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미러 댄스}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유정아 옮김. 씨앗을 뿌리는 사람

밀리터리 스페이스오페라의 탈을 쓰고 있지만 “보르코시건” 시리즈의 핵심은 결국 가족 드라마인 듯 합니다. 시리즈 첫 권이 마일즈 부모의 결혼이라는 점은 얼마나 의미심장합니까. 이번 권에서는 새 아들 맞기가 중심인데, 심지어 마일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작가는 마일즈보다는 마크가 어떻게 보르코시건 가문에 받아들여지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 덕분에 마크의 캐릭터가 훨씬 입체적이고 깊은 깊이를 획득하는 게 사실이긴 한데, 그러거나 말거나 독자 입장에서는 짜증만 입체적으로 깊어질 뿐입니다. 귀족 사회에서 유력 가문이 실종자보다는 차후 계승자 문제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마일즈 없는 “보르코시건” 시리즈가 말이 됩니까?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출판사의 자체 스포일러앞권들의 부록 연표에서 슬금슬금 봤었지만 늘여도 너무 늘인다 싶을 때쯤, 그러나 참고 견디다 보면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485쪽(!)에서부터 독자는 그동안의 기다림과 견딤의 보상을 드디어 받기 시작하고 534쪽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짜증만발이었던 마크의 궤적이 사실은 그만큼이나 짜증이었지만 어느새 잊고 있었던 마일즈의 전철을 고스란히 그대로 밟아나가는 것을 보며 전율할 수 밖에 없습니다. 545쪽의 짧은 개그도 눈여겨볼만합니다만 그건 635쪽부터 펼쳐지는 너무나 늦은 그러나 결코 너무 늦지는 않은 잔혹극의 대향연을 위한 전채였을 뿐입니다. 이러려고 700여 쪽이 필요했나 생각하면 어이가 없습니다만, 효과만큼은 확실합니다. 지금까지의 “보르코시건” 시리즈들 중에서 제일 카타르시스가 큰 대단원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의 생일} 어슐러 K. 르귄 지음, 최용준 옮김. 시공사

실망스러웠던 앞권과는 비교도 안되게 알차고 풍성한, ‘걸작선’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단편집입니다.

세계의 변화를 다루는 거시적인 조망을 본질로 하는 SF 장르 안에서 어슐러 K. 르귄은 미시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고 변화하는 세계 속의 사람들을 섬세하게 다룸으로써 그 전의 SF가 자아내지 못했던 감동을 자아내곤 합니다. SF 작가 이전에 좋은 소설가답게 어슐러 K. 르귄은 ‘근본적으로 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리고 근본적으로 선한 사람도 아무도 없다)’라는 리얼리즘적 원칙에 충실하려 하지만 성과 환경 등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어슐러 K. 르귄의 정치적 성향은 원칙을 비틀고, 인물들을 단순화, 평면화시키는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생일}에 수록된 중단편들은 그런 경향이 상대적으로 적게 보입니다. 이야기는 메시지로부터 훨씬 자유롭고 등장인물들도 그에 따라 훨씬 입체적이고 다면적으로 살아납니다. 수록작들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키르히데에서 성년이 되기]부터가 어깨에서 힘 쫙 빼고 심지어 플롯에 대한 생각마저도 저멀리 던져버린 채 자유롭게 행성 게센의 풍속을 그립니다. 그러나 그러자 놀랍게도 오히려 {어둠의 왼손}보다도 더 생생하고 날카롭게, 성별에 관한 뿌리깊은 고정관념을 뒤집어 엎어버립니다.

길고 복잡한 [세그리의 사정] 역시 다양한 형식의 짧은 글들의 연쇄 속에서 사회적 관습이 인간을 얼마나 억압하는지, 사회의 변화가 얼마나 힘든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변화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새롭게 생겨나는지를 힘들게 이야기합니다. 힘들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말미에서 남성 독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이 어떤지 체감할 수 있을 텐데, 이는 SF가 우리의 삶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일 것입니다.

[선택하지 않은 사랑]과 [산의 방식]은 SF의 세계에서 나온 일반 소설입니다. [세그리의 사정]에서 ‘잘못된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낯선 곳에서 발견하는 낯익은 정서와 심리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우면서 본질적인 면을 내비칩니다만, SF로서의 재미나 감흥은 덜한 편입니다. 특히 [선택하지 않은 사랑]에서 유령의 존재를 암시한 건 일반 소설로서는 무난하지만 SF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죠.

