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렙>의 직경은 2 또는 3센티미터에 달할 듯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크기의 축소 없이 우주의 공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하나의 사물(예를 들어, 거울에 비친 달)은 무한히 많은 사물들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또렷하게 우주의 모든 지점들로부터 그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으르렁거리는 바다를 보았고, 나는 새벽과 저녁을 보았고, 나는 아메리카 대륙의 군중들을 보았고, 나는 검은색 피라미드의 중앙에 있는 은빛 거미줄을 보았고, 나는 부서진 미로(다름 아닌 런던 시)를 보았고, 나는 마치 거울을 보듯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주위의 셀수없이 많은 눈들을 보았고, 나는 그 중 어느 것도 나를 비추고 있지 않은 세계의 모든 거울들을 보았고, 나는 솔레르 거리의 한 후원에서 30년 전 프라이 벤또스의 한 집의 현관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보도블록들을 보았고, (…) 나는 모든 지점들로부터 <알렙>을 보았고, 나는 <알렙> 속에 들어 있는 지구를, 다시 지구 속에 들어 있는 <알렙>과 <알렙> 속에 들어 있는 지구를 보았고, 나는 나의 얼굴과 내장들을 보았고, 나는 너의 얼굴을 보았고, 나는 현기증을 느꼈고, 그리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제멋대로 남용해 쓰고 있지만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그 비밀스럽고 단지 상상적인 대상, <불가해한 우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민음사 보르헤스 전집 3권, p.230~233)

보르헤스의 ‘알렙’은 유한 속에 갇힌 무한, 우주 그 자체, 유한한 인간이 결코 가닿을 수 없은 전지全知를 의미합니다. 어쩔 수 없이 서구 신비주의가 동원될 수밖에 없는데,

나의 두 가지 견해를 첨입시키고자 한다. 첫째는 <알렙>의 본질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그것의 이름에 관한 것이다. 그 이름은 알려진 것처럼 그 신성한 언어의 첫번째 알파벳이다. 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구체에 그것을 적용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카발라 신비주의에 있어 이 글자는 엔소프, 즉 한계가 없고 순수지고한 신성神性을 가리킨다. 또한 그것은 하급 세계가 상급 세계의 거울이자 지도라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해 하늘과 땅을 가리키고 있는 한 인간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들 말한다. (같은 책, p.235~236)

신비주의와는 일견 거리가 멀어 보이는 SF들 속에서 비슷한 소재가 등장한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존 발리의 [분지 속에서]에서 주인공이 발견한 ‘폭발석’이라는 가상의 보석에 대한 묘사를 볼까요?

그 보석 안에는 수많은 세계가 있었다. 그곳엔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 나오는 고대 바숨이 있었고, 수많은 성채와 생각하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 등장하는 중간계도 있었다. 그 보석은 상상할 수도 없는 무언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었다. 그곳은 질문도 감정도 없으며 오직 무한한 인식만 존재하는 장소였다. 위험도 느껴지지 않았고 오직 어둡고 축축한 느낌만 전해졌다. 그곳은 계속 자라나고 있었지만, 아직 독자적인 존재가 되기엔 미완성이었다. 그곳은 금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뜨거운 진흙으로 된 구체보다 컸으며, 이 행성의 핵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우주의 어느 구석도 그곳이 닿지 못할 곳은 없었다. ({잔상} p.45)

마지막 문장은 ‘알렙’ 그 자체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손에 쥔 것은 공처럼 생긴 작고 투명한 수정구슬이었다. 너무나 작아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육안으로 보기 힘들 만큼 작은 초소형 첨탑들이 텅 빈 구슬 속에서 복잡한 거미줄처럼 흐느적거렸다.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마천루들-도시가 그 속에 있었다. ([수정구슬의 비밀] 집사재 단편집 3권p.175)

혹은

유리구슬은 그에게 어서 오라고 속삭였다. 벤튼이 구슬에 다가갈수록 승리의 함성은 점점 커져 갔다. 마침내 도시를 가두었던 구슬이 그의 발밑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 환희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안정성] 집사재 단편집 4권 p.289)

필립 K. 딕의 ‘알렙’들은 하나의 도시가 축소된 구슬들입니다. (보르헤스가 ‘알렙’ 속에 런던 시가 들어있었다고 한 것처럼) 은하계를 통째로 집어넣은 “맨 인 블랙”의 구슬과는 스케일이 다르지만, 필립 K. 딕의 다른 작품들에 등장하는 모형 세계처럼 모형 바깥의 현실 세계와 이어져 순환하는, 그럼으로써 현실 세계의 현실성을 벗겨내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 구슬들은 M. C. 에스허르의 판화를 거쳐 다시 보르헤스의 ‘알렙’으로 돌아갑니다)

