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키스 로버츠의 대체역사 SF 걸작(이라고 알려져 왔던) {파반}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출간되었을 때에도 소식 잠깐 들었었는데 바빠서 잠시 미뤘다가 까먹고서는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 돌아다니다 다시 알아차리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이 명명백백한 SF를 단지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과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테마문학 > 대체역사/가상소설’,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문학 > 영국문학’으로만 분류했더군요. 그러니 신간 소식에서도 빼놓았지. (덕분에 대체역사/가상소설 카테고리가 있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다.) 하여간, 뒤늦게 읽은 {파반}은 87년에 초판이 나온 {비명을 찾아서-경성, 쇼우와 62년}(이하{비명을 찾아서})와 92년에 나온 박상준 씨의 “멋진신세계”(‘SF 사상 최고걸작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케이스 로버츠의 『파반 춤』은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윤리관을 원용하여 매우 심도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대체역사기법을 채택한 소설로, 스페인 무적함대가 승리한 뒤 가톨릭 교회가 사회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현대 영국이 등장한다.(259쪽)’) 등에서 언급된 이래 계속 이름만 회자되던 걸작으로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 법칙에 빨려들어가지 않는 묵직한 작품성에 읽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었는데요, 그래서 김에 특집으로 ‘알라딘’의 대체역사/가상소설 카테고리를 털어보겠습국내에 소개된 대체역사 SF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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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말이 必要韓紙?

인터넷 서점 알라딘 기준으로 508권의 대체역사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그 뒤로 {파란 달 아래}와 {대쥬신제국사}가 이어있는 건 정말 기괴하면서도 의미심장한 풍경이네요.)

서구 SF에서 많은 대체역사물들이 현실 역사의 특정 시점에서 실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시간선을 덧대어 이어 그리며(바로 외삽법. 그래서 대체역사물이 SF의 하위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거죠) 과학 기술의 기묘한 발달과 사회 변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했다면 이 작품은 그러한 요소는 거의 완전히 배제된 채 철저하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면과 그에 따른 개인의 내적 심리 변화-정체성 교체/복원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이 부분에서 이어 살펴볼 서구의 대체역사물들과 굉장히 다른 성격을 보이게 되는데, 작품의 주제를 생각하면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일전의 복거일 씨 특집에서도 언급했었지만, SF가 SF만의 방법론에 충실하면서도 (그리고 상투적인 디스토피아 우화에 빠지지 않고서도) 현실에 대해서 가장 통렬하게 발언한 예로 대체역사물에서 뿐만 아니라 SF 전체에서 중요한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민족주의적 열혈 한국 SF팬들에게 개념없는 와패니즈 SF로 까이는 불쌍한 (언제는 필립 K. 딕이 안 불쌍한 적이 있었겠습니까만) 필립 K. 딕의 대체역사소설입니다. {비명을 찾아서}의 저자 서문에서 {희년을 선포하라Bring the Jubilee}와 {파반춤Pavane}, {대서양 횡단 터널, 만세!A Transatlantic Tunnel, Hurrah!} 등과 함께 언급되는데, 아마 {비명을 찾아서}가 가장 닮은 작품을 꼽으라면 ({파반}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지만) 이 작품이 정답일 것입니다.

2차대전에서 추축국이 지지 않았더라면?은 미국 SF에서 흔히 사용되는 소재니까 굳이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 할 수 없겠지만, 피점령 지역의 피지배민족으로서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중심이라는 점에서는, 일부에서 {비명을 찾아서}가 {높은 성의 사나이}의 번안이라는 식의 폄하가 근거 없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80년대 신군부 독재 치하의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일제 강점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쇼우와 62년의 게이조우에 투영하여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인 면에 집중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가상의 역사선 속에서 SF의 본래의 재미는 많이 날려버린(복거일 씨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러한 경향은 계속 발견되긴 합니다만) 카피본{비명을 찾아서}에 비해 화성 탐사나 핵 개발 같은 과학기술적 요소가 좀더 눈에 띄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으며, 애초에 {비명을 찾아서}가 최소한, 외국인 독자들에게는 단지 그럴 뿐이라고 하더라도, 창씨개명과 민족말살정책 등을 여전히 공동체적 기억으로 이어받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인 것처럼, {높은 성의 사나이} 역시 필립 K. 딕의 충실한 독자들은 일견 와패니즘과 오리엔탈리즘의 범벅처럼 보이는 일본과 독일 분할 점령 하 미대륙의 풍경 속에서 필립 K. 딕 특유의, 현실에서 현실성을 벗겨졌을 때 드러나는 불안과 혼돈, 끝없는 회의와 그 결과로 닥쳐오는 광기들을 알아보고 눈웃음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역사는 스팀펑크를 매개로 판타지와의 경계가 가장 흐릿한 SF의 하위 장르입니다. 18세기 유럽과 미국을 배경으로, 아이작 뉴턴, 벤자민 프랭클린, 루이 14세 등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연금술과 에테르 통신 등 각종 판타지스러운 장치들이 등장하는 이 ‘비이성의 시대’ 시리즈의 두 작품 역시 이 하위 장르의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최근에는 1978년에 있었단다. 이걸 가져왔어.”

