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이 사람을 보라} 마이클 무어콕 지음, 최용준 옮김. 시공사

하드 SF를 사랑하면서 뉴웨이브 SF를 좋아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나와주는 대로 즐길 수 밖에요. 인터넷 서점 책 소개나 뒷표지 등에서 ‘시간여행+기독교+현대인의 심리’ 정도로 소개하고 있는데, 실제 소설에서는 순서대로 약합니다. 그러니까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딱 60년대에 좌절한 반사회적 대학생의 내면이며(시간 여행은 단지 양념일 뿐이고), 캐릭터 설정 상의 태생 및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그것은 구세주 콤플렉스로 집약됩니다. (혹시 {푸코의 진자}에서 까소봉의 대학생 시절 떠올리신 분?)

그러니까 전형적인, 시대의 산물로서의 걸작입니다. 40년 넘게 지난 시점에서, 지구 반대편의 유교 문화권에서 재미있게 읽히기에는 다소 무리다 싶고요.

그러나, 미국 근본주의 선교사들과 개발 독재의 영향 속에 뒤틀린 현대 한국 기독교의 드러난 추태에만 집중하며 눈쌀을 찌푸리거나, 삭막한 유물론을 바탕으로 오래된 유일신교의 발생과 전승 과정에서의 오류에만 주목하는 종교관에게는 젤라즈니의 말처럼 ‘죽은 개 다시 걷어차기’일 뿐이겠지만, 혼란스러운 삶과 세상 속에서 구원의 약속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본다면, 지금 여기에서도 무의미한 소설은 아닙니다. SF의 소도구들이 화려하게 쓰이진 않았지만(그래서 장르 SF로서의 재미는 별로이지만), 주제와 줄거리 전개를 위해 시간 여행은 필연적이었고, 시간 여행의 정보 역설이 가장 효과적이고 극단적으로 쓰인 예로서 두고두고 음미할 만 합니다.

 {세계의 배후자} 래리 니븐, 에드워드 M. 러너 공저, 고호관 옮김. 새파란상상

전편인 {세계 선단}은 읽을 만한 현대 스페이스오페라였는데, 이편부터는 결국 진부하고 늘어지기 시작하는군요. 제2의 랄마라마 시리즈가 되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중심 사건은 {세계 선단}에 이어서, 독립한 비야생 인간들과 퍼페티어 사이의 관계 정립인데, 분량의 상당 부분이 전편과 시간대가 겹쳐집니다. 지구의 아우스폴러라는 다른 시점에서 전편의 네서스의 행적을 다시 그리는데, 그럴 필요가 정말로 있었을까요? (원고료 말고?)

새로운ㅡ전편부터 언급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이번 편부터니까ㅡ외계 종족의 등장이나 두 건의 우주선 실종과 관련된 기초과학적/SF적 미스테리 등등에서 잔재미가 어느 정도 남아있기는 하지만 전편을 평이하게 느꼈던 독자들은 이번 편에서는 확실하게 실망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링월드}의 제대로 된 속편을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더 참고 견뎌야 하는 걸까요?

 {우주 상인} 프레드릭 폴, C. M 콘블루스 지음, 안태민 옮김. 불새

{양심의 문제}와 더불어, 20여 년 전부터 이름만 전해지던 걸작의 귀환입니다. (출판사는 이름을 불새보다는 네크로맨서로 하는 게 어땠을까 싶기도 하군요)

제목에서 짐작되던 우주적 규모의 은하간 무역 같은 건 없습니다. 결국은 금성 개발이 전부에요. ‘태양계 상인’이나 ‘내행성 상인’ 정도가 더 정직한 제목이었겠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긴 하죠.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는 {신딕}의 판박이입니다. 어쩐지 애송이 티가 가시지 않은 거대 조직 조직원인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모험에 휘말리고ㅡ거대 조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냉혹하고 불친절한 세상에 혈혈단신으로 떨어져서 이리저리 구르다ㅡ불쌍한 서브 여주를 만나서 탈출하고(그 와중에 불쌍한 서브 여주는 소모되고),  귀환한 다음에 결국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획득합니다.

