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레이 브래드버리}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현대문학.

레이 브래드버리 단편도 그만하면 국내에 꽤 소개된 편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작품집은 SF 혹은 환상소설의 장르 꼬리표에 구애받지 않고 단편소설가로서 레이 브래드버리를 조명하는 기획 의도에 따라 지금까지 우리가 접할 수 없었던 레이 브래드버리의 새로운 모습을 살짝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 당신 못 봐요]나 [흑백 친선 야구시합], [태양과 그림자] 같은 단편들은, 물론 근본적으로는 20세기 미국 백인 남성 작가라는 한계점이 있긴 하겠지만, 빈부나 인종 등의 인간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사회 모순을 외면하고 한없이 우주와 예술, 노스텔지어에만 빠져들었던 사람은 아니었다고요.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SF나 판타지의 경계 바깥에 선 작품들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 특유의 서정적인 산문의 마법이 많이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100만 마리’, ‘1000만 년 전’, ‘1000킬로미터'( [안개 고동]), ‘1억 킬로미터'([황야]), ‘거미줄 100만 개’, ‘100만 개의 지문'([그릇 밑바닥의 과일]) 등등 예를 들자면 끝도 없이 쏟아지는 과장된 숫자들에서 단적으로 보이듯, 레이 브래드버리의 문장은 과장과 과잉, 메마르고 따분한 현실의 테두리를 넘어서 영원한 미지를 끝없이 동경하는 낭만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번 단편선이 레이 브래드버리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점이 흥미롭긴 하지만, 레이 브래드버리의 진면목은 여전히 표제작 [태양의 황금 사과]나 [시작의 끝], [로켓]처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순수한 낙관과 기대, 희망을 담은 SF들, 그리고 [타임머신], [여름이 달려가는 소리]처럼 지나가버린 찬란한 유년기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담은 노스텔지어물들에 담겨 있습니다.

 {마션}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RHK.

책표지의 4/5를 가리는 또하나의 표지띠지는 영화화에 목숨 건 출판사의 처절한 절박함이 느껴지는데, 뒷면에서 영화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를 호명하는 모습에 이르면 소설을 파는 건지 영화를 파는 건지 아리송해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SF 독자 입장에서는 그보다는 ‘존 스칼지가 쓴 화성 표류기’ 정도로 요약하면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고로 혼자 화성에 남겨진 입담 좋은 미스터 낙천주의 주인공은, 고독과 절망 따위 감정은 한눈으로 힐끗 지나치고 그보다는 해결할 문제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며, 문제를 해결해도 또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에 너무도 황홀해합니다. 문제-해결 과정이 SF만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 많이 사용되는 구조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처럼 문제-해결이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되풀이되는 구조는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으로는 {별의 계승자} 정도가 비교할 만합니다. 하지만 ‘학회 SF’라는 별명에 맞게 {별의 계승자}가 보다 추상적인 문제에 대한 논리적인 해결 과정이라면 {마션}은 주인공이 생명과 생존을 걸고 보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공학적인 해결 과정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하드하다는 평이나 소개가 많은데, 영화를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딱 “그래비티” 정도의 현실감과 사실감을 묘사하기 위해 ‘하드하다’라는, SF에서는 오해하기 쉬운 표현을 가져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개봉할 영화에 대해서 듀나는 또다시, SF가 아니라고 할 지도 모르겠군요.)

어쨌거나, 재미만으로는 2015년 상반기 최고의 SF라고 할 수 있겠고, 불굴의 공돌이공학자 주인공의 고군분투와, 그를 구하기 위해 각각 지구와 우주에서 악전고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국경을 넘어 서로 협력하는 인류의 모습은 SF 독작들의 감성 한복판을 찌르는 면도 있습니다.

 {메모리}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이지연 옮김, 씨앗을 뿌리는 사람.

