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칭) alt. SF 자료실에는 낡은 잡지들 몇이 굴러다니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1996년 7월에 나온 “이매진” 창간호입니다. 이 잡지의 244쪽에는 ‘듀나 일당’이 지었다는 단편이 실려 있는데, 제목은 [사라지는 사람들]입니다.

2.

저희가 듀나를 처음 알게 된 시점이 이 잡지에서부터였다면 뭔가 좀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매진” 창간호는 나온 지 십여 년 뒤에야 헌책방에서 건진 것이고, 이번 특집 기사를 준비하며 아무리 기억을 뒤집고 헤집어 봐도, 도무지 듀나의 SF를 처음 읽었던 순간은 기억에서 떠오르지 않습니다.

3.

듀나는 마치 한국 SF의 태초부터 있었던 것만 같습니다.

4.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듀나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SF를 처음 읽은 것은 언제입니까? 듀나의 SF를 처음 읽은 건 언제였습니까? 우리는 듀나의, 듀나가 쓴 SF들의 가치들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 걸까요?

5.

어쩌면 정말, 한국의 장르 SF는 듀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이매진” 창간호보다 더 앞서 듀나의 SF가 활자화된 것은 1994년에 명경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창작 SF 단편집 {사이버 펑크}였습니다. [렉스], [미메시스], [바벨의 함정], [그레타에게서 내려온 복음], [도플갱어], [시간여행자의 허무한 종말]의 총 6편의 단편이 김종준 씨, 송세현 씨, 김창규 씨 등 다른 세 작가의 11편의 단편들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구해 보기 힘들어진 이 책은 당시 PC 통신을 기반으로 한 여타 아마추어 SF 창작과 듀나의 질적 차이를 증언해주는 자료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듀나와 나머지 세 작가의 작품들 모두 아이디어 위주의 SF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아이디어를 플롯에 풀어 소설로 만들어내는 수준과 문장의 견고함과 치밀함 등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나쁜 아이디어는 버리고 좋은 아이디어를 골라내는 눈, 아이디어에 알맞은 플롯과 스토리를 찾아내는 눈, 플롯과 스토리에 어울리는 어조와 문장을 찾아 만들어내는 눈과 손에 있습니다.

그러한 눈은 결국 좋은 SF를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어로 SF를 처음 제대로 쓰기 시작한 두 사람이 모두 해외 SF를 섭렵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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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출간된 듀나의 첫 SF 단편집 {나비 전쟁}은 말 그대로 한국 SF를 서너 단계 끌어올린, 이후 한국 SF가 갈 수 있는 방향을 거의 대략 모두 가리킨, 깊이와 넓이를 모두 확보한 기념비적인 작품집입니다.

한 작가가 한 언어/문화권의 문학 전체를 한 단계 끌고 올라가는 것이 가능할까요? {나비 전쟁}은 실제로 해냈습니다. 표제작 [나비 전쟁] 을 비롯한 여러 수록작들은 세계의 변두리에서 언제나 세계의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한국과 한국인이 어떻게 하면 세계의 변화를 핵심으로 하는 SF의 배경과 주인공이 될 수 있겠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들입니다.

물론 본지에서는 ‘한국식 SF’ 혹은 ‘한국적 SF’에 대한 담론에 대해 부정적인(혹은 회의적인)  입장을 기회가 될 때마다 보여왔지만, 앞서의 질문은 비단 SF만이 아니라 판타지, 추리, 호러 등 해외에서 유입된 서브 장르들 전체가 짊어지고 있는, 심지어는 개화기 이후 서구에서 들어온 주류 예술들-문학과 연극, 미술, 영화들도 짊어지고 고민했던 문제인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듀나 이전의(사실은 지금도 ‘크로스로드’의 여러 수준 미달작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SF에서는 1) 미래를 핑계로 한국을 무리하게 세계의 중심에 옮기거나, 2) 미래를 핑계로 등장인물과 배경을 모두 서구적 이름과 지명으로 채우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어느 쪽이든 아주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치명적으로 깎아 먹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으면 나는 너의 엄마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비 전쟁] 두 번째 문장)

