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뒤돌아보며- 2000년에 1887년을} 에드워드 벨러미 지음, 김혜진 옮김, 아고라.

가정 : 만일 이 작품이 예정대로 90년대 말에 그리폰북스 011번으로 출간되었다면 어땠을까요? 008번이 {바벨-17}, 010번이 {이 사람을 보라}였던 상황에서 그 뒤를 이어 이 작품이 나왔다면 정말 쌩뚱맞았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리폰북스가 더 일찍 침몰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고요.

고리타분한 유토피아물들이 다 그렇지만 전체 분량의 대다수가 작가가 꿈꾸는 이상 사회를 제시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충실한 안내자의 이런 저런 장황한 설명에 주인공은 감탄하거나 추가 질문을 하는 게 고작입니다. 24시간 다채널 방송이나 원격 주문과 택배 시스템 등 신기술에 대한 언급도 일부 나오긴 하지만 미래상의 대부분은 정치, 경제 시스템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 대해 장르 소설로서 SF의 재미와 감동을 기대하며 책을 펼쳐든다면ㅡ심지어 뒷표지에 미국 ‘최초의 SF 소설’이라고 출판사에서 써놓기까지 했지만ㅡ그건 이 책을 잘못 읽는 것입니다. 소설 형식을 빌어 새로운 사회상을 모색하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19세기 유토피아 문학의 맥락에서 읽어야만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작가가 열렬히 설파하는 계획 경제 체제의 객관적 타당성과는 별개로, 타임슬립을 통해 도달한 20세기 미국을 경험한 주인공이 통렬하게 혐오하는 1887년의 미국과 지금 여기, 2014년의 한국이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보는 것은 결코 의미없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간과하기 쉬운 SF의 핵심적 요소로서 인류 사회에 대한 거시적인 전망이나 새로운 삶의 방식 모색 등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유토피아물들을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입니다.

 {레드셔츠} 존 스칼지 지음, 이원경 옮김, 폴라북스(현대문학).

작년에 왔던 스칼지가 죽지도 않고 또 왔습니다. 올 2월에 {신 엔진}이 나왔으니 엄밀히는 작년이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베르나르 베르베르(풋) 이후 이렇게 한국에서 잘 나오는 SF 작가는 존 스칼지가 처음이 아닐까 싶군요.

출간되기 전부터 많이 알려졌던 것처럼 {레드셔츠}는 SF 드라마 “스타트랙”의 패러디입니다. 드라마의 극적 긴장을 위해 무수히 죽어가는 엑스트라들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소설은 어쩔 수 없이 메타픽션적 구성을 취할 수 밖에 없는데, 여기에서 독자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릴 듯 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소설은 SF가 아니라 SF 드라마를 소재로 한 메타픽션일 뿐입니다. 이건 등장인물이 스스로가 허구 속에 들어있음을 깨닫게 되는 모든 창작물이 그럴 수 밖에 없죠.

자신들이 드라마 속에 있음을 깨닫는 부분이나, 드라마 밖 실제 세상으로 나오는 부분 등에서의 SF적인 논리는 꽤 흥미롭고, 특유의 유머는 (사실 질리기 시작한지는 꽤 됐지만) 여전한데, 특히 코다 부분의 세 에피소드에서는 존 스칼지에게 기대하지 못했던 깊이가 보여 놀랍습니다. (그래봤자 미국식 멜로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요)

“스타트랙” 팬들이라면 당연히 즐거울 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근 리부티드된 영화들 말고) “스타트랙” 류의 SF 드라마를 조금이라도 접한 적 있는 독자들은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 어슐러 K. 르귄 지음, 최용준 옮김, 시공사.

스토리 상으로도 느슨하게 연결된, 배경을 공유하는 네 편의 단편을 묶은 헤인 시리즈입니다. {빼앗긴 자들}에서처럼 거주 가능한 행성이 붙어 있는 항성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서로의 관계는 {빼앗긴 자들}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네 편의 단편들은 어슐러 K. 르귄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노예제와 인종차별, 그리고 성차별로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 그들의 세계와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 주인과 노예, 외계인과 토착민 등 일체의 외적 구별을 넘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접촉과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차근차근히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는 결국, 행성 개척이 배경에 깔려 있고 짧은 우주 비행 장면이 등장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잔존하던 노예제가 외부의 개입으로 폐지됐던 지난 역사의 동서양 어디로나 무대를 바꾸어도 크게 바뀔 점이 없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이건 어슐러 K. 르귄의 다른 SF들도 조금씩 가진 약점이지만 이 작품집에서는 특히 두드러집니다.

