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이렇습니다. {우주의 개척자}를 읽으면서 북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이야말로 근대 SF 장르의 가장 뿌리가 되는 체험이지 않았는가, 하는 사실을 새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는데, 마침 그 다음으로 집어든 책이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이지 뭡니까. 그 직전에 읽었던 {신 엔진}과 마찬가지로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범선 시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작품을 연달아 읽으니 자연스럽게 SF에 대한 해양모험물의 영향, 혹은 SF의 근본 동력으로서 우주에 대한 바다의 은유를 훑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alt. SF의 특집은 날림에 즉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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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탐험 : 대항해 시대

우주가 바다라면 행성은 섬 혹은 대륙입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접촉’은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과의 첫 만남을 SF로 치환한 거라고 할 수 있겠군요. 특히 {스패로우}에서 산도즈 신부 일행이 루나들과 처음 만나는 장면은 딱 영화 “1492 Conquest of Paradise” 속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렇다면, 어슐러 K. 르귄의 [세상의 생일]은 콜럼버스의 카리브 제도 상륙을 원주민 입장에서 바라본 SF입니다.

물론, 宇宙船이나 spaceship이라는 단어 자체부터 배의 치환물로서 우주선은 SF내외적으로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서는 바다 : 배 = 우주 : 우주선의 도식이 내용 전반에 깊이 반영된 작품들을 꼽아보겠습니다. {스페이스 비글}은 말 그대로 비글 호의 항해를 SF로 치환한 작품이고, {타이거! 타이거!}는 작품 자체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SF 버전이긴 하지만, 초반 난파와 자력 탈출 장면은 특기할 만한데다가 야만인들의 소행성도 서구인의 눈에 비친 태평양 제도의 풍경의 SF 버전으로 눈여겨 볼만한 대목입니다. 난파와 구조라면 이언 M. 뱅크스의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도 생각나는데, 그러고보니 바바치 궤도식민지에서 푸아-송의 섬도 딱 서구적 편견 속의 남태평양 식인종 섬이 모델이군요.

론 허버드교주님{투 더 스타}는 상대성 이론의 시간 압축 효과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지상의 시간으로부터 영원히 추방된 저주받은 선원들의 운명을 그렸는데, 초공간이나 워프, 초광속 같은 꼼수 없이 가자면 교주님에 대한 선입견과는 달리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낭만적인 이미지 없이 땀내와 쉰내, 썩은내 제대로 진동하는 해양물과 비슷하달까요. 사실 우주의 광막함은 일개 행성의 표면을 좀 덮고 있는 바다와는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범선과 초광속 우주선의 성능 차이로 얼추 축척이 맞아 떨어지긴 합니다. 아서 C. 클라크의 {머나먼 지구의 노래} 역시나 그런 점에서 우주의 광막한 공간감과 거리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고, 제프리 A. 랜디스의 [도라도에서]는 웜홀 항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공간적 거리감보다 시간적 거리감이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어느 쪽이든 배와 항구, 떠나는 남자와 기다리는 여자, 그리고 둘 사이의 광막한 바다라는 원형적인 이미지가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도라도에서]의 중심 사건이 시간 속의 난파라는 점에 착안하면 앞서 {타이거! 타이거!}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바다의 은유로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군의 한 축에는 표류와 조난, 난파 항목도 설정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꼽히는 건 아무래도 (추억의) 해리 해리슨의 {우주선 닥터}겠죠. (아동용 중역판으로 밖엔 접할 수 없었지만) 조난과 선상 반란이 재미있게 뒤섞인 장편이었고, 배리 B. 롱이어의 [적과 나]는 짧은 중편임에도 {로빈슨 크루소}가 떠오를 정도로 제대로 난파 이후 무인도에서의 생존과 구출을 SF의 세계 속에서 잘 그려냈습니다(그럼 제리는 프라이데이?). 단편에서도 [소용돌이II]라든가 [중성자 조류] 등을 통해 난파와 표류의 SF 버전을 잘 그려냈습니다만,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역시 이쪽으로도 난파, 표류, 선상반란이 SF만의 틀 안에서 제대로 담아낸 작품이고… 생각해보니까 {라마와의 랑데부}는 유령선 탐사 이야기로 볼 수 있겠고, {유년기의 끝}에는 밀항 이야기가 들어 있었네요? (유령선 이야기가 나오니 조지 R. R. 마틴의 [나이트플라이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저 유명한 [샌드킹]도 성간 무역 과정에서 한 우주 항구에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겠고… 외계의 애완동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브루스 스털링의 [스파이더 로즈]도 훌륭한(?) 우주조난담으로 거론할 만 합니다) 제목부터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출항과 귀항 사이에 신화적인 이미지를 계속 끼워넣지만 본질적으로는 우주 탐사물의 걸작이라 하겠고,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수작 우주 탐사물로 {블라인드사이트}를 세우며 첫 장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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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척 : 어둠의 핵심