열 번째 ‘보르코시건’ 시리즈는 앞서 {미러 댄스}(776쪽)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비슷한 위용을 자랑하는(720쪽) 무시무시한 책인데, 마일즈가 직접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덕분인지 읽는 재미는 전권에 비해 훨씬 낫습니다. 출판사의 말마따라, 이른바 “마일즈의 탄생 이전부터 25세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1부 ‘영 마일즈’ 시기” 이후 “28세부터 40세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2부 ‘어덜트 마일즈’ 시기”로서 두 작품의 공통점은, 두께 외에도 ‘1부에서의 좌충우돌한 경험을 바탕으로 (…) 새로이 얽히는 관계가 많아지고 적들은 늘어나며 임무는 복잡해지고 사건의 스케일은 커’지면서 ‘플롯은 더욱 정교해지고 심리 묘사는 더욱 치밀해져 몰입도가’ (절정까지는 모르겠지만) 훨씬 올라가는 것을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3권에서 임기응변으로 ‘네이스미스 제독’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 이래 마일즈에게는 은연중에 계속 정체성의 혼란과 새로운 정체성의 유혹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이것이 1부 ‘영 마일즈’ 시기에 해당하는 여섯 권의 이면에 면면히 흐르며 1부 전체를 관통하는 갈등 요소였다면, 1부 말미에서 마크의 등장으로 극에 달한 이 문제를 마침내 말끔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700페이지 책 두 권이 필요한 건 수긍할 만한 일입니다.

캐릭터들은 경중없이 여전히 매력적으로 살아 있으며(경비병, 운전수, 그리고 요리사), 10권 넘는 시리즈답게 과거의 사건들이 끊임없이 현재의 사건들에 영향을 주고 의미를 부여하며, 감동을 극대화합니다(덴다리 에피소드). 대개 10권 넘어가면 시리즈 자체의 무게 때문에 SF적인 요소는 희미하게 희석되기 일쑤인데, 일리얀의 문제에서는 SF만이 줄 수 있는 재미가 여전히 생생합니다(마일즈의 생화학적 간질은 좀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만). 그레고르의 로맨스와 결혼, 다른 한 쌍의 알콩달콩한 로맨스는 앞권에서의 ‘새 가족 맞기’와 마찬가지로 부졸드 특유의 멜로드라마적 요소가 작품 전체에 따뜻한 느낌을 불어넣고 있고요. 무엇보다도 실직 상태에서 우울증에 빠져들던 마일즈가 마침내 비정규 일자리를 구하는 장면에서의 반전이 가져오는 카타르시스는 앞권에서 마크의 반격을 연상시키는데, 좀더 깔끔하게 시원하면서도 충분히 짜릿하고 통쾌합니다. 시리즈의 오랜 독자들은 다시 한 번 환호할 만한 작품이고, 이러저러한 이유로(10권 넘는 시리즈의 분량이라든가, 3, 4권에서의 마일즈의 초딩질좌충우돌이라든가) 읽기를 망설이는 SF팬들이 있다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 곽재식 지음, 오퍼스 프레스.

