들이 이십대였다면 사십대가 되었을 테고, 삼십대였다면 오십대가, 사십대였다면 환갑을 넘었을 것이다. 얼굴이 없으니 늙지 않는 것 같다. 작가에게 세월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독자와의 공감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설에서 그런 세대나 시대감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alt. SF 번역 : 수아 누나, 누나도 이제 등단한지 20년이 넘었어요. 이상한 아이디로 귀신 놀이하는 거 이제 좀 그만 해요. (나도 하면 안 늙어 보일까요?)

하. 이십 년 전 당신을 읽던 독자 중에 지금은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하나? 당신에게 세월이 읽히지 않기 때문에 이십 년전에 당신을 읽던 독자는 이제 당신을 읽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씨바, 수아 누나, 나 이십 년 뒤에도 읽힐까요? 나 이십 년 전부터 누나 글 안 읽고 있는데?

거. 어렸을 적 가장 좋아했던 작가 혹은 소설은 무엇인가?

alt. SF 번역 : 어라, 누나, 저 정신 잠깐 돌아왔어염. 우리 인터뷰할래염? 무슨 소설 좋아해염?

너. 숨어서 글을 쓰는 게 외롭지 않은가?

alt. SF 번역 : 누나, 저 정신 다시 나갔어염. ㅠ_ㅠ 누나, 외로워염? 내가 갈까염? 나 지금 누나 집 앞이에염…

2. 배수아x+듀나

가. 당연한 일이고 당신도 바라는 바이겠지만, 저는 당신에 대해서 개인적인 것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글이나 인터뷰를 접하면서 당신이 여성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어요. 제가 당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당신은 이런 생물학적인 성별 구분 자체를 거부하거나 어리석거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작가로서 명성을 가진 당신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에는, 이런 성별에 의한 선입견을 제거/거부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alt. SF 번역 : 님 여자 맞졈? 여잔거 왜 감춰염?

나. 저는 SF라는 장르를 물질적 사회적 혁명의 욕망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차원이라면 인간과 같은 로봇이 등장한다거나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인간 등이 있겠지만, 그런 상상의 세계 속에서는 사회적 문화적인 전복의 욕구도 판타지의 이름으로 반영이 될 테니까요. 어린 시절에 읽은, 미래 사회의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살해하는 스토리가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기억되거든요. 아마도 그 소설의 제목은 ‘벽 속의 아프리카’였던 것 같아요. 그런 점과 연관해서 당신에게 SF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lt. SF 번역 : 저 SF 알아염! 레이 브래드버리도 읽어봤어염!

다. 앞선 질문과 관련해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결혼제도도 소재가 될 수 있는데요. 아마도 물질의 발달과 무관하게 가장 오랫동안 불변하는 제도 중 하나일 테니까요. 저는 SF에서 이런 제도를 작가가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자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미셸 우엘벡의 {어느 섬의 가능성}에서는 과학의 발달이나 철학이나 사고방식의 발달이 새로운 인류와 사회를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서 전통적인 남녀관계가, 나아가서는 결혼 자체가 소멸해버리는 양상이 등장합니다. SF 각가로서 인간 제도의 이런 변화가 실제로 도래할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alt. SF 번역 : 저 올더스 헉슬리랑 미셸 우엘벡도 읽어봤어염! 님도 그런 거 믿어염?

라. SF 장르는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일반 문학과 경계가 흐릿해지는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안에 들어 있는 과학적 지식과 상상을 제외한다면 보통 소설과 큰 차이 없는 공감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 저 같은 일반 문학 독자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SF들은 대개 그런 종류일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인 요소보다는 과학적 도구나 디테일에 무척 심취하는 작품들도 있는 듯합니다. 어쩌면 폐쇄적이고 스페셜한 장르성에 충실한 그들이 정통 SF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점은 보통의 독자들이 SF를 더욱 어렵고 멀게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당신이 지향하는 방향은 어떤 쪽인가요? 준비 안 된 일반 독자들도 읽었을 때 너무 낯설지 않게 느끼는 SF인지 아니면 분명한 마니아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인지요?

alt. SF 번역 : SF 넘 어려워염. 님 SF는 안 읽어봤는데 어때염? 어려워염?

마. 만약 SF 장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예를 들자면 나와 같은 사람,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고 싶다고 할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의 책을 포함하여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은가요?

alt. SF 번역 : 가흠이랑 용준이는 SF 하나도 몰라염. 저도 마찬가진데 뭐 읽으면 좋아염?