탐험가들 뒤에는 개척자들이 따라갑니다… SF의 가장 원초적이고 핵심적인 감성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도 결국은 서구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상업문학적 반영에 불과했던 걸까요? 대부분의 외계 개척물들은 결국 미국의 서부 개척물의 그림자를 지우기 힘듭니다. 타자로서 외계인은 이제는 진부한 해석이지만 그렇다고 유통 기간이 지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고요.

외계 식민지들이 이미 개척된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무수히 많지만 막상 외계 식민지 개척 자체를 다룬 작품은 국내에 많이 소개된 편이 아닙니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우주의 개척자}{하늘의 터널} 등을 제일 먼저 꼽을 수 있겠는데, 이쪽은 확실히 미국 서부 개척의 SF 버전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동시에 서부 개척 역사를 옹호합니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은 개척 과정 자체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개척지의 독립 문제를 통해 미국 서부 개척 및 독립을 긍정하고요.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는 조금 애매한데, [2001년 12월 녹색 아침] 에피소드는 본문 안에서 직접적으로 실존 인물 조니 애플시드를 거론하며 그의 행적을 화성에서 SF적으로 재현하는 부분 등에서는 개척정신에 대해 우호적인 듯한 태도도 엿보입니다만, 전반적으로는 멀쩡하게 잘 살고 있던 화성인들의 문명을 밀어내고 지구의(특히 미국의) 천박하고 역겨운 현대 문명을 그대로 옮겨놓는 모습을 혐오와 풍자의 시선으로그려내는 모습은 로버트 A. 하인라인 등의 순진무구한 보이스카우트 판타지에 대한 반론의 시작이며, 정치적으로 보다 예민한 필립 K. 딕이나 어슐러 K. 르귄의 경우에는 비판적 시선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화성의 타임슬립}이나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등에 나타난 화성의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권태로운 풍경과 개척민들의 일그러진 내면은 단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및 ‘개척’ 과정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서구 문명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읽힙니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역시 외계 식민지 개척을 통해 자본주의의 탐욕과 남성주의의 폭력성을 예리하게 고찰하고 있고요. 같은 맥락에서 필립 호세 파머의 {연인들}의 결말 역시 식민주의 혹은 제국주의에 내재된 남성주의에 대한 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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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쟁 : 우주의 전열함들

해양물의 영향이 가장 노골적인 것은 아무래도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오브리-머투린’ 시리즈(마스터 앤드 커맨더)나 C. S. 포레스터의 ‘프랑스어오는혼블로워’ 시리즈의 SF 버전이라 할 밀리터리 계열의 스페이스오페라 쪽일 것입니다. 이들은 대개 18C 유럽의 선박 등급 구분부터 시작해서 전술과 전략, 선내 계급과 선내외의 각종 관습까지 거의 그대로 SF에 옮겨놓습니다.

