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 지음, 최세진 외 옮김. 아작

지난 호에서 “다음 책으로 차이나 미에빌의 역시나 SF가 아닌 {이중 도시}를 내민 점이 참 수상쩍지만 이후 코니 윌리스의 단편집을 두 권이나 내놓고 있는 행보를 보면 판단을 유보하게 합니다.”라고 했지만, 정작 코니 윌리스 걸작선 1권은 여전히 판단을 유보하게 합니다. 다섯 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제 아무리 휴고상과 네뷸러상 수상 경력을 앞에 내세워도 [나일강의 죽음]은 SF가 아니며, 그건 [리알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 소행]에 대해서도 (SF의 근간인 과학 논리 자체에 대한 회의주의적 사고 실험이라는 점에서) SF라고 이야기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자니 자신의 유령(!)이 다른 사람에게 빙의되었음을 깨닫고 곤혹스러워하는 회의주의자 H. L. 멩켄처럼, 목에 뭔가 영원히 걸려버린 듯한 느낌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벌써 20년 전인 1995년에 출간된 {시간여행 SF걸작선}으로 국내에 처음 이름을 알렸던 중편 [화재 감시원]이 여전히 이 작품집에서도 가장 훌륭한(혹은 거의 유일한) SF라는 점이 씁쓸하기도 합니다만, 실제로 작품을 읽은 감상은 20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때 그대로, 눈물이 핑 돌다못해 결국 넘쳐 볼 위로 흘러내릴 만큼 감동이 여전히 살아있어 세월의 무상함과 예술의 영원함에 대한 상념에 빠지게 합니다.

(생각난 김에 오랜 만에 다시 펼쳐본 {시간여행 SF걸작선}의 권말 소개가 인상적이라 여기 소개합니다.

과거를 변화시켜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코니 윌리스는 아니라고 답한다. 이 작품에서, 미래 세계의 역사학도인 주인공 바솔로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치열한 대공습이 있었던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는 그곳과 그곳의 시람들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역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코니 윌리스는 이 작품에서 역사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대나 사실의 암기가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에게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코니 윌리스는 미국 태생으로, 지금은 없어진 ‘갈릴레오’라는 잡지에 뛰어난 작품들을 기고하면서 ’70년대 후반부터 작가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82년부터 교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윌리스는 그후 몇 년 만에 아주 빨리 명성을 획득했따. 그의 문체는 희극과 비극에 모두 잘 어울리는 독특하고 강력한 목소리를가지고 있다. 1982년 두 부문의 네뷸러 상을 수상했는데, 바로 최상급 중편인 [화재 감시원]과 예리한 단편 [클리어리 가에서 보낸 편지]였다. 그리고 몇 달 후 [화재 감시원]은 휴고 상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8년에는 [위니바고 가의 최후]로 휴고 상을, 1989년에는 같은 작품으로 네뷸러 상을 수상했다. 이어 1989년에는 중편 [At the Rialto]로 다시 네뷸러 상을 수상하는 등 유난히 상복이 많은 작가이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93년 {둠즈데이 북}으로 휴고 상 장편 부문을 수상했으며({깊은 곳의 불(A Fire upon the Deep)}을 쓴 베너 빈지와 공동 1위)했으며 [여왕 조차도]로 단편 부문을 수상하는 등 두 개 부문에 걸쳐 휴고상을 석권했다. 그의 나이를 고려해 볼 때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최다 수상작가가 되는 것도 시간 문제일 듯하다.

[화재 감시원]은 시간여행을 주제로 작가의 역사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유머가 넘치는 필치로 표현한 최상의 중편이다. 이 훌륭한 작품을 이 책에 싣게 되어 기쁘다.

(아, 개화기스러운 계몽주의적 열정이 넘쳐났던 고색창연한 20세기여.)

 {화성의 포드케인}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안태민 옮김. 불새

도입부 설정이 {은하를 넘어서}와 흡사해서, 뒤통수에 손깍지 끼고 편안히 즐길 준비를 하는 독자들은 뒤통수를 제대로 처맞고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할 것입니다. 웃지마, 이건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지옥행 급행열차야.

도대체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왜 이런 결말을 선택하고 고수한 걸까요? 더이상 청소년 SF를 쓸 수 없다는 절망감의 발로? ({우주의 전사} 권말 해설의 분류에 따르면 1947년작 {Rocket ship Galileo} 이래 하인라인은 1958작 {은하를 넘어서}까지 매년 청소년 SF를 내놓았습니다. {화성의 포드케인}은 5년의 침묵(물론 59년에 {스타십트루퍼스}, 61년에 {낯선 땅 이방인} 등을 내놓고 있었지만) 끝에 내놓은 마지막 청소년 모험 SF입니다) 혹은 언제나 해피 엔딩으로 끝나야 하는 청소년 모험물에 대한 권태와 환멸? 위키피디아 영문판에서는 {스타십트루퍼스}와 함께 하인라인이 청소년 SF에의 안주를 끝낸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적절한 평가로 보입니다.

