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개요

‘악스트’는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잡지는 우리 안의 얼어붙은 분노를 불붙이는 불쏘시개여야 한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시작은 카프카의 저 문장에서부터였다. 소설시장의 위기와 침체가 어느덧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있는 지금, 소설독자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깨고자 『Axt』는 출범되었다. 이 『Axt』가 독자와 소설을 잇는, 3류 소설가들이 1류 SF 작가를 다구리하는 하나의 뒷골목 소설과 소설가를 잇는 하나의 놀이터이자 가교가 되는 잡지이기를 편집부 전원은 믿고 있다.”

중2스런 선언과 함께 창간한 소설 전문 문예 서평지입니다. (소설 전문이면서 왜 문예 서평지이며 그러면서 왜 또 만화 “원펀맨”과 싱글 몰트 위스키를 다루고 있는지는 궁금해하지 맙시다.) ‘악스트’ 사태는 이 잡지의 2016년 1월호에서 듀나를 인터뷰하며 같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무례와 무식과 무대뽀의 3무 정신을 꽃피움으로써 멀쩡하게 정상적인 일코 일상 생활을 영위하던 듀나 팬, SF 팬, 장르소설 독자들에게 불가역적인 정신적 피해를 대량으로 확산시킨 사태입니다.

II. 발단

‘악스트’ 편집위원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가나다 순)이 듀나에게 다음과 같이 이메일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참고 :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주간 편집 회의’란 제하의 소개글에선 “편집위원인 소설가 배수아, 백가흠, 정용준이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소설가’ 듀나를 만났다. 백가흠의 소설론과 듀나의 소설론이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배수아와 듀나는 SF소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스스로를 ‘듀나의 영화 낙서판’회원으로 소개하는 정용준은 영화 칼럼니스트로서의 듀나의 면모에 대해 주로 묻는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날카로운 비평들이 오가며, 소설을 읽고 쓴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지점을 자극한다.”라고 소개합니다. 과대광고의 전형적인 예 :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합시다. 이게 다 거짓말인 줄 아시죠, 여러분?


 ※ ‘은행나무’ 출판사의 요청에 의해 일시적으로 편집하였습니다. (편집 내용 : 인터뷰 질문 및 alt. SF의 해석 전문)

III. 경과

해당 매체를 사서 인터뷰 기사를 읽은 피해자들은 트위터를 통해 피해 사례를 토로했습니다.

※ 이전 호에서들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트윗을 캡처하며 일일이 허락을 구하기 힘들어 일단 프로필 사진과 계정 주소는 식별하기 힘들도록 지웠습니다. 다만, 그래도 불편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덧글 달아주시는 대로 바로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1. 친절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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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순진한 희생 예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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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실시간 아비규환

080910111213144. 비웃음으로 대동단결

15161718192021222325265. 간신히 이성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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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언론의 옛다 관심

가. 중앙일보 : ‘얼굴없는 작가’ 듀나, 도대체 누구니? (이런 거지같은 인터뷰를 선행했던 신문의 기사답습니다. 이제 악스트 앞에서는 태양 앞의 촛불이지만요)

나. 뉴스 페이퍼 : 문예잡지 악스트, 듀나 작가와의 인터뷰 논란 (트윗 중계로 지면 채우는 건 요즘의 트렌드죠. 셀프 디스입니다)

※ 이하는 해당 인터뷰 기사의 질문 원문 및 alt. SF의 해석을 실었던 자리이나, 해당 출판사의 아래의 이메일[2016.2.13.]에 의해 잠정적으로 삭제합니다.

악스트_모자이크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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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본지는 다음과 같은 답 메일을 보냈습니다.

알트에셒_원본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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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 진행 사항은 계속 업데이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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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15.] 담당자로부터 아래의 메일을 받아, 다음 회신까지 현재의 수정본을 유지하기로 하였습니다.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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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정리

소설가에 대한 인터뷰인데 인터뷰이의 작품의 제목이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은 정말로 이례적입니다. 혹시 소설가에 대한 인터뷰가 아니라 SF소설가에 대한 인터뷰라서 그런 겁니까? 여기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원인을 추정해볼 수 있을 텐데,

1) 듀나가 쓴 소설을 하나도 안 읽었다.

2) 읽긴 했는데 무슨 소린지 도저히 파악이 안됐다.

