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얼마 전 트위터에서 본 대화였습니다.

tweet그러고 보니 이번 호 뉴스란에 {다이버전트} 출간 소식은 끝에 달았지만 {헝거 게임} 3부작에 대해서는 본지에서 아예 언급도 안 했었던 것 같습니다. (찔려서 찾아보니 사실은 우리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아저씨에 대해서도…)

참회의 심정으로 {헝거 게임}과 {다이버전트}를 각 1권씩 읽고,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 있다는 디스토피아물들과 우리 노땅들이 좋아하는 올드 SF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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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팬의 눈에 비친 {헝거 게임}의 세계는 괴상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대전쟁 이후(포스트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를 조합해서 작가가 자기 내면의 기이한 부분을 기이하게 부풀린 작위적인 세계를 만들어 내는 건 두 작품이 공통적입니다) 분할된 여러 구역을 통치하는 중앙 정부는 과거 있었던 반란에 대한 처벌로 각 구역에서 소년 소녀 1쌍을 각각 차출해서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인조 경기장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경기를 벌이게 하고 이것을 전국적인 유흥거리로 만듭니다.

권말 해설 등에서는 일본의 소설/영화 “배틀로얄”을 언급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앞선 원조격인 리처드 바크만스티븐 킹의 두 SF로부터 빌려온 것이 더 뚜렷하고 많습니다, 그러니까 빈부격차가 큰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 봉합 수단으로 잔혹한 게임이 등장하는 것은 {러닝 맨}, 십대 청소년들이 최후의 한 사람만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경쟁하는 게임이 마찬가지로 사회 (강제) 통합적인 요소로 등장하는 것은 {롱 워크} 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스티븐 킹의 두 SF에는 모두 (어쩌면 당연히) 로맨스가 빠져 있는데, 두 작품의 열화카피인 {헝거 게임}은 로맨스를, 곁들이는 수준을 넘어서 가장 핵심적인 플롯으로 집어 넣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게임은 빌려왔어도 {러닝 맨}이나 {롱 워크}에 담겨 있던 사회 비판적 주제는 휘발되어 버리고, 포스트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라는, SF의 전통적인 이야기 요소를 결합시켰어도 SF는 장식일 뿐, 뼈대는 로맨스라서, 올드 SF팬은 이 멍청한 사회 체제(물론 2권 이후에서는 무너지기 시작하는 모양입니다만)는 말할 나위도 없고, 도대체 어떻게 나무 사이나 바위 사이까지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플레이어들을 시종일관 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촬영할 수 있는지, 혹은 경기장을 도대체 어떻게 지었길래 산불이나 폭우나 가뭄이 자유자재로 조절되는 숲과 계곡과 평야가 담겨 있고, 또 낙하산들은 무슨 재주로 목표 인물에게 제때제때 떨어지며, 무슨 호버크래프트가 헬리콥터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지 궁금할 뿐인데, 끝까지 아무런 설명들이 없습니다. 그냥 무조건 캐피톨의 기술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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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버전트}의 세계는 좀더 병신스러운데멍청한데, 이 세계의 사회는 조잡스럽기 이를데없는 작위적인 구분으로 다섯 개의 분파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분파에서 멀쩡하게 잘 낳아 기르던 애들을 열여섯 살이 되면 적성 검사를 통해 각자의 성격에 맞는 분파로 해쳐모여를 시킵니다. 사람의 성향이 다섯 개의 유형으로 확연하고 뚜렷하고 반영구적으로 고정된다는 생각은 혈액형 성격학보다 유형이 딱 하나 더 많은 것만큼만 덜 병신스럽습멍청합니다. 가상 현실을 이용한 간단한 심리 검사(칼을 선택하면 폭력적, 치즈를 선택하면 목가적, 머리를 굴리면 이성적, 거짓말을 안 하면 정직…. 이게 도대체 무슨 검사입니까? 토 나올 정도로 얄팍하고 유치하고 작위적인, 인터넷에 널린 싸구려 테스트지. 짜장면을 고르면 짜장면을 좋아하는 성격, 짬뽕을 고르면 짬뽕을 좋아하는 성격)를 참고해서 열여섯 살짜리가 한 순간 내린 결정으로 자신의 모든 개성을 송두리째 특정 가치관에 귀속시키고 살아가는 세상이라니,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이해가 얼마나 병신스러운지형편없이 얇고 피상적인지 진저리가 날 지경입니다.

