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발적인 논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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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의미가 없지 않지만..

djuna

(본지 19호 리뷰 기사에서 ‘그렇다면 {리틀 브라더}를 앞세우며 SF 전문 출판사를 자임하는 아작 출판사도 그런 사기꾼이나 협잡꾼인 것일까요?’라고 한 것에 대해 (2016.2.8. 현재는 검색되지 않는) 해당 출판사 관련 트위터 계정에서 장르의 구분에 대해 트윗을 올리자 듀나가 리트윗하며 단 트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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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의미 없어요.

dcdc

(201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상식의 속도]에 대한 dcdc의 칼럼에 대한 발췌 인용 트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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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의미 있습니다.

sfko

(SF와 판타지 간 장르 구분 필요성에 대한 본인의 글을 소개하는 고장원 씨 트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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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에 덧붙여

ccc

본지는 그동안 SF 근본주의나 원리주의, SF 꼰대 등으로 불려왔는데, ‘소설 외 타 매체에의 과도한 편향을 통한 SF의 본질 오도’에 대한 반대를 창간 의도로 천명한 이상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떠나 당연한 반응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위에서 살펴본 대로 최근 산발적으로 이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 김에 본지도 그동안의 이력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가늠하는 의미에서 한두 마디 말을 얹어보고자 합니다.

언어가 본질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SF나 판타지, 순문학 같은 장르 명칭은 결국 애초에 명확한 경계가 없는 연속적인 영역 위에 마치 경계가 있는 것처럼 붙인 이름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SF란 무엇인가?’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며, 따라서 그러한 질문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하는 것도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어쩌면 ‘이 작품이 SF인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질문은 가.에서 듀나가 혹은 다.에서 고장원 씨가 말하는 것처럼 단지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작품을 쓰거나 새로운 하위 장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혹은 혼합 장르의 글을 잘 읽기 위해서만 제한적으로 유효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지만 굳이 박하게 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전쟁도 사상서도 아닌 SNS와 아이폰이 세상을 뒤흔드는 이 시점에 순문학이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탐구하는 SF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필연이다. 그 결과 SF 작품이 늘어나는 일은 환영함이 옳다.”라는 나.에서의 dcdc의 논리는 오히려 이러한 질문들이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1980년대 초에 휴대전화가 나오는 소설을 썼다면 분명 SF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박상준 씨(1호)가 어느 서평에서 한 언급을 떠올리게 하는데(위키백과에 따르면 최초의 휴대전화는 73년에 개발되고 상용화된 것은 80년대 초이지만 넘어갑시다), 박상준 씨의 언급이 단순히 소재 차원에서 SF와 비SF를 구분한 것이라면 dcdc의 논리는 아예 주제 차원에서 SF와 비SF를 구분하지 않은 것인데, 이것은 어느쪽이나 문제가 있습니다.

18세기 전후로 성립되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소설’로 불리는 문학 장르의 핵심은 동시대-근대 사회에 대한 인식과 해석입니다. 등장 인물들이 갈등하며 개연성 있는 사건을 만들어 나가는 이 장르는 서정시와는 다르게, 개인의 내면 정서가 아니라 전근대로부터 단절된 지금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이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과 해석을 담아낼 수 있기에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매스미디어가 이러한 주제를 더 선명하고 강렬하게(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도식적이고 평면적이 되기도 했지만) 전달할 수 있기 전까지 문학과 예술의 테두리를 넘어선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신문과 잡지 같은 초기 매스미디어가 거의 반드시 소설을 필요로 했던 점을 생각해봅시다)

이것은 단순히 총체성을 이야기하는 리얼리즘 소설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데, 왜냐하면 아무리 근대 이전의 사건을 다루는 역사 소설이나 개인의 미시적인 생활을 다루는 사소설, 꿈과 환상을 다루는 낭만주의 소설, 언어 실험이나 파편화된 내면 심리의 포착에 천착한 모더니즘 소설들도 결국 모두 근대 사회/근대성에 대한 인식이 선행된 뒤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부분인데, 이러한 관점을 확장하면 결국 미스터리나 로맨스, 판타지(심지어 하이 판타지마저도)도 모두 결국 소설 장르 안에 非장르소설들과 옹기종기 모여 있게 되며, 그렇지만 그래도 SF는 여전히 그 바깥에 얼쩡거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SF는 근본적으로 근대 사회를 넘어선 지점에서 출발하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SF는 과거로부터 근대의 단절이 일회적인 유일한 격변이 아니라 앞으로도 충분히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단절 이후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테드 창의 방한 강연 이후로 SF 독자들 사이에 일반화된, ‘변화의 문학으로서 SF’도 결국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속성입니다.

이것이 과연 SF 바깥에서-특히나 저 고상하신 순문학 어르신들에게서 가능한 일일까요? 듀나한테 너 몇 살이냐, 결혼은 했냐 같은 명절 꼰대질만 하는 사람들에게서? SF를 읽지 않고서는-SF를 읽을 줄 모르면 아무리 로봇과 외계인을 등장시켜도 제대로 된 SF를 쓸 수 없다는 건 이미 다년간 웹저널 ‘크로스로드’가 충분히 증명해 보인 사실입니다.

물론, 본지가 SF의 정의를 너무 편협하게, SF의 본질을 너무 장르부심에 가득 차 설정해놓고 이건 SF네 이건 SF가 아니네 대법관질하고 있다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은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한들 ‘SF인가 아닌가’라는 질문, ‘SF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폐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이 SF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윽박지르는 것보다는 ‘너는 왜 이 작품이 SF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왜 이 작품이 SF라고 생각하지는지’ 혹은 ‘당신이 생각하는 SF는 무엇인지, 내가 생각하는 SF는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정다운 구닥다리 팬들 중에는 이미 90년대에 PC 통신에서 충분히 이야기된 주제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2015년 현재 우리는 당시와는 비교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다양한, 많은 수의, 최신 SF들을 우리말로 접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과연 논의가 이미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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