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와의 인터뷰는 11월 18일 오전과 밤에 트위터 쪽지를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본지에서 처음 진행한 인터뷰라 어색하고 서툰 점이 많았지만 듀나 독자들에게 가치 있는 내용이 많다고 생각되어 이 자리에 정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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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터뷰 수락해주신 것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어떤 질문으로 시작하면 좋을 지 잘 모르겠는데, 가장 최근에 읽은 SF는 무엇이셨는지부터 시작해볼까요?

– 콜린 윌슨의 [정신기생체]였군요. 미루다 이제 읽었는데 별 재미는 없었어요.
– 그 전에 읽은 게 [헤밍웨이 위조사건]이었는데 그건 재미있었고요.
– 올해는 읽은 게 별로 없군요. 다른 일들이 계속 생겨서.

하필이면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와 더불어 ‘폴라북스’에서 나온 SF 중 가장 재미없는 책을 읽으셨네요. 최근이 아니더라도 해외 SF도 원서로 종종 읽고 계시나요?

– 몇 년 째 안 읽은 거 같아요. 원서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달까. 최근 읽은 원서 SF들은 대부분 구텐버그 고전들이죠. 아니, 고물인가?
– 안 읽은 건 아니군요. 킨들로 구입하면 앞으로 늘 수도 있겠죠.

듀나 님이 SF를 쓰기 시작한 시점과 국내 SF 번역사를 비교해보면 아마 독자적으로 해외 SF를 많이 접하셨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쭤봤었던 건데요, 추천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국내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가나 작품 중에 좋아하시는 작가나 작품은 어떤 게 있으신가요?

– 저는 조애나 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아닌 거 같지만 그래요. 러스는 스타일리스트이고 전 아니니까 접점은 없는데, 쓰다보면 이미 러스가 한 번 갔던 길을 가고 있더라고요.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들은 조금 더 번역되어도 될 거 같은데 아직 많이 안 나오는군요. 콜린 윌슨 번역을 낼 시간에 그걸 내도 될 텐데.

두 작가 모두 국내에 소개는 많이 됐는데 실제 번역된 작품은 거의 없죠.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도 이제 장편 하나에 단편 한둘이 더 번역됐는데, 혹시 더 추가할 게 있을까요?

– 올디스의 소설들. 특히 핫하우스. 논스톱. 발라드도 소개되었으니 올디스도 나올 때가 되었는데요.

이제 창작 쪽으로 여쭤볼게요. {사이버펑크}는 아마 통신 게시판에 올라온 소설들에 대해서 출판사가 먼저 접촉해왔다고 들었는데, 첫 단편집인 {나비전쟁}은 어떻게 내게 되셨는지요? {나비전쟁}에 수록된 단편들은 직접 고르신 거였나요?

– 출판사에서 연락을 해왔어요. 제 대부분의 책 이야기가 그래요.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오고 전 그 다음에야 작업에 들어가죠.
– 작품들은 제가 직접 고르는 편이죠. {나비전쟁} 때는 처음이라 닥치는 대로 넣었고, {면세구역} 때부터는 신경을 좀 썼어요. {면세구역}과 {태평양 횡단 특급}엔 {나비전쟁}과 겹치는 단편들이 있는데 어차피 {나비전쟁}이란 책의 수명이 길 것 같지 않아서 거기 실린 단편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싶었죠.
–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때는 앤솔로지에 수록된 글들을 실을 수 없어서 선정에 좀 애를 먹었고요.

저희도 특집 기사 준비하면서 세 단편집에서 겹치는 작품들을 찾아보았는데, 나머지는 아마 객관적인 완성도 등에 따른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 {태평양 횡단 특급}에 [허깨비 사냥]을 넣으신 건 개인적인 호감 등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어떠신가요?

– 특별히 빼야 할 이유도 없었죠. 결국 웬만한 건 다 들어가니까.
– 무엇을 누락시키냐보다 글들을 어느 순서로 소개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물론 그래도 계속 누락되는 글들이 있지만.

그러면 예전에 쓰신 단편들 중 아직 단편집으로 독자들이 보지 못한 단편들도 나중에 볼 기회가 있을 수 있겠네요.

– 그렇겠죠. 어떻게 눈치보며 섞일 수 있는지를 봐야죠.