뻔하다면 너무 뻔한 이야기인데, 그래도 우주 탐험과 개척이 들어가서인지, 아니면 작품 속 세계와 현재 우리 사회 사이의 간격 없음 때문인지, 어느 누구에게든 {신딕}보다는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독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일즈의 유혹}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김창규 옮김, 싸앗을 뿌리는 사람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버전의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랄까요, 독설과 잔머리, 임기응변으로 무장한 우리의 마일즈가 세타간다 호트 귀족 여성들의 미모 앞에서 순식간에 무장 해제 당하고 이반 급으로 추락하는 장면은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워낙에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시리즈지만, 이번 편의 “도둑맞은 편지”류의 추리물과 스페이스오페라의 재치있는 결합(좀더 세부적으로는 국제 정치와 외교, 첩보, 기사도적인 로맨스물의 잔재미들까지 깨알처럼 박혀 있습니다)에서 오는 긴장감과 재미는 ‘보르코시건’ 시리즈 안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데(솔직히 조그만 꼬맹이가 감히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 용병들을 상대로 무사히 뻥을 치고 다닌다는 뻥이나 과학 탐사대 출신 애엄마가 적진 한복판에 들어가 적장의 목을 따온다는과..관운장! 뻥들보다야 백 배 재밌습니다), 시리즈 전체의 분량이나 캐릭터들에게 가려져 별반 빛을 보지 못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니 슬프군요 (그나저나 요즘 ‘보르코시건’ 시리즈 나오는대로 전부 사서 읽고 계신 분 또 있나요?)…

 {남자의 나라 아토스}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최세진 옮김, 씨앗을 뿌리는 사람

…게다가 다음 편은 마일즈 없는 보르코시건 시리즈입니다. 이런 짓을 벌이면서 안 팔린다고 징징대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출판사 그러나 어쩌면, 게이 행성의 미남 의사 게이가 게이 행성을 구하기 위해 안 게이 우주 정거장에서 각종 짜릿한 고문과 눈물나는 고생과 씐나는 모험을 겪은 끝에 미녀 용병 언니의 도움으로 새로운 게이 입문자 초능력자와 함께 게이 행성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홍보하면 특정 팬층이 새롭게 생겨나고, 출판사는 호황을 누리며, 축적된 자본으로 국내 미번역 SF들이 잔뜩 출간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SF팬들이 팬덤에 잔뜩 유입되며, 이는 다시 출판사들의 더욱 더 큰 호황과 자본의 축적과 국내외 SF들의 출간과 새로운 SF 팬들의 팬덤 유입으로…

…죄송합니다. 이야기의 기본 줄거리는 이반(아니 여기의 그 이반 말고) 때부터 닳고 닳은, 바보의 모험담입니다.  낯선 곳에 간 바보가 바보이기 때문에 바보가 아닌 사람들의 바보 같지 않은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어 승리를 쟁취하는 이야기. 그러나 부졸드가 만들어낸 은하계는 마일즈 없이 둘러보아도 흥미로워서, 낡은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굴러갑니다. 마일즈의 종횡무진에 질린 ‘보르코시건’ 팬들에게 추천합니다. 그런 게 존재할 리가…

 {신 엔진}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폴라북스

현재 한국 SF 독서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 존 스칼지의 중편 소설입니다. 번역되기 전부터, 기존의 작품들ㅡ이라고 해봤자 오뉴월 엿가락처럼 쭉쭉 늘어지기 시작한 ‘노인의 전쟁’ 시리즈 외에는 {작은 친구들의 행성}과 [꿀꿀대는 소리 말고는 버릴 것이 없다] 말고는 없긴 하군요ㅡ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던 소설인데, 읽어보니 실제로 그렇습니다. 전매특허라 할 미국식 농담과 멜로드라마, 낙관과 냉소의 기묘한 배합은 찾아볼 길이 없고, 하드보일드를 연상시킬 정도로 메마르고 건조한 문장으로, 무겁고 옥죄는 분위기 속에서 진지하고 절망적인 비전을 향해 질주합니다.