그러니까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에서 해군과 정부와 의회 사이의 알력이나 아너와 맥키언 사이의 갈등과 화해, {신 엔진}에서 함장 에안 테페와 일등항해사 닐 폰 사이의 협조와 신뢰, 우정, {스타십트루퍼스}에서의 해군과 해병대강화보병 사이 알력,스티븐 벡스터의 [오리온 전선]에서 소년 수부 케이스가 난파와 모험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 등등은 모두 해양모험물의 클리셰들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은하영웅전설}도 언급은 해야하겠는데, 앞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차라리 언급 안하는 게 예의일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선상 생활이나 전투의 설정과 서술 모두 처참하게 조잡하고 유치합니다. (18C 전열함부터 20C 항공모함까지 뒤죽박죽으로 섞어만든ㅡ진형을 짜고 포격전을 벌이다가 난데없이 함재기들을 뿌려대는ㅡ{은하영웅전설}의 우주 전함들은 어쩌면 태평양 전쟁 때 구일본 해군의 마개조 전함들의 충실한 반영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은 {바실리스크 스테이션}, 본 특집 기사를 ‘아너 해링턴’ 시리즈에 바칩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1권 끝나고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출판사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독자가 죽을 이름이여! 해양 모험물의 기본 설정들을 최대한 충실히, 적절하게 SF로 바꿔냈습니다. 해류에 따른 조함과 기동, 선측 포대에 심지어 돛까지도 SF의 틀 안에서 고스란히 살려낸 집념은 감탄스러울 정도이며, 덕분에 제대로 된 모던 스페이스오페라를 읽는 재미에 제대로 된 해양모험물을 읽는 재미까지 제대로 더해져 정말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은 SF로서의 재미보다 해양물로서의 재미가 더 앞서는 것 같습니다만, 어느 쪽이든 재밌는 건 사실이니 꼬치꼬치 따지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그밖에는, 아서 C. 클라크의 단편 [숨바꼭질]은 하드 SF의 관점에서 우주 전쟁ㅡ특히 전투 우주선의 운용이 관성과 작용-반작용 등 물리 법칙 속에서 실제로는 어떠할지 아이러니와 함께 고찰한 재미있는 작품이고, {휴먼 디비전}에서 ‘B팀’과, 특히 이어지는 ‘클라크 호 이야기’는 해양물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은 에피소드이며, {바벨-17}의 우주 항구 풍경과 랭보 호의 선원 모집과 항해, 제벨 타리크 호의<정신병원>작전 등은 지금까지 거론한 작품들 중에서도 정말로 이채롭습니다. 스페이스오페라에ㅡ혹은 SF 전반에 걸쳐 뉴웨이브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랄까요. 그에 반해 이언 M. 뱅크스의 {대수학자}에 나오는 함대 교전은 하드 SF적인 상상력이 스페이스오페라의 외피를 취했을 때 가능한 아름다움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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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록 : 삼 면이 바다

그렇다면 한국의 SF들은 어떨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허경순 씨의 [고래의 꿈], 혹은 배명훈 씨의 [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입니다. 원양한국. 이건 SF의 새로운 하위 분야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과연 한국인들은 우주에 나가서도 행성 가지고 부동산 투기를 하고 외계 생물을 만나도 잡아서 회 쳐먹을 생각이나 하는 무시무시한 종족이란 말입니까.

지난 20년간 제대로 된 SF를 가장 많이 내놓은 듀나의 단편 목록을 뒤져보면 [집행자][그 크고 검은 눈]에서 우주 항해와 행성 개척을 살짝살짝 다루고, [허깨비 사냥], [렉스], [아이들은 모두 떠난다] 등에서 외계 행성에 정착한 지구인들을 다루고 있지만, 대개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의 후진성과 속물성에 대한 듀나의 젊은 염오가 표출되는 하나의 통로였을 뿐 앞서 살펴본, 하위 장르 자체의 쾌감과는 거리가 멉니다. (근래의 ‘링크 우주’ 시리즈는 성간 여행을 다루고는 있고, ‘밀항’ 모티프 역시 일부 나타나고는 있지만 항해로서의 우주 여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으니 여기서 언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향후 20년이 기대되는 김보영 씨는 어떨까요? ‘미래로 가는 사람들’ 연작은 탐험과 항해에 집중한 흥미로운 스페이스오페라입니다. 김보영 씨 특유의, 영적인 세계로 날아가 버리는 결말이라든가, [승]에서 뜬금없이 한글과 팔괘가 등장하는 국뽕스러운 부분이 조금 걸리지만 작가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넘어갈 만 합니다.

그밖에, 이재창 씨의 ‘지구환 연대기’ {기시감}이라든가 윤이형 씨의 [오보에가 있는 토요일], 하도하 씨의 [조타수 KK는 복귀하라], 정희자 씨의 [비눗방울], 이영도 씨의 [복수의 어머니에 관하여], 라퓨탄의 [우로보로스], 혹은 한국소설가협회에서 엮은 전설의 ‘우주항공 과학소설’ 네 권 등등도 있기는 하지만 이쪽은 그냥 넘어가는 게 예의겠지요.

어쩌면 김상훈 씨의 말대로 19C 전후 제국주의의 경험이란 SF 장르의 태동과 발달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90년대 중반 이후에나 해외 여행이 가능해진 촌스러운 한국인들에게서 아직 제대로 된 SF나 스페이스오페라가 나오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겠고요. 그렇지만 이건 실망하거나 절망하기만 할 일은 아닙니다. 과도기적인 부작용들이 아직 많지만 해외와의 교류가 더 활발해지고, 사회의 다문화가 더욱 진행된다면, 한 세기 내내 식민 지배와 냉전 최전선에 놓였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내일의 한국 SF가 이 분야에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기대하며 기다려볼 만한 일이 아닐까요? 물론 그때까지 한국 SF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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