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특집은 해외 칼럼의 무단 번역입니다. 지난 7월 22일 TOR.COM에 올라온 중국 SF 작가 XIA JIA의 칼럼으로, 중국 SF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한국에서 SF의 수용 과정과 비교해서 읽어볼 만하고, 특히 서구 SF와의 관계 설정이나 자국 문화 안에서의 위상 정립과 관련해서 참고할 점이 있다고 생각되어 소개합니다.

단순히 소재나 배경만 가지고 한국식 SF를 논하는 일부 국내 SF 팬들에게 중국의 역사적 경험과 현재 위치를 통해 중국식(?) SF를 이야기하는 이 글은 특히 일독의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원문 주소 : http://www.tor.com/blogs/2014/07/what-makes-chinese-science-fiction-chinese 

번역 상의 오류가 있을 경우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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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중국 SF를 중국 문학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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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A J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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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에 나는 시카고에서 열린 과학소설 컨벤션에 중국 패널로 참가했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나를 비롯한 중국 작가들에게 “무엇이 중국 과학소설을 중국 문학으로 만듭니까?”라고 질문했다.

이건 누구에게나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 아니며, 모두들 각각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난 세기에 “중국 과학소설”은 현대 중국의 문화와 문학에서 다소 독특한 입지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과학소설의 창조적인 영감들ㅡ거대한 기계 장치, 새로운 교통수단, 세계 여행, 우주 탐험ㅡ은 현대 자본주의의에 뿌리를 둔 산업화와 도시화, 세계화 과정의 결실들이다. 그렇지만 이 장르가 20세기 초 중국에 번역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을 때에는 대개 근대의 꿈과 환상으로서, “차이니즈 드림”의 건설로 이어질 수 있는 소재로 취급되었다. 여기서 “차이니즈 드림”이란 근대 중국 민족의 부흥을 말하며, 중국인들의 꿈을 부흥하고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다시 말해 중국 민족은 고대 문명으로서의 5000년에 걸친 오랜 꿈에서 깨어나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성공적인 근대 국가가 되기 위한 꿈을 꾸어야 했다. 그에 따라 중국어로 쓰인 초기 과학소설들은 저명한 작가 루쉰의 표현에 따르면 “사고력을 증진하고 문화를 지원하는” 문학적 도구로 나타났다. 이들 초기 작품들은 “서구”/“세계”/“근대”를 모방하기 위한 과학과 계몽, 개발의 신화로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격을 메우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이 차이나기 때문에 작품들에 반영된 중국적 요소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깊은 단절을 강조할 뿐이었다.

그러한 초기 작품들 중 하나가 1910년에 출간된 Lu Shi’e의 “새로운 중국”이다. 주인공은 깊이 잠들었다가 1950년의 상하이에서 깨어난다. 그는 주위를 둘러싼 번창하고 발전하는 중국을 둘러보고 그 모든 것이 수한민Su Hanmin 박사 같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듣게 된다. 수한민 박사는 해외에서 공부하며 “정신 약물”과 “각성 기법”이라는 두 기술을 발명했는데, 이 두 기술로 정신적인 혼란과 아편 중독에 빠진 인구를 즉각 각성시켜 정치 개혁과 경제적 발전에 열렬히 참여하도록 했다. 그리고 중국 민족은 부흥만 한 것이 아니라 심지어 서양이 극복하지 못한 그들의 폐습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유럽 기업가들은 전적으로 이기적이어서 다른 이들의 고통에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산당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 박사의 정신 약물의 발명으로 모든 중국인들은 이타적이고 “이미 실질적으로는 사회주의처럼 모든 이들이 다른 모든 이들의 복지를 자신의 책임처럼 살핌으로써 공산당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사회주의 문학의 한 갈래로서 중국 과학소설은 미래를 위한 아름다운 계획을 묘사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에 동기를 부여할 뿐 아니라, 과학 지식을 대중화하는 책임을 부여받았다. 예를 들어, 작가 정문광Zheng Wenguang은 언젠가 말하길, “과학소설의 사실주의는 다른 장르의 사실주의와는 다르다. 과학소설은 젊은 독자들이 읽도록하기 때문에 과학소설의 사실주의는 혁명적인 이상주의로 가득하다.” 이 “혁명적 이상주의”의 뿌리는 중국적 신념의 지속과 근대에 관한 거대 담론에 대한 열망이다. 이것은 발전과 진보의 지속, 민족 국가 건설에 대한 솔직한 열망에 대한 낙관을 대변한다.