곽재식 씨의 작품들이 재미있는 이야기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SF로 분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엔 작가 스스로 SF 단편집임을 자임해서, 게다가 출판사에서도 도서 제공 의사를 밝혀와서(물론 사양했습니다만), 읽어보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독심술]이나 세 번째 이야기 [초능력], 여섯 번째 이야기 [열어 보면 안 됨], 여덟 번째 이야기 [일요일 오후에서 월요일 아침까지] 등도, 익히 이야기된 것처럼 곽재식 씨 특유의 입담과 해학, 재치있는 발상이 잘 어우러져 독특한 미학을 만들어내고 있는데(그런데,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거의 모든 작품에, 말주변 없는 공대남이 여자주인공에게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고 대화를 이어보려 안달복달하는 장면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감상들을 보면 그냥 귀엽게 보거나 공감하는 분위기인 것 같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제 언급할 네 편의 이야기는 SF의 전통적인 소재와 발상들을 그러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마치 SF가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고 친근감 있게 제시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그녀를 만나다]는 작중에서 언급한 것처럼 듀나의 [펜타곤], 그리고 언급되지 않았지만 장강명 씨의 [목성에선 피가 붉어진다]와 마찬가지로 여러 몸으로 나뉜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장강명 씨의 중편과 마찬가지로, 나뉜 자아들이 단일한 정체성의 독점을 놓고 서로 경쟁한다는 설정은 자기 계발과 생존 경쟁이 극에 달한 한국 사회의 한 반영이 아닌가 싶어질 정도입니다만(특히 시험 성적 형식으로 경쟁이 진행되는 곽재식 씨의 단편이 한층 그런 점을 강조합니다), 하여간 곽재식 씨의 단편에 집중해 보자면, 치료법 자체가 너무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이며, 경쟁에서 패한 개체도 독자적인 생존을 보장 받는다는 설정에 대해서는 사람이 무슨 플라나리아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헐렁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지 특히나 21세기 헬조선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독자 관점에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 번째 이야기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은 많이 이야기된 것처럼 김보영 씨의 중편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발상과 설정이 유사한 작품입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여자주인공으로부터 시공간 상으로 완전히 단절되어버린 남자주인공의 막막한 상황과 구질구질한 심정은 아무래도 군바리군대 생활의 메타포가 아닐까 싶어지는데, 과연 그래서 그런지 곽재식 씨의 주인공 쪽이 좀더 구질구질하고 생생하고 여기에 제대로 대조되어 결말도 훨씬 깔끔하고 산뜻한 느낌입니다. (다만 외부 시간으로 200억년 이상 표류한 주인공을, 어떻게 우주선을 구해서 어떻게 조종해서, 도대체 어떻게 찾아내고 따라잡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한 줄도 없는 부분은 진지한 SF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다섯 번째 이야기 [로봇 반란 32년]은 제목부터 SF적입니다만, 발상이나 전개, 결말에 이르기까지 요즘 SF들이 대개 갖추고 있는 기본적인 개연성이나 현실성, 진지함은 하나도 갖추지 않고 있습니다. 한 편 더 남아 있긴 하지만 미리 정리하자면, 그러나 이런 점들이 곽재식 씨의 작품들에서는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으로 연결되며, 굳이 SF라는 꼬리표 여부에 얽매여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애당초 SF라는 꼬리표는 안 팔린다는 낙인이나 다를 바 없는 한국 독서계에서, 저주받은 걸작의 경지를 욕심내지 않는다면 굳이 달려고 할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일곱 번째 이야기 [읽다가 그만두면 큰일 나는 글]은 잡지 “에스콰이어” 2011년 10월호 부록이었던 {멀티버스}에 처음 수록되었던 작품인데, 이 단편집에서도 가장 SF 함량이 높은 작품입니다. 작가 본인도 후기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우주 전체의 구조와 원리,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 같은 굉장히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도입부와 결말에서는 곽재식 씨의 소설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궁상남과 차도녀의 밀당 이야기가 어울리지 않게 부여잡고 늘어지는데,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어쩌면 결국 곽재식 씨의 독자인지, SF 독자인지에 따라 판단이 엇갈릴 수도 있을 부분이겠고요.

 {마이너리티 리포트}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폴라북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책소개에 의하면 ‘필립 K. 딕이 전업 작가 생활을 막 시작한 1952년부터 중.장편과 순수문학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1954년까지, 신인 작가이던 3년 사이에 집필한 120여 편의 단편들 중에서 영화화되거나 문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 20편을 엄선해 실었다.’고 하는데, 영화화된(그래서 대개 기존의 집사재 단편집 등 이미 번역 출간된 [두 번째 변종], [페이첵], [황금 사나이], [사칭자],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영화화된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번역되었던 [워브는 그 너머에 머문다], [수호자], [콜로니], [아버지 괴물], [독점 시장] 등을 제외하면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수록된 작품은 절반인 10편에 불과합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서 ‘국내 최초 공개작 11편’이라고 한 건 도대체 어떻게 한 계산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쯤 되면 필립 K. 딕을 격하게 사랑하고 전적으로 지지하는 본지로서도 폴라북스가 사골 K.딕 혹은 필립 K. 딕 곰탕을 끓인 것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지만 집사재 출판사의 단편선집이 출간된 지도 어언 10여 년이 다 되어가니, 중복 출간된 단편들에 대해서 태클거는 것도 무리는 있어 보이긴 합니다. 새로 번역된 작품들만 일견해보자면,