그러니까, 늘어질 대로 늘어진 ‘노인의 전쟁’ 시리즈에서 느낄 수 없었던 활기와 속도감이 아찔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판타지스럽게 보이는 설정과 용어들이 수두룩하지만 그 밑의 구조ㅡ설정과 용어를 다루는 방식, 거기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SF의 것이 분명하고요. 작품 속 신들은 그저 아서 C. 클라크의 제3법칙의 한 예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단지 인류와 생리 구조가 다르고 능력이 뛰어날 뿐인, 그러나 결국에는 물리적이고 유한하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인 존재들에 불과한 듯 보입니다. 어쩌면 다신교의 신들이란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유일신의 미망에 사로잡힌 한 하위 신의 야심에 휘말려 얻어터지는 불쌍한 인류에 대한 바보 같은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그 비열하고 저열하고 병신 같은 질투심의 화신에게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는데, 그 신에게 관련된 용어들 때문에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특정 종교가 안 떠오를래야 안 떠오르기 힘들기는 하겠지마는, 그 특정 종교에 대해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본지가 보게도 그러나 그쪽은 좀 시시껄렁하게 느껴집니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 그보다는 인류가 가진 지식의 얕음과 그 얕은 지식에 기반한 좁은 시야에 대해 숙고하게 한달까요. 어쩌면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SF의 가장 깊은 핵심을 제대로 찌른 작품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물게 국내 출간 SF에 대한 서평 혹은 감상이 올라오는 몇몇 드문드문한 사이트와 블로그들을 보면 단기간에 많이 소개된 작가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지 얇은 분량에 대한 경제적 반감  때문인지 그다지 신통치 않은 반응들이 올라와 있는데요, 하지만 단언컨데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존 스칼지의 SF들 중에서도 가장 짜릿하고 강렬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애초에 핵심 아이디어 자체가 더 많은 분량, 더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을 버텨낼 성질의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존 스칼지는 이번 작품에서도 정말 얄미우리만치 영리하게 분량과 플롯, 캐릭터와 서술 등 작품 전체를 통제했습니다.)

 {세계의 파괴자} 래리 니븐, 에드워드 M. 러너 공저, 고호관 옮김, 새파란상상

아무런 기대감 없이 관성에 따라 읽기 시작했는데 전편에 비해 이번 편은 꽤나 읽을 만 합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외계 종족이 하나 추가되고, 전편에 등장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건 이번 편에서인 외계 종족이 하나 더 있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츤데레크진인이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퍼페티어와 뉴 테라의 인간들, 아웃사이더에 팩과 그워스가 가세하니 그야말로 근사한 진수성찬이 차려졌습니다. 아웃사이더는 처음에 분위기 잡으며 등장했던 것과는 달리 실속없는 허수아비 허깨비에 불과했지만 익스톨의 다운그레이드 같은 팩 종족이나, 메스칼린 인들의 직계 후손이라 할 그워스들은 각각 종족 자체도 개성적이고 매력적이지만, 아무리 봐도 병신 같은 퍼페티어들과 영원히 고통받을 뉴 테라의 지구인들의 사이에 넣어놓으니 각 종족마다의 생존을 위한 정탐과 견제의 정보전이 아주 볼만합니다. 복수의 외계 종족이 등장하는 우주 전쟁물로는 데이비드 브린의 {떠오르는 행성}이나 악명 높은 론 허버드의 {배틀필드 어스} 정도나 떠오르는데, {떠오르는 행성}도 단순하고 도식적인 선악 구도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이 작품에서는 가장 악에 가까운 팩 종족마저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충실히 주어져 있습니다. 발생과 문명화 시기가 서로 다르고 기술 수준도 서로 다르면서도 충분히 상쇄할 만한 장점들도 따로 갖춘 종족들 간의 입체적인 각축전이라니, 끌리지 않습니까? 이 한 권의 재미를 위해서 저 지리멸렬한 전편을 읽어야 한다는 점만이 최대의 단점입니다.

