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스패로} 메리 도리아 러셀 지음, 정대단 옮김, 황금가지

재번역이지만 ‘잊혀진 걸작’ 급의 작품이니 짧게라도 재조명해봅시다. 잊혀졌지만 언급될 경우에는 ‘카톨릭 SF’라는 표딱지가 항상 따라붙는데, 주인공이 예수회 신부이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또한 카톨릭적이긴 하지만 꼭 그렇게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이 훌륭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인 것처럼 {스패로}는 아주 훌륭한 외계탐사물입니다. 외계의 신호를 수신하고 해독하는 과정이나 발신원인 외계 행성으로 건너가는 부분은 아서 C. 클라크가 연상될 정도이며, 외계 행성에 건너간 다음 ‘최초의 접촉’ 전후의 서술도 SF 만 줄 수 있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기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도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인물들은 모두 입체적인 개성이 있고 부수적인 인물들도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충분히 부여 받고 움직이며, 재치 있는 대사들을 쉴새없이 터뜨리는데 존 스칼지처럼 과잉되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자제되는 부분이 특히 매력적입니다. 사회 역시 그림자 같은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가 생성되고 진행되는데 계속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뒷받침이 되는데(특히 외계 신호 수신 직후나 산도즈 신부 귀환 직후의 반응들), 특히 자나아타와 루나들의 외계 사회는 기본 구조부터 정교하게 잘 설정된데다가 수파아리 등 주요 인물의 심리와 행동이 주요 사건들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은 비교할 다른 SF를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긴밀하게 결합해서 만들어내는 주제ㅡ절대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카톨릭적 주제는 우주를 대하는 인간의 모습과 겹쳐져 특정 종교의 메시지 이상의 보편적인 감동을 안겨줍니다.

 {플랫랜더} 래리 니븐 지음, 정소연 옮김, 새파란상상

하드 SF와 퍼즐 추리의 흥미로운 결합. 하드보일드 운운하는 소개도 들리는데, 다소 나이브한 구석이 있어도 F. 폴 윌슨의 {다이디타운} 쪽이 훨씬 하드보일드하죠. 길 해밀턴은 하드보일드 탐정이라기엔 너무 말쑥하고 재미없습니다. (머리에 버튼 하나 정도는 심고 다닐 정도로 찌질해야 하드보일드 탐정 아니겠습니까) 미스터리 쪽은 많이 읽지 않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엘러리 퀸입니다. 다섯 편의 중단편은 대개 수상쩍은 상황에서 발견된 수상쩍은 시체로 시작해서, 정말 퍼즐 게임처럼 단서를 하나하나 주인공과 독자에게 공평하게 제시하며 진행됩니다. (대개는 밀실 살인, 심지어 [조각보 소녀]에서는 다잉 메시지 해석까지 등장합니다)

하드 SF 취향에는 [ARM]이 탁월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고, [조각보 소녀]와 [델 레이 크레이터의 여인]도 SF와 추리가 적절하게 결합되어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작품 전체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절정의 죽음]과 이를 가장 곧바로 이어 받은 듯한 [무력한 망자]는 상대적으로 재미가 떨어지는데, 저자 후기를 염두에 둔다면 장기 이식에 기반한 생명 연장에 대한 작가 개인의 강박적인 관심이 너무 그대로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래리 니븐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괴팍한 법을 따르는 괴팍한 사회들’도 보다 객관적인, 심리적인 거리를 두고 사고 실험으로서 만들어졌을 때 더욱 흥미롭지 작가 자신이 그러한 사회를 마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예언인 양 몰입해서 다루면 독자에겐 부담스럽고 몰입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한  가지 더 트집을 잡자면, 아무리 하드한 요소들을 집어 넣었어도 주인공 길 해밀턴의 ‘상상 손’은 연작들을 SF의 중심에서 저멀리 튕겨내 버립니다. 장기 이식과 사회 윤리라는 테마를 위해서는 그냥 한 팔을 잃었다가 이식 받은 설정 만으로 끝날 텐데 굳이 초능력을 집어 넣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상상 손이 제대로 사용된 건 첫 단편인 [절정의 죽음]이 유일합니다. 전화 화면을 통해 대상을 만지거나 홀로그램 전경을 보며 거대한 스케일로 해당 지역을 쓸어보는 장면들은 반드시 필요해 보이긴 커녕 쓸데없이 기괴하고 황당하게만 느껴집니다) “내가 투명인간을 등장시키지 않으면, 투명인간은 없는 것이다.”라고 저자 후기에서 당당히 외치긴 합니다만, 기존의 물리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를 하나라도 (게다가 주인공으로! 줄리까지 하면 정확히는 둘이군요) 넣어놓고는 공정한 게임 운운하면 안 되죠.

