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필립 K. 딕 지음, 박중서 옮김. 폴라북스(현대문학)

재간이나 재번역은 안 다루는 편이지만 황금가지에서 나왔던 두 번째 판본도 본지 창간 이전이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에 길이 남을 ‘필립 K. 딕 걸작선’의 대미이니 잠깐 훑어봅시다.

기계 장치로 감정을 조절하고 기계를 통해서만 유대감을 확인하는 인간들과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안드로이드들의 뚜렷이 대비되는 구도 속에서 데카드의 상념과 내적 독백, 이지도어에 대한 제한된 전지적 시점 등을 통해서 이 작품에서도 필립 K. 딕의 여러 작품들({유빅}, {성스러운 침입},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 {화성의 타임슬립}, {높은 성의 사내}, {작년을 기다리며}… )을 관통하는 대주제가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기계화되어가는 인간, 죽음을 향해 엔트로피가 누적되어가는 세계, 낡고 누추해지며 리얼리티를 상실해가는 우주… 그 속에서 개인이 해야하는 도덕적인 선택 말입니다.

필립 K. 딕의 장편소설들은 크게 두 가지 결말로 나눌 수 있을 듯 합니다. (때때로 심술궂은 블랙코미디가 가미되는) 암울한 ‘반복'({유빅}, {죽음의 미로},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등)과 지쳤지만 평온한 ‘귀환'({높은 성의 사내}, {화성의 타임슬립}, {성스러운 침입}, {작년을 기다리며} 등). ‘반복’이 필립 K. 딕의 세계 인식을 보여준다면 ‘귀환’은 그러한 세계에 대한 대응과 그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일반적으로 ‘귀환’은 보수적이고 안이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필립 K. 딕의 SF들에서처럼, 육체적인 거부반응이 나올 정도로 처절한 악몽을 통과해서 다다를 경우에는 아닙니다.

같은 판본은 반복해서 읽은 적도 많지만 세 번째 판본으로 다시 읽어보니, 30쪽에서 데카드가 소나 말 같은 대형 ‘진짜’ 동물을 사기 위해 다섯 대의 안드로이드가 캘리포니아 북부로 오고, 자신의 선임인 데이브 홀든의 은퇴를 계산하는 장면은 이후 내용 전체를 데카드의 소망 충족 환상으로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롭습니다.

  

{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과 제국}, {제2파운데이션}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황금가지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이 아니라 지리멸렬해지는 이 시리즈를 한 번에 읽는 건(애초에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일종의 자기 학대일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나마 가장 멀쩡한 부분을 먼저 읽는 기쁨과 함께 첫 세 권, 오리지널 3부작을 살펴보겠습니다.

‘파운데이션’ 시리즈에서 (폴 크루그먼까지 갖다 붙이며) 그렇게까지 광고해대는 ‘심리역사학’은 현대의 과학 상식으로는 넌센스일 뿐이고, 심지어 소설 안에서 소재로서의 생명력도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해리 셀던의 감춰진 의도와 파운데이션의 위기와 극복, 발전이 만들어내는 극적 긴장감은 1권에서 모두 소진되고 2권에서는 뜬금없이 다 망했다던 제국이 다시 끌려나와 악역으로 재활용됩니다. 그리고 제국으로도 수습이 안 되어 생명 연장의 꿈메치니코프을 위해 최대의 악당 ‘뮬’이 투입되죠. (그리고 시리즈는 심리역사학을 떠나 제2파운데이션 찾기 수수께끼에 몰입합니다.)

어쩌면 애초에 아이작 아시모프에게 은하계 인류의 거시적인 역사를 다룰 능력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미국에 귀화한 러시아계 유태인이라고 해도, 작품들 전편에 걸쳐 백인 남성의 편견과 한계를 고스란히 보이는 아이작 아시모프에게 ‘역사’란 ‘서양사’일 뿐이고, 서양사의 몇 장면을 역사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원리인 것처럼 써먹은 다음에는 할 말이 없는 게 당연합니다.