[변수 인간]은 실제 필요성에 비해 다소 길이가 길고 시간 여행까지는 봐주더라도, 미래의 과학기술까지 따라잡는 영세 기술자라는 설정은 다소 무리가 많은 편인데, 정치적인 주제나 필립 K. 딕치곤 꽤 크게 전개되는 스케일이 그럭저럭 참고 읽어나가게 합니다.

[통근자]는 짧은 환상소설인데, 레이 브래드버리나 잭 피니라면 정반대 방향의 작품을 써내지 않았을까 싶지만 우리의 필립 K. 딕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혼란스러운 악몽으로 끝을 맺습니다.

[요정의 왕]은 필립 K. 딕의 판타지 소설이라는 점 외에는 별다른 의의가 없는 그저 그런 작품입니다. 편집자의 제안으로 수정되지 않은 필립 K. 딕 본연의 ‘음울한 결말’이 어땠을지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전개 과정을 보면 큰 의미는 없을 듯 보입니다.

[단기 체류자의 행성]은 과거와 현재, 기억과 실재 사이의 단절된 두 세계 사이에 대한 전형적인 필립 K. 딕의 역전을 보여주는 단편인데, 핵전쟁 이후의 지구 생태계 묘사를 보는 재미가 참 쏠쏠합니다. 결말에서는 이 모든 역전을 불러온 발상의 전환점이 제시되는데, 다소 뻔하지만(그래도 소개글의 스포일러는 너무 심했습니다), 살짝 귀엽긴 합니다.

[자가 광고]은 박력 넘치는 고전 SF입니다. 가니메데에서 지구까지의 일일 통근 생활이라는 설정은 좀 깹니다만(우주선 단독으로 프록시마까지 가는 후반부는 그냥 그러려니 합시다), 자기 자신을 판매 홍보하는 로봇은 정말! 딱! 필립 K. 딕스러운 발상 아닙니까? 웃고 즐기다가 마지막 결말까지 배를 잡고 킬킬댈 수밖에 없습니다.

[제임스 P. 크로우]는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반영이라는 점에서 이전 단편집의 [전인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 사회라는 소재는 진부하지만, 좌절감과 패배감, 무력감,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으로 인한 혼란 등이 필립 K. 딕만의 색채를 내긴 합니다.

[음울한 대지에 고하노니]는 [요정의 왕]처럼 기예르모 델 토로풍의 으스스한 도시 판타지처럼 시작하더니 결말은 필립 K. 딕만의 세계 전체의 파국과 악몽으로 질주합니다. 이 단편집에 수록작들 중 단연 최고입니다. 말을 더 덧붙이면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입을 다물 수 밖에 없군요.

[조정팀]은 영화 개봉 때 인터넷에 해적 번역본이 돌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검색해보니 없네요. TV시리즈 “환상특급”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를 정도의 소품인데, 이걸로 장편 영화를 찍을 생각한 할리우드가 대단해 보입니다.

[포스터, 넌 죽었어!]는 [제임스 P. 크로우] 혹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라든가 {높은 성의 사나이} 등과 마찬가지로, 고립감과 좌절감, 패배감, 무력감 등이 주된 정조입니다. 다만 주인공을 어린 소년으로 잡으니 좀더 애잔하고 절절합니다.

[얀시의 허울]도 아이디어의 수준은 [조정팀]과 비슷합니다. 필립 K. 딕이 능청스럽게 얀시의 동영상과 담화를 묘사하는 부분은 좀 재밌습니다만,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정치풍자물이 대개 그렇듯 전반적으로는 별로 재미없는 단편입니다.

한 줄 요약 : [자가 광고]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그리고 [음울한 대지에 고하노니]는 킹왕짱!

 {슬랜} A.E. 밴 보그트 지음, 안태민 옮김, 불새.