{바벨-17} 새뮤얼 딜레이니 지음, 김상훈 옮김, 폴라북스

20여 년을 기다려 마침내 읽고 난 뒤의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새뮤얼 딜레이니의 현란한 글솜씨에 대한 감탄보다는 김상훈 씨의 현란한 썰솜씨(?)에 대한 감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호학 지향이 강한 딜레이니는 장편 SF <바벨-17>(그리폰 북스 008)를 통해 비교언어학의 새피어-워크 가설ㅡ인식의 많은 부분은 해당 언어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는 현대판 언령 신앙ㅡ을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의 모티프로 삼는다는 폭거(?)를 감행했고, 결국 <바벨-17>은 대티얼 키이스의 <앨저논에게 바치는 꽃다발>과 함께 1966년의 네뷸러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했다. (필자의 사견[내지는 악담]이지만, 네뷸러상 관계자들이 조금만 덜 감상적이기만 했어도 딜레이니는 그 해의 단독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다…” ({내 이름은 콘라드} 권말 해설 中)

(지금 읽어도 다시 열 번은 더 낚일 만 하지 않습니까? 모쪼록 김상훈 씨가 앞으로도 계속, 많은 독자들과 특히 출판사 관계자들을 상대로 좋은 조과釣果 거두시길 기원합니다)

막상 직접 읽어본 <바벨-17>은 뉴웨이브보다는 80년대 이전의 고전적인 스페이스오페라로 더 많이, 더 먼저 읽혀집니다. “입술에 바른 립스틱은 동색銅色이었고, 두 눈동자는 두들겨 편 듯한 동제 원반ㅡ” 같은 구절(16쪽)은 곧장 로저 젤라즈니를 떠올리게 합니다만(물론 뉴웨이브의 핵심은 문장-스타일이 아니라 주제 의식과 방법론에 있겠지만요, 잠시 좀더 옆으로 새자면 {바벨-17}을 읽으며 연상되는 로저 젤라즈니의 작품은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입니다. 똑같이 고전적인 우주를 배경으로 위화감이 들 정도로 화려한 문장을 사용했는데, 새뮤얼 딜레이니의 과격함(김상훈 씨 표현을 빌리자면 ‘폭거’)에 비하면 로저 젤라즈니는 몸을 사린 듯이 느껴집니다), …이런, 여기서 할 얘기를 괄호 안에서 다 해버렸네요?

…아무튼 인류가 이미 다섯 개의 은하를 탐사했으며, 서로 분화된 나머지 20여 년간 은하 사이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ㅡ그러면서도 여전히 지구를 중심으로 영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기괴한 우주를 배경으로 별들 사이를 옆집 드나들듯 오가기 위해 정말 편리하(고 무성의하)게 설정된 초정지 공간을 죽은 뒤에도 유령처럼(이 아니라 실제로 유령 그 자체) 남은 유체인들의 초감각을 빌린다는 설정이라든가, ‘세관원’ 과 ‘수송원’ 거리에서의 밤 산책이나 베르 도르코 남작의 기괴한 병기창 구경(124쪽 이후), 혹은 제벨 타리크 호의 ‘정신병원’ 작전 등을 보면 더욱 강하게 떠오르는 것은 사이키델릭하고 퇴폐적인 우주활극의 마스터, 알프레드 베스터입니다.

