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호 특집 기사의 연장선에서, 지난 두 달 동안 올라온 웹저널 ‘크로스로드’의 창간 10주년 특집 기사들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분류는 이전 호와 마찬가지로 가봅시다. 그러면 1.‘크로스로드’와 한국 SF에 대하여, 2.한국 SF에 대하여, 3.SF 창작에 대하여 순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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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로스로드’와 한국 SF에 대하여


.취미와 일, SF의 두 빛깔

‘크로스로드’의 SF란을 책임지고 있는 박상준(02호, 포항공대) 교수의 글입니다.

결국 웹저널 ‘크로스로드’가 왜 그동안 그렇게 함량 미달인 SF들을 게재할 수 밖에 없었나에 대한 곡절이 담겨 있는데,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크로스로드>를 두드리는 투고 작품이 끊긴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음껏 취사선택할 만큼 양이 많지도 않았다. 작품 투고 편 수 자체가 풍성하지 않고, 그나마 흡족한 마음으로 실을 만한 작품을 만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물론 일을 편히 하자면 청탁 비중을 높이면 되었겠지만, 이는 한국 창작 SF의 작가층을 넓히고자 한 <크로스로드>의 취지나 목적에 비추어 삼갈 것이었다. 투고 작품과의 비중을 맞추며 청탁 작품을 얻으려고는 했지만, SF 기성 작가 자체가 소수에 불과하고 그 분들이 항상 승낙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작품 게재의 어려움이 쉽게 줄지는 않았다사정이 이러해서, 크로스로드 SF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나는 문학전문가로서의 내 취향이나 내 개인적인 문학 이데올로기를 앞세우지 않았다. 앞세울 수 없었다.

를 보면 변명인지 해명인지 분간이 안 됩니다. {허생전}의 한 대목이 절로 떠오르지 않습니까? 투고작 수준도 낮고 수량도 적으면 청탁이라도 해야 할 텐데 SF 작가층 확대를 위해 청탁은 삼가겠지만, 굳이 청탁을 하려고 해도 작가가 적어서 청탁도 못하겠다? 그럼 도대체 10년 동안 뭐한겁니까.

후반부에는 박상준 교수의 개인적인 SF 취향을 시시콜콜 밝히고 있는데, 그냥 두루두루 유명한 작가들은 대충 좋아하는 편이고,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습니다. 이어서는 지난 10년 간의 어려움 세 가지를 밝히고 있는데, 계약서와 저작권 관련의 두 번째 항목은 그냥 변명이고, 단편선 출간과 관련한 세 번째 항목은  그럭저럭 기쁜 소식입니다만, 앞서의 변명 또는 해명과 다시 연결되는 첫 번째 항목은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크로스로드 SF의 작품의 질이 고르지 못하게 되더라도, 새로운 작가를 찾아서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있다는 생각’은 제발 좀 버리고, 최소 일 년에 듀나 단편 한두 편, 김보영 씨 단편 한두 편 씩은 좀 실어주는 노오력 정도는 해주면 안 됩니까? 원고 청탁 거의 없이 주류 문예지 수준을 상회하는 원고료를 걸어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작가 발굴의 노력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면 한국 SF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작가 발굴만이 아닙니다. 발굴된 작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통해 독자들과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작가들에게만이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한국의 창작 SF가 외국 SF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보다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여 안정적, 지속적으로 SF를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모범 답안은 잘 제출하면서 ‘크로스로드 SF는 지금껏 해 온 대로 보다 많은 작가들에게 발표의 기회를 주는 데 주력해야 할 듯하다’는 건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사태를 약간 긍정적으로 보자면, 관련 전문가들의 노력이 이 방면으로 좀 더 경주되면서 상황이 나아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는데, 3년 안에 망한 ‘과학기술 창작문예’나 1년 안팎으로 망한 “판타스틱” 등 지금까지 한국 SF계가 걸어온 길을 보면 사태는 항상 최대한 부정적으로 보는 게 맞았습니다. 한 달에 한 편씩 한국 SF가 지속적으로 발표될 수 있는 공간이 최소 두 개 이상 더 생기지 않는한, ‘크로스로드’가 작가 발굴에만 매진하는 건 김매기 싫고 거름주기 귀찮으니 씨만 뿌리겠다는 농부와 비슷하게 책임을 방기하는 것입니다.

