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알렉산드르 벨랴예프 지음, 김준수 옮김, 마마미소(2012.05.21)

{물고기 인간}을 읽는 건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몇 시간 동안 고리타분한 심청전을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플롯과 평면적인 인물, 지루한 구닥다리 문체 등을 꾹 참고 읽어나가는데 돌연 결말까지 몇 페이지 안 남기고 갑자기 심청이가 연꽃을 타고 올라오더니 바다의 무한한 해저 자원과 인체 개조를 통한 인류의 인공 진화 가능성의 비전 등을 읊어대기 시작하는  겁니다. 고소설에서 쥘 베른으로의 비약. 이 짜릿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페이지를 견뎌내야 합니다. 소설 배경이 남미인 탓에 러시아 작가에게 기대하게 되는 북국의 정서가 온데간데 없는 점이 아쉽긴 합니만,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면 양서류 인간은 나올 수 없었겠죠?  체코만 돼도 도롱뇽이 나오는데! (그러고 보니 {도롱뇽과의 전쟁}도 출발은 태평양 열대 바다에서 시작했군요.)

앞의 비유에서도 언급했지만 28년작임을 고려하더라도 전반적인 소설적 완성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요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 보입니다.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히에로니무스 보쉬를 연상시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기묘한 정원 풍경에서 잠시 나오는 것 외에는 SF 특유의 신기함  따윈 찾아볼 수가 없고 대신 신파적인 연애담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점도 그렇고요. 아래의 책과 마찬가지로, 개별 작품 자체의 재미를 즐기려는 일반적인 SF 독자들보다는 SF 장르의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SF 열혈 팬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창규 옮김, 뿔(웅진)(2012.06.04)

트위터에서 지난  특집에 대한 일말의 반성과 함께 기대감을 가지고 출간 뉴스를 전했었는데, 막상 읽어나가는 과정에서는 역시나 괴롭기 그지 없었습니다.  대체로 아시모프의 장점은 작품 분량에 반비례하고 단점은 권수에 비례하는데, 이 작품 역시나 여러 권짜리 대하 장편들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만 아시모프적인 나노 두께의 인물들이 아시모프적인 극단적인 감정선 위에서 아시모프적인 부자연스러운 장광설과 함께 아시모프적인 작위적인 플롯을 짜나가는 모습은…

…끔찍합니다!

위의 {물고기 인간}처럼, 55년작임을 감안하고 읽어줘야겠지만…

…솔직히 50년대라곤 해도 남들은 앞뒤로 {유년기의 끝}과 {파괴된 사나이}, {여름으로 가는 문}을 써대고 있는데 이건 뭐 시대를 앞서고 국경을 뛰어넘는중2병도 아니고, 딱 “백 투 더 퓨처”의 조지 맥플라이(결말에서 바뀐 성격 말고 과거로 간 마티가 처음 만난 그 ‘안여멸’ 조지)의 머릿속에서 나왔을 법한 세계를 내놓은 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처음  접하는 이성에게 매혹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딱  ‘젊은 연쇄살인범의 초상’ 같아서 읽어나가기 조마조마할 정도입니다. 설마 매 페이지마다 서스펜스를 숨겨놨다는 평이 이 뜻은 아니었겠죠!)

좋습니다! 우리가 아시모프에게 뭘 기대하겠습니까. 불평은 그만하고, 인물이건 문체건 다 갖다 버리고, 그래요, 아이디어와 스토리만  봅시다. 우리의 편집증적 주인공은 모든 등장인물들을 의심하며 극적 긴장을 강제로 끌어올려가는데, 그거라도 없었으면 장황하게 펼쳐지는 SF적 아이디어들이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묶여나오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디어라는 걸 좀 보자면ㅡ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되겠죠. “시간 여행이 현실화되고, 특정 집단에서 이를 이용해 인류 전체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관리한다면 어떨까?”

(이하는 책을 읽으신 분만 보시기 바랍니다.)

그 질문은 결국 정체와 변화, 안주와 확장, 정착과 모험에 대한 선택으로 귀결되며,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미국 특유의 개척주의적 가치관을 SF로 풀어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시모프가 그토록 인기 있었던 이유에도 이데올로기적인 면 또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논해봅시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의 결말도 역시 개인에 의한 사회, 역사의 변화라는 전형적인 미국식 신화의 반복인데, 또한 흥미롭군요.)