물론 세심하게 짜여진 외계의 문화와 역사, 관습과 제도는 이 작품을 단순히 현실 세계의 모사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단편들 각각이 담고 있는 호소력 강한 메시지들과 이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는 필력은 (비록 뒷표지에는 없지만 뒷표지 날개에는 여전히 재활용되고 있는) 노벨문학상 1순위 운운의 광고 문구를 단순히 광고 문구에 머물지 않게 합니다.

 {헤밍웨이 위조사건}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북스피어

돈이 궁해진 대학교수가 우연히 만난 사기꾼과 공모해서 헤밍웨이의 분실된 초기 원고를 위조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평행우주가 펼쳐지고 우주들 사이의 통제자들이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조 홀드먼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서 부상을 입은 경험이 있는데, 동일한 경험을 넣어 작가의 분신처럼 만든 주인공 존이 자신의 참전 경험을 헤밍웨이의 1차대전 참전 및 부상과 겹쳐보는 장면에서 단적으로 보이지만 작가의 개인적 취향과 관심이 많이 반영된 작품입니다. SF 독자들 중에서 작가의 애착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헤밍웨이에 대해 관심이나 애정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군요. 헤밍웨이에 대해서 친숙하지 않아도 읽어나가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다 읽은 뒤 김상훈 씨의 권말해설을 보고나면 충분히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지우기 힘듭니다.

그리고 결말 역시 어떤 면에서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나 {타이거! 타이거!} 등을 연상케하는 면이 있지만, (절정-결말에 이르는 부분은 뉴웨이브 SF를 연상케하기도 하고) 주류 문학적인 경향이 강해 SF 독자들에게는 다소 김이 빠질 듯합니다.


WEB

 [소녀] 조나단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2014년 9월호

먼저 ‘<크로스로드>가 창작 SF의 발표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기존의 문예 잡지도 창작 SF 게재를 꺼리는 상황에서, 국제 과학 기구의 웹진이 그 어려운 일을 자임한 것이다. 실제로 <크로스로드>가 지난 8년간 한국 SF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크로스로드’가 SF 코너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부터 봅시다.

오류

아마도 꺾쇠 ‘<>’를 사용한 고유명사 표기가 html로 변환하며 태그와 섞여 빠져버린 것 같은데, 이게 지난 달 게재작입니다. 도대체 처음 업로드한 다음 아무도 확인 안하나요? SF 코너는 한달 동안 작가도 안 보고, 독자도 안 보고, 아무도 안 읽는 그런 슬픈 장소였던 겁니까? ‘가시화될 거로 예측했다’는 분명히 1인칭 시점의 서술이긴 하지만 의존명사 ‘것’을 구어체 ‘거’로 표기하기에 적당한 자리가 아닙니다. 1차적으로는 작가 책임이겠지만, 편집부도 그냥 원고 받아서 올리기만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본문에서는 애써 선을 그으려 했지만 결국 상투적인 사이버펑크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 복제의 비윤리성이란 뻔한 주제를 구태의연한 하드보일드풍으로 반복한 작품입니다. 모든 SF 단편이 십여 분의 시간 떼우기용 읽을거리 수준을 벗어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건 억지 쓰기겠지만, 소녀를 찾아나설 때보다 의뢰하는 대리인의 배후를 캐는 게 더 상세하고, 특히, 사이버펑크 특유의 거대기업 중역의 저택이 소유주의 자신감 과시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아무런 보안책이 없었다는 건 좀 심하게 부실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관찰 예외 대상] 이덕래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2014년 10월호

한국형 코믹 SF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길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농담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박민규 냄새도 나는데 그렇다면 길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박민규 짝퉁이고요.

말하는 비둘기와 도서관에서의 책 제목 말장난, 아프리카에 대한 불쾌할 정도로 무식한 조롱과 비하, 기표만으로 존재하는 외계인들의 계획과 음모, (전작의 연장선 상에서) 자동화와 전산화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과 피해의식 속에서 이야기는 길을 잃고 정처없이 헤매다 끝내기는 끝내야 하니까 끝나버립니다.

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제목을 아예 [리뷰 예외 대상]이라고 바꿔 부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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