출간 시기를 보면 {태평양 횡단 특급}은 {면세구역}과 더 가깝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랄까, 경향은 {면세구역}과 {태평양 횡단 특급} 사이에 구분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태평양’에서 본격적인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기대랄까, 혹은 감상주의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나 배제에서 조금 벗어나는 듯한 분위기 말이죠.

– 그렇게 보이나요? 꼭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경향보다는 단편들의 선정, 배치 때문에 달라 보일 가능성이 크죠.
– 제가 늘 냉담한 글만 쓰는 것도 아니고, 냉소주의자인 건 더더욱 아니죠. 적어도 요새 기준엔. 제가 그렇게 냉소주의자라면 그렇게 순진하게 속을 다 드러내지는 않겠죠.
– 감정묘사를 절제하려고 하긴 하는데, 그건 과한 걸 싫어해서 그런 거고 감정 자체를 냉소해서 그런 건 아니죠.

그건 그렇네요. 일각에서는 ‘냉소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하지만 그건 아마 SF 특유의 주지적인 경향을 주정적인 경향에 너무 깊숙이 물든 독자들이 오해한 게 아닐까요.
혹시 지금까지 쓰신 작품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시기별로 나눠보신 적 있으신지요? 아니면 스스로 작풍이 뚜렷하게 변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신다거나.

– 의식적으로 변해보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단지 캐릭터 선정과 같은 소소한 것들은 변하는 게 느껴지죠. 이런 건 있어요. [대리전]을 전후해서 캐릭터들의 나이가 조금씩 어려졌어요. 어른스러운 척하는 것도 줄었고.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죠. 전엔 나이보다 어른인 척 했는데, 지금은 나이보다 어린 척 하죠.

– 될 수 있는 한 일인칭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건 의식적인 노력이고요.

시점 말씀해주신 김에 여쭤보는 건데요, 근래에 쓰신 작품들일 수록 독자(일반적인 불특정 다수의 독자든 구체적으로 설정된 독자든)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가 많이 보이는데요.
이야기꾼 서술자의 시점이랄까요. 일인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외에 혹시 그런 시점을 선택하신 다른 의도나 효과가 있으신지요.

– 그런가요? 예를 들면?

예를 들어… 이전에는 [어른들이 왔다]에서처럼, 1인칭 서술자가 작중 청자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회상하는 형식이었다면 지금 말씀드린 건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처럼 3인칭 서술자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형식이랄까요.

– 아, 그런 거.

SF의 특성 상 (물론 [너네 아빠 어딨니?]는 SF가 아닙니다만) 작중 정보를 독자에게 어떻게 제공하느냐가 굉장히 큰 문제인데, 말씀드린 이야기꾼 서술자는 정보 제공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 보입니다.

– 어차피 일인칭 화자는 언제나 존재해요. 전지적 작가 시점이어도 마찬가지죠.

서술자가 작품 밖에 있는 3인칭 시점이라도 결국 서술자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마찬가지란 말씀이신가요.

– 네, 그렇죠. 1인칭 화자가 드러난다고 해서 꼭 1인칭 화자가 본 것만 기록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요. 반대로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해서 정말로 ‘전지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C. J. 체리의 방법이 맞는 거 같아요. 아무리 독자들이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무대로 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정보를 다 줄 필요는 없단 거죠.
– 저로서는 가지고 있는 무기가 별로 없으니 화자를 어떻게든 다양하게 써먹어야죠. 저는 [제3의 사나이]의 캘로웨이 대령이나 조셉 콘래드의 찰리 말로([암흑의 핵심], [로드 짐]) 같은 융통성있는 화자들을 좋아해요. 물론 [백경]의 이슈마엘도.
– 그리고 [너네 아빠 어딨니]의 화자는 사실 언니입니다. 시치미 뚝 떼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죠. 물론 독자는 그걸 굳이 알 필요는 없지만.

와. 아마 이 인터뷰 기사를 보면 [너네 아빠 어딨니]를 다시 펼쳐볼 독자들이 분명히 있을 거 같네요.

– 그러면 좋죠.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링커 우주’의 이야기들은 더 써놓으신 게 있나요?

– 시놉시스들만 있어요. 몇몇은 {제저벨}에 살짝 암시되어 있죠. 로켓 기술로 다른 태양계로 가는 사람들 이야기 같은 것.