한국 창작 과학소설이 거쳐 온 환경

박상준(01호, 서울SF아카이브) 씨의 글은 1907<태극학보太極學報>에 연재된 해저여행기담海底旅行奇譚부터 {철세계}, [K박사의 연구] 등등 그동안 나왔던 이야기들의 끝없는 재탕으로 시작됩니다. 1930년대의 ‘과학조선’ 등 일제강점기에서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중과학잡지에 실린 단편 SF들을 조명하거나 1950년대에 김복순의 {화성마}, 이봉권의 {방전탑의 비밀} 등 50년대 단행본 SF들을 호명한 것은 재탕에 그나마 새로 넣은 건더기이며, 60년대의 스푸트니크 충격 외에 50년대의 UFO 붐을 SF가 70, 80년대에 (최소한 아동 문학의 범주에서만이라도) 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제시한 것도 앞으로 계속 생각해볼 만한 관점입니다만, SF의 핵심인 상상력에 집중하는 한, 착실하게 영역을 넓혀가는 추세는 역전되지 않을 것이다.과학기술 가속발달의 시대에 SF는 더 이상 그 누구도 우회할 수 없는 교차로crossroad이기 때문이다.는 결론을 보면 그냥 있으나마나, 생일 축하 엽서 같은 글입니다.

교차로 위에서 교차하는 것들

‘한국SF계와 그 팬덤에 대한 가차없는 평으로 유명하다’모 위키의 평이 무색하게 김빠진 콜라 같은 글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노골적인 ‘크비어천가’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군요.

‘한국 SF의 질적 상향’과는 ‘선후 관계가 곧 인과 관계인 것은 아’닌 것을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작가군 유입, 독자층의 저변 확대’문제에 대해 한국 SF의 질적 하향평준화를 불러일으켜온 크로스로드Science Fiction 코너’를 해결책이나 대안으로 호명하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타당한 이야기입니까?

‘크로스로드’의 이름과 과학과 문학이 교차하는 SF의 특성을 이어붙인 것은 재치있는 말장난이지만, 아무리 ‘어느 공모전의 SF 단편 부문에서 중간 심사와 멘토링을 맡았’던 경험을 앞세운다 하더라도 한국 SF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웹저널 ‘크로스로드’의 한국 SF계에서의 의의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이고 호의적인 결론은 맨정신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듭니다.

기준점의 하향화가 과연 창작과 독서 양쪽의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한국 SF계를 회생시킬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20세기 초엽 미국의 펄프픽션 시장을 언급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는 이미 그 당시로서의 재현불가능한 토양이 있었을 뿐입니다. 영상 매체에 대한 활자 매체의 경쟁력이라든가, 역사적 변동을 이끌어낸 과학 기술 산업의 위력 목도 등 당시에 국한된 외적 요인들을 도외시한 채 지금 이 시점에서 99%의 쓰레기를 통해 1%의 걸작을 꽃피우자는 것은 비현실적인 공상일 뿐입니다.

2. 한국 SF에 대하여.


나의 본의 아닌 SF 덤비기

드캐스트에서 인기 있다는 원종우 씨의, 그러나 처음 들어보는 “태양계 연대기” 연재 전말기는 그냥 건너뛰고 결론을 봅시다.

‘하지만 그저 완성도 높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려 했던 덕에 자유롭게 모든 요소들을 엮을 수 있었다. 또 누구나 따라올 수 있는 몰입감 높은 스토리를 만들려 했기 때문에 SF팬이 아닌 독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었지 싶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어쩌면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나보다 뛰어난 SF작가들에 의해 이런 접근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래서 지금 듀나나 김보영 씨 같은 한국 SF 작가들은 ‘그저 완성도 높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지 않고 ‘누구나 따라올 수 있는 몰입감 높은 스토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누가 들으면 순문학도 아닌 주제에 재미없고 아무나 따라올 수 없는 고상한 이야기 지어내서 예술하느라고 대중성 놓치고 있는 줄 알겠습니다?