그는 내게 비틀스 싱글을 건네주었다. 내가 모르는 음반이었다.

“비틀스는 1970년에 해산했잖아요?”

“모든 시간대가 다 그런 건 아니지. 일은 어떠냐?” (14쪽)

사실 대체역사라기 보단 평행우주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당해 보이는 시리즈입니다. 대체역사물의 필수 요소라고 할 결정적인 역사적 분기점이 없고, 그에 따른 대체된 시간선이 없으며, 작품 속 세계의 근본 질서는 현실 세계의 것이 아니라 판타지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선 바로 앞의 ‘비이성의 시대’ 시리즈와 궤를 같이합니다만, 이쪽은 DNA 재조합을 통한 도도새 부활(!)이나 네안데르탈인과의 공존, 시간여행 등의 전통적인 SF적 소도구들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에 이쪽은 SF팬들이 읽기에 쏠쏠한 재미가 훨씬 더 많습니다.

   

리처드 1세가 샬뤼 포위전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안정적인 국정을 펼친다는 역사적 분기점에서 출발한 이 시리즈는, 그러나 결국은 역시나 이른바 ‘과학적 마법’이 작동하는 평행 세계의 성격이 강하며, 역사적 분기점은 시리즈 각 작품마다 주된 악의 축이 영불 제국에 대항하는 (러시아 서부를 병합한) 폴란드라는 국제 관계 설정 외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과학적 마법’의 경우 앞서의 ‘비이성의 시대’나 ‘서즈데이 넥스트’ 시리즈 등에 비해 보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여타의 SF에서 편리한 대로 만들어 쓰는 유사과학적인 용어들과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겉보기에 마법 체계로 설정해놓아서 그렇지요), 추리소설의 플롯과 긴밀하게 얽혀 돌아가는 부분에서의 재미는 근사합니다.

‘안티 아이스’라는 가상의 신물질을 19세기 후반 유럽 사회에 올려 놓은 것이 역사적인 분기점인 작품입니다. ‘안티 아이스’는 쉽게 간파할 수 있듯이 원자핵 기술의 스팀펑크적 번안이며, 이 작품은 결국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정세에 현실 세계의 핵 기술과 미-소 냉전 체계를 얹어본 알레고리에 불과하며, 그렇기 때문에 결말에서의 반전과 비전과 반성 역시 다소 도식적이고 평면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형태의 스팀펑크의 풍경이 나타난 몇 안 되는 작품이라는 의의를 굳이 상기하더라도 말이죠.

대체 대체역사인지 평행우주인지 알 수 없이 아리송했던 작품들을 지겹게 견디고 나니 간신히 다시 제대로 된 대체역사물이 얼굴을 내밉니다. ‘만약 로마제국을 재건하려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시도가 국력을 소진시키지 않았다면? 비잔틴 제국이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교도들을 막아내고, 훗날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비잔틴 제국에게 치명타를 가한 이슬람교가 처음부터 아예 생겨나지 않았다면? (13~14쪽, 아이작 아시모프의 추천사 中)’이라는 분기점에서 갈라져나간 세계에서 망원경과 종두법, 화약과 인쇄술, 증류주 등이 발견되는 과정은 지금까지 나열한 대체역사물들을 한순간에 모두 지루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발명품들이 또다른 우주에서 또다른 방법으로 재발명되는 순간 느껴지는 재미와 감동은 SF만이 줄 수 있는 쾌감의 정수에 맞닿아 있습니다. 분기된 시간선 위에서 비잔틴 ‘제국’이 국제적 패권을 지키기 위해 외부의 혁신적인 기술을 강탈하는 것을 주인공의 영웅적인 위업으로 포장하는 부분은 비판적인 독서가 필요하겠지만요.

2차 대전의 승패가 달라졌다면? 이라는 가정은 아마도 통속적인 대체역사물들에서 가장 많이 쓰인 역사적 분기점일 텐데(심지어 일본과 한국에도 매력적인 떡밥이니), 대부분의 경우에는 연합군 승리(특히 원자폭탄 사용)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프로파간다적 오락물로 소비되었다면 이 작품은 추리소설(그중에서도 형사물)의 틀 안에서 승전 후 독일 사회 내부의 우울하고 답답한 풍경들을 진지하고 치밀하게 그려낸 솜씨가 일품입니다. SF로서의 소도구나 잔재미가 거의 없다시피 하며, 대체된 역사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주된 플롯이라는 점 등에서 {비명을 찾아서}와 비교해 부분들이 많기도 합니다.