취향을 강하게 탈 작품입니다. 과연 국내에 스페이스오페라와 뉴웨이브의 교집합에 들어갈 독자들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 뉴웨이브는 하드SF만큼이나 (어쩌면 더 심하게) 진입 장벽이 높고, 스페이스오페라는 또 황당무계하다는 오래된 편견의 발원지인 만큼 이 작품에서 양쪽의 재미를 고루 취하기보다는 양쪽의 단점을 고루 느끼게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그리폰 북스’ 이래 20여 년 세월의 무게와 김상훈 씨의 약광고화려한 수식어가 빚어낸 아우라를 걷어내고, 하위 장르들에 대한 선입견을 잠시 옆으로 치운 뒤 읽어본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화려하면서도 예리한 문장과 황당하면서도 그만큼이나 흥미로운 배경 위에서 언어와 사고와 세계의 출발점ㅡ’나’를 ‘나’라고 부르고/생각하고 ‘너’를 ‘너’라고 부르는/생각하는 지점ㅡ에 도달한 두 사람의 만남이 세계와 세계 사이의 오래된 단절과 불화, 대립과 충돌을 어떻게 멈추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올지도 모릅니다.

MAGAZINE

 [저는 로봇입니다] 박성환 지음, 과학동아 2013년 5월호

로봇-전자두뇌의 비유를 통해 인생의 괴로움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종교적 관점을 과학의 언어로 새롭게 변주한 공통점에 주목하자면 데뷔작 [레디메이드 보살]의 기독교 버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만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인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서로 굉장히 상이하고,  그 결과 소설적 감동의 질과 양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메시지가 작품의 질을 가름할 수 있을까요? 대개의 경우는 아니겠지만 박성환 씨의 글들ㅡ특히 [레디메이드 보살]과 [저는 로봇입니다]의 경우에는 인물 조형의 얄팍함이나 사건 구성의 밋밋함(둘 다 논쟁만으로 구성되어 있죠) 등에서 아이작 아시모프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저는 로봇입니다]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죠. 꼼꼼히 읽어보면 구성 면에서는 [레디메이드 보살]이 보다 치밀할지 몰라도 문장은 [저는 로봇입니다] 쪽이 좀 더 낫습니다)

[레디메이드 보살](과 {불교 SF 단편집}에 수록된 불교 SF들)이 인생의 괴로움의 원인을 (불교에서 말하듯) 자아의 존재에 그에 대한 집착에서 찾고, 자아를 잘못된 연산 처리 체계 혹은 그 결과물로 보아 나노 공학 등 다양한 과학적 방법으로 인공적 해탈을 도달하는 과정을 그려냈다면 [저는 로봇입니다]는 인생의 괴로움의 원인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에서 찾고, 원죄를 진화 과정에서 잘못 형성된 연산 처리 체계 혹은 그 결과물로 보아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공적인 구원을 받는 과정을 그렸다고 하겠는데, 인공적 해탈에 도달하는 것과 인공적 구원을 받는 것, ‘도달하는 것’과 ‘받는 것’의 차이는 아주 크게 느껴집니다.

 [새벽 기차] 김보영 지음, 과학동아 2013년 6월호

우리가 김보영 씨의 글을 읽는 것은 이런 감동, 이런 전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월호의 [단추 채우기]가 밋밋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는 듯 많지 않은 분량 안에서 제대로 된 SF 단편이 뽑혀 나왔습니다.

다섯 어절로 이루어진, 짧고 간결하지만 SF 본연의 매력이 가득 담긴 문장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곧바로 자전이 느린 행성ㅡ지구에서의 한 달이 하루인 세계, 그리고 행성의 자전과 동일한 속도로 행성을 횡단하는 열차로 이어집니다. 분량의 제한 때문이겠지만 설정은 거의 뼈대만 세워져 있고 이야기는 곧장 열차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춥니다.

카프카가 좋아했을 분위기로 가득 찬 짧은 글입니다. 문장은 아름답고 치밀하고 여운은 길고 깊습니다. 상징과 통찰로 가득 차 있고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야기된 말들 사이의 여백을 가득 메웁니다. 이름 없이 한결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비로소 이름을 불리고 자신의 선택, 자신의 행동을 하는 이야기. 이름을 알 수 없지만 한결같이 생각하는 사람들 밖에서 이름을 부를 줄 알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선택, 자신의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결말은 신화적인 감동마저 불러일으킵니다.

WEB

 [충돌] 황주호 지음, 크로스로드 2013년 5월호

블랙홀의 중력마저도 이겨내는 신비의 운석들이 지구로 막 떨어졌는데도 겨우 건물이 좀 부서지고 사람들도 잠깐 날아갔다가 그냥 피 좀 흘리며 일어나는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쿼크 입자 크기의 전자 칩에서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세상”까지 나오면 너무 신비로워서 말이 잘 안 나옵니다. 발상은 진부하지만 평이한 편이고 이야기 구조도 괜찮은데 세부적인 요소들이 어설퍼서 제대로 감상하기 힘듭니다.