이어지는 대중음악과의 유비추론 역시 힘빠지는 이야기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단 대중음악만이 아니라 대중 문화 전반의 기반이 처절하게 취약하고 황폐한 이 나라에서 무슨 장르든 비슷비슷하겠는데, 현실태야 비슷해보일지는 모르지만 각 장르별 속성과 역사, 매체와 유통 체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유사성에 현혹되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종이책과 e북과 웹툰과 음원과 CD와 LP가 과연 같을까요? 원종우 씨가 ‘딴지일보’를 통해 유통시킨 본인의 팩션을 SF로 부르는 거야 본인의 마음이지만,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혹은 {태양계 연대기}의 흥행이 2010년대 초의 정치사회적 환경과 ‘딴지일보’라는 매체의 특성(반지성주의와 선동주의의 행복한 교집합인 음모론 애호)에 기대지 않고 전적으로 SF 팩션으로서 대중의 눈높이와 취향에 맞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은, 혹은 그것을 한국 SF 전반에 대한 진단과 전망으로 일반화해서 제시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지 않겠습니까?

미래만이 아니라 현실의 상상력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SF

‘대중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로 여기저기 안 끼는 데 없이 얼굴 내미느라 바쁘신 김봉석 씨의 글은 역시 기대했던 대로 ‘추억의 아이디어 회관’, ‘공상과학과 SF’, ‘오오 경이감 오오 센스 오브 원더’, ‘휴고 건즈백 가라사대 SF란…’ 등등 이제는 SF 밖에서도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듯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후로도 박상준 씨(01호)도 차마 하지 않았던 SF에 대한 잡다하고 두서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한국 아저씨의 전형적인 맨스플레인스럽기도 하고 부흥회를 너무 많이 다닌 전도사님의 무조건반사적인 방언 같아서 살짝 무섭기도 하고 좀 그렇습니다. 결론도 그냥 뻔하게, 모든 것이 급격하게 바뀌는 현대 사회에서 SF는 교육적으로 중요해용~으로 끝맺는데, 내용보다는 그냥 끝났다는 안도감이 가련한 독자의 집 나간 넋을 다시 불러들여 위로합니다.

SF와 나

“마징가 Z”를 보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는 이강영 교수(경상대)의 글은 독자로서 SF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소박하고 허심탄회하게 풀어내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맨스플레인적인 요소가 적으니 오히려 귀 담아 들을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마무리로 SF의 리얼리티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은, 이론물리학자로서 SF의 과학적 리얼리티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적절했을지 모르겠는데, 이야기 배경의 정치사회적 리얼리티라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살짝 오버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떠나 그냥 한 명의 독자로서 의견을 개진한 것이라며는 또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이 지면이 또 그냥 그렇게 아무 독자나 와서 떠들라고 만든 공간은 아니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는 다른 특집 기사들도 거의 다 그렇게 되었습니다만)

SF&판타지 도서관과 함께 한 시간

전홍식(SF&판타지도서관) 씨가 원래 좀 그렇긴 하지만 뜬금없기도 참 뜬금없는 글입니다. ‘크로스로드’ 10주년 특집 기사에 자기네 단체의 행사 시행착오 전말기를 올리는 센스는 무신경하다고 해야할지 담대하다고 해야할지 파렴치하다고 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SF 콘벤션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페스티발 행사장으로 향하는 통로에 위치한 천막은 잡상인의 그것보다 초라했고, 출판사의 기증으로 준비한 수많은 책은 구경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들뜬 마음은 가라앉고 우울함이 가득한 가운데 이틀간의 여정은 종료되었다. 뭔가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실망과 아쉬움으로 가득했던 행사.에 대해 스스로 던지는 질문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의 답은 바로 그 다음 사진에 있습니다.

뭐가 문제였는지 정말 모르겠습니까? 조지 루카스라도 모른척하고 지나가겠다.

