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리틀 브라더}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아작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코리 닥터로우의 SF는 현실에 지나치게 접근한 탓에 SF적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은 작품입니다. 특히나 지금 여기 한국에서는요. 여덟 쪽에 걸쳐 권두를 뒤덮은 찬사들은 그러니까 SF로서는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비난이며, 정당한 비난입니다. SF는 현실에 천착하면 안 되냐고요? 네. 안됩니다. 영화 “그래비티”에 대한 듀나의 언명은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본지에서 몇 번이나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특정 작품에 대해 SF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결코 그 작품에 대한 비난이 아닙니다. 다만 장르 경계면의 흐릿한 지점을 악용해서 SF가 아닌 것을 SF라고 우기는 사기꾼들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것이며, alt. SF는 그런 사기꾼들에 대한 머법관파수꾼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리틀 브라더}를 앞세우며 SF 전문 출판사를 자임하는 아작 출판사도 그런 사기꾼이나 협잡꾼인 것일까요? 다음 책으로 차이나 미에빌의 역시나 SF가 아닌 {이중 도시}를 내민 점이 참 수상쩍지만 이후 코니 윌리스의 단편집을 두 권이나 내놓고 있는 행보를 보면 판단을 유보하게 합니다. 차후에 더 상세히 다룰 필요가 있겠지만 아작 출판사는 애초부터 추진력이 없던 기존 SF 팬덤을 처음부터 깨끗이 포기하고 팬덤 바깥에서 SF의 영역을 확보하는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SF거나 아니거나 {리틀 브라더}는 읽을 만한 소설일까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입담은 그럭저럭 괜찮고, 사건 전개 속도도 읽다가 멈추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경쾌합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이 다시 문제가 됩니다. 권두 추천사들에서 보이는 ‘내려 놓을 수 없다’, ‘숨가쁘게’, ‘한순간에 넘어가’, ‘흥미진진한’, ‘빠져나오지 못할’ 등의 표현들은 결국 이 책이 독자들에게 비판적인 사고를 할 여유를 전혀 주지 않고 교조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좋은 소설이 다른 좋은 예술과 문화들과 마찬가지로 독자의 시야를 넓히고 사고의 깊이를 키운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옵니다.

 {옆집의 영희 씨} 정소연 지음, 창비

지금까지 정소연 씨가 쓴 소설들을 모두 모았지만 그리 두께는 두껍지 않은 이 책은 그러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김보영 씨를 제외하면 이 정도로 묵직한 주제 의식을 보인 한국 SF 작가는 없으며, 어쩌면 이 방면으로는 김보영 씨도 뒤에 놓일 듯합니다.

다만 그렇게 진지한 주제 의식을 소설이 잘 뒷받침하고 있냐면, 그렇지는 못합니다. 다수의 작품들에서 이야기는 제대로 완결되지 못하고 반전과 결말이 너무 급격하며 뜬금없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결국은 소설의 중심 갈등이 뚜렷하지 않거나 충분히 발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갈등이 뚜렷한 작품들인 [입적]과 [처음이 아니기를]을 봅시다. [입적]에서 정희 부부와 주인공의 대치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꽤 높은 지점까지 끌고 올라갑니다만,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시점보다 한 호흡 빠르게 대치가 풀리면서 결말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처음이 아니기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세계적 참사가 시작되는 지점을 사회적 통제가 심한 중국으로 놓은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극적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는데, 돌연 작품 속 시간이 한참 건너뛰어 주인공이 뜬금없는 회한이나 읊조리다 끝납니다. 이쯤 되면 애초에 정소연 씨에게 이야기를 제대로 끌고 나가서 매듭지을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어쩌면 지나친 주제 의식이 이야기의 발목을 잡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처음이 아니기를]은 결국 중학교 동창의 때이른 죽음과 경남 지방의 남녀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며, 나머지 작품들에서도 외계인과의 만남이나 평행 우주로의 방문, 지구와 달의 정치적 대립, 항성간 비행과 행성 개척 등의 SF적 소재들보다는 부모와 자식, 오피스텔 이웃간, 동성 사이의 연애 등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가, 그것도 특히 주인공 혹은 서술자에게 그러한 관계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으며, 이러한 점은 90년대 이후 한국 순문학의 자폐적 경향을 떠올리게 할 정도입니다. 장르 소설을 주제보다 소재에 훨씬 집중하는 소설들로 거칠게 정의하자면 {옆집의 영희 씨}의 수록작들은 정말로 장르적이기보다 문학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반적으로는 한국 SF 안에서는 순문학으로의 접근이라는 의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별 작품들은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중 도시} 차이나 미에빌 지음, 김창규 옮김, 아작