덕분에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 중에서도 제일 기묘한 지점에서 가장 이상한 향취를 뿜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말만으로 평가하자면 {스타십트루퍼스}도 그전까지 하인라인의 전형적인(사실은 하인라인 뿐아니라 청소년 모험 소설이 모두 그렇지만) 청소년 모험 SF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은 데 비해({은하를 넘어서}, {하늘의 터널}에서 익히 보았 듯이 모험과 역경 끝에 주인공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그러면서도 한 단계 성숙하죠), 이 작품은 66년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예감케 하는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씁쓸함으로 가득 찬 결말로 급전직하합니다. 청소년 모험 SF만이 아니라 SF, 혹은 장르소설 전체를 통틀어 장르 소설의 암묵적인 규칙을 그냥 철저히 무시하고 때려부순 (50대 아저씨가 한 손으로는 대머리를, 한 손으로는 콧수염을 어루만지며 ㅋㅋㅋ흐콰하겠다 중얼거리는 장면이 떠올라 괴롭군요) 결말이 가장 눈에 띄어서 나머지 요소들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만, 어찌 보면 오늘 날 한국 사회 그대로인 금성이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연상케하는 화성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하인라인 특유의 필치로 세밀하게 그려낸 행성간 관광선의 묘사도 우주 개발이 한창이던 60년대의 활기 넘치는 상상력이 고색창연하면서도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인라인이 아서 C. 클라크나 아이작 아시모프와 가장 차별화된 지점이라 할 수 있는 인물 조형 면에서, 톰과 포드케인은 그냥저냥 하인라인의 전형적인 당찬 등장인물들인데 다른 작품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악하리만치 머리가 좋고 철저하게 물질주의적인 11살짜리 천재 클라크가 흥미롭습니다. SF 중에서도 천재를 제대로 그려내는 데 성공힌 작가-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올슨 스콧 카드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죠),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드물게 성공한 예에 들어갈 것입니다.

 {여왕마저도}코니 윌리스 지음, 최세진 외 옮김. 아작

여러분,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여러분, [여왕마저도] 읽으세요. 세 번 읽으세요.

여러분, [마지막 위네바고] 읽으세요. 네 번 읽으세요.

그냥 이 단편집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읽으세요.

가벼운 농담이지만 SF 독자들이라면 가볍게 낄낄거릴 수 있는 [영혼은 자신의 사회를 선택한다]도 나쁘지 않고, SF는 아니지만 [마블아치에 부는 바람]도 묵직한 환상소설로 읽을 만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세 편-국내에 이미 비공식적인 번역을 통해 몇 번 소개된 [여왕마저도]마저도 넣어서-은 단지 코니 윌리스의 작품 세계만이 아니라 SF 전반에 대한 우리의 인식마저도 확장하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코니 윌리스의 단편들은 SF의 탈을 쓴 인간의 이야기, 위대한 휴머니즘의 발로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는 국내에 소개된 몇 안 되는 ‘제대로 웃기는 코믹 SF’입니다. 코니 윌리스의 SF로서는 그리 특별하지 않지만, 코니 윌리스 바깥에서는 흔하지 않죠. 인물들이 많이 과장되어 있지만, 그거야 본래의 희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고… 혹시 또 압니까? 정말로 그렇게 불편한 시선의 외계인들이 지구에 온다면 누구나 그렇게 바보가 되어 버릴 수 밖에 없을지. (웃음으로 가득 찬 작품이지만, 뒷맛은 묵직합니다. 사랑과 축복과 평화의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캐롤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건 외계인이 아니면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이죠. (나아가 기독교나, 종교 일반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요) 주인공 멕 예이츠의 말에 모스맨 박사를 비롯한 위원들 모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부분도 의미심장합니다. 실무는 도맡아 처리하지만 여성 칼럼니스트라는 이유로 따돌리고 무시하는 위원들은 외계인에게 똑같이 무시당할 뿐입니다)

[여왕마저도]는 SF의 주제와 소재를 한 계단 위로 끌어올린, 혹은 한 발짝 바깥으로 내딛은 작품입니다. 하위문화로서 SF가 소수자 문제에 민감한 건 코니 윌리스 이전에도 당연히 그랬겠지만, 이해받지 못하고 억압된 존재들 특유의 어둡고 낮은 목소리에서 벗어나 웃음과 수다 속에서 밝고 명랑하고 힘차게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코니 윌리스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마지막 위네바고]는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에서처럼, 배경 상황이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불친절한 서술에, SF에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신기한 소도구는 하나도 없고, 과거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직업이고 인생이고 쓸모없다는 태도로 우왕좌왕합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뿐인데, 그런데 어느 한순간, 배경 상황과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가 서로 맞물리며 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SF 안에서 SF를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양심과 죄의식과 이해와 연민과 소통과 구원과 성찰과 회한으로 가득 찬 결말이 주는 감동은 SF가 결코 소설 일반이나 문학 일반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을 확고부동하게 만들어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WEB