바. 저는 당신의 소설을 읽었을 때 가장 먼저 송경아 씨의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송경아 씨도 매우 놀라운 SF적 상상력의 소설을 썼어요. 또한 그녀의 SF에는 강력한 비판적 요소가 들어 있었다고 셍긱힙니다. 단순히 특정한 사회제도의 비판이 아니라, 인간과 문화 계급 등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이었다고 기억해요. 그래서 무척 과격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힘이 있고 매력적이었습니다. 90년대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서 그녀는 특별했지요. 어쩌면 유일하게 특별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당신의 글과 마찬가지로, 매우 지적이면서 전문적인ㅡ물론 송경아 씨 자신은 그 정도가 아니라고 부인을 했지만ㅡ인상을 주었어요. 게다가 아주 멋진 SF 소설들을,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들도 번역을 했답니다.

alt. SF 번역 : 송경아 알아염? 90년대 최고 작가에염. (참, 님도 90년대에 글 썼었나? ㅎㅎ) 스타니스와프 렘 혹시 들어봤어염? 난 알아염.

여기엔 예외적으로 듀나의 답변과 번역을 삽입합니다.

듀나 : 전 다른 한국 SF 작가의 작품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럴 수 있는 객관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thanks to’에 제 이름이 올라간 영화를 리뷰하지 않는 것과 같지요. 단지 예외가 하나 있긴 했는데, 김보영 씨 소설집에 추천사를 썼을 때였죠. 그때는 그냥 그분 책에 제 이름이 들어가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고 공짜 책을 받는 것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것도 안 할 것 같습니다. 한국 SF에 대해서는 조용한 독자로 남겠지요.

alt. SF 번역 : 닥쳐. 너 김보영은 들어봤니?

사. 저는 당신의 소설을 무척 재미있고 즐겁게 읽었습니다. 아마 한국소설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들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실 당신의 영화 칼럼을 읽을 때는 듀나라는 작가가 무척 예민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내 눈에는 엄청나게 압도적으로 보이는 방대한 영화 지식 때문에 주눅이 들기도 했는데, 소설을 읽으면 그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삶의 측면을 영리하게 이야기하는, 심지어 멜랑콜리하고 서정적인 느낌도 있는 작가로구나 생각됩니다. 독자들로부터 여러 가지 통로로 당신의 소설에 대한 감상을 들을 기회가 있을 텐데, 어떤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요?

alt. SF 번역 : 님 칼럼 넘 어렵고 소설이 훨 쉬워염. 독자들은 뭐래염?

아. SF 작가인 당신은 미래에 대해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요? 인류는 이 상태로 그대로 멸망까지 가는 걸까요 아니면 혁신적인 전환이 일어나서, SF에서처럼 새로운 인간종, 새로운 사회가 정말로 도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요즘 이런 문제를 낡은 종교나 철학이 아닌 SF적 상상을 향해서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만…

alt. SF 번역 : 님 점도 봐염? SF가 미래 사회 예언이라면서염?

자. 앞의 질문과 관련하여, 심지어 정치적 혁명도 SF적 과학을 기반으로 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인간이 반half-기계가 된다거나, 종족보존이 더 이상 원식적인 육체 결합이 아니라 공장식으로 계획 합성되고 통제된다면, 이상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는 인간의 결함과 나약함은 충분히 보완되고, 그러면 그것이 곧 미래의 혁명이 아닐까 하는. 순수한 과학 기술에 기반한 전반적 사회변혁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지엽적인 예를 들자면, 피임약의 발명이 성생활의 개념을 바꾸어놓았듯이. 혹은 인터넷의 발달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어놓았듯이)

alt. SF 번역 : 번역할 내용이 없습니다.

차. 역시 위 질문과 관련하여, 과학이 종교나 철학의 역할을 충분히 해줄 듯한데 어떤가요. 그건 이미 지금도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인문학이란 형태로 바르게 퍼져나가는 듯해요.

alt. SF 번역 : 번역할 내용이 없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질문입니까? 자기 썰 풀기지. 설명충인가)

카. 가벼운 질문도 해보고 싶어요. 그럴 리는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혹시 종교가 있나요?

alt. SF 번역 : 우린 님 소설에서 카톨릭적 관점이 나타나는 걸 알아챌만큼 예민하지도 못하고 애당초 읽지도 않았을 뿐더러 님이 여기저기에서 카톨릭 냉담자라고 언급한 걸 들어보지 못했을 만큼 님에 대해서 사전 조사 같은 거 하나도 안 했어염.

