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SF : (나만 빼고)지구멸망, (나만 빼고)우주전쟁

…눈이 부시게 밝고 청명한 날이었다. 갇혀 지내던 나날과는 완전히 달랐다. 땅 위를 점령한 붉은 식물의 잎들은 부드러운 바람에 밀려 쉬지 않고 너울거렸다. 그리고 오! 달콤한 공기여!

…오늘 밤,월터는 거리를 떠돌며 화려한 진열창에 있는 아름다운 분홍색 마네킹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이 도시가 완전히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월터는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조용히 흐느꼈다. “아, 나는 완전히 혼자야!”

시간여행물과 더불어 이번 버전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모호한, 두루뭉수리한 범주입니다. (반면에 당신의 취향을 맞출 가능성은 조금 높아질 수도 있겠군요) 용감하게 추측해보자면, 액션보다는 스펙터클을 좋아하는 당신은 외향적이기보다 다소 내향적, 영화도 여럿이 함께 보기보다는 혼자 보는 편이 오히려 홀가분할지도 모릅니다. (어, 정말 심리 테스트하는 기분!) 이런 취향이 SF로 뻗어나가면 포스트아포칼립스물 혹은 외계인의 지구 침공물과 만나게 되죠.

H. G. 웰즈의 전설적인 고전 {우주 전쟁}에서 화성의 붉은 풀로 뒤덮인 영국 풍경에 살짝 가슴 설렌 적, 정말로 없었습니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에 혼자 남겨진 사내, 그렉 베어의 점균류로 뒤덮인 도심의 텅 빈 거리, 존 윈덤의 걸어다니는 미친 식물들과 맹인들로 가득한 거리, 리처드 매드슨의, 그늘마다 흡혈귀가 득시글거리는 거리. 이 풍경은 조금 더 줌 아웃하면 네빌 슈트의 해변이나 필립 와일리의 지평선까지 확장됩니다. (비교적 근래에 나온 {최후의 날 그후}나 최근에 나온 {종말 문학 걸작선} 1, 2는 오히려 저 고전적인 멸망의 멋과 재미, 타나토스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느낌입니다.)

아마도 이쪽 방면의 가장 깊은 뿌리는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가 되겠죠. 홀로 살아남아 온세상을 혼자 독차지 한다는 여드름 투성이 사춘기 소년의 짜릿한 상상! 그러나 조심하세요, 다음 순간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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