어슐러 K. 르귄에 대해서 인류학적 요소는 많이 이야기되었지만 [고독]만큼 그런 요소가 적절하고 절묘하게 사용된 작품은 드물 듯 합니다. 어슐러 K. 르귄이 성의 문제를 SF적으로 탐구하는 데 천착한 것은 여성주의적인 성향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행성 O의 결혼 제도에서 특히 두드러지지만, 구조주의 인류학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인데, 결혼 제도를 근간으로 가정과 사회를 재구성하던 어슐러 K. 르귄이 이 작품에서는 결혼의 부재를 통해 가정과 사회를 해체하고, 인류학적 탐구 방법론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현대 문명에 대한 가장 급진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을 드러냅니다. 이 작품집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번역된 어슐러 K. 르귄의 단편들 중 가장 독특하고 가장 울림이 큰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옛음악과 여자 노예들]에 대해 어슐러 K. 르귄은 서문에서 스스로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의 사족이라고 했는데, 정직하고 솔직한 평가이긴 하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여운이 깁니다.

[세상의 생일]은 같은 출판사의 10년 전 단편선집에서도 표제작이었지만 여기서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느낌입니다. [세그리의 사정]과 [옛음악과 여자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변화를 그에 따른 슬픔과 아픔, 희망 모두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천국들]은 어슐러 K. 르귄만이 쓸 수 있겠지만 어슐러 K. 르귄에게도 기대하기 힘들었던, 정말 예상치 못했던 작품으로 항성간 세대 우주선을 소재로 한 SF들 중에서 가장 치밀한 상상과 성실한 사유를 통해 나온 걸작입니다. 우주선 내부의 사회와 문화는 모두 견고하게 설정되었고 몇 명의 등장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춘 짧은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으며 거시적인 변화를 꼼꼼하게 전개해나가는 수법 역시 효과적이며 효율적입니다. 반전을 가져오는 중력 우물이 유일한 옥의 티인데, 어슐러 K. 르귄의 SF들이 이만큼이나 하드 SF에 근접한 적도 드물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쉽기는 하지만 용납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닙니다. SF에 대해 편견을 가진 모든 일반인들에게, 특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짝퉁 SF {파피용}을 대단하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지만, 줘도 안 읽겠죠. 우린 안될 거야 아마

 {캔자스의 유령} 존 발리 지음, 안태민 옮김. 불새

특집 기사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표제작보다는 나머지 수록작들이 더욱 흥미로운 단편집입니다. 일상적인 성전환이나 출산 제한 등 공통적인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TV 시리즈 “환상 특급”이 떠오를 정도로 고전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수록작들마다 서로 다른 색깔로 나타나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캔자스의 유령]은 로버트 A. 하인라인, [공습]은 리처드 매드슨, [역행하는 여름]은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의 왕궁에서]는 (가장 희미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어딘가) 아서 C. 클라크가 살짝살짝 떠오르지만 당연히 조금씩 다릅니다. 나머지는 {잔상}을 마저 읽고 더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원더랜드” 국립과천과학관 무한상상실 발행

전홍식 씨나 심완선 씨의 컬럼들은 일단 넘어가고, 에세이는 듀나와 최원호 씨의 글들이 그나마 읽을 만하긴 했는데, 최원호 씨 에세이 결론의 전망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창작 SF의 소규모 동인지 출간이야 가능하겠지만 판권 계약부터 걸림돌인 해외 SF의 번역 출간은 불새 이후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김보영 씨의 에세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알겠지만 굳이 그렇게 말해야 했을지는 통 모르겠습니다. 사소하지만 ‘우유가 든 여자 젖가슴’ 같은 오류는 김보영 씨 글 답지 않고요. 하나마나한 소리를 무한 반복 중인 전홍식 씨나 불쌍한 넷맹들을 위해 사람이 아니라 무슨 봇이 기계적으로 검색/수집/정리한 글 같은 심완선 씨 등의 칼럼보다도 더한 폭탄은 박상준 씨의 에세이인데, 01호인줄 알았더니 02호였던 것부터 함정이었지만, 옥석은 커녕 똥과 된장도 구분 안하고(못하고?) 2010년 이후 출간된 국내 자칭 SF들을 쭉 나열하면서(심지어 인터넷 서점의 리스트를 그대로 복붙했는지 {4차원 문명세계의 메시지}나 {파라한}까지 끼어들어가 있습니다), 이렇게 많이 출간되었으니 한국 창작 SF의 르네상스가 기대된다는 뜬금없는 결론은 ‘행복한 책읽기’ 출판사의 SF 무크지 이후 희대의 개헛소리입니다.