과학적인 세부 사항에 대한 불평이 ‘모든 SF가 하드 SF여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김보영 씨의 짧은 단편 [새벽기차]도 행성의 설정이나 기온 상승과 관련해서 그다지 디테일하거나 설명이 충분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즐기기를 원하는ㅡ속아넘어가기를 자발적으로 원하는ㅡSF 독자의 최소한의 요구에 잘 부응하는, 감추고 넘어갈 부분은 확실하게 감추고 넘어갈 줄 아는(설명할 부분과 설명 안 해도 될 부분, 논리적으로 치밀해야 할 부분과 대충 퉁치고 넘어가도 될 부분을 잘 구분하는) 영리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타수 KK는 복귀하라] 하도아 지음, 크로스로드 2013년 6월호

어디서 무슨 1박 2일짜리 “나도 SF 따위 쓸 수 있다” 워크샵이라도 했었나요? [충돌]이 소행성 지구 충돌이나 블랙홀과 화이트홀에 대해 ‘그런 게 있다더라’ 수준의 한 시간 정도 대중 강의를 듣고 쓴 것 같은 글이라면 [조타수 KK는 복귀하라]는 블랙홀과 화이트홀과 시간 여행과 평행 우주에 대해 ‘그런 게 있다더라’ 수준의 한 시간 정도 대중 강의를 듣고 쓴 글 같습니다. 다만 블랙홀이 뭐고 화이트홀이 뭐고 중력이 뭐고 시공간이 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건 하도아 씨 쪽이 훨씬 더 심해 보이고요. ‘크로스로드’에서 아니면 볼 수 없었을 주옥 같은 명 문장 몇 개만 인용해보겠습니다.

“시간여행? 퍽이나! 그런 황당한 이야기는 ‘스티븐 스필버그’한테나 해! 아마, 장난감 비행기를 손으로 움직이며 입으로는 붕 붕 소리를 내면서 무척 반겨 맞겠지.”

(불쌍한 스필버그.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여기 끌려나왔습니까?)

“블랙홀의 크기와 중력의 힘은 부등호가 성립됩니다. 블랙홀의 자비심 없는 기조력은 심지어 빛까지 집어삼키지만 반대로 화이트홀은 내뱉기만 합니다. 그 신비로운 천체를 이용해 과거로도 미래로도 갈 수가 있는 겁니다.”

“블랙홀은 회전합니다. 회전력이 빠를수록 웜홀을 만들기 쉽습니다. 그 말은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은 웜홀을 만들 수 없다는 소리가 되겠죠. 그렇게 블랙홀은 입구가 되고 화이트홀은 출구가 됩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하니까요.”

“지구와 가까운 별도 몇 광년 밖에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은하는 수백 광년이나 떨어져 있죠. 밤하늘의 모든 것은 과거예요. 결국 수십만 년 전의 이야기들인 셈입니다. 그런 일들이 지금 저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워크샵에서 졸았군요. 아니면 애초에 정보를 이해할 능력이 없었거나)

“저는 의무실의 모옴입니다. 간호사였죠. 하지만 지금은 서프라이즈 호 그 자체입니다. 웜홀의 부작용이죠.저는 지금의 제 모습이 만족스럽답니다.”

(스타트렉 구극장판이라도 봤나 보죠?)

그의 진짜 엄마는 아빠의 손에 죽었다. 아빠도 그날 자살을 했다. 그날 불타는 집 앞을 우연히 지나가던 젊은 케첨 함장이 안고 나온 것이 바로 그였다. 모옴이 말해주었다. 역시 친절한 아가씨다. 하! 바쁘다! 바빠! 살인자의 바쁜 스케줄. 그는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정신이 나간 건 어느 쪽입니까, 주인공? 작가?)

“고향에 돌아가도 저는 받아지지 않을 겁니까. 아마 분해되겠죠. 웜홀 여행을 성공한 사례로 기록되는 영광과 함께 폐기되는 겁니다. KK는 열심히 살아주세요.”

(이런 앞뒤도 안 맞는 문장들로 점철된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실어준 ‘크로스로드’ 담당자부터가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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