교회 마피아가 제저벨에 승선한 이야기도 기억납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기억이 맞다면 단편들에서 종교는 잘 언급되지 않고, 언급된 것은 주로 한국식 기독교들이었던 것 같은데요. {제저벨}에서도 카톨릭 SF들에서 나타나는 주제 의식이 엿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아마 다수 독자들에게는 교회 마피아 같은 어휘만 눈에 들어왔을 것 같습니다.

– 제가 그래도 날라리 가톨릭이니까. 물론 더 이상 인격신은 믿지 않지만 그래도 한번 가톨릭은 영원한 가톨릭. 가톨릭은 종종 언급되지요.
– [제저벨]에 나오는 교회 마피아는 가톨릭 분위기를 풍기긴 하지만 미국 ‘번영신학’ 목사들의 무리에 더 가까워요. 자세히 묘사되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여기저기 힌트들이 있지요.
– 한국식 기독교가 자주 나오는 건 주변 친척들 중에 개신교 신자들이 많아서지요.
– 유대교나 이슬람교에 대해 쓰려면 조금 더 공부를 해야겠죠. [디북]에선 어쩔 수 없이 살짝 넣었지만.
– 사실 기독교 영향은 꽤 큰 편이에요.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만 해도 거의 예수 서사죠. 가끔 신과 예수 언급이 없는 가톨릭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처음엔 그게 목표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당연해진 포인트가 있어요. 지금은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중.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처음 읽었을 때도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었는데요, 말이 나온 김에… 링커 우주 시리즈의 첫 작품인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는 웨인이 청와대를 부수고 속에 있던 사람들의 지방으로 윤활유를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이전에도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단편들에서 종종 보였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한국 정치나 교회에 대한 비판이 보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부분들이 보이는 것 같은데요.

– 청와대를 부수는 건 정치비판과 무관하죠. 다들 부수고 싶어하는 것을 부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정치적 비판이 엄청나게 는 건 아니예요.
– 종교에 대해서는 늘 관심이 있었죠. 대놓고 부조리한 주장을 하는 체제니까요. 하지만 그게 지금 한국 근본주의 기독교 수준이면 관심을 넘어 짜증이 나고, 일단 짜증이 나면 그 짜증을 언급을 안 하기도 어려우니까요.
– 나머진 근미래의 한국을 묘사하려면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거라고 봐요. 이건 현재 한국 정치의 언급에 대한 설명도 되겠네요.
– 심지어 풍자도 아니죠. 얼마 전에 한국식 교육 체제에 대한 단편을 썼는데 ({아직은 신이 아니야}에 실린 거요) 그건 풍자가 아니에요. 풍자가 되려면 현실을 그로테스크하게 뒤틀어야 하는데 초능력만 나올 뿐이지 현실과 비하면 오히려 온화하잖아요.
– 저로서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세계를 우아하고 깊이 있게 그리고 싶지만 그렇게 그린다면 비현실적이 되겠죠. 천박함이 세상의 일부라면 받아들여야죠.

2000년대 중반 이후 김보영 씨 등 한국 SF 작가 명단이 조금 추가 갱신되면서 잠깐 국내 SF 앤솔러지들이 나왔었습니다. 그동안 (복거일 씨를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SF 작가로 계셨는데, 출판이나 비평 등 창작 주변 환경에서 변화랄까 달라진 점이 있으신지요.

– 여기에 대한 제 시야는 굉장히 협소해요.
–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역에서 제 활동은 비교적 소극적이었으니까요. 과소동 이후 커뮤니티에 속해있었던 적도 없고요. 온라인에서만 노는 사람의 한계죠.
– 결국 제 경험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제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 단지 저에게 환경이 변하지 않은 것 자체가 외부 환경이 변한 결과일 수도 있겠죠.

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와서는 그런 외적 환경의 변화도 많은 부분 다시 예전처럼 돌아간 것 같네요. 개별 작가들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지만 SF 앤솔로지의 출간은 거의 중단되었고.
조금 불편하실 질문일지 모르겠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대리전}이나 {용의 이}, {태평양 횡단 특급} 등의 뒤에 수록된 해설이나 평론들이 SF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결여된 채로 듀나 님 작품들을 다뤄서 많이 아쉽고 어떤 면에서는 답답하거나 화가 나기도 했는데요.
권말 해설이나 서평, 신문 기사 등에는 어느 정도 신경을 쓰시나요.

