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처음 이메일로 {빅 타임}의 권말 해설 청탁 겸, 출판사 창업을 알려주신 것(메일 확인이 너무 늦었고, 프리츠 라이버에 대해 해설을 쓸 만큼 아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도와드릴 수 없었지요.)이 지난 4월 19일이었습니다. 반가운 소식에 n4호 에디토리얼에서 살짝 언급했었지만, 이후 좀처럼 출범이나 출간 소식이 들리지 않아 궁금해 하던 차에 지난 9월에 드디어 SF 세 권을 내놓으며 여러모로 성대하게(?) 출판사 창업을 알리셨죠.

물론 순수한 호의로 연락 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만, 친목질 반대를 창간 의도 중 하나로 천명한 본지로서는 특정 출판사와 사전에 접촉이 있었음을 밝혀놓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이 자리를 통해 공개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겸사겸사, 이번에 출간된 세 권의 SF에 대한 간략한 감상은 리뷰란에 올렸지만 거기서 언급하기 힘든, 개별 작품의 테두리를 넘어 제책과 편집 등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기사 작성을 시작하기 하루 전에(alt. SF의 마감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 지 아시겠죠) 출판사 카페에 비슷한 내용의 글이 올라왔더군요. (관련 링크 : http://cafe.naver.com/firebirdsf/55) 멘붕 상태에서 n6호 업데이트가 며칠 더 늦춰지게 되었습니다만, 번역과 편집과 판형 외에도 드릴 말씀이ㅡ다른 독자들과 함께 생각할 점이 더 있지 않나 싶어 결코 다른 대안이 없어서는 아닙니다 기획을 계속 밀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좀더 폭을 좁혔으면 싶었던 A5 판형이나, 제본 여백, 지나친 원문 표기 등은 넘어가고, SF독자와 SF출판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죠.

전해듣기로는, 해외ㅡ라고 해도 미국이나 영국이 전부이지만요ㅡ에서도 출판사와 작가, 편집자, 독자 사이의 관계는 SF가 유난하다고 합니다만, 2000년대(정확히는 2003년 이후) 들어서 한국 SF계에서도 출판사와 독자 사이의 거리와 관계는 꽤나 미묘해져서,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하기로 90년대까지는 독자와 출판사 사이의 소통이 그리 활발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시공사에서 그리폰 북스를 담당했던 편집자가(소문에 따르면 사장-_-부터가 매니악했다고는 합니다만) SF 팬이었고, 당시의 컴퓨터 통신 동호회 등을 통해 독자들과 교류했다고 들었고, {타우제로}, {연인들} 등을 낸 (주)나경 문화에서 낸 “SF 매거진”에 박상준 씨나 김상훈 씨, 김창규 씨 등의 참여나 ‘하이텔 SF 동호회’ 탐방 기사 등의 수록이 출판사와 팬덤 사이의 교류 흔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2000년대(정확히는 2003년 이후) ‘행복한 책읽기’ 출판사가 SF 총서를 출간하기 시작한 이후 나타난 변화와는 질적으로 확연히 다릅니다.

(다른 출판사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하기에는 지면이 적절하지 않으니만큼 일반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 변화의 안 좋은 모습들은, 아마도 특정 출판사만의 문제 혹은 책임이 아니라,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생겨난 새로운 풍조, 흐름, 현상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 합니다. ‘행복한 책읽기’ 출판사 이후 SF 선집의 지속적인 출간을 표방한 거의 모든 출판사, 임프린트들이 저마다 네이버-_-에 카페를 개설했고, 그러면 어디선가 처음 보는 아이디의 가입자들이 몰려들었고, 처음 며칠 간은 훈훈하게 서로 정담을 나누다가…

출판사와 독자의 소통과 교류 자체는 활발하면 활발할 수록 좋은 것일 텐데, 출판사들이 네이버-_-카페를 개설하고 트위터를 시작해서 SF 팬들과 만나겠다고 하면 한숨부터 나오게 되는 것은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만연한 꼰대질과 오지랖의 장대한 역사에서 SF 팬덤도 결코 예외는 아니라는 점이 몇 번이나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외는 커녕 SF 독자들은 어디 조각배 하나라도 나타나면 모두들 삿대들고 기어올라타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오지라퍼 중의 오지라퍼들만 모아놓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지금 불새 카페나 기타 인터넷 공간에 올라온 의견들을 싸잡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말씀하셨지만, 이번에 출간된 세 권은 여러 모로 비판과 조언이 많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다만 앞으로의 일이 문제인데, 노파심일지언정 본지에서 걱정하는 것은, 어떠한 공간이 생기고 거기에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 공간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 혹은 목소리 내지 않고 공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신경쓰기 힘든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점입니다. 그건 출판사와 독자 사이의 친목질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나더라도 익숙해지면 쓴소리를 하기 힘든 것이 또한 인지상정이고, 가까이에서 달콤한 말들이 나오게 되면 그 너머의 다른 목소리를 듣기 힘든 것도 또 인지상정이니까요. 그러다 보면 소수의 추종자들에게 도취되어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게 되고…

지난 9월 10일에 주신 이메일을 보면 적어도 ‘불새’ 출판사는 카페 내외의 여러 목소리들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고 묵묵히, 말보다는 책으로 이야기하는 출판사, 목소리 큰 독자들 너머에도 조용히 책 사서 읽는 독자들도 많음을 잊지 않는 출판사가 되시리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출판사만 독자와의 적절한 거리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SF 독자들 또한 출판사와의 적절한 거리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어 주제 넘게 두서 없이 주절거려 봤습니다.

더 말실수가 늘고 실례가 많아지기 전에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리뷰란에서 개별 작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른 SF들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투덜거릴 건 투덜거리고 깔 건 까게 되겠습니다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항상 ‘불새’ 출판사의 지속 가능한 팬질건승을 기원하고 있으리라는 것,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하신 것과 지금 하고 계신 것, 앞으로 하실 모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13년 10월 11일,

alt. SF 편집인 올림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