[나비 전쟁] 은 부분의 작은 변화가 전체의 큰 변화로 연결되는 나비 효과를 통해 주변부의 한국과 한국인을 세계 전체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킵니다.  [펜타곤], [미메시스] 등 지구의 근미래를 다룬 SF들이나 심지어 [일곱 번째 별] , [그 크고 검은 눈], [렉스], [아이들은 모두 떠난다] 등 아득한 미래, 지구가 아닌 다른 별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서도 한국인의 이름은 별다른 불협화음 없이 SF적 상황이나 사건, 소도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데, 이는 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90년대 내내 진행된 해외와의 교류 확대 속에서 세계와 연결된, 세계의 일부분으로서의 한국상이 자연스럽게 확립된 결과로서도 볼 수 있지만, 한국 사회 혹은 한국인의 의식 구조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전근대적 촌스러움에 대한 듀나 특유의 예민한 비판적 감각이 균형을 잘 잡은 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코리언이라는 단어가 모여든 사람들을 더 자극했다. 이 나라에서도 한국 남자들은 일본 남자들 만큼이나 인기가 없다. [미메시스] 

“난 책임자에게 직접 말해야 해요! 게다가 당신은 나처럼 한국 사람이니까 당신에게 말해야 하겠어요. 내 명함 보여줘요?” [렉스]

‘동네 SF’라는 표현은 {용의 이} 권말 추천사에서 영화 평론가 정성일 씨가 [대리전]에 대해 언급하며 처음 사용되었고, 이후 (특히 수도권 소도시 등) 한국의 구체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SF들에 대한 이름이 되면서 [대리전]이 그 효시인 듯 이야기되고 있지만, {나비 전쟁}의 수록작인 [사라지는 사람들], [오발행동] 등은 ‘동네 SF’나 ‘한국적 SF’는 따로 없으며 다만 SF의 본질에 얼마나 충실할 수 있는가가 문제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줍니다.

{나비 전쟁} 이후 3년 만인 2000년 2월에 출간된 {면세구역}은 전작의 표제작까지 포함된 여덟 편의 수록작들을 공유하고 있고, 나머지 단편들도 대개 {나비 전쟁}의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특집기사 2의 인터뷰에서 듀나 본인은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지만)

2002년 10월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태평양 횡단 특급}에서입니다. 여전히 네 편의 수록작이 전작들과 겹치지만(위키피디아의 ‘듀나’ 항목에 따르면 표제작부터 여전히 PC통신에서 먼저 발표되었던 작품이고, [대리 살인자]에서도 여전히 PC통신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90년대 PC통신 기반의 창작에서 벗어난 것이 작품들 내부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문장이나 아이디어나 플롯이 모두 한층 정교해졌달까요. 순간의 감상주의적 감흥에 대해 냉소하지 않고 그 나름의 의미를 인정하는, 인간과 인생에 대해 보다 깊어진 시선도 눈에 띕니다.

특히 [끈]과 [얼어붙은 삶]에서 기미가 보이다가 [미치광이 하늘]에서 만개하는, 지극히 추상적인 사변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는 상상력은 이후 작품들에서도 계속 이어지며 현재를 (잠정적으로) 듀나 2기로 분류하도록 합니다.

8.

2006년 1월에 나온 {대리전}은 이 무슨 개지랄이야스러운 표지와 내지 일러스트들 때문인지 팬들 사이에서 소리소문없이 묻혀버린 비운의 작품집인데(아마 표제작이 여기 수록되기 전부터 ‘크로스로드’ 등을 통해 이미 너무 잘 알려진 탓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모든 수록작이 기존에 다른 지면 등에서 이미 선보인 점도 작용했을 테고요), 사실 표제작 외 세 편의 수록작들이 다 고만고만한 소품 혹은 평작들이라서 여기서 특별히 더 조명할 점이 없긴 합니다.