  [The Planet Caron] 김초엽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2016년 1월, 2월

아, 좋아요. 사람다운 표정을 지을 수 없게된 인간과 사람다운 표정(의 이모티콘)을 짓는 인공지능 같은 문학적 장치는 괜찮았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의 대기에는 메탄가스가 매우 풍부하다. 그리고 수많은 기체에 의해 압력이 가해진다. 한 마디로 다이아몬드의 원료가 될 탄소가 매우 많고 다이아몬드의 형성에 필요조건인 고압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가끔 번개가 치면, 대기 중의 메탄들이 탄소로 분해되었다가 흑연과 다이아몬드가 된다.

그런 고압력 속에서 도대체 무슨 정거장과 무슨 방호복이길래 버티고 있는 겁니까?

너도 귀찮을 테고.”

그렇게 내뱉고선 아차, 하는 생각을 했다. 프로그램에게 귀찮다는 감정이 존재할 리가 없으니.

그런데 네가 없는 동안 정거장은 누가 관리하지?”

저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니까요.”

그렇군.”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독자에게 정보 제공을 하기 위해 주인공이 쓸데없는 질문을 하거나 자문자답을 하며 작품 전체의 격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딱 이 경우죠.

찌질해서 여자한테 버림받은 남자가 찌질하게 훌쩍이기 위해서 다이아몬드 비가 내리는 행성이라는 억지 설정을 만들어놓고,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서 친절한 인공지능을 만나게 한 다음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20세기스러운 소재로 헤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주인공이 아무 내용 없는 감상적인 말을 늘어놓으며 이야기가 뭔가 마무리된 것처럼 눈속임하는 것 뿐입니다. 배경 설정은 배경 설정대로 무의미하게 굴러다니고 등장인물(과 등장인공지능)들은 무의미하게 따로 굴러다닙니다. 기승전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건들이 아무런 주제도 없이 무의미하게 흐르다 끝나는 이 작품은 도대체 왜 두 달에 걸쳐 연재된 겁니까?

여자한테 버림받은 찌질남이 외딴 우주정거장에서 찌질찌질거리는 이야기는 조지 R.R. 마틴도 [두 번째 종류의 고독]에서 한 짓이긴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만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요?

MAGAZINE

 [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에서] 듀나, ‘과학동아’ 2016년 1월호

중심 소재 자체는 국내외에서 수없이 이야기된 가상현실 이야기입니다만, 듀나 특유의 추상적인 사변이 새로운 맛을 더했습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서브장르에 대한 거리감을 이야기한 바 있는데, 하이 판타지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라는 점도 이채롭고요. 작중의 마법이 로저 젤라즈니와 비슷한 느낌의 설정-세계의 여러 현상 이면의 근본 원리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란 점도 흥미롭습니다. 결말에서 세계-우주의 SF적 실상이 세계 안의 판타지의 언어로 제시되는 부분도 볼 만한데, 여자 마법사와 여자 길잡이가 이계의 여왕을 깨운다는 이야기는 딱 듀나의 판타지라서, 즐겁게 썼겠구나, 생각하며 특히나 듀나 팬들이 즐겁게 읽도록 합니다.

 [귀향] 김창규, ‘과학동아’ 2016년 2월호

본지가 김창규 씨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SF에서 김창규 씨만큼 특이점 이후라는 소재에 천착하는 작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도 모두 저마다 각자의 지점에서 한국 SF의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고장원 씨가 근래에 밀고 있는, 고추장 SF론-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은 해외 작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없으니 한국에서만 가능한 주제와 소재를 찾아야 한다우리는 안될 거야 아마  그러니 우리는 최신 SF를 멀리하고 동네 SF를 쓰는 것이 좋습니다-에 대한 가장 뚜렷한 반례는 김창규 씨의 작품들입니다.
김창규 씨의 신작 [귀향]은 그러한 우리의 기대에 부합하는 수작입니다. 열린 결말이 다소 불만스럽긴 하지만 SF의 가장 오래된 주제 중 하나인 외계와의 조우를 중심축으로 전자 코드화된 의식의 감정에 대한 편집/통제와 죄의식과 양심의 문제, 심리적 상처에 대한 회피와 대면 등의 이야기를 응집성 있게 다뤄낸 솜씨는 훌륭해서 결말마저도 그냥 산뜻한 느낌으로 즐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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