 

대체역사물에서 존재해서는 안 되었던 사파 중의 사파, SF는 물론이거니와 판타지로서도 가서는 안 되었던 영역에 감히 발을 들여놓은 사악하고 불경한 소설입니다.

흑사병이 중세 유럽을 궤멸시킨 것이 아니라 전멸시켰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이 분기점 이후 동양 주도의 대체역사를 따라가기 위해 최악의 선택을 합니다. 바로 주요 등장인물들을 하나의 원형으로 고정한 다음 환생이라는 터무니없는 장치를 동원해서 동양에서 새로운 근대가 태동하고 마침내 발아하는 지점까지 작위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며 따라갑니다. 특히 각 장 말미에서 바르도 개념을 유용해서 앞 장의 내용을 평가하는 부분은 솔직히 오그라들지 않은 손으로 책장을 넘기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체역사물들에서 흔히 보기 힘든 분기점에서 출발해서 서구 SF에서 전통적으로 의례히 쩌리 취급 받아온 동양을 주무대로 동양의 전통적인 서사 양식까지 차용해 가며 거시와 미시를 통합한 끝에 동양 주도의 과학과 사회 발전의 비전을 형상화해낸 부분은 폄하할 수 없습니다.

 

휴고, 네뷸러, 로커스 등 각종 SF 상을 휩쓴 소설이지만 SF적 재미는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손톱 밑의 때 정도는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2차 대전 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알래스카에 정착하게 되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추리소설ㅡ그 중에서도 하드보일드 형사물의 틀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캐릭터 설정이나 심리, 대사나 표현에서 주류 문학적인 접근이 보입니다만 사실 그 정도는 레이먼드 챈들러 등 멋부린 하드보일드 수작들에서 보였던 부분이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구세주-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저 유명한 ‘대심문관’ 부분의 변주라 할 수 있는 전체 주제는 건성으로 날려쓴 음모론 소설 같은 결말 때문에 그 무게감이 많이 깎여나간 느낌입니다. 추리소설로는 꽤 읽을 만한 작품이지만 대체역사물이나 SF로는 별로 재미 없습니다.

{파반}은 여러 모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국내외 대체역사물들은 대개

1) 역사적 분기점에서 현재와는 다른 과학 기술과 사회 발달을 다루는, 보다 SF의 전통적인 틀에 충실한 쪽({안티 아이스}, {비잔티움의 첩자}, {쌀과 소금의 시대})과,

2) 일종의 평행 우주처럼 현실의 물리 법칙과 다른 법칙이 존재하는 세계를 설정함으로써 판타지적인 성격이 더 강한 쪽(‘비이성의 시대’ 시리즈와 ‘서즈데이 넥스트’ 시리즈, ‘다아시 경’ 시리즈 등),

3) 그리고 SF나 판타지적 재미보다 정치사회적 관심이 더 두드러지는 쪽({비명을 찾아서}, {당신들의 조국}, {유대인 경찰연합} 등)

의 세 가지 유형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을 듯 한데({높은 성의 사나이}는 과연 어디에 넣어야 할까요? 굳이 분류하자면 세 번째에 가깝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그냥 ‘필립 K. 딕 SF’라는 SF의 한 하위 장르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파반}은 세 가지 유형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588년, 엘리자베스 1세가 암살되고, 영국 해군이 스페인 무적함대에 패하고 로마 교황청이 유럽 전역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확립한 {파반}의 20세기 영국은 카톨릭의 과학 기술 탄압으로 증기 트럭들이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길들을 질주하며 물자를 나르고 나비처럼 돛을 단 소형차들이나 일종의 봉화대와 비슷한 원거리 통신 시스템이 존재하는 사이로 고대 영국의 다신교적 신앙과 마법이 환상처럼 남아 있고, 교황청의 지배와 착취에 대해 왕과 귀족, 백성들의 불만이 점점 쌓여 있는, 낯설면서도 어딘가 친숙한 곳입니다.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느낌적 느낌의 번역이지만 문장은 날카롭고 예리하며 어딘가 시적인 품격마저 감돌고, 인물들의 심리는 세밀하고 사실적이며, 각 장의 사건들은 독자들이 절로 빨려들어 공감하게 만드는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각 장은 자체적으로 하나의 단편처럼 완결성이 있어 전체적으로는 연작 단편의 구성을 띄는데, 서로 독립적으로 보였던 앞선 장들의 내용이 최종장에서 하나로 합쳐질 때, 그동안의 수많은 개개인들의 희노애락이 로마에 대한 정치적 저항으로 터져나오는 장면에서의 짜릿함은 지금까지 언급한 다른 작품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재미입니다. 대체역사물을 통해서 ‘역사’ 자체가 소설적으로 현현하는 것을 목도하게 한달까요. 뉴웨이브의 영향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독특한 대체역사 SF입니다.

