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조커가 사는 집} 김상현 외 지음, 작은 책방.

작년의 제1회 ‘SF 어워드’ 단편 수상작들과 올해 SF 페스티벌 포럼 주제 중 하나인 ‘가상현실’에 관한 신작 단편들을 모은 단편집입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90년대 초반 저작권 조약 가입 전 해외 대중소설의 해적판 번역본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싸구려 악취미가 가득한 디자인과 장정 등 전반적인 만듦새입니다. ‘사이파이의 세계가 전하는 공포, 스릴러 그리고 경이의 순간과 반전의 미학! 당신이 생각하는 단편의 매력과 그 이상의 즐거움이 기다린다!!’ 같은 SF&판타지 도서관스러운 사이하고 쌈마이스러운 카피(그나저나 SF&판타지 도서관은 왜 뜬금없이 지금까지 밀던 ‘상상과학’을 접고 ‘사이파이’를 새로 밀기 시작했답니까? 도대체 어떻게 SF를 구체적으로 하면 Sci-Fi가 됩니까?)를 앞표지 상단에 흐릿하게 박아놓은 것도 우습지만 제목 아래의 그야말로 쌈마이스런 트럼프 기호들과 조커 그림은 이 책이 출간에 의의가 있지 판매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는 안분지족 무위자연의 동양철학 돋는 책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책표지 바탕 무늬도 싸구려, 겉표지 코팅 재질도 싸구려스러운데다 책날개 편집과 디자인도 수미상관하게 무성의하고 싸구려스러워서 혹시 수록작 저자들이 어디 수상한 조직국립과천과학관에 납치되어서 강제로 출판 계약서에 도장찍고 풀려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어쨌거나, 구린 디자인에 애써 눈 돌리고 수록작을 살펴보자면,

표제작 [조커가 사는 집]은 SF는 아니지만 자신의 의식에 대한 인간의 조작과 그로 인한 파국을 상당히 흥미롭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연구소), 군대로 공간과 주인공의 소속이 바뀌며 이야기가 발전하는 구조도 재미있고, 주인공이 스스로의 의식에 손을 대는 계기와 그로 인한 상황 전개도 흥미롭습니다.

[옥상으로 가는 길]은 좀비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했지만 별반 재미 없이 어둡고 끈적하기만 한 작품입니다. 인물들이나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너무 평면적이고, 그냥 문명을 버린 인간들의 야만스런 민낯을 들추어보자는 것 외에 어떤 다른 의도가 있는지 별로 짐작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사건의 재구성]은 미래의 가상 사법 제도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아무런 주제 없기는 위의 작품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결말의 반전을 염두에 두었다 하더라도 지희의 캐릭터는 일점의 현실성 없이 너무 작위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사들도 너무 과장스러워 작품에 몰입은 고사하고 스토리를 따라가기도 싫어질 지경입니다. 미영의 사건 당일 행동들도 재구성을 통해 피상적으로만 나타났다 하더라도 현실성이나 개연성이 없으며, 당일 행동의 근본 동기도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 결말까지 가더라도 통속적 흥미 외에는 아무런 재미도 남기질 않습니다.

[장군은 울지않는다]는 본지에서 리뷰한 바 있으니 넘어가지만, 앞서의 [옥상으로 가는 길]과 함께 도대체 어떻게 전년도 SF 어워드 본선에 진출했는지 의심스러운 졸작입니다.

[큐피드]는 듀나의 신작입니다. SF라기보다는 환상 소설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야 할 작품이지만, 듀나 특유의 새침한 설정과 서술, 흥미로운 발상과 결말은 듀나 팬들에게는 이 구린 단편집을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사야만 하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씨앗]은 존 발리의 [노래하라, 춤추라]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식물의 공생체가 등장하는데, 그렇게 화끈하게 SF적 상상력을 발휘하진 않았고, 식물성에서 대안적 삶을 발견하는 한국 문학/장르 소설의 일부 경향을 그대로 잇는 글입니다.

[업데이트]는 예전에 과학동아 수록작을 리뷰한 적 있지만, 이 단편집의 여타 수록작들, 특히 다른 본선 진출작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감상적이면서도 하드한 SF 단편으로 김창규 씨의 본령이 어디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지하실의 여신들]은 H.P. 러브크래프트의 ‘허버트 웨스트’ 연작에 지나치게 많이 기댄 작품입니다. 작품 자체의 구성이나 서술, 완성도는 썩 괜찮은데, 이 모든 것이 러브크래프트의 팬픽션이라는 전제 앞에서 빛을 잃어버립니다.

[도둑맞은 어제]는 도대체 왜 골라 넣었는지 알 수 없는 일본 호러 SF입니다. 전혀 설명되지 않는 이유로 기억 능력을 상실해버린 사람들이 기계적 메모리에 의존해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본의 역겨운 악취미 변태 싸이코 고어물의 전형적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USB 메모리를 아무 생각 없이 SF 아이템화 한 외부 메모리가 어떻게 인간의 두뇌와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생각 같은 건 애초에 포기하고 그냥 중년 변태 범죄자가 여중생들을 능욕하고 살해하는 일에만 천착하고 있습니다.

WEB

 [별물낚시] 사지용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2015년 9월호.