‘처음에 내가 좋아서, 하고 싶어 시작했지만, 이제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남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나누고 싶다면 그들에게 더 잘 보여주고자 노력해야 한다. 내가 좋아서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들도 좋아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걸 이제야 아셧쎄요, 한숨이 절로 나오게 하는 깨달음이지만,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앞으로라도 SF&판타지 도서관이 끼어든 행사들에서 순진한 일반인들에게 SF 팬들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불쾌한 편견을 퍼뜨리는 오덕질기이한 이벤트들 좀 그만 볼 수 있으면 참 다행이겠습니다.

3. SF 창작에 대하여.


제게 SF를 허락해 주십시오

[앱솔루트 바디] 이후 제대로 된 SF는 하나도 내놓지 않고 있는 SF 작가 임태운 씨의 글은 임태운 씨답게 시덥지 않은 고부간의 갈등의 비유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중간의 UFO 관련 진솔한 경험담이나 이후 SF에 대한 애정 고백은 가슴 뭉클하게 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만, 인생은 실전이고 세상에 진정성만으로 통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임태운 씨가 앞으로라도 SF를 허락받고 싶다면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SF를 허락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감성 팔이보다는 그냥 제대로 된 SF를 쓰는 게 제일 빠르고 쉬운 길이지 않을까요.

미래에서 온 소녀

[우리 반에서 양호실까지의 거리] 등을 쓰고 SF소설가를 자임하는 서진 씨의 글은 그냥 지금까지 자신이 쓴 글을 아무도 안 읽어주니까 자기가 나서서 요약하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쯤 되면 짐작하시겠지만 민망함은 모두 링크를 클릭한 죄없는 독자의 몫입니다. ‘이는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는 행성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마지막 남은 해결책이 시간 여행이었던 것이다.‘ 같은 비문을 보면 이분이 얼마나 절박하고 다급하셨을지 이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해해서는 안 되겠죠, 아마도 절대로. 본인의 작품을 예로 든다 해도, 그걸로 SF의 속성이나 SF 창작에 대한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면야 상관없겠습니다만, 끝끝내 본인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맺는 이 후안무치한 글은 그냥 글쓰기가 본인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넋두리일 뿐입니다. 아무리 ‘크로스로드’가 아무 글이나 막 실어주는 걸로 악명이 높다해도 이분 글은 ‘크로스로드’에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SF는 ‘세계’에서 출발한다

임태운 씨, 서진 씨, 보고 있습니까? SF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가져온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뇌수(腦樹)]의 집필 과정을 예로 든 부분도 흥미롭지만 이를 통해 김창규 씨가 강조하는 세계 설정의 중요성은 SF 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본지에서도 다룬 바 있지만 과학적 설정 뿐아니라 사회적 설정의 중요성을 언급한 점도 놓치지 말고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이전 호의 김보영 씨의 글과 역순으로 연결해서 읽으면 ‘세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설정된 세계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라는, SF 창작에서 제일 기본이 되는 부분에 대해 현장에서 직접 창작하고 있는 두 작가의 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창간 10주년 기념 특집 기사로 SF에 대해 이렇게 많은 공간을 할애한 것에서 ‘크로스로드’가 SF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두터운 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판타스틱’에서도 이 정도 분량으로 한국 SF가 다뤄진 적은 없었지 않았나 싶은데요. 본지에서 그동안 수없이 두드려 까긴 했지만 현재 한국 SF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줄기가 ‘크로스로드’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와는 별개로, 기사들 면면에서 한국 SF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이 흐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덧붙여야 할 듯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과학 문화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으니 한국 SF의 앞날은 밝다? 물론 밝으면 본지로서도 좋겠지만 광고도 수주하고 유료 원고도 막 받아서 월간 alt. SF를 찍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음에 한 번 더 길게 다룰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한국에서 SF는 극소수의 독자들에 의해 지탱된다기보다는 다른 장르소설들 사이에서 구색 끼워맞추기 형식으로 연명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물론 지난 10년 간 실질적으로 혈혈단신 한국 SF를 지탱해온 ‘크로스로드’ 10주년 특집 기사에서 이런 암울한 전망을 줄 수는 없었으니 낙관적인 일반론 밖에는 나올 수 밖에 없었겠지만요. (다만, 트위터를 통해 알라딘 서점 북펀드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작’ 출판사의 행보는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한국에서 SF가 게토 바깥으로 나가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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