혁명적 이상주의의 고전적 예는 1958년에 출간된 정문광의 “공산주의에 바치는 카프리치오奇想曲”이다. 이 이야기는 1979년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30주년 기념식을 그린다. 화성 우주선 1호, 해남도와 본토를 연결한 거대한 둑, 대양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공산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조율된 공장들, 심지어 톈산 산맥의 빙하를 녹여 사막을 비옥한 농장으로 만드는 인공 태양 등으로 구성된 “공산주의의 건설자들”의 행진은 그들의 과학적 성취를 조국에 과시하며 광장을 가로지른다. 이러한 경이를 목격하고 주인공은 외친다. “아, 과학과 기술로 가능해진 환상적인 장면들이여!”

근대 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열망은 문화 혁명으로 잦아들었다가 1978년에 다시 불붙었다. 1978년 8월에 출간된 협영렬叶永烈의 “미래를 향한 짧고 영리한 방랑”은 얇은 두께에 아이의 시선에 비친 미래 도시에 대한 매혹적인 전망을 가득 채운 책으로 150만 부나 팔리며 중국 과학소설의 새 시대를 알린 작품이다. 역설적으로 등소평 시대에 중국이 재정비되고 실제로 근대화됨에 따라 미래에 대한 열정적인 꿈들은 중국 과학소설에서 사라져갔다. 작가와 독자들은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유토피아로부터 빠져나와 현실주의로 돌아간 듯 보였다.

1987년 협영렬은 “새벽의 차가운 꿈”이란 제목의 단편을 발표했다. 상하이의 어느 추운 겨울 밤, 주인공은 난방 되지 않는 집에서 잠이 안 와 괴로운 상태에서 일련의 대단한 과학소설 같은 꿈들을 꾸게 된다. 지열 발전, 인공 태양, “남극과 북극의 역전”, 심지어 상하이를 유리로 덮어 온실처럼 만들기. 그렇지만, 현실은 제안된 계획이 승인되었을 경우에 대한 걱정의 형태로 끼어든다.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는 어떻게 얻을 것인지, 잠재적인 국제 분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ㅡ모든 전망은 실행 불가능하여 거부되는 것으로 끝난다. “현실과 환상이라는 연인 사이를 가르는 수천 마일의 거리여!” 그 거리와 격차는, 누군가 추측하기론, 공산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난 중국인들의 불안과 걱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1970년대 말부터 수많은 구미 과학소설 작품들이 번역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오랜 기간 아동용 소련 과학소설의 영향 아래 있던 중국 과학소설은 자신이 변두리에서 지체되고 있었음을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국제 질서를 재편하고자 하는 욕망뿐 아니라 중국과 서양, 개발도상과 개발,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에 자극받아, 중국 과학소설 작가들은 오랫동안 영향이 컸던 대중과학물의 양식으로부터 벗어나 중국 과학소설을 개발도상의, 억압된, 유년기의 상태에서 현대 문학으로 급격히 성장(혹은 어쩌면 진화)시키려고 하였다. 동시에, “중국”을 국제 자본주의 속에 재정립하기 위해 중국 과학소설의 독특한 “민족적 특징”들이 탐구되는 동안 작가들과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하면 내용과 형식 측면에서 국제적인 기준들에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었다. 중국 작가들은 세계화되는 과정 속에서 중국 문화가 차지할 자리를 마련해야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류가 공유하는 미래에 참여하기 위해 서양 과학소설의 주제와 형식을 참조하여 모방해야 했다.

냉전이 끝나고 1990년대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에 빠르게 편입되면서 시장 원리가 사회 전분야에 적용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적 변화가 나타났는데, 이러한 변화는 특히 경제 논리가 전통을 타격하고 파괴하는 부분에서 잘 드러났다. 여기서 “전통”이란 변두리의 오래된 생활 방식 뿐 아니라 사회주의 이념에서 기인한 과거의 평등주의도 뜻한다. 따라서 중국이 거대한 변화를 경험하며, 과학소설은 근대화를 향한 미래의 꿈에서 훨씬 복잡한 사회적 현실로 옮겨갔다.