타. 다른 인터뷰에서 당신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고 원치 않는 사람들과 만날 필요도 없어서’라고 답변하셨는데요, 작가가 되면 그러한 원치 않는 관계 속에 얽히게 되며 그것이 얼마나 비非작가적인 일인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작가들 자신이거든요. 혹은 문단 주변의 사람이거나. 당신이 데뷔 당시부터 그런 생각으로 익명을 고수해왔다면, 당신은 어쩌면 원래부터 문단을 잘 알고 있는, 문단이나 출판 주변에서 활동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추측됩니다. 저의 추측이 어느 정도는 맞는 건가요?

alt. SF 번역 : 님 문단 잘 알아서 익명 쓰는 거 맞졈? 님 혹시 백가흠이에염?

파. 학위를 하거나 학문적 전공도 아니면서, 오직 좋아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하나의 특정 분야에 독보적인 경지의 지식과 식견을 쌓는 전문가들이 종종 등장하고, 대중은 그들을 신뢰하고 그들에게 열광합니다. 물론 이들의 등장에는 인터넷이 가장 큰 전제가 되었고요. 당신은 그중 대표적인 인물에 속할 텐데요. 당신의 이러한 업적(?)은 제도교육에 어느 정도 빚진 것인가요 아니면 무관하다고 생각합니까? 예를 들어서 어떤 청소년이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동경할 때, 그에게 대학은 필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alt. SF 번역 : 님 오덕내 쩌내염. 대학은 나왔어염?

하.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이 시대 우리 사회의 가장 매력적인 여성을 구체적으로 몇 명 꼽아달라고 하면 누가 될까요? 약간의 이유를 들어주신다면 흥미롭겠어요.

alt. SF 번역 : 거울아, 거울아, 답은 정해졌지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3. 정용준+듀나

가. ‘듀나의 영화낙서판’을 오랫동안 운영하고 계십니다. (저도 회원이에요) 그런데 일반적인 홈페이지와 다른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글을 올리고 그것에 관해 방문자들의 피드백을 받는 것은 비슷했지만 회원들이 다양한 방식의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별도의 게시판이 운영되고 있는 것은 특이했어요. 회원들의 참여가 능동적이고 어떻게 보면 창조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활발했어요. 은밀하지만 제대로 돌아가는 커뮤니티라고 해야 할까요. ‘듀나의 영화낙서판’에 대해 소개 좀 해주세요.

alt. SF 번역 : 영자야, 니 게시판 홍보 좀 해봐라.

나. 당신은 ‘영화 별점 평가라는 이상한 전통에 대해 불평하기’란 글에서 영화에 별점을 매긴다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객관적이지 않다고 스스로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주는 클리어함과 각 평론가의 관점을 진단할 좋은 장치라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판단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별점으로 영화를 평가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alt. SF 번역 : 영자야, 나 니 글 읽어봤다.

다. 별점에 대한 질문을 이어서 하나 더 할게요. 최근 별점과 관련된 말이 좀 많은 것 같아요. 별점 테러랄지 반대로 개봉도 안 된 영화에 꽉꽉 채운 별점을 몰아준달지. 심지어 특정 배우에 대한 대중들의 여론이 영화와 무관한 별점을 매기기도 하더군요. 이럴 경우 별점은 영화를 평가할 합리적이고 간편한 도구가 아닌 평가 자체를 가로막거나 왜곡하는 나쁜 도구로 사용되는 것 같아요.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lt. SF 번역 :  영자야, 나 벌써 질문 다 떨어졌다.

라. 영화평론뿐 아니라 대중문화 칼럼도 겸하고 있고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것과 트위터에 쓰는 글까지 정말 많은 글들을 쓰시는데 각 장르의 글을 쓸 때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alt. SF 번역 : 영자야, 너 글 많이 쓰더라? 왜 그러니?

마. 영화평론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alt. SF 번역 : 영자야, 난 너 소설엔 관심 하나도 없어. 너 영화평론은 잘 쓰더라?

바. 며칠 전 당신이 트위터에 남긴 트윗을 봤는데요 ‘하루에 15페이지씩만 쓰면 될 거 같다’ 이런 내용이었어요. 저 역시 글을 쓰는 입장에서 볼 때 당신이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글쓰기 양을 보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글쓰기 스케줄을 알려주시지요.

alt. SF 번역 : 난 니 글, 소설 빼곤 다 읽어 봤어. 글 많이 쓰는 비결이 뭐니?