어쨌건 간에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년대 SF임을 감안하고(끊임 없이 울려퍼지는 마법의 단어 ‘원자력’!메칸더 V) 읽으면 3권까지는 그럭저럭 읽을 만 합니다. 출판사와 작가의 물욕이 짝짜꿍되어 시리즈를 추락시킨 4권 이후는 다음 기회에 다시 봅시다

 래리 니븐, 에드워드 M. 러너 공저, 고호관 옮김, 새파란상상

‘새파란 상상’의 ‘래리 니븐 컬렉션’은 컬렉션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라는 것이 중평이어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표지를 펼칠 때 긴장했던 것이 사실인데(심지어는  유명한 걸작의 유명세를 빌린 공저 후속편이라는 점에서 저 악명 높은 ‘랄마라마’ 시리즈를 떠올릴 지경이었습니다), 막상 읽어보니 의외로 멀쩡한데다가 꽤 괜찮아서, ‘인상 잔뜩 쓰고 먹었는데 사약이 아니라 쌍화차였네?’였달까요.

소설은 링월드하고는 별로 상관 없이(곁다리로 아주 살짝, ‘어떻게 지구에서 추첨 출산제가 시행되게 되었는가그리고 그 배후에서 어떤 분이 어떻게 직접 손수 활약하셨던가‘를 다루긴 합니다만), 퍼페티어들과 인류의 첫접촉과 그로부터 파생된, {링월드} 본편과는 (아직까지는) 그다지 상관 없어 보이는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내보입니다. {링월드}에서 상세히 다뤄지지 못했던 퍼페티어 사회ㅡ초식동물 특유의, 아무 때나 시도때도 없이 떨어지는 XX들을 초과학으로 산뜻하고 문명적으로 처리하는…  아니, 제가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거죠?ㅡ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보는 재미도 재미이지만, 통제됙 왜곡된 교육을 넘어서서 자신들의 진정한 근원에 대한 정보를 차곡차곡 모으고 해석해서 정체성을 회복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SF만이 줄 수 있는 감동 중 하나ㅡ냉혹한 우주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동원해 고군분투하는 인류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모습을 새삼스럽지만 새롭게 다시 확인하는 순간에서의 그 감동(물론 근본적으로는 다소 서구편향적이긴 합니다만)ㅡ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설정 및 소재와 관련된 과학적 디테일도 {링월드}의 명성을 흐릴 정도는 아닐 뿐더러 어떤 점에서는 잘 이었다고 할 정도로 괜찮은 수준입니다. 앞서 언급한 퍼페티어들의 세계와 생태(특히 번식과 관련된 부분은 잘 쓴 미스테리 소설을 연상시킬 정도로, 앞부분에서 슬쩍슬쩍 떡밥을 뿌리다 막판에 가서 메인 플롯에 제대로 엮어넣이며 굉장히 효과적으로 쓰였죠)에 대한 보다 밀착되고 세밀한 설정과 설명도 볼 만 하고,  GPC 우주선에 대한 설정과 주인공들이 그 비밀을 알아차리는 부분, 무엇보다 감춰진 정보(자신들의 기원을 담은)에 접근해가는 주인공들의 노력과 관련된 부분들이모두 그렇습니다.

일부 퍼페티어들의 작명 센스와 관련된 지나친 고대 그리스 애호증(그리스 신화의 고유명사들을 진부하게 오려붙인 SF/판타지들치고 제대로 된 것을 못 봤지만(물론 {내 이름은 콘라드}는 제외되지만, 이쪽은 애초에 영리하게도 등장인물들에게 희미한 그림자만 드리웠었죠))도, 모 대리석 조각이 직접 등장할 정도면 그럭저럭 관대하게 넘어가 줄 만 합니다. 불멸자-창조자-교사-억압자-허위의 퍼페티어와 유한자-피조물-학생-피억압자-무지의 인류, 그러니까 결국 부모와 자식인 두 종족의 관계에 대한 비유로 적절하게 사용된 편이라고 하겠고요.

요컨대 여러 모로 {링월드}의 명성과 아우라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선 이게 정말 대단한데 말이죠) 그와 무관하게  2000년대 이후 최신 스페이스오페라 그 자체로서도 읽을 만 한 작품입니다.