이듬해인 2007년 12월에 나온 {용의 이} 역시 표제작을 제외한 세 편의 수록작은 ‘판타스틱’ 등 기발표된 작품들이지만, 앞서와는 다르게 SF로서의 비중이 꽤 커서 읽을 만한데다가 특히 표제작은 분량에서부터 본격적인 장편이라 할 만하고, 스페이스오페라적 설정에 플롯에 듀나 2기의 또다른 특징이라 할 주관과 객관 사이 인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상황, 듀나 걸이라 부를 수 있을 조숙하고 외로운 소녀 캐릭터를 넣은 결과는 꽤 근사해서, 시장의 협소로 단편 위주로만 근근히 명맥을 이어온 한국 SF계에 제대로 된 장편 SF가 드디어 나왔다는 기쁨과 반가움을 독자들에게 안겨줍니다

…라고 서술하고 싶지만, 작품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우울하고(우주 난파물이니까 당연하지만), 설정과 상황, 배경 등이 복잡해서 국내 독자층에 별로 어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링커 우주’ 시리즈나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함께 듀나와 한국 SF의 중요한 성취 중 하나라 부를 만 합니다. 여러분 [용의 이]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2011년 1월 출간된 듀나의 여섯 번째 단독 작품집은 표제작과 [안개 바다]를 통해 ‘링커 우주’ 시리즈의 시작을 알립니다. [미치광이 하늘]에서 제시된, 물리적 한계가 해제된 지구가 우주로 확장된 듯한 이 시리즈는 링커 바이러스를 통해 인류의 외양과 속성이 무한히 변형, 분화, 확장된 세계를 배경으로 수많은 별들에서 무수한 개인과 사회의 표현형을 통해 인생, 인간들의 사회와 역사, 문화와 예술의 의미를 새롭게 질문합니다.

‘링커 우주’의 두 작품을ㅡ사실 [안개 바다]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듯 하지만ㅡ제외한 나머지 수록작들은 SF보다는 콩트나 환상 소설 등으로 분류될 소품들이어서(심지어 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PC통신 시절 작품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일일히 언급하긴 어렵지만, [여우골]은 한국 전통 설화의 모티프와 코스믹 호러를 절묘하게 결합한 수작이며 [정원사]는 (창작 시기적으로도 그렇긴 하지만) {나비 전쟁} 시절을 연상시키는 재치있고 고풍스런 스페이스오페라입니다.

이듬해인 2012년 2월에 출간된, 오롯이 ‘링커 우주’만을 배경으로 하는 네 편의 연작 단편을 모은 이 작품집에서 ‘링커 우주’가 가진 SF적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탐구됩니다. [시드니] 초반부에 짧게 언급되는 ‘마리아 부츠’ 행성의 에피소드나 ‘토요일’의 2차 대전 놀이, 결말부의 인공 진화에 대한 논쟁, [레벤튼]에서의 ‘레벤트’ 섬 사람들의 무시무시하게 매혹적인 의식 세계나 레벤튼 나비들의 눈부시게 화려한 이미지, 오지만디어스 대령의 섬찟한 ‘말씀의 벌레’, [호가스]에서 42호의 고독한 집필이라든가 올리비에의 탑에서의 환각적 경험, 또 ‘로즈 셀라비’ 선원들ㅡ특히 울릭세스의 무시무시한 모험 등은 SF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지적인 상상력의 롤러코스터적인 질주에서 오는 쾌감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작년-2013년 9월에 나온 연작 단편집 {아직은 신이 아니야}는 ‘링커 우주’ 시리즈와 별개로 ‘배터리 우주’라고 부를 만한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냈습니다. 국지적인 핵폭발로 인한 초능력 돌연변이의 출현, 이라는 만화 같은 설정 위에서 펼쳐지는 사건들과 이를 통해 나타나는 인류 사회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얻을 수 있는 SF 특유의 쾌감은 {제저벨}에 필적합니다. ‘배터리 우주’의 이야기는 일종의 에필로그라 할 [성인식]에서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의 결말을 연상시키는 지구의 소멸로 이 한 권에서 일단락된 듯합니다만, 우주로 뻗어나간 배터리 인류가 겪을 모험은 아직 더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듀나는 2기에서 한국 SF의ㅡ나아가 한국 문학의 시간과 공간, 소설이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의 영역을 가장 멀리까지 확장하는(여기에는 김보영 씨도 일조를 하고 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의 수맥을 둘이나 찾아낸 셈입니다.