 {바실리스크 스테이션} 데이비드 웨버 지음, 김상훈 옮김, 폴라북스

2000년대 전후로 ‘정크 SF’에서 앞부분이 일부 번역 게재된 이래 근 10여 년 넘는 동안 단 한 순간도 잊혀지지 않고 스페이스오페라에 목마른 국내 독자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렸던 작품이 드디어 국내에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앞부분만 읽은 늙은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부풀려진 허명이 아니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만, 막상 실제로 읽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캐릭터는 선명하고 뚜렷하고 입체적이며, 조연들도 허투루 다뤄지지 않고 꼼꼼하게 살아나 있습니다. (그래서 결말의 처절한 전투씬에서는 감정이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양모험물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로망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SF에 충실하게 옮겨 놓은 세계 설정도 볼만하며, 설정된 세계 안에서 치밀하게 구성된 크고 작은 음모들과 계략들과 꼼수들을 통해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들의 속도감도 읽는 쾌감을 배가시킵니다. 특집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이 계열 SF(애초에 몇 없기는 하지만)들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 할 만 합니다.

 {우주의 개척자}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안태민 옮김, 불새

불새 출판사의 1기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이 열고 닫는군요. 1기 마지막 권에 이르러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번역자 안태민 씨의 레벨 업입니다. 동일 작가에 대해 동일 번역자가 작업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번 권에서는 하인라인 특유의 능글능글하면서도 힘차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제대로 살아나 괄목상대라는 오래된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입니다.

작품 자체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청소년 SF입니다. 더 이상 말이 必要韓紙?

지난 세기에 새로운 SF 독자층 창출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청소년 SF의 출간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이름이 천둥처럼 메아리치던 것도. 노골적으로 미국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사를 반영했는데, 실제 역사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 아무리 거부감을 끌어내보려 해도 도입부부터 보이스카웃과 메이플라워호를 소환해서는 마구 휘둘러대는 하인라인의 필력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이 바닥에서 이십 여년 구르며 닳고 닳아버린 늙은 SF팬의 가슴도 별 수 없이 다시 두근거릴 수 밖에요.

달착륙 이전에 상상한 우주여행과 우주모험, 농부의 눈에서 본 테라포밍(가장 하드한 농촌 SF입니다), 외계(태양계 안이지만)에서의 천문 풍경과 지질 현상, 외계 행성의 탐험과 모험, 그리고 사멸한 외계 문명과의 접촉까지, 황금기 SF가 보여줄 수 있는 고전적 재미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 SF와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 기억 나십니까?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여기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malhal {말할 수 없는 침묵할 수 없는} 박성환 지음, 개인 출판

박성환 씨의 신작 SF 단편집입니다. 개인 출판으로라도 나온 게 어디냐 싶기도 하고, 개인 출판으로 밖엔 나올 수 없었나 싶기도 하군요.

수록작들은 대개 거칠거칠한데, 의도적인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조급했거나 역량이 딸렸거나 무성의했던 결과는 아니었는지 판단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장르 소설, 특히 SF의 경우 일반적인 열린 결말마저도 무성의의 의혹을 벗기 힘들 정도로, 확실한 끝맺음이 미덕이 아니라 일종의 의무인 것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듭니다.

처음 세 편ㅡ[오즈의 신문기자], [성스러운 생태계], [사악한 침입]까지는 그나마 그럭저럭 끝을 맺었다고 할 수 있는데, [분열의 종소리]와 [메이드 인 헤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씨]에 이르면 작품 초입에 던진 문제 상황에 대해 아무런 해답도 내놓지 않고 대신 진부한 가설들만 수없이 뿌려 독자의 시선을 현혹할 뿐입니다. 이건 분명히 기형적이고, 여러 모로 예술을 빙자한 사기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SF로 예술질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하죠) [분열의 종소리]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씨] 등은 인간의 자아를 아주 단순하고 도식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 앱에  비유한 것이나 [메이드 인 헤븐], [몽유도원]에서 천문학 혹은 물리학적 디테일이 떨어지는 것도 중대한 결함이고요.

이러저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혹은 그러한 단점들을 감수한 끝에) 아이디어들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면에서 각각의 작품들은 하드 SF의 스타일에 상당히 근접했습니다. 해외의 최근 SF들이 더 번역되거나 듀나의 새로운 신작들이 나오기 전까지 기다리는 동안 참고 읽을 만한 대용품정도는 되어줄 수 있을 듯 합니다.