– 권말 해설에 대해서는 저도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죠?
– 사실 독자나 리뷰어의 반응에 대해 제가 뭐랄 수는 없어요. 반응이 좋으면 좋겠지만.
– 하지만 ‘듀나가 쓴 SF’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보는 대신 ‘SF’, ‘상상력’과 같은 개념 안에서 막연하게 보는 글들을 보면 갑갑하죠. 하지만 그런 글들은 요샌 많이 준 거 같아요.
– 저랑 완벽하게 클릭하는 독자들이 있으면 참 좋겠지만 기대는 없어요. 그건 불가능한 기대 같아요.

SF에 익숙한 독자들의 반응(요즘은 어디서 찾아보기도 힘들어졌지만)에서도 아쉬운 점들이 있으신가 보군요. 하이텔 시절에도 그런 편이었나요?

– 아뇨, 그런 식으로 ‘아쉬운’ 건 아니에요.
– 제가 원래부터 그렇게 완벽하게 다른 독자들과 클릭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거 같아요. 그렇다고 ‘일반 독자’라는 가상의 존재에 저를 맞추고 싶지도 않고요.
–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그러다보면 제가 눈치 채지 못한 제 글의 다른 면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거죠.
– 단지 전 그렇게 난해한 글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엇갈림이 조금 재미있는 거죠.

네. 음, 조금 다른 쪽에서 접근하자면, (아마 들어보셨으리라 생각되어서 실례 무릅쓰고 인용하자면) 피씨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오던 시기 전후로 기존의 SF 독자들로부터 지나치게 서구 SF를 추수했다는 평이 있었는데요. 지금도 엔하위키 등에 남아있고.
저희가 보기엔 핀트가 잘못 맞았다고 생각되는게, 결국 SF라는 장르의 기원이 서구에 있는 한 SF로서 충실한 작품이 서구 SF적 기준에 부합한달까 서구 SF와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한국식 SF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제저벨} 후기에서 말씀하신 부분이 저희 생각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 과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주제로 글을 쓴다면 어쩔 수 없이 ‘서구 과학’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죠.
– 물론 한동안 동양철학의 세계관이 그대로 먹히는 평행우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긴 합니다만 제 영역은 아니고요.
– 사실 ‘서구 과학’이라는 게 이상한 말이죠. 아무리 과학체계를 만들어낸 게 서구 문화권이고 그 성격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상대성 이론이나 진화론을 ‘서구문화’로 보는 건 이상하지 않겠어요?
– 한국식 SF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기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전 굳이 그러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요. 그냥 제가 알고 있는 소재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죠. 제가 굳이 의식적으로 ‘한국인’이 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단지 기존 서구 SF를 인용과 패러디가 제 이야기들의 전부라는 의견은 그냥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중요한 일부분이긴 하죠. 하지만 장르란 것 자체가 클리셰 위에 세워져 있는 걸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인용이 많은 이야기를 쓰는 건 아니에요. 다른 점이 있다면 인용의 출처와 영향의 근거를 밝히고 있다는 것뿐이죠. 표절 공포증 때문인데 지금은 많이 자제하고 있죠.

이번에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인데 디시인사이드 판타지갤러리 등에서 곧잘 쓰는 ‘동네 SF’라는 표현의 기원이 사실은 {용의 이} 권말에 달린 정성일 씨의 추천사였더군요.

– 맞아요.

사실 그동안 한국 SF의 영역을 가장 많이 확장한 작가로 평가되셔야 하지 않나 싶은데요.

– 그럴까요.

앞으로 더 시도해보고 싶은 방향이나, 소재가 있으신지요.

– 아뇨. 계획은 없어요.
– 단지 전 어린 시절 읽었던 청소년 SF에 대한 애착이 있고 그 쪽으로 자꾸 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긴 해요.
– 지금 당장 그 쪽으로 가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죠. 제 방향이나 소재는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느냐에 따라 달렸어요.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힘겹죠.

‘어린 시절 읽었던 청소년 SF’라면 아무래도 우주 모험담일 것 같은데요, {아직은 신이 아니야}만 해도 지금까지의 한국 SF로서는 가장 멀리 나간 것 같거든요.

– 그렇죠. 아주 전통적인 모험담. 미지의 우주, 모험정신, 과학적인 문제 해결. 하인라인.
– 저랑 좀 거리가 있는 영역이라 계속 당기죠. 거기 맞추어 쓰다보면 지금까지 몰랐던 가능성을 실수로라도 건드릴 수 있을 것도 같고.