2010년대 중반에 1940년의 미국 SF를 읽는다는 건 이제 무의미하거나 의미가 있어도 재미는 없는 일임을 부인하기는 힘듭니다. 여기서 고전의 현대적 의의와 필독 가치에 대해서 장황하게 논할 필요는 없겠지만, 다행히 {슬랜}은 그렇게까지 재미없는 고전은 아닙니다. 첫 페이지부터 위기가 시작되고 주인공은 철저히 고립되고 흉계에 빠지며, 목표는 분명하고 목표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막강합니다. 게다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적대 세력은 새롭게 늘어나고 갈등은 복잡해지며, 출생의 비밀종족의 기원도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 모든 흥미진진한 설정을 작품 자체가 실제로 구현해내지는 못했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심장이 두 개 달리고 어떤 인간도 (그들을) 녹초로 만들 수 없으며, 아홉 살에 열다섯 살의 지능을 지녔다는 초능력 종족 슬랜이라지만, 설정이 소개되기가 무섭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심장 두 개에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금방 녹초가 돼서 뻗어버리고, 열다섯 살의 지능을 지닌 아홉 살이 무섭고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징징거리는 겁니다. 그나마 제대로 구현되는 건 텔레파시 능력뿐인데, 이쯤 되면 슬랜의 실체는 스마트폰텔레파시 때문에 정신적으로 과도하게 예민해져서 만성 피로와 우울증,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불쌍한 현대인의 초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보다 치명적으로는 결말에서 그때까지 한껏 고조되었던 긴장이 등장인물의 장황한 설명으로 모두 해소되는 점이나, 그때까지 전개되었던 이야기와는 어딘가 맞지 않는 설정과 해설을 주인공이 모두 납득해버리는 것, 마지막 반전이 이야기의 재미는 살리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 작위적인 점 등도 꼽을 수 있습니다.

물론, 펄프 SF 시기에 20대의 젊은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다소 덜컹거리고 어설픈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닙니다. 초능력물의 고전이자 하나의 원형으로 다른 매체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라는 허명에 혹해 읽는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아직 뼈대가 채 굳지 않은 젊은 장르에서 젊은 작가가 젊은 감수성으로 쓴 소설로 읽자면 위에 늘어놓은 단점들에 대해서 좀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화성의 거대한 비밀 기지와 잠입 작전, 원자력 우주선과 입자가속기 전함 사이의 포격전들이 눈에 들어오고, 무엇보다 나치 치하의 유대인의 비유로 읽히거나 보다 흥미롭게는 불가촉천민장르 팬들이야말로 슬랜이다! 라는 슬로건이 나왔을 정도로, 소외되고 탄압받는 종족의 감성 등이 독서를 즐겁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WEB

 [성간 행성] 위래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2015년 7월호.

캐릭터 구성이나 문장의 톤 등은 굳이 붉은 색 복엽기를 넣지 않아도 배명훈 씨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고, 세계의 설정이나 이야기의 전체적인 구조와 방향은 김보영 씨(특히 [땅 밑에])를 떠올리게 하는데, 전반적으로 무난하다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의 치명적인 결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독창성의 결여. 기성 작가 둘의 스타일을 무난하게 반복했긴 하지만, 정작 작가 본인의 개성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습작 초기에 의지하기 쉬운 모작의 잔재라면 다음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만, 다음 작품에서도 기성 작가들의 작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완성도가 높은 이야기라도 제대로 된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자면, 도시 변두리 지하 벽화에서 암시한 바로는 지구나 그에 상당하는 행성 자체를 거울 하늘로 감싼 세계인 것 같은데, 작중에서 그려지기로는 도시 하나만이 세상의 전부처럼 나타나 있어 당혹스럽습니다. 또, ‘거울 하늘’은 문학적 상징으로서는 괜찮은 소재인데, 행성의 자전이나 중력, 대기와의 마찰과 대기 자체의 움직임과 변화를 고려했을 때 공학적으로 구현 가능한 구조인지도 의문스럽고요. 또, 남자는 물론이거니와 특히 소장이 결말에서 갑자기 행동에 나서는 동기가 전혀 제시되지 않는 점도 큰 단점입니다. 어쩌면 원본에 해당하는 배명훈 씨의 인물들이 겉보기에는 개성 있고 참신하며 세련되어 보이지만 구조적으로 볼 때 행동 이면에 동기나 정서, 심리가 거의 뒷받침되지 않는 꼭두각시 인형들인 것에서 기인한 문제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연을 날리는 시간] 정세호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2015년 8월호