WEB

  [저 이승의 선지자] 김보영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12월, 1월호

김보영 씨의 신작은 작품 세계의 커다란 한 축인, 뉴에이지적 세계관 혹은 신비주의적 깨달음이 유달리 두드러집니다. 그러니까 서구 근대과학적 세계관은 단지 전체의 일부만을 본 것에 불과하며, 우주의 실상은 환원주의적 관점의 아득히 너머에 있으며, 물질과 정신의 경계는 없고,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영혼이 이어진 것이며, 그 점에서는 인간과 동물과 식물과 사물도 마찬가지로 구별이 없이 하나라고…

[다섯 번째 감각]도 그런 점에서는 현대 과학의 맹점을 공격해 초심리학을 옹호하는 면이 분명히 있으며, [우수한 유전자] 역시 마찬가지 혐의를 지우기 힘들어 보입니다. 그러나 김보영 씨가 여타의 싸구려 뉴에이지 작가들과 다른 점은 그럼에도 내적 논리가 견실하고 SF의 본연에 충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탄탄한 과학적 논리와 서술이 김보영 씨 특유의 영적인 비전과 뒤섞여 뭐라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결말에서 이승과 저승 사이, 저 이승과 이 저승 사이에서 존재와 삶의 참된 의미를 찾는 한 영혼의 목마른 독백은 다소 설익었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만, 김보영 씨의 팬들에게는 천형과 같은 현기증ㅡ다시 한 번, 영원히 고통 받을 한국의 SF팬들ㅡ을 어느 정도까지는 충분히 가라앉혀줄 만 합니다.

 [인조력시장만가(人造力市長輓歌)] 양원영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2월호

같은 작가의 전작 [아빠의 우주 여행]과 동일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액자식 구성을 이용해서 단편 안에 다시 네 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는 안드로이드들을 기계, 도구로만 바라보는 사회에서 안드로이드들이 인간과 맺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한 자리에 모인 여러 인물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주는 형식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하고 흥미로운 구조입니다만, 불행히도 진부한 주제와 소재를 구태의연하게 반복해서 읽는 재미가 기대만큼 크지 않습니다.

안드로이드가 가전 제품처럼(본문에서는 ‘1가구 1안드로이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전면적으로 보급된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가 지금의 현실 사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점ㅡ인조력시장 자체가 인력시장을 아무 생각 없이 안일하게 치환한 것에 불과해서 작중 세계의 현실적인 깊이가 많이 얇습니다ㅡ도 문제고요.

 [기억의 주인] 김몽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3월호

결말에 이르면 그냥 더미만 보내지? 왜 원본까지 보내서 썡쑈를 함?이란 질문이 허무하게 떠오를 뿐입니다. 필립 K. 딕의 전매특허 아이디어를 그래도 국내산으로 재미있게 변주했던 전작 [차이니즈 와이너리]를 배경만 바꿔서 재탕한 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그래도 사주는 ‘크로스로드’는 역시 SF계의 대인배 따지고 보면 ‘나는 이미 죽어있다’ 반전은 영화 “식스 센스” 전후로 국내에서도 이미 남용될 대로 남용된 소재라서 관련 작품 목록이라도 별도 관리해야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 김창규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4월호

현실과 가상의 문제, 혼란스러운 정체성, 결국 유아론으로 귀결되는 30년 전통의 필립 K. 딕 표 플롯에 자아의 전산화 같은 80년대 사이버펑크를 무성의하게 베낀 90년대 사이버펑크의 클리셰와 이제 슬슬 진부한 느낌이 드는 홀로그램 우주론과 시뮬레이션 우주론 같은 걸 끼얹은 작품입니다마는, 아, 그런데, 이 작품이야 말로 읽을 만하지 않습니까? 주관적으로 닫힌 세계에서 기억이 삭제된 등장인물들의 추론과 지적 고군분투는 이미 국내에서도 김보영 씨나 박성환 씨 등의 작품들에서 이미 다뤄진 적이 있었지만, 이번 작품은 짧은 분량 안에서 지금까지 김창규 씨가 보여줬던 단점들이 거의 모두 사라진 채 천의무봉의 솜씨로 펼쳐져 있어 아주 인상적입니다. 전반부에서 등장 인물들이 빠져 있었던 문제가 결국은 모든 것이 밝혀진 뒤 등장 인물들의 애초의 상황과 임무와도 긴밀하게 얽혀 있었고, 결말의 여운과도 효과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김창규 씨의 플롯 구성이나 문장력이 한 수준 높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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