저희가 보기에 {제저벨}의 일부 에피소드나 [디북], [수련의 아이들] 같은 작품들에서는 극도로 밀어붙인 추상적인 사변이 보이고, 이 부분이 특히 듀나 님의 SF들 중에서 굉장히 멀리 나간 시도들로 보이는데요. 이런 면은 {나비 전쟁} 등 예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경향이 아닌지요.

– 글쎄요. 전 원래 그랬던 거 같아요. [면세구역]만 해도 그렇잖아요.
– 단편을 많이 쓰다보면 그런 경향이 더 강해지고요. 캐릭터에 대한 책임감 없이 우주 가지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죠.
– 요새 제 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테마는 아직 준비가 안 된 인류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변화죠. {제저벨}에서는 의도적으로 사용했고 {아직은 신이 아니야}에서는 쓰다 보니 그 방향으로 갔지만.
– 클라크의 제3법칙, 그에 따른 불가지론이 도입되고요.
– 추상적인 사변은 원래 제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언어로는 쉽게 조립할 수 있지만 현실세계에 놓으면 부조리해지는 소재들을 좋아해요.

‘준비가 안 된 인류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변화’라면 [아이들은 모두 떠난다]도 떠오르네요.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미치광이 하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은데, 인간의 내면 정신과 외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우주, 인식의 불확실성의 극한에 몰린 개인의 내면 같은 것도 꽤 여러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거 같아요.
특히 {제저벨}에서 [레벤튼]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고 정말 좋았거든요.

– 네, 그것들도 언어와 감각의 갭을 이용한 유희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레벤튼]의 경우는 그보다 조금 영화 오마주에 가까웠지만.
– 발 루튼의 “죽음의 섬”에서 많은 부분을 빌려왔죠. 너무 이른 매장, 뵈클린의 죽음의 섬, 보리스 칼로프. 그리고 발 루튼에서도. 루튼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레벤톤. 그 분 이모는 배우인 나지모바. 거의 팬픽이죠. 물론 막 쓰다보니 모델이 된 영화에서 한참 멀어졌지만.

캐릭터 조형에서 특히 영화의 영향이랄까 도움을 받으시는 건 익히 알려진 것 같은데, 스토리도 그런 경우가 있는 건 처음 알게 된 거 같아요.

– 스토리 자체보다는 이미지와 분위기, 캐릭터의 영향을 더 받았죠.
– {제저벨}의 경우는 실제로 RKO 영화 배우들을 캐스팅해놓고 만든 거나 마찬가지였죠.

스토리나 플롯과 별개로 레벤튼의 나비라든가, 영원한 불면 속에서의 환각 등의 이미지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 [레벤튼]의 나비는 나보코프의 곤충학자로서 경력을 다룬 “나보코프 블루스”라는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제저벨}은 정말 팬픽이었는데 그 농담이나 인용들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극소수였겠죠. 이러면서 독자들이 저랑 클릭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으니 제가 이상한 거죠.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는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에 슬슬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번에 단편들을 다시 읽으며 발견한 건데, 죽은 뒤에 다시 돌아오는 인물의 이야기가 많은 것 혹시 알고 계셨나요?

– 그건 아마 제 단편들의 호러적 특성 때문일 거예요. 전 호러 팬이기도 하니까. 순수한 호러는 잘 쓰지 않지만 그 장르 재료들은 많이 쓰고 있지요. 좀비, 귀신, 뱀파이어, 슬래셔. 거의 모든 재료들을 썼지요.

아. 물론 해당 모티프가 호러의 핵심에 있긴 합니다만, 개인적인 취향이나 애호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 호러를 좋아하는 건 이 장르 작품 상당수가 우리의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일이 일단 일어났다고 치고 그 불가능한 현상을 통해 독자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때문인데 그게 제 성향과 맞죠.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일단 일어났다는 것. 이것은 설명될 수도 있고 설명 안 될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를 영원히 바꾸어놓을 거라는 거.
– 많은 호러물은 그래도 주인공이 정상세계로 돌아오면서 끝나죠. 주인공은 그래도 세상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걸 알지만. 전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그 정보를 밖으로 끌어내서 정상세계를 파괴하는 걸 더 좋아하고. 그 때문에 SF쪽으로 기울죠.

음, 그렇게 정리하면 호러와 SF 사이에 굉장히 강한 공통점이 드러나는데요. 추리 소설도 좋아하시는 걸로 압니다만, 이쪽으로는 반영된 작품이 금방 생각나지 않네요.