사족 : 네서스 ({링월드}의 그 네서스입니다)는 이 프리퀄을 통해 실로 우주적 안습이라 할 캐릭터로 등극했다고 하겠습니다. {세계 선단} 시절부터 어떻게든 솔로 부대를 탈출해 보려고 우주를 종횡하며 별별 짓을 다 했는데,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또다시 ‘링월드’까지 끌려갔었던 거란 말입니까!

 제임스 B. 블리시 지음, 안태민 옮김. 불새

[주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리폰 북스’ 뒷날개의 목록에 처음 올라온 이후 계속 제목만 전설처럼 떠다니더니 결국 근 20여 년 만에 출간되었는데,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이 작품에는 ‘명불허전’ 쪽이 더 합당해 보입니다.

그동안 카톨릭 계열 종교 SF의 고전으로 알려졌었는데, 그런 작품에 대해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면들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작품의 처음 1/3 정도, 네 명의 과학자(그 중 하나는 예수회 신부)로 이루어진 지구의 탐사대가 외계 행성 리티아를 탐사하고 떠나기 직전까지이며, 여기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카톨릭-기독교 계열 종교 SF들이 이미 많이 보여 주었던 지적인 자극과 감동이 잘 우러나고 있었는데, 리티아 행성에 대한 접근 제한 설정 여부와 관련된 보고서 제출 전의 회의에서 주인공 격인 신부가 (그 때까지 작가가 주도면밀하게 깔아놓은 레일 위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던)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그러나 생각해보면 카톨릭적인 관점에서 충분히 나올 만한) 주장을 내놓는 순간 작품의 분위기가 급전되며, 종교와 과학, 신앙과 이성이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때부터, 소설이 이상하게도 필립 K. 딕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없이도(풉!) 너무나도 훌륭히 이성적이고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외계인들로부터 떠나와 돌아온 지구는 핵전쟁에 대한 신경증이 극단까지 치달은 기묘한 세계입니다. 고매하신 것 같았던 신부님이나 균형감 있는 인문주의자 같던 미켈리스는 그들의 세계에 던져진 외계인 에그트베르치 때문에 한 순간에 부조리극-필립 K. 딕의 악몽 속에 던져지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거의 모든 인류가 지하 대피소로 파고든 지구에서 지나간 시대의 고층 빌딩에 자리잡은 미켈리스와 리우 메이드의 삶은 마치 J. G. 발라드의 소설을 연상시킬 정도로 초현실주의에 근접(달리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대형 살인 꿀벌떼들)하고, (이야기 전개상 필요한 부분이긴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분량을 할애했다는 느낌이 드는) 백작 부인의 지하 저택 파티 장면은 알프레드 베스터가 연상되는 떠들썩한 악취미로 가득합니다. 여러 모로 오래된, 낡은 SF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흥미로운 SF입니다.)

종교를 소재로 한 SF들은 대개 과학과 이성의 입장에서 종교의 독선을 철저히 비판하거나 해당 종교의 관점 안에서 과학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대부분인데 {양심의 문제}가 고전으로 이야기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편하고 쉬운 이분법을 택하지 않고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두 관점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잘 포착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형식적으로는 ‘나무와 뱀’이라는 강력한 상징을 절묘하게 재해석한 부분도 놓칠 수 없습니다만)

작품의 결말은 끊임없이 양심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정작 양심을 잃어버린 기성 종교를 은근히 비판하는 듯 합니다. 한 세계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엑소시즘 의식은 한없이 작고 어리석게 느껴지니까요. 생각해보면 리티아 행성의 멸망이나 (작은 규모로 선행된) 에그트베르치의 타락은 모두 인류의 어리석음과 탐욕의 결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작품이 비판적으로 검토한 대상은 종교가 아니라 결국 인간이었고,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다른 뛰어난 종교 SF들처럼) 단순히 카톨릭 SF 혹은 종교 SF의 범주 안에서만 읽히고 평가될 작품이 아닙니다.