세계 혹은 우주를 담은 보석은 (SF에서 살짝 벗어나지만) 로저 젤라즈니의 작품들에서도 나타납니다. “앰버 연대기”의 ‘심판의 보석’을 볼까요,

그러나 에릭은 성공했던 것이다. 그는 ‘그림자’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보석 속에 갇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 / 마음을 가다듬고, 보석 안을 한층 더 강하게 응시했다. / 그 내부에는 일그러진 패턴이 반영되어 있었고, 명멸하는 광점, 조그만 불길과 섬광, 상이한 커브나 미로가 그것을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결심을 굳혔고, 마음을 집중시켜서… / 붉은 색과 완만한 움직임. 짙은 점액질의 대양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 처음에는 극히 천천히. 표류하며, 어두워지고, 아름다운 빛들은 모두 훨씬, 훨씬 멀리 있다. 미약하게나마 내 겉보기의 속도가 빨라진다. 빛의 조각들. 멀리서, 간헐적으로. (…) 그것은 내 눈앞에서 자라났다. 영원한 밤 한가운데서 반쯤 풀려 있는 기괴한 은하를 연상케하는 모습. 그것을 웨워싼 광륜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티끌이며, 그 유광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명멸하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은하와 비교하는 대신, 내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다른 쪽 극단을 향해 움직였고, 양자 레벨에서 무한대의 차원을 가진 힐베르트 공간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절망적인 은유에 불과했다. 정말로 알기 쉽게 얘기하자면, 나는 이것에 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예문판 3권 p.73~75)

(혹은 그림자 잭이 갇혀 있었던 박쥐 군주의 보석이나, 잭의 영혼을 담은 보석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미지가 나타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방향과는 멀어지니 넘어갑시다) 패턴을 걸은 뒤 ‘심판의 보석’ 안으로 자신을 투사하는 과정에서 코윈이 보는 풍경은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그 유명한 스타게이트 통과 장면과 겹쳐집니다. 혹은 김상훈 씨가 언급한 것처럼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할 때의 인식의 왜곡과도 겹쳐지고요. 그러고보니 윌리엄 깁슨의, 사이버스페이스 속 ICE에 대한 묘사는 ‘알렙’들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암흑의 핵심, 잔잔한 중심에 도달한 고장 유발 시스템들은 어둠 속에서 빛의 소용돌이를 발산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부터 발사되는 투명한 레이저였다. 우리는 조용하게 슬로우모션처럼 파괴되며 산산이 무너지는 ICE의 파편들 가운데 멈추어 있었다. 바비의 목소리가 일렉트로닉 공간의 그물 저 너머, 수광년의 거리 바깥으로 떨어진 곳으로부터 들려왔다. ([크롬 태우기] p.280)

윈터뮤트는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입방체였다. 그 단순함이야말로 지극히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 케이스는 키를 두드려 격자 좌표상으로 네 단위 앞까지 접근했다. 아무것도 없던 면이 케이스의 위쪽으로 솟아오르더니 내부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끓어올랐다. 마치 천여 명의 무희가 성에 낀 거대한 유리 너머에서 회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우리가 왔다는 걸 알고 있군.” / 일직선이 말했다. ({뉴로맨서}, 황금가지판 p.181)

테시어 애시풀아이스가 산산이 부서지며, 질주하는 중국제 프로그램으로 인해 껍질처럼 벗겨져 나갔다. 유동성 고체의 불쾌한 느낌, 마치 깨진 거울 조각이 구부러지고 늘어나며 떨어지듯이… / “세상에.” / 케이스가 경외감에 넘쳐 말했다. 쾅이 몸을 뒤틀고 선회하면서 지평선 없는 테시어 애시풀 중심부의 평원을 가로질렀다. 무한한 네온의 도시 경관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복잡성은 보석처럼 맑고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앞의 책, p.398)

어쩌면 가상 공간 속 프랙탈 이미지야 말로 앞서 살펴본 ‘알렙’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끝없이 갈라져 나가는 두 갈래 길, 우주 바깥의 우주 바깥의 우주… 겨자 씨 속의 우주, 물 한 방울 속의 대양… 이것은 어쩌면 현미경 등을 통해 혼란스러운 이 세계의 극미적 질서를 최초로 목격한 근대 과학 초창기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거시 세계의 질서가 미시 세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인식과 미시적 조작을 통해서 거시 세계를 조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그렇다면 SF 속의 ‘알렙’들은 결국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무한한 우주의 신비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을 담은 전근대적 신비주의 소도구가 아니라, 서구 근대 과학으로부터 SF가 도출된 (혹은 프로토 SF가 서구 근대 과학과 조우했던) 최초의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문학적 화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관심거리에 정신을 쏟기에 바쁜 나머지, 마치 현미경을 통해 물 한 방울 속에서 번식하는 수많은 투명한 생명체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기 만족에 빠져, 사소한 일상사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 위를 누비면서, 스스로 건설한 제국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현미경 아래 놓인 원생동물처럼 말이다. (H.G. 웰스, {우주 전쟁} 황금가지판 p.21)

.

.

.

.

.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