– 제 이야기 대부분이 문제 해결 과정을 다루고 있으니 반 이상은 추리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 대리전도 추리물로 썼어요. 사실 추리물에 대한 농담이죠. 주인공이 열심히 머리를 굴려 이치에 맞는 추론을 계속 내는데 몽땅 틀리죠.

아, 정말 [대리전]은 추리물의 구성이랑 잘 맞네요. 그러고 보면 {나비전쟁}의 여러 수록작들도 그렇고, {아직은 신이 아니야}에도 몇 있군요.

– 호러, 추리, SF는 다들 조금씩 비슷한 구석이 있죠. 다들 비슷한 시기에 이웃 게토에서 자랐으니까.

앞서 말씀하신 호러와 SF의 차이는 판타지와 SF 사이의 차이와도 통하는 것 같은데요.

– 그런 식으로 세부를 파면 끝이 없죠. 전 그렇게 장르를 세밀하게 분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그러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판타지적 요소는 작품들에서 크게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독자로서도 추리나 호러에 비해 판타지를 덜 좋아하시는 편인가요?

– 아, 장르물로서 하이 판타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싫어한다는 건 아니고. 그 영역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어요.
– 하지만 판타지에 그런 부류만 있는 건 아니죠.

네. 초현실주의나 환상소설적인 느낌의 이미지들은 작품들에서 종종 마주친 것 같습니다.

– 굳이 한국적 SF를 쓸 필요는 없지만 하이 판타지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지 않나 싶어요. 하여간 전 안 쓰니까.

이제 정말로 몇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아마 지겨우실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장편 소설 집필은 생각하고 계시나요?

– 밀린 글들이 있어요. [평형추] 장편 버전을 써야 하고 팝콘에서 연재하다 중단된 추리물인 [거미줄 그늘]을 완결지어야 하죠. 이건 계속 광고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게으름에 질 거 같아요.

일전에 불새 출판사가 ‘SF 독자 300인’설을 주장하며 장렬하게 망했는데요, 한국 SF 시장의 현황이나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업계 예측은 못하겠어요. 이 미래를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어떻게든 제가 살아남는 게 목표죠.
– 그러면서 안에서 미래를 만들어야죠. 바깥에서 예측할 입장은 아니에요. 당사자니까요.

안에서 미래를 만든다는 부분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 그냥 제가 당사자라는 뜻이에요. 예측은 외부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죠. 당사자는 계획을 세우죠. 뭐, 전 계획도 잘 세우지 않고 그냥 생각 없이 살지만.

문장 사이트에서 상당 기간 심사를 맡으셨던 걸로 아는데요. 다른 한국 SF들은 꾸준히 읽고 계시나요? 크로스로드라든가, 기성 작가들의 출판물들?

– 읽고는 있어요. 일단 그 책들에 제 단편이 실려 있으니까요. 하지만 언급은 잘 안 하죠. 제가 객관적일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거 같아서 조심스러워요.

아, 그럼 저희도 조심스럽게 여쭤보겠습니다만, 인상적인(혹은 관심 가는) 작품이나 작가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김보영님 단편집에 추천사를 쓰긴 했지만 그거야 그 책에 제 이름이 달려 있으면 흐뭇할 거 같아서 잠시 원칙을 포기한 거고.
– 전 여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맨 처음에도 유사한 질문 드렸던 것 같지만, 동시대에 발표되고 있는 해외 SF들에는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신가요?

– 최근 몇 년 동안은 뉴스만 접하는 정도죠. 따라잡긴 해야 할 텐데 요샌 힘들어요. 일단 무게 중심이 영화 쪽으로 많이 옮겨졌으니. (나중에 확인해봤는데, 올해 읽은 백 권 가까운 책들 중 SF는 열 권 정도밖에 안 되더군요. 이 정도면 번역서도 따라잡기 어려워요.)

– 하지만 전자책과 킨들이 습관을 조금 바꾸어놓지 않을까 생각해보죠.

정말 정말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번 인터뷰에서 예상하셨었는데 저희가 묻지 않은 질문이 있으셨나요? (그에 대한 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만)

– 아뇨. 그런 예측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어서.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인터뷰라 많이 서툴렀고, 눈치 없는 질문도 많았을 텐데 우문현답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친절하고 상세한 답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인터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SF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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