9.

  

  

 

지금까지 단독 작품집 위주로 듀나의 작품 세계를 일견해봤습니다만 그 외에도 듀나의 SF 단편들은 ‘한국 SF계의 감초’라는 다소 부정적인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로, 국내 SF 앤솔러지들에 거의 대부분 끼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좁은 SF 작가 풀에 기인한 것이겠고, 그 다음으로나 듀나가 한국 SF 계에서 갖고 있는 위상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만, 어쨌거나, 지금까지 언급되지 못한 작품들을 짧게 거론해보자면ㅡ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 수록된 [가말록의 탈출]은 듀나 1기를 연상시키는, 단조로운 소품입니다. 한국 교육계에 대해 듀나가 평소 피력해온 부정적인 견해를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쉬운 대목입니다. 차라리 {아직은 신이 아니야}의 처음 세 단편들 중 어떤 것이든 훨씬 더 어울렸을 텐데 말이죠.(물론 시기적으로 훨씬 일러지게 되겠지만)

{얼터너티브 드림} 수록작은 [대리전]이므로 여기선 패스,

{유, 로봇}에는 [미래 관리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파우스트’에 먼저 발표되었던 단편으로, 듀나 2기의 인식과 현실 사이 심연과 그 위에서의 논리적인 모험이 포함된, 전반적으로는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 도입부를 연상시키는 사건을 담은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의 표제작은 대번에 어슐러 K. 르귄을 떠올리게 만드는, 듀나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이례적인 느낌의 작품입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듀나보다는 김보영 씨의 이름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자체로도 완성도 높은 SF이지만, 그런 점에서 듀나의 작품 세계를 더 넓고 풍요롭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독재자}에 수록된 [평형추]는 스릴러적인 구성과 하드보일드한 서술이 독특한 단편입니다. 다만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때와 마찬가지로, 해당 앤솔로지의 취지와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느낌입니다만.

{오늘의 장르문학}의 [디북]은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듀나 2기의 추상적 사변의 상상력이 잘 발휘된 작품으로 디북의 입을 통해 모든 정보를 쏟아놓으며 인류의 멸망을 향해 급격하게 휘몰아치는 결말이 특히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에 수록된 [수련의 아이들] 역시 하드한 느낌을 줄 정도로 치밀한 상상력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크로스로드’의 수많은 졸작들과 같이 섞여 있는 게 아까울 정도로요.

{울고 있니 너?}라는 손발 오그라드는 제목의 ‘청소년을 위한 소설심리클럽’ 시리즈의 첫 번째 책에 수록된 단편 [사춘기여, 안녕]은 제목들이 다 왜 이래? 사이버 문학광장 ‘글틴’에 2011년에 이미 게재된 적이 있는, 제대로 된 SF 단편입니다. 테드 창이 연상되는, 새로운 과학 기술이 사회와 개인에게 어떤 변화와 갈등을 일으키는지 차분하면서도 꼼꼼하게 서술한 면모가 눈에 띕니다.

10.

듀나가 PC통신 ‘하이텔’의 SF 동호회 게시판에 단편들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94년 무렵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듀나의 작품 활동 기간은 이제 20년이 넘어서는 셈입니다.

척박한 한국 SF 토양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탄할 일이지만, 처음부터 매우 완성도 높은 한국어 SF를 제시한 이후로도 끊임없이 스스로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갱신하며 깊이를 더해가는 점은 정말 놀라운 점입니다.

앞으로 듀나의 SF가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더 멀리 나아갈지 기대하고 기다리고 지켜보는 일은 한국 SF팬들만이 누릴 수 있는 크나큰 즐거움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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