이러한 주제는 닫힌(계획되고 관찰되고 관리되는) 시간선으로부터 열린(폭력적으로 열어젖혀진) 시간선으로 나아가는 결말이 동시에 우주 공간으로 무수히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의 획득이란 점에서 몇 겹으로 강조됩니다. 도대체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동경’이라는 SF의 원초적인 감성이 구원한 (구원받지 못했다면 엄청난 졸작으로 남았을) 작품들이 얼마나 될 지 헤아려 보자면 짜증스럽기까지한데, 이 작품 또한 그 가장 좋은 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불평불만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충격을 인류 전체의 아득히 먼 미래에 대한 장대한 비전으로 발전시킨 결말은 SF 독자라면 누구나(일본인들은 좀 씁쓸할지도 모르겠지만), 언제까지나, 깊이 감동하며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작품 전체에서 문학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마지막 문장이 SF 독자들의 신경계 전체에 불러일으키는 전율은 좋은 문학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과 나란히 놓을만 해 보입니다.

P.S. 종종  들르는 블로그에서 ‘영원인의 선발 조건은 해당 인물이 자신의 시대에서 사라져도 영향이 거의 없을 것이므로 영원인들은 모든 시대의 잉여들’이라는 해석을 보고 웃었습니다만 사실 웃고만 넘길 부분은 아닙니다. 본문 안에서도 언급되지만 영원인들의 비정상적 심리 상태, 정신적 불안함은 작품 내적으로는 자신의 시대로부터 영원히 격리되었다는 박탈감,  상실감의 결과로 설명되지만 작품 외적으로는 SF를 즐겨 읽던 50년대 안여멸들의 정신 상태의 반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결말은 90년대 오덕들에게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던졌던 메시지와 비슷하게 풀어볼 수도 있을 것 같군요.긱들이어, 신화가 되어라

 제임스 G. 발라드 지음, 이미정 옮김, 문학수첩(2012.06.22)

아시모프에 이어 발라드를 말하자니 정말 머릿속에서 기어가 180 바퀴는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10년도 넘게 이미 소개된 적 있었던 장편에 대해서 새삼스레 리뷰를 쓰는 것도 그렇고… 그렇지만 1999년과 2012년 사이에는 10여 년의 세월 외에도 차이가 좀 있긴 있죠. 99년, 그리폰북스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을 때만 해도 같이 읽어볼 제임스 G. 발라드의 (자칭) SF는 (제임스 G.  발라드의 SF들이 안 SF스럽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진짜 진짜 SF라고 부를 수 없는 {태양의 제국}은 제외하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2012년의 우리에게는 이제 {물에  잠긴 세계}와 {불타버린 세계}, 그리고 {하이라이즈}와 {크래시}(얘네는 사실 SF분이 좀 약하긴 하지만), 그 외에도 두 편 정도의 SF 단편들이 있습니다.

근대  이성과 서구 문명의 불모성을 지구(혹은 우주ㅡ이 작품에서처럼) 전체의 파국이라는 극단적인 세계의 모습으로 펼쳐내보이는 것은, 그리고 거시적인 파멸 속에서 서구 합리주의를 대표하는  등장인물들-의사나 건축가들의 병적인 심리에 집중해서 그려내는 것은 앞선 두 편의 장편들과 동일하지만, 가장 시각적으로 화려한, 문장 하나하나가 눈부신 빛으로 휘몰아치는 듯한 문체는 세 편 중 으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99년에 읽지 않았던 분들이라면, 혹은 당시 읽었을 때 당혹감 외에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던 분들께도, 일독을 권합니다.

WEB

 [1984+36] 리락 지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2012년 7월

앞서의 [원반]과 같은 작가의 글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졸작입니다. 발상이나 구성, 어법과 문체 모두 [원반] 이전의 습작이 아니었을까 추측되는데요, ‘사람을 감시하는 집’이라는 발상은 너무나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어서 곰팡내가 코를 싸쥐게 하고, 장르독자가 아니라도 초반에 다 알아차릴 사건의 진상을 뭐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질질 끌어가는 구성은 크로스로드가 언제부터 원고료를 장당 계산했나 싶어지며, 김성모의 그 유명한 유행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등의 촌스러운 어법까지 합쳐지고 나면 그야말로 총체적 허접, 충격과 공포의 그지깽깽이같은 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크로스로드는 이 따위 글을 읽느라 낭비된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배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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