 시릴 M. 콘블루스 지음, 안태민 옮김. 불새

과학 쪽으로는 아무 것도 없다시피하지만(심지어는 마녀와 마법이 종횡무진하기도 합니다), 사회 체제와 제도에 대한 사고 실험이라는 점(멀리 가자면 약방의 감초처럼 끌어다 쓰이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부터 SF의 유구한 전통이지요)에서는 충분히 흥미로운 SF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로버트 A. 하인라인보다 더 센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국식 자유주의를 노골적으로 찬양하고 설파하는데, ‘범죄 조직보다 더 깡패스러운 게 정부’라는 참신하고 가치전복적인 풍자가 이 작품이 프로파간다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줍니다.

다만 풍자만으로는 이야기가 넓어지거나 깊어질 수 없어서, 소설은 신딕 사회는 살짝 비춰만주고 곧장 구닥다리 정부와 전체주의 사회를 차례로 비추고 남녀 주인공을 이리저리 굴려대면서 간신히 이야기를 끌어나갑니다. 때문에 소설은 모험물(해양난파물)과 첩보물의 외피를 차례로 두릅니다. 그런 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좋은, 시간 때우기용 대중소설로 대할 수도 있겠지만, 배경에 깔린 미국식 자유주의의 명암을 생각하면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습니다.

MAGAZINE

 [초원의 시간] 배명훈 지음, 과학동아 2013년 11월호

‘제3세계에서의 전쟁에 개입한 국제 단체’는 배명훈 씨가 많이 써먹은 소재인데, SF의 오래된 소재인 ‘시간 여행’과 결합한 이번 작품은 참신하진 않지만(“엑설런트 어드벤처” 기억하십니까?), 흥미진진하게 읽히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단정한 SF 단편입니다.

아래 12월호를 마지막으로 ‘과학동아’에서 1년간 네 명의 작가의 SF 콩트 게재가 모두 끝났는데요, 배명훈 씨의 작품들은

3월호 [유물위성] 2점

7월호 [홈스테이] 0점

11월호 [초원의 시간] 3점

평균 1.7점입니다.

 [양자의 아이들] 김창규 지음, 과학동아 2013년 12월호

해외의 첨단 스페이스오페라적인 설정에 5년치를 몰아서 한꺼번에 본 것 같은 지난 1년간의 한국 정치(타임머신? 수학 천재 소년 같은 거 필요없습니다. 투표만 잘하면 70년대든 60년대든 Go! Go!)를 대입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1년 동안 애초에 극소수인 SF 독자들 중에서 몇 명이나 ‘과학동아’를 챙겨 읽었을지 모르겠는데, 김보영 씨의 [새벽 기차]가 실린 6월호와 이번 12월호만큼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대개 공공도서관마다 이번 달까지는 모두 비치하고 있을 테니 들러보세요. 두 번 보세요 앞으로 다른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될 가능성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김창규 씨의 세 작품은

4월호 [업데이트] 2점

8월호 [우리의 이름은 별보다 많다] 2점

12월호 [양자의 아이들] 3점

평균 2.3점입니다. 네 작가들 중 가장 높군요.

WEB

 [아직은 너의 시대가 아니다] 이덕래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11월호

“(…) 햇볕을 쬐며 바닥을 훑고 있다. 조용하고 낮은 저음으로 우우, 하면서 느릿하고 우아하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지만, 로봇 청소기와 스마트폰을 변기에 적용한(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가지 물건을 하나로 합치는 건 초현실주의 기법을 연상시키는군요) 화장실 개그물입니다.

주제면에서는, 해외의 초기 SF들에서 일부 보였던 ‘기술 발전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죽지도 않고 또 나온 격인데, 진부하고 지겹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세대간 기술 격차와 직장에서의 경쟁과 도태를 짚은 점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스티브 작스’ 같은 하나도 안 웃기고 유치하기만 한 작명 센스나, 애초에 변기가 집안을 굴러다니는 기괴한 풍경은 이 작품을 진지한 문명비판물과 가벼운 코믹물 어느 쪽에도 놓이지 못하고 ‘안 쓰이는 게 좋았을 글들의 지옥’으로 굴러떨어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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