최소한 후자였다고 믿어주고 싶은데 그랬다면 최소한 한두 작품은 거론하며 이해 못하는 부분을 거론이라도 했어야겠죠. 혹시 높으신 문단 어르신들이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소설 읽었는데 이해가 안된다는 말은 할 수가 없는 겁니까? 아니, 읽고 이해 못해도 이해한 척하는 게 바로 그 동네 전문이지 않아요?

읽지도 않고 인터뷰했든 읽고 이해가 안 되었는데도 인터뷰했든 별 차이는 없습니다. 결국 힙한 척하고 관심 받아보고 싶은 저열한 욕구에서 다만 표지 모델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니까요.

이 사태에서 가장 구린 지점은 인터뷰 후 아무래도 걱정이 된 듀나가(듀나가 그럴 지경이라니!)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도 받아주겠다고까지(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듀나가!) 먼저 제의했는데 자신들의 무지와 무례를 ‘상식’도 아니고 ‘문학 인문 교양’을 들먹이며 포장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듀나의 이메일에 대한 편집장 백다흠의 답신 중 일부입니다.

그렇기에 질문의 톤이 조금 단순하게, 일반 교양 수준에 머무는 피상적이란 느낌이 많이 드셨던 거라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의 지점이 있다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이거 딱, 대통령 대국민 담화 말투 아닙니까?

런데, 저는 그 일반적인 교양 즉, 보편적인 문학 인문 교양선에서 대체로 장르작가 일반론에 입각한 질문과 답이 언급되는 것에 호기심 혹은 즐거움을 느끼는 다양한 독자군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가 ‘듀나’라는 본질 근처에 다가서지 못했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우매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듀나라는 본질에 다가가는 작업의 진정성이 일반 장르장가론에 입각한 데에서도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지고 말해져야 한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게 아닙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지면서 동시에 인간으로서 혹은 시민으로서의 다양한 사실과 사실관계들에 대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품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가 이뤄졌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만 제가 방점을 찍고 있는 건, 편집위원인 소설가 세 명과 듀나라는 작가 간에 이뤄지는 서로 다른 작가론에 입각한 형식이었습니다. 또한 순문학 장 안에서만 움직여왔떤 독자들에게 듀나라는 작가에 대해 기초적인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작가에게 작가란 무엇인가를 맨스플레인하는 패기!

문단 예절로는 ‘안면몰수 선빵 다구리’가 ‘기초적인 인사’인가 보죠?

공정을 기하기 위해 밝히자면, ‘인문학도 교양’과 ‘보편적인 교양’은 듀나가 두 번째 이메일에서 처음 쓴 표현입니다. 하지만 문맥상 듀나의 의도는 ‘너희들의 편협한 선입견은 이제 교양이나 상식이 아니란다’였다면, 백다흠은 이해를 못했는지 무시하는 건지, ‘그렇지? 우리는 무례하게 인터뷰한 게 아니라 보편적인 문학 인문 교양 수준에서 인터뷰한 거 맞지?’ 같은 헛소리로 답하고 있는 겁니다. (그나저나 도대체 ‘보편적인 문학 인문 교양’ 같은 표현은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 겁니까? 헛바람 잔뜩 든 문과대 날라리 신입생이나 무식하게 만들어낼 법한 표현 아닙니까?)

이번 사태는 한국에서 SF가 여전히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한국 문학에서 소위 문단 문학이 얼마나 구린지ㅡ문단에서 가장 힙한 척 거들먹거린 ‘악스트’마저도 듀나와 만났을 때 얼마나 똥 구린 K저씨 같을 뿐이었는지 보여주는 헤프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구리고 구린 문단 순문학에는 관심 없으니 지들이 그러다 죽건 말건 그건 그냥 넘어갑시다. 이 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스스로 창작적 생명력과 대중적 영향력을 모두 상실하고 고갈해버린 한국 문단이 흡혈귀처럼 SF를, 혹은 장르소설을 소비하려고 접근할 때 우리는, 장르소설 팬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신경숙 표절 사태’ 전후로 문단에서는 쇄신하겠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가장 힙한척 하는 잡지마저도 이렇게 구리고 후지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은 더이상 돌아볼 가치가 없습니다. 장르소설에 대해서 이해할 능력도 없고 이해하려는 의지도 없는 작자들이 장르소설, 장르문학, 탈장르 같은 소리 중얼거리면 다 사기꾼들일 뿐인 거죠.

신춘문예에 SF연하는 글이 올라오든, 문예지가 듀나를 커버 스토리로 하든 말든 신경 끄고 기웃거리다가 투덜거릴 시간에 SF나 한 줄 더 읽는 게 나을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 위네바고]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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