SF랑은 차이나 차이나 미에빌의 장편 소설은 설정부터 흥미롭고 이야기도 매혹적입니다만 불행하게도 SF는 아닙니다. 아니, 뒷표지의 광고 문구와는 반대로, 모든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SF와 판타지의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잘했는데, 침범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절정 이후로는 평범한 판타지로 전락해 버립니다.

동일한 도시를 시민들의 인식이 서로 다른 도시로 분할한다거나 그러한 분할 속에서 두 도시의 시민들 각각에게 서로 다른 도시로 인식되는 제3의 도시가 나타난다는 설정은 SF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만, 이야기는 그러한 설정의 잠재력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SF 전문을 자임하는 출판사에서 ‘마침내 가장 지적인 SF가 된다’는 설레발을 쳤다는 점을 무시한다면, 그러니까 그냥 도시 판타지-하드보일드-경찰 버디 수사물(다트와 볼루 사이의 관계는 특정 여성 독자층에 어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모르겠군요)로 읽는다면 무난하게 재미있는 작품이긴 합니다.

 {허공에서 춤추다} 낸시 크레스 지음, 정소연 옮김, 폴라북스

역자 후기 말마따라 한국 SF계에 거의 공백으로 남아있는, 90년대 미국 SF에 대한 한국 SF 독자들의 이해를 넓혀주는 단편집인데, 꼭 시대적인 의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제나 소재 면에서도 SF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중요한 작품집입니다. 수록작들 면면을 들여다보자면,

[스페인의 거지들]은 2008년 5월부터 7월까지 잡지 ‘판타스틱’에도 연재되었던 작품이지만, 슬슬 ‘판타스틱’이 망해가던 시점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일찌기 국내에 소개되었을 정도로, 낸시 크레스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렇게 집요하게 추적한 작품도 드물지 않을까요?

[파이겐바움 수]는, 앞서의 [스페인의 거지들]그나저나 제목 참 거지 같습니다도 그랬지만, 어쩐지 테드 창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엄밀히 말해 SF로 보긴 힘들지만-주인공들의 환각을 설명할 물리적/생물학적 기제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와 그로 인한 인간의 절망을 정말로 면도칼처럼 예리하게 다뤄내 감탄을 자아냅니다.

[오차 범위]는 이 작품집에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주제-생명공학/나노공학의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단 하나의 장면 속에서 강렬하게 터뜨린 수작입니다.

[경계들]은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인간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약물의 부작용을 다룬 이야기지만, 안으로는 몇 개의 이야기들이 층층이 쌓여 풍요로운 의미를 형성합니다. 줄여서 풍미라고 해도 좋을, 두터운 층위의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감동은 작품을 몇 번이고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더구나, 쇼너시와 캘리, 캘리와 제프, 쇼너시와 버키, 버키와 신神과 힐리, 버키와 토미와 쇼너시, 쇼너시와 마지 사이의 모든 관계들이 카미뇌와 J-24를 중심으로 단일한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 그 점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효과는 그저 감탄을 자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딸들에게]는 유일신교의 남성우월주의를 예민하게 비튼 작품인데, 그런 작품들이야 원래 좀 있고, SF도 아니니까 그냥 넘어갑시다.

[진화]는… SF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지구와 인류 사회는 무수한 종말을 맞이했습니다만, [진화]의 전망은 수많은 종말 시나리오에 둔감해진 SF 독자들의 감수성을 새삼 새롭게 일깨웁니다. 여학생들의 경쟁과 질투와 배신, 그 바탕이 되는 계층간의 갈등, 모자 간의 애착과 부부 관계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 낸시 크레스의 소설들의 기묘한 점은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집중이 주제를 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제를 강화하고 작품 전체의 풍미를 극대화한다는 점입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물론 굳이 분류하자면 대체역사물에 넣을 수 있겠지만, 그냥 넘어갑시다.