구미의 과학소설은 창조적 에너지와 소재를 서양의 정치적, 경제적 근대화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얻었고, 운명에 대한 인간적인 공포와 희망을 고도로 우의적인 형식을 통해 꿈과 악몽으로 가다듬었다. 다양한 배경과 이미지, 문화 코드, 이야기 기법을 서구 과학소설로부터 가져온 뒤 중국 과학소설 작가들은 주류 문학이나 다른 대중 문학 장르들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구별하고 가다듬을 수 있는 문화적 장과 상징 공간들을 점진적으로 건설해왔다. 이 공간에서 점진적으로 성숙된 형식은 그때까지 충분히 상징적 질서에 포섭되지 않았던 다양한 사회적 경험들을 흡수했으며, 일련의 변형과 융합, 재구조화를 거쳐 새로운 어휘와 문법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점에서 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의 중국 과학소설은 세계화 시대에 민족적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전반적으로, 중국 과학소설 작가들은 특별한 역사적 조건에 직면해 있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었던 공산주의가 실패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 문화의 위기가 중국인들의 일상 생활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재편과 개발로 인해 값비싼 대가를 치른 심리적 충격 이후 중국은 어떻게든 경제적으로 성장하며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동시에 찾아온 위기와 번영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가 나타나는 양상에 영향을 준다. 몇몇은 비관적이어서 불가항력적인 추세 앞에서 우리는 무력할 뿐이라고 믿으며, 몇몇은 인간의 창의력이 최후에 승리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리고 몇몇은 삶의 부조리에 대한 역설적인 전망에 기댄다. 중국인들은 한때 과학과 기술, 꿈꿀 수 있는 용기를 통해 서양의 선진국들을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지금 서양의 과학소설과 문화 상품들은 인류의 비관적인 숙명에 대한 상상과 전망으로 가득하고, 중국 과학소설 작가들과 독자들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 이상은 답변 가능한 질문으로 취급할 수 없다.

현재 중국 과학소설 작가들은 내부적인 차이들로 가득찬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 차이점은 나이와 출신 지역, 전문적인 배경, 사회 계층, 이념, 문화 정체성, 미학 등 여러 영역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작품들을 주의깊게 읽고 분석해보면 (나 자신을 포함하여) 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이야기들은 주로 중국인 독자들을 위해 염두에 둔다. 우리가 마음쓰고 심사숙고하는 문제는 이 땅에서 우리가 공유하고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은 차례로 수천 가지 복잡한 방식으로 모든 인류의 집단적인 운명과 연결된다.

서양의 과학소설을 읽으며 중국 독자들은 현대적인 프로메테우스로서 그 자신이 만들어낸 운명에 대한 인간의 공포와 희망을 발견한다. 아마 서양의 독자들은 중국 과학소설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중국적 근대를 경험하고,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는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과학소설은 중국에 대한 이야기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Ma Boyong의 “침묵의 도시”는 냉전 이후 남아있는 보이지 않는 벽들에 대한 소묘이자 오웰의 {1984}에 대한 오마주이며, 류츠신의 “신 돌보기”는 문명 확장과 자원고갈의 보편적인 주제를 중국 농촌에서의 도덕극 형식으로 탐구했다. Chen Qiufan의 “모래부리의 꽃”은 선진 부근 해안 어촌에 사이버펑크의 어두운 분위기를 깔아놓는데, 가상의 마을 ‘모래부리’는 세계화된 세상의 축소판이다. 나 자신의 작품 “오늘밤 수백의 귀신들이 행진한다”는 닐 게이먼의 {그레이브야드 북}과 Tsui Hark의 중국 귀신 이야기,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등 거장들의 작품들의 순간적인 이미지들을 포함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 이질적인 이야기들은 무언가 공통적인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중국 귀신 이야기와 과학소설 사이의 긴장은 동일한 내용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방식을 제공한다.

과학소설은ㅡ질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ㅡ항상 ‘생성 혹은 되기’ 단계에 있는 문학이며, 프론티어(지와 미지, 마법과 과학, 꿈과 실제, 자아와 타자, 현재와 미래, 동양과 서양 사이의 프론티어)에서 태어나는 문학이다. 그리고 그 프론티어가 변화하고 움직일 때마다 과학소설은 새롭게 바뀐다. 우리는 호기심에 매혹되어 편견과 고정관념을 부수고 이러한 프론티어를 가로질러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자기 인식과 성장은 완성되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 순간에, 나는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력과 용기, 결단, 단결, 사랑과 희망, 낯선이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바탕으로 삶은 보다 좋아져야 하고,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우리 각자는 이런 소중한 자질을 지니고 태어났다. 이는 아마 과학소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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