근래 웹저널 “크로스로드”에 게재된 작품들 중에서 상당히 완성도 높은 SF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상이 참신하거나 반전이 독특하거나 과학적인 설정이 치밀하거나 상상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구성이나 문장이 세부적인 부분에서 전체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안정되어 있고, 사건 전개와 이야기 방식이 매끄러우며, 무엇보다도 SF적인 주제에 대한 강박이나 무리한 욕심 없이,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분위기와 정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균형을 잡고 절제를 지킨 면이 돋보입니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SF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로봇이 지나치게 의인화되어 있고(심지어 두 로봇에 대해서 ‘두 사람은 함께 폭소를 터뜨렸다’라고 서술하는 문장도 있습니다),  인류와 뤼지아인 사이의 외적인 유사성이야 그냥 그러려니 하더라도 엄연히 서로 다른 행성에서 전혀 다른 발생과 진화를 겪은 외계 생물 사이에 혼혈(?)이나 기억의 전이 등이 진행되는 치명적인 논리적 허점이 상당수 나오긴 합니다만, 인류만이 깔끔하게 지워진 목가적인 지구에서 사람들을 기억하며 일종의 자연 보존 관광업에 종사하는 로봇들, 지구를 방문하는 외계인들의 한적하고 담백하면서도 아련한 이야기는 그런 단점들을 가려줍니다.

[중편연재] 목성에선 피가 더 붉어진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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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에선 피가 더 붉어진다] 장강명 지음, 사이버문학광장 2015년 5월호~8월호

전국의 젤라즈니 팬들 모두 모이세요. 물론 이화여대 모 교수님이 일찍이 시도하신 것처럼 끔찍한 표절혼성모방 수준은 아닙니다만, 여러 모로 로저 젤라즈니를 연상케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 여기 있습니다.
위의 {최후의 마지막 결말의 끝}의 [그녀를 만나다]에서도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정체성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몇 개의 자아를 복제해 경쟁시킨다는 설정은 아무리 작품 내에서 공들여 설명했어도 다소 작위적이고 설득력이 부족하지만, 덕분에 앰버의 아홉 왕자들의 암투에 버금가는 클론 사이의 개싸움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으니 큰 불만은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혈투가 드론을 통해 생중계되고, 이것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가 되며 동시에 클론들 사이의 경쟁에 피드백된다는 설정은 듀나가 [아퀼라의 그림자]에서 이미 비슷한 사용을 보여줬지만, 리얼리티 서바이벌 쇼가 연예 프로그램의 주류가 된 한국에서는 앞으로도 몇 번은 더 나올 소재니까 넘어가고… 외부에서 주어진 목표에 무조건 매진하던 주인공이 대결과 만남, 이별을 거치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비인간적 초인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목표를 재설정함으로써 세계 전체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플롯도 로저 젤라즈니™, 특히 가슴 속에 삼천원상처를 안고 머나먼 우주로 떠나는 결말은 딱 [폭풍의 이 순간]입니다.

물론 문체는 로저 젤라즈니의 현란한 미문은 아니고, 어딘가 살짝 쌈마이스러운 하드보일드입니다만, 줄거리와 크게 튀지 않고 오히려 어째 잘 어울립니다. 화자인 주인공(나중에 회개해도)부터 다른 클론들이나, 더 넓게는 토성에서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 어딘가 살짝 돌은 또라이들 같거든요. 그래도 제목은 너무 구린데, 단행본에선 제발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인상적이거나 새롭지는 않지만, 특집의 “한여름밤의 SF 단편들”에 곁들여 같이 읽기 좋은 중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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