그밖에…

대체역사물과 스팀펑크는 엄밀하게는 다른 개념입니다만(그리고 이번 호 다른 특집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국내에선 스팀펑크이 굉장히 뒤틀린 형태로 소개되어 있지만), 역사적 분기라는 것이 결국은 일종의 평행우주 개념을 동반하고, 현실의 리얼리티가 해체되면서 과학 기술 대신 마법 등의 대체적 기술 체계가 도입되는 것이 대체역사물의 큰 흐름 중 하나임이 분명하니 말이 나온 김에 국내에 소개된 스팀펑크도 잠깐 훑어 볼까요.

      

팀 파워스는 혼자 좋아하기도 아깝고 여럿이 같이 좋아하기도 아까운 애매모호하고 이상야릇한 작가입니다. 작풍도 애매모호하고 이상야릇해서, 피터 와츠나 그렉 이건 급은 아니더라도 필립 K. 딕이나 이언 M. 뱅크스 정도의 진입 장벽이 굳건하고, 어떻게 이 열악한 SF 시장에서 네 작품이나 번역 출간되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입니다.(‘랜덤팬덤 스토리’야 어떤 면에서는 팀 파워스를 위한 자폭 프로젝트였다고 해도 될 정도이고, ‘샘터’ 출판사야 영화화에 편승해서 끼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언 M. 뱅크스나 댄 시먼스, 심지어 팀 파워스 같은, 안 팔릴 게 뻔한 작가들을 내준 ‘열린책들’ 출판사는 그야말로 SF 계의 숨은 보살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로 19세기를 배경으로 하는(스팀펑크!) 팀 파워스의 작품들은 역사적 분기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평행우주라기엔 현실 세계의 역사선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이면에 과학을 방불케 하는 논리적인 체계를 갖춘 마법을 교묘하게 섞어넣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견인 도시’ 연대기가 훨씬 더 유명하고 대중적인 ‘스팀 펑크’ 이미지도 뚜렷하지만, 그쪽은 대체역사와 연관해서 이야기하기는 아무래도 좀 더 적절하지가 않고(그런데, 포스트아포칼립스물들 중에서 지난 역사(주로 중세)를 변형 반복하는 것도 어쩌면 대체역사와 꽤 연결점이 많아 보입니다), 영국이 지구상 뿐 아니라 (에테르로 가득 찬)우주까지도 식민화한 19세기 중엽을 배경으로 한 {라크라이트}는 환상성이 너무 강한 측면도 있지만, 아동/청소년물로 보이는 외양에 비해 SF 독자들이 즐기기 충분한 재미들이 (‘견인 도시’ 연대기 보다 훨씬 더 많이) 가득합니다.

그밖에… (2)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장편들이었습니다만, 단편 SF들 중에서도 대체역사에 속하는 작품들이 좀 있죠. 예를 들어,

 에 수록된 시릴 M. 콘블러스의 [두 운명]은 2차 대전의 승패를 소재로 한 가장 전형적인 대체역사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에 수록된 스프레이그 드 캠프의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난 사나이]는 대체역사보다는 시간여행의 하위 갈래로 역사개변물이 더 적절한 분류이겠지만, 역사 개변의 결과로 결말에 제시되는 세계는 충분히 역사가 대체된 세계입니다.

그밖에… (3)

역사개변물이라는 하위 갈래가 과연 설정 가능할까요? 해외에서도 폴 앤더슨의 ‘타임 패트롤’ 등을 생각해보면 단순히 소극적으로 대체된 역사 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외에 보다 적극적으로 역사를 대체해나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볼 수 있을 듯 한데(사실 그런 점에서 시간여행물을 경유해서 대체역사물과 SF 사이의 연결선을 하나 더 그어볼 수 있을 겁니다. 근본적으로는 외삽법을 기반으로 현재를 출발점으로 미래 방향으로 선을 그어 사변하는 것이 대부분의 주류 SF라는 점에서 과거를 출발점으로 현재와는 또다른 방향으로 현재(혹은 현재에 가까운 과거)까지 선을 그어 사변하는 대체역사는 당연히 당당하게 SF의 중요한 한 하위 갈래입니다만), 특히나 시선을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 돌리면 이건 당연하고 당연하고 당연한 명제가 됩니다. 물론 이들을 SF로 봐야 하느냐는 좀 고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만… 본 특집 기사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대체역사/가상소설’로 분류한 한국의 대체역사(혹은 역사개변 혹은 음모론 혹은 우익 민족주의 마스터베이션) 소설들의 면면을 일견하는 것으로 끝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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