사. 당신이 갖는 영향력은 연예인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당신을 추종하는 소위 ‘듀빠’와 비판하는 ‘듀까’가 있다는 것이지요. 게시판에서 팬덤끼리 싸우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토크백을 보면서 흥미진진하기도 했고 그것을 보는 당신의 마음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듀빠와 듀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lt. SF 번역 : 영자야, 니 게시판 관리 좀 잘해라.

아. 트위터에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가 많이 등장하더군요. 저도 좋아하는 캐릭터라 엄청 반가웠는데요. 어쩐지 당신의 방 풍경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혹시 벽이나 책상 같은 곳에 포스터나 사진 같은 것도 걸어놓으시나요? 만약 있다면 어떤 영화, 어떤 배우의 사진이 걸려 있는 지 궁금해요.

alt. SF 번역 : 영자야, 나 너 방 보고 싶어.

자. 가장 좋아하는 한국감독과 한국배우는 누구입니까? 그 이유는요?

alt. SF 번역 : 안녕하세요, 영화 잡지 ‘악스트’입니다. 오늘은 영화평론가 듀나를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한국감독과 한국배우는 누군가요? 두 유 노우 싸이?

차. 최근에 펴낸 “가능한 꿈의 공간들”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 ‘가능한 모든 것’들에 대해 쓰셨더군요. 영화와 대중문화, 사회적인 이슈와 장르문학에 관한 단상까지 읽을거리가 풍부했고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즐길 것도 얻을 것도 많은 책이었습니다. 예리하고 정확하며 섬세한 접근이 탁월했어요. 글 속의 톤이 워낙 정교해서 ‘글을 참 잘 쓰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을 쓰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요건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lt. SF 번역 : 영자야, 나 니 책 읽은 거 있어! 영화 평론 책 재밌더라! 어케 썼니?

카. “가능한 꿈의 공간들”에서도 많은 페이지에 걸쳐 주장하셨지만 극장들이 마스킹을 하지 않는 것에 관해 유독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시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 기본 세팅과 맞지 않는 상영관의 화면비율 탓에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것에 관한 논리적이고 당연한 주장이었지만 저는 그 글을 읽을 때 영화를 좋아하는 이의 뜨거운 애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때로 이렇게 개인적인 감상과 판단을 피력하는 과정에서 사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한 톤으로 글을 쓰는 것 때문에 종종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lt. SF 번역 : 안녕하세요, 영화 잡지 ‘악스트’에서는 계속해서 영화평론가 듀나를 모시고 우리가 읽은 유일한 듀나 저서인 “가능한 꿈의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글 때문에 욕먹은 적도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 ‘악스트’에서 청탁을 한다면 글을 써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혹시 ‘악스트’를 보신 적이 있다면 아쉬운 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lt. SF 번역 : 영자야, 너 우리 잡지에도 글 하나 줄래? 당연히 소설 말고 영화 평론. ㅎㅎ

III. 경과

해당 매체를 사서 인터뷰 기사를 읽은 피해자들은 트위터를 통해 피해 사례를 토로했습니다.

※ 이전 호에서들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트윗을 캡처하며 일일이 허락을 구하기 힘들어 일단 프로필 사진과 계정 주소는 식별하기 힘들도록 지웠습니다. 다만, 그래도 불편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덧글 달아주시는 대로 바로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1. 친절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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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순진한 희생 예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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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실시간 아비규환

08 09 10 11 12 13 144. 비웃음으로 대동단결

15 16 17 18 19 20 21 22 23 25 265. 간신히 이성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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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언론의 옛다 관심

가. 중앙일보 : ‘얼굴없는 작가’ 듀나, 도대체 누구니? (이런 거지같은 인터뷰를 선행했던 신문의 기사답습니다. 이제 악스트 앞에서는 태양 앞의 촛불이지만요)

나. 뉴스 페이퍼 : 문예잡지 악스트, 듀나 작가와의 인터뷰 논란 (트윗 중계로 지면 채우는 건 요즘의 트렌드죠. 셀프 디스입니다)

IV. 정리

소설가에 대한 인터뷰인데 인터뷰이의 작품의 제목이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정말로 이례적입니다. 혹시 소설가에 대한 인터뷰가 아니라 SF소설가에 대한 인터뷰라서 그런 겁니까? 여기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원인을 추정해볼 수 있을 텐데,

1) 듀나가 쓴 소설을 하나도 안 읽었다.

2) 읽긴 했는데 무슨 소린지 도저히 파악이 안됐다.