1권 분량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타적인 성향의 분파인 애니게이션의 가정에서 길러진 여주가 폭력적인 성향의 분파인 돈트리스에 가입 신청해서 각종 개떡 같은 적응 교육을 받다가 조교교관 남주와 사랑에 빠진다는, 범생 여주가 어디 폭주족 남주한테 잘못 빠져든 그저그런 흔해 빠진 이야기를 재탕하는데 소비되고, 1권 끝에서야 세계가 SF스럽게 좀 움직이기 시작하긴 하는데, 그 부분만큼은 그럭저럭 볼 만하긴 하지만 그래도 2권을 읽고 싶어질 정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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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요즘 청소년들에게 현대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가혹하게 느껴지는가입니다. {헝거 게임}에서 주인공은 다른 또래들을 아예 죽여버리고 살아남아야 하며, {다이버전트}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이 선택한 분파에 속하기 위해 다른 또래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경쟁에서 패배하면 아무 분파에도 속하지 못한 하층민이 되어야 하며, 경쟁 과정에서는 다치거나 죽는 경우도 생깁니다) 어른들은 이러한 경쟁을 강요하고, 지켜보고, 즐길 뿐입니다. 사회는 여러 집단으로 분열되어 화합하지 못하며 언론 매체는 이러한 분열을 조장합니다. 전쟁 등 대격변 이후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지만 부는 상실된 것이 아니라 편중되었을 뿐이며, 세계는 사악한 소수가 잘못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미 많이 이야기된 것처럼 현대 사회-신자유주의의 과장된 우화입니다. {헝거 게임}이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은 것은 영화화 때문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기가 이젠 더 좁아질 구석도 없는 올드 SF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트와일라잇}이 인기를 끌었다고 기존의 판타지 시장이 회생하지 못했던 것처럼, (더 가깝게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기가 기존의 SF 시장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것처럼, {헝거 게임}이나 {다이버전트}의 애독자들이 다른 올드 SF들을 찾아 읽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로맨스물의 성격이 가미되었다는 점에서는 ‘보르코시건’ 시리즈가 떠오르긴 합니다만, 마초마초맨마초 아저씨와 히피 아줌마가 등장하는 1, 2권이나, 청소년 주인공이라고 해도 골절과 독설로 무장한(?) 난쟁이가 설치는 본편에 흥미를 보이긴 힘들겠죠)

{헝거 게임}이 {다이버전트}보다는 좀더 낫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둘 다 결국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글들이 SF인 만큼만 SF입니다. 아무리 편협한 본지로서도 이들이 아예 SF가 아니라고 내칠 수는 없지만, 두 작품을 즐겁게 읽은 10대 후반, 20대 초반 독자들은 생존의 짜릿한 대리만족감이나 군살 없는 등짝허리와 가냘픈 쇄골에 서로 군침흘리느라 정신없는 남주 여주 따윈 찾아볼 수 없는, 항성을 둘러싼 거대한 띠 모양의 세계나 안드로이드들에게 안드로이드 취급을 받는 안드로이드 사냥꾼, 지구의 역사 발전 단계를 복습하는 은하계의 작은 집단에게 사건이 끝날 때마다 뒷북치는 심리역사학자 같은 거나 잔뜩 나오는 다른 SF들을 읽게 될 리가 없으며, 기존의 SF 독자들도 {헝거 게임}(근데 {다이버전트}는 정말 그냥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꽝입니다)을 흥미롭게 읽을 수는 있겠지만, SF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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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 듣기로, 예전에는 SF 작가들이 쓴, 성인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청소년 SF들이 10대 독자들을 장르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국내에도 번역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은하를 넘어서} 등을 생각해보면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그게 지금도 가능할까요? 여기에서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예전에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가 청소년을 위한 SF를 표방하며 나왔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 {아직은 신이 아니야}가 나왔지만ㅡ공교롭게도 모두 창비 출판사이고, 듀나의 이름이 두 권에서 겹치는군요ㅡ결과는 미지수입니다.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나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는 10대를 위한 SF를 표방했지만 정작 10대 청소년의 눈 높이에 맞는 소재나 배경의 이야기는 많지 않았고, {아직은 신이 아니야}는 그런 점에서는 좀더 낫지만 듀나 특유의 냉소적인 어조나 사변적인 경향이 큰 걸림돌로 보입니다.

{헝거 게임}과 {다이버전트}는 더군다나 아닙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자들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나 {링월드}를 읽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헝거 게임}을 읽은 독자들이 {파운데이션}이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를 읽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어쩌면 새로운 미디어의 발달과 ‘판엠’ 저리가라 싶을 정도의 가혹한 무한 경쟁 체제의 사회 속에서 전체 독서 인구수가 줄고 출판 산업 전체가 사양길로 접어드는 지금 이 시점에서 SF 팬덤의 세대 교체나 새로운 독자층의 유입을 기대한 것 자체가 넌센스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유례 없는 SF 부흥기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마다 나오는 SF들은 2000년대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을 정도입니다. 앞으로는 어떨까요? 부정적인 전망도 없지 않지만 팬심 없는 출판사들이 모두 현시창을 깨닫고 떠나거나 기존의 SF팬들의 노령화 속에서 새로운 독자층의 대규모 유입이 없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SF를 읽는 사람들이 아예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장르란, 취향이란 본디 그런 것이니까요.

뱀파이어를 남주로 삼아본 로맨스가 좀비(우웩!)까지 남주로 삼고, 정작 스테프니 메이어는 후속작으로 외계기생체 로맨스를 썼던 것처럼 {헝거 게임}은 탐욕스러운 로맨스 시장의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 아닐까요? 더 빨리 사라지는 것은 아마 저쪽일지도 모릅니다. 어쩐지 {싱커} 등 청소년소설이나 문예 비평 쪽에서 보이고 있는 SF에 대한 관심도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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