미싱믹싱 로드’, ‘좌초’와 ‘조난’ 등의 작중 핵심 개념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인터스텔라” 짝퉁처럼 우주 조난과 구조, 시간과 공간의 교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작가 본인의 상상 속 우주를 작가 본인도 명확히 알지를 못하니 독자는 처음에는 맹렬히 작품 속 우주를 따라가주려다 중간에서 포기하고, 이후로는 자포자기 상태 속에서 모든 서술을 그냥 그러려니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SF 속 설정이 반드시 현실의 물리학과 일치할 필요는 없으나,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 우주가 어떠한 질서와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인지ㅡ최소한 사건과 관련된 부분만이라도ㅡ작중에서 제시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영도 짝퉁스러운 인물들이 이영도 짝퉁스러운 한심한 대사들을 딴에 재치 있는 것처럼 쏟아내는 것들도 보기 괴롭고, 본문에서도 ‘우주의 넓이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라고는 했지만 82척의 구조선으로 우주 전체를 커버하는데 출항 후 사흘만에 구조 신호를 잡고 연거퍼 또 구조 신호를 잡는 기적의 확률이 나오는 코딱지만한 우주를 바라보는 것도 참으로 괴롭습니다.

 [영원한 일요일 오후] 박성환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2015년 10월호.

앞과 뒤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맞붙여서 겨우 소설 꼴을 유지한 글입니다. 전반부는 일종의 유토피아물인데 할아버지 팬티 고무줄만큼이나 굉장히 의욕없고 무기력하고 맥빠진 유토피아(물론 재미있으면 유토피아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이고, 후반부는 이러한 유토피아의 실상에 대한 폭로를 통해 반전을 주고 있는데, 이 반전이 간신히, 글 전체의 맥빠진 서술에 일종의 서사와 같은 유사 효과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불멸과 관련한 사변은 [성스러운 생태계]의 재탕이고, 무정부적이고 원시 공산주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유토피아나 가상 환경 속의 우주와 사회도 [입이 있다 그러나 비명 지를 수 없다] 등 박성환 씨의 다른 글들에서 많이 본 부분입니다. 전반적으로 소품임을 감안하더라도 새로운 것 없이 동어 반복하고 있는 모습은 슬럼프 혹은 매너리즘의 우려를 짙게 합니다.

SPECIAL REVIEW

일찌기 본지에서는 국내 SF 창작 활성화를 위해 ‘원고 모집 공고’를 낸 바 있습니다. 원고료를 지급할 수 없는 일개 1인 팬진 주제에 원고를 받겠다고 나서다니 간이 부었었습니다만, (그리고 당연히 호응도 하나도 없었습니다만) 근래 희망하신 분이 있어 이 자리에 소개합니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유이립 씨가(본명 아닌 것 같지만 한국식 성+이름 체계를 갖추었으니 존칭을 붙입니다) 보내주신 두 편의 원고를 해당지 링크와 함께 리뷰하겠습니다. 

‘거울’ 144호 [스키마 리셋기]

심리학 용어인 ‘스키마’를 단순히 ‘선입견’ 정도로만 해석한 부분과 보수 언론의 ‘귀족 노조’ 프레임을 그대로 재사용한 부분, 핵심 소재인 ‘스키마 리셋기’가 작품 내내 변죽만 울리다가 쓰이지 않고 마침내 결말에서는 단순히 맥거핀 정도로 굴러 떨어져 김이 빠지는 부분 등이 아쉽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항목은 장르 소설로서의 재미를 거의 내다버린 셈이라 특히 안타깝고요.

그러나 정작 ‘스키마 리셋기’가 작품 안에서 전면적으로 사용되었다면, 줄거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하겠지요.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스키마 리셋기’란 내 주장에 어떤 틀린 점이 있든 인정하고 싶지 않고 다만 상대방에게 무조건 관철시키려는 보수 기득권층의 욕망에 대한 은유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심지어는 자신들의 욕망마저 상대방에게 투사해서 상대방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두 번째 항목과 관련해서, [치킨 헤드]에서도 노사 갈등과 파업이 상당히 냉소적으로 유사하게 다뤄지는데, 소설이ㅡ특히나 장르 소설이 정치적 공정함 등을 기계적으로 준수해야할 이유는 결코 없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정치적 혹은 이념적 균형 감각은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누군가처럼 인공지능화된 부자들이 인류를 절멸시키기 전에 윤리적 세뇌를 허용해야 한다는 찌라시나 양산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거울’ 146호 [전달자]

아, 이건 좀 재밌네요. 전형적인 핵전쟁 이후물입니다만, 현재 한국 사회를 이리저리 비튼 풍경이 볼 만합니다. 방사능 낙진 이후 돌연변이가 실제로는 그처럼 다양하고 안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나 이 정도는 핵전쟁 이후를 다룬 SF들의 장르 관습을 그대로 따랐다고 볼 수 있을 것인데, 발상과 이야기의 큰 흐름이 국내에 영화로만 소개된 데이비드 브린의 {postman}과 유사한 점이 많이 걸리고 특사의 진짜 정체-과거나 동기 등-가 밝혀져 있지 않은 점이 또한 조금 아쉽습니다. 후자의 문제는 짧은 중편 분량에서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치킨 헤드] 까지 읽어보면 중편 이상의 분량에서도 이야기가 힘을 잃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조금 더 많은 분량 속에서 작중 세계를 보다 많이 보여주고, 주인공과 주제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파고들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

,

,

,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