최소한 후자였다고 믿어주고 싶은데 그랬다면 최소한 한두 작품은 거론하며 이해 못하는 부분을 거론이라도 했어야겠죠. 혹시 높으신 문단 어르신들이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소설 읽었는데 이해가 안된다는 말은 할 수가 없는 겁니까? 아니, 읽고 이해 못해도 이해한 척하는 게 바로 그 동네 전문이지 않아요?

읽지도 않고 인터뷰했든 읽고 이해가 안 되었는데도 인터뷰했든 별 차이는 없습니다. 결국 힙한 척하고 관심 받아보고 싶은 저열한 욕구에서 다만 표지 모델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니까요.

이 사태에서 가장 구린 지점은 인터뷰 후 아무래도 걱정이 된 듀나가(듀나가 그럴 지경이라니!)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도 받아주겠다고까지(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듀나가!) 먼저 제의했는데 자신들의 무지와 무례를 ‘상식’도 아니고 ‘문학 인문 교양’을 들먹이며 포장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듀나의 이메일에 대한 편집장 백다흠의 답신 중 일부입니다.

그렇기에 질문의 톤이 조금 단순하게, 일반 교양 수준에 머무는 피상적이란 느낌이 많이 드셨던 거라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의 지점이 있다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이거 딱, 대통령 대국민 담화 말투 아닙니까?

런데, 저는 그 일반적인 교양 즉, 보편적인 문학 인문 교양선에서 대체로 장르작가 일반론에 입각한 질문과 답이 언급되는 것에 호기심 혹은 즐거움을 느끼는 다양한 독자군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가 ‘듀나’라는 본질 근처에 다가서지 못했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우매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듀나라는 본질에 다가가는 작업의 진정성이 일반 장르장가론에 입각한 데에서도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지고 말해져야 한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게 아닙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지면서 동시에 인간으로서 혹은 시민으로서의 다양한 사실과 사실관계들에 대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품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가 이뤄졌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만 제가 방점을 찍고 있는 건, 편집위원인 소설가 세 명과 듀나라는 작가 간에 이뤄지는 서로 다른 작가론에 입각한 형식이었습니다. 또한 순문학 장 안에서만 움직여왔떤 독자들에게 듀나라는 작가에 대해 기초적인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작가에게 작가란 무엇인가를 맨스플레인하는 패기!

문단 예절로는 ‘안면몰수 선빵 다구리’가 ‘기초적인 인사’인가 보죠?

공정을 기하기 위해 밝히자면, ‘인문학도 교양’과 ‘보편적인 교양’은 듀나가 두 번째 이메일에서 처음 쓴 표현입니다. 하지만 문맥상 듀나의 의도는 ‘너희들의 편협한 선입견은 이제 교양이나 상식이 아니란다’였다면, 백다흠은 이해를 못했는지 무시하는 건지, ‘그렇지? 우리는 무례하게 인터뷰한 게 아니라 보편적인 문학 인문 교양 수준에서 인터뷰한 거 맞지?’ 같은 헛소리로 답하고 있는 겁니다. (그나저나 도대체 ‘보편적인 문학 인문 교양’ 같은 표현은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 겁니까? 헛바람 잔뜩 든 문과대 날라리 신입생이나 무식하게 만들어낼 법한 표현 아닙니까?)

이번 사태는 한국에서 SF가 여전히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한국 문학에서 소위 문단 문학이 얼마나 구린지ㅡ문단에서 가장 힙한 척 거들먹거린 ‘악스트’마저도 듀나와 만났을 때 얼마나 똥 구린 K저씨 같을 뿐이었는지 보여주는 헤프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구리고 구린 문단 순문학에는 관심 없으니 지들이 그러다 죽건 말건 그건 그냥 넘어갑시다. 이 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스스로 창작적 생명력과 대중적 영향력을 모두 상실하고 고갈해버린 한국 문단이 흡혈귀처럼 SF를, 혹은 장르소설을 소비하려고 접근할 때 우리는, 장르소설 팬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신경숙 표절 사태’ 전후로 문단에서는 쇄신하겠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가장 힙한척 하는 잡지마저도 이렇게 구리고 후지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은 더이상 돌아볼 가치가 없습니다. 장르소설에 대해서 이해할 능력도 없고 이해하려는 의지도 없는 작자들이 장르소설, 장르문학, 탈장르 같은 소리 중얼거리면 다 사기꾼들일 뿐인 거죠.

신춘문예에 SF연하는 글이 올라오든, 문예지가 듀나를 커버 스토리로 하든 말든 신경 끄고 기웃거리다가 투덜거릴 시간에 SF나 한 줄 더 읽는 게 나을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 위네바고]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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