[성교육]은 애매한 작품입니다. 어린이 화자를 설정했기 때문인지, 작품의 배경 설정이 명확하지 않고, 그 때문에 이야기 전개도 모호합니다. 물론 사태의 당사자를 화자로 설정한 효과는 무시할 수 없겠지만요.

[오늘을 허하라]는 딱 프랑스의 저명한 공상과학소설가 버나드 웨버 선생이 떠오르는 설정인데요, 이 짧은 단편은 그렇지만 버나드 웨버 선생의 애독자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경지에 가볍게 올라앉아 있습니다.

[올리트 감옥의 꽃]은 아마도 이 작품집의 모든 수록작들은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해외 SF들 중에서도 독자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독서 활동을 가장 극한까지 요구하는 작품 중 하나일 것입니다. 어슐러 K. 르귄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한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극단적으로 발현된 작품으로, 독자를 한순간에 정말로 낯선 행성, 낯선 삶 속으로 순간이동시킵니다.

[여름 바람]은 전형적인 동화-다시-쓰기 판타지니까 넘어갑시다.

[언제나 당신에게 솔직하게, 패션에 따라]를 뒷표지에서 사이버펑크적 경향의 작품으로 소개하는 건… 낸시 크레스 작품 세계의 다양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감안해도 살짝 오버이지 않습니까? 물론 사이버펑크가 꼭 윌리엄 깁슨과 닐 스티븐슨, 브루스 스털링 등의 손에만 편협하게 쥐여 있는 서브 장르는 아니겠습니다만… 어딘가 마누엘 반 로겜의 [짝 인형]을 살짝 연상시키는 이 소품은 현대인의 의식 구조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허공에서 춤추다]는 번역본 표제작으로 선정된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작입니다. [경계들]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등장동물을 포함해서 전원의 복잡한 관계가 작품 전체의 주제를 향해 두텁게 짜여져 만들어내는 풍미는 압도적입니다.

여담인데, 하필이면 번역자인 정소연 씨의 (지금까지의 전집이나 다름 없는) 작품집과 같은 시점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상당히 미묘합니다. 아이러니컬할 정도로요. 정소연 씨가 이미 밝힌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두 단편집을 함께 읽으면 낸시 크레스의 정소연 씨에 대한 영향 관계는 굉장히 뚜렷이 나타나는데, 그게 정소연 씨 작품들을 보다 충실히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정소연 씨 작품들의 보이지 않던 한계를 뚜렷이 강조해주기도 하니까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입적]의 중심 모티프인 구출-입양과 서로 다른 종으로 분화된 인간 사이의 신뢰와 소통은 [스페인의 거지들]에서는 두 번 중첩되며 결말의 묵직한 풍미를 이끌어내는 것에 비하면 빈약해 보입니다. [처음이 아니기를]의 어딘가 부족한 파국은 [진화]를 읽고 나면 빈 자리를 채워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인물 간의 관계와 특히 중심 인물의 인식/태도의 전환이 작품의 절정-결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데, 낸시 크레스가 보다 많은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주제와 소재를 유기적으로 결합해내는 데 성공했다면 정소연 씨는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 속에서 두셋 이하의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가 다뤄져서 주제와 소재가 따로 놀게 되었다는 분석도 가능할 것입니다. 어쩌면 정소연 씨가 낸시 크레스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순간 정소연 씨의 SF들이 질적 ‘도약’을 이뤄내고, 정말로 한국 SF가 한 걸음 더 ‘개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첫숨} 배명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배명훈 씨의 소설들 중에서 SF에 가장 집중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절정-결말의 반전인 그 ‘아이’ 부분도 멋지지만, 도입부-정확히는 46쪽에서 주인공이 사는 동네가 ‘첫숨’인 것이 밝혀지는 부분은 정말로 감탄할 만합니다. 김보영 씨의 [땅밑에]를 잊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제는 슬슬 존 스칼지를 떠올리게 할 지경인 공허한 말장난이나 독자보다 한 발짝 먼저 자신의 이야기에 도취해버리는 자뻑은 여전하지만, 한쪽 발목을 다친 채 원통형 궤도 식민지의 수직축 끝을 향해 홀로 나아가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명명백백히 윌리엄 깁슨의 걸작 {뉴로맨서}의 재판임에도 오마주로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만치 SF로서 재미나 감동이 충실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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