각설하고 수록된 창작 SF들만 보자면, [#초인은지금]은 독립성과 완결성이 부족한 단편입니다. 초인법의 사회적인 함의가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 작품의 극적 구성이 아무런 힘도 받지 못하는데, 애초에 초인이든 초인법이든 현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에 대한 피상적이고 모호한 알레고리일 뿐 그 외에는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설정이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알기 쉬운 멘탈물리학 입문]은 웹진 ‘거울’의 독자 단편란에 올라왔던 김몽의 [승진과학 혁명]을 곧바로 떠오르게 하는데, 재치있는 착상을 재기넘치게 풀어낸 [승진과학 혁명]에 비해 dcdc의 글은 뻔한 주제를 무리한 비유와 억지 웃음만 유발하는 작위적인 구성 속에서 굉장히 부담스럽고 힘겹게 다루고 있습니다.  ‘힐성자’, ‘탱성자’는 도대체 뭐하자는 겁니까?

[시냅스]는 소설적 완성도는 나쁘지 않은데 SF로서는 설정에 너무 여백이 많아 좋게 보기 힘듭니다. 메시지가 너무 날것으로 드러나 있고 시냅스와 은하계와 양자 중첩의 비유도 비약이 너무 심합니다.

[뇌수腦樹]는 김창규 씨의 단편들 중에서 간만에 발상이 참신하고 하드한 설정이 큰 무리 없이 이야기에 녹아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한 SF입니다. 이 한 편만으로도 168쪽의 소책자를 5,000원에 사 읽는 것이 별로 아깝지 않아 보입니다.

WEB

 [조립식 아빠] 서진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2015년 3월호

애니는 책가방을 꺼내 숙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자리 수 곱셈 문제를 스무 개나 풀어야 합니다. 지겨운 숙제도 대디가 지켜보고 있으니 하나도 지겹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디는 애니가 틀릴 때마다 흠, 흠, 하고 소리를 내 주었습니다. 여덟 개 쯤 풀었을 때 지루해져버리고 말았어요.

맨정신으로 쓴 거 맞습니까? 설마 지겨운 거랑 지루한 거는 다르다고 하려는 건 아니겠죠?

“조심해야 해. 고장 난 물건을 파는 사람도 많다고. 싸다고 다 좋은 게 아냐. 우리 아빠도 휴대폰을 샀는데 당했다고.

결국 또 하나의 스마트폰 공상과학소설입니다.

의사가 맥박을 짚으면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듯이 전자파를 계속 보내면 어떤 반응이 오는지 느낄 수 있었을 뿐이야.

(중략)

일기나 편지는 일차원적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쉽게 분석이 되만 소설은 달라. 그 속에 다층적인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지. 데이터 압축률이 훨씬 높아서 많은 걸 저장할 수 있어. 아직까지 그걸 다 분석하지 못할 정도야. 대화 모드는 아직 무리야. 튜링 테스트를 겨우 통과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엄마와 내가 대화를 해 봐야 할 수 있겠지. 내가 아빠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지 말이야.

어디서 뭔가 이것저것 주워듣기는 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쓴 글이 아닙니다. 작가의 정신 상태가 작품 속 고장난 로봇과 동일해 보이는군요.

스마트폰 공상과학소설들의 문제점은 스마트폰이 말하는 변기나 로봇 아빠, 외계인 통신기 등으로 기계적으로 치환되면서 소설의 나머지 배경 설정은 현실과 작중 배경 사이에서 기괴하게 뒤틀려버린다는 점입니다.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에서 초딩들 코묻은 돈이나 뜯는 고물상 영감 집에 대학 전산망을 해킹할 수 있는 가상 서버 몇 개를 돌리는 컴퓨터가 있다든지, 7년 전에 단종된 실험용 안드로이드 외에는 로봇을 일절 찾아볼 수 없는 사회라든지 구멍이 뻥뻥 뚫린 널판지 배경은 작가가 무성의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하거나 셋 모두일 뿐입니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얼버무림일 뿐인 결말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

.

.

.

.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