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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대선 개입과 철도 민영화 및 총파업 등으로 지난 해에 이어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고 화끈한 연말을 맞이하고 계신 alt. SF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해에 이어 다시 한 번 크리스마스 (혹은 연말연시) 호외편입니다. 지난 호 편집 후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울하고 암울했던 사회적 풍경과는 다르게 SF 장르 안에서는 꽤나 훈훈한 한 해였습니다. SF 전문 영세출판사 ‘불새’의 좌충우돌과 폴라북스 ‘미래의 괴작문학’ 시리즈의 약진, 중국산중국 SF {삼채}의 가세와 돌아온 테드 창, ‘새파란상상’의 ‘레리 니븐 컬렉션’ 출범, ‘과학동아’의 국내 창작 SF 연재 등등 매 달마다 볼거리 읽을거리가 가득했었죠.

자, 그럼 alt. SF가 다시 한 번, 올해의 SF를 꼽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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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출간된 SF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분류 기준, 재출간 제외)

1월
{머신맨} 맥스 배리
{7인의 집행관} 김보영
{지구촌 헌법} 김찰스
{베타} 레이철 콘

2월
{신의 설계도를 훔친 남자} 스튜어트 클라크
{작은 친구들의 행성} 존 스칼지

3월
{연애소설 읽는 로봇} 김몽 외

4월
{플랫랜더} 레리 니븐
{바벨-17} 새뮤얼 딜레이니

5월
{헤일로: 프라이모디움} 그렉 베어
{좀비 제너레이션} 정명섭
{컴퓨터 커넥션} 앨프리드 베스터

6월
{타임십} 스티븐 백스터

7월
{퍼시픽 림} 알렉스 어빈
{명예의 조각들}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바라야 내전}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8월
{다이버전트} 베로니카 로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휴먼 디비전} 존 스칼지

9월
{달을 판 사나이} 로버트 A. 하인라인
{정거장} 클리퍼드 시맥
{빅 타임} 프리츠 라이버
{삼체} 류츠신
{파라한} 전명
{울} 휴 하위

10월
{분해되는 아이들} 닐 셔스터먼
{제3인류} 베르나르 베르베르
{멩스크} 그레이엄 맥닐

11월
{소행성 내려오던 밤} 최정암
{세계 선단} 레리 니븐, 에드워드 M. 러너
{이어 제로} 롭 리이드
{양심의 문제} 제임스 블리시
{신딕} C. M 콘블루스

12월
{열한시} 이상민
{디멘젼 머신} 오인석
{진쇠춤} 김상경
{고치 짓는 여인} 엄정진
{이 사람을 보라} 마이클 무어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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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시리즈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등은 재출간이므로 제외했습니다. 전자야 제외해도 별로 안 아깝지만 후자는 좀 아깝군요. 특히나 {스패로}는 안타깝고 애석합니다. 어쨌거나, 이 중에서 다섯 권만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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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양심의 문제}는 너무 늦게 출간된 작품입니다. 시간은 비정한 것이어서, 문체나 구성 면에서 최근 SF에 슬슬 익숙해진 팬들에게는 낡고 식상한 느낌을 주는 면들이 꽤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다르게 말하자면 SF의 핵심적인 부분이 담겨 있다는 말도 됩니다. 그리고 특정 종교나, 종교라는 특정 소재에 주목하지 않아도, 꽤 그럴듯하게 설정된 외계 행성과 생태계, 그럴싸하진 않지만 퇴폐적인 맛이 일품인 미래 지구를 구경하는 쏠쏠한 맛이나, 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 등은 이 작품이 충분히 시간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줍니다.

연속으로 같은 출판사의 책을 꼽자니 꺼림칙한 점이 없잖아 있어 꼼수로 공동 5위로 추가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다섯 편이 아니라 여섯 편을 꼽았습니다) {정거장}은 (어떤 면에서는 더) {양심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너무 늦게 도착한 고색창연한 작품입니다만, 최신 SF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전적인 우아함과 진솔한 감성이 다른 결점을 모두 상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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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4위에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와 {세계 선단}, {작은 친구들의 행성}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루한 장편을 재미없게 요약한 듯한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를 고른다면 아무래도 작품 자체보단 작가를 본 듯 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고, {세계 선단}은 뚜렷한 단점은 딱히 없지만 동시에 두드러진 장점도 없는 범생이 같은 작품입니다. {작은 친구들의 행성}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존 스칼지 특유의 지나친 미국 버터냄새입니다. 작품 중반까지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지만, 절정에서 결말로 이어지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는 독자의 정서적 카타르시스에만 집중한, 지나치게 (작위적으로까지) 극적이며 편의주의적이고, 미국 법정 드라마의 클리셰로 도배된 모습이 눈쌀을 찌푸리게 합니다.

그러나, SF의 뿌리에 (서구)문명에 대한 가장 거시적인 조망을 통한 반성과 성찰 같은 진지한 모습이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긴 하지만, 오늘날 SF라는 장르가 성립된  가장 커다란 발판은 (때로 유치하거나 저질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뻔뻔하게 뻔한 줄거리와 단순무식한 도식적인 구도로 빚어낸 오락성이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점잖은 척하다가 재미를 송두리째 휘발시킨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나 무난하고 평범한 재미만 담은 {세계 선단}을 내려놓고 {작은 친구들의 행성}을 꼽는 것이 제일 나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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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어느쪽을 2위로 올리고 어느쪽을 3위로 내릴까 오래도록 고심했습니다. H. G. 웰즈를 (그리고 스태플든-웰즈-클라크 계보를) 격하게 애정하고, 특히나 {타임머신}을 맹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사랑하는 본지의 취향에는 {타임십}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너무나도 좋았지만, 안정보단 급진을 추구하는 alt. SF의 정신을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고 3위로 내립니다. 그래서 2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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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작품 전체에 스페이스오페라의 외피를 뒤집어 씌운 것을 뉴웨이브 특유의 지나친 자의식과 기괴한 악취미에서 나온 위악적인 선택이었다고 넘어가주기에도, 유령 선원을 넣은 건 너무 구렸습니다만, 화려한 문장과 극단적으로 급진적인 설정을 결합시킨 결과 뉴웨이브 SF의 정수를 눈부시게 터뜨려버리며 SF의 핵심을 곧장 찔러버리는 절정과 결말을 생각하면 사소하고 미세한 옥의 티에 불과합니다. 그런 점에서 {바벨-17}은 (국내에 처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지 20여 년 만에 번역 출간되었지만) 아무리 늦었더라도 언제나 너무 일찍 도착한 SF가 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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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아뇨, 국산 보정 아닙니다. 진정하고 돌 내려놓으세요. 김보영 씨의 첫 장편 SF가 여타의 해외 SF 걸작들을 제치고 올해의 SF가 되어선 안된다고,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여러분이 자학적인 식민사관에 빠져서{7인의 집행관}을 읽은지 너무 오래 지나서일 것입니다. (연말 순위 놀이에서 연초에 나온 작품이 연말에 나온 작품보다 불리한 건 어느 바닥에서나 기본적으로 생기는 문제죠)

{7인의 집행관}은 집요하리만치 치밀하고 정교한 짜임새와 논리, 튼튼하고 안정적인, 때로 필요하면 충분히 화려하거나 잔인해질 수 있는 문장, 거시적인 스케일과 다양한 SF의 소도구들이 적절하게 잘 구사되고 조합된 일종의 SF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작품입니다. 특히나, 자기 희생을 통한 세계 치유-구원이라는 대주제는 성탄절에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을 한층 뜻깊게 해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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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년 크리스마스에 다시 뵙겠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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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5,

alt.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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