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브레인 웨이브} 폴 앤더슨 지음, 유소영 옮김, 문학수첩 2012년  2월

50년대에 나온 SF들을 떠올려 봅시다.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 53년작, 아시모프가 {강철 도시}를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도 53년,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은 57년작입니다. 이제 짐작이 가십니까? 그 시대의 꿈, 그 시대의 상상력, 그 시대의 분위기… {브레인 웨이브}는 앞서 언급한 작품들 사이에 끼워놓아도 전혀 꿀리지 않을 수작입니다. 기본 아이디어부터가 크고 아름다우며 그에 따른 세상의 변화 역시 그럴듯하면서도 놀랍고 신기하고 흥미롭고 장대하게 펼쳐집니다. (고전기 SF들에게 그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현대 사회가 얼마나, 개개인의 지성과 창조성, 인격을 무시하고 억압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의 예리함은 꽤 날카롭고, 갑자기 은하계로 날아가버리는 후반부에서는 말 그대로  SF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습니다.

필부에 불과한 작가들이 주제 넘게 자신들의 작품 안에 등장시킨 천재들은 많은 경우 작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어설프고 볼썽사납고 작위적이고 꼴불견인 추태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올슨 스콧 카드(우웩!)를 생각해봅시다. 여섯 살 짜리 꼬마를 천재로 띄워주기 위해 주변의 모든 등장 인물들ㅡ잘 생각해보면 열 살 남짓한 한 남매의 천재성을 드러내기 위해 지구의 모든 성인 남녀가ㅡ이 강제로 지능지수를 다섯 살 이하 수준으로 삭제당합니다. 다나카 요시키(웩! 웩! 웩!)도 생각해볼까요. 새파란 20대 금발 애송이 양아치를 불후의 천재로 띄우기 위해 중장년 백전노장들이 강제로 전두엽 절제술을 받습니다. 즉, 천재성이 드러날 만 한 적절한 배경과 사건을 만들어내지 못해 주변 등장인물들의 지능을 강제로 떨어뜨리는 끔찍하고 참혹하고 무식한 방법을 쓴 데 비해 폴 앤더슨은 아주 간단하고 예리하게, 적절한 배경과 사건을 찾아냅니다. 바로, 우주로 고고씽! 세부적으로는 폴 앤더슨도 개개의 등장 인물들의 지능 상향을 그려내는 솜씨가 앞의 두 사람에 비해 그다지 나은 편이 아닙니다. (애초에 폴 앤더슨의 인물 조형 솜씨가 꽝인 것도 있지만,) 드라마를 보던 사람이 책을 읽는 것을, 추리 소설을 읽던 사람이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을 지능의 상승으로 봐야할까요? 정당한 비교일지 모르겠지만(아래에 소개할 고장원 씨의 리뷰에서도 언급되지만) 테드 창의 [이해]를 떠올려본다면 세 사람의 투박함과 미숙함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렇지만 개개의 인물들이 모여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인류 사회 전체의 변화ㅡ특히나 외부 우주로의 공간적 확장 방향으로 서술의 초점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러한 단점은 자연스럽게 가려지고 SF의 재미 중 하나인 경이감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탁월한 접근법입니다. 이 작품은 한두 사람의 지능 상승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지능 상승을, 한두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인류 전체의 변화, 나아가 우주의 변화로까지 그려냄으로써 SF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감동과 재미를 제대로 만들어 냅니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리폰 북스’ 붐이 일어나기 직전인 90년대 초중반이 떠오릅니다. (기억나십니까, 그 시절 출판사들의 이름들? ‘잎새’, ‘모음사’, ‘현대정보문화사’… 구리다면 구리고 정답다면 정다운 그 표지들, 정답기는 좀 힘든 구린 번역들, 67년에 발표되었다는 {신들의 사회}가 충격을 주었으리만치 구태의연하다면 구태의연하고 포근하고 아늑하다면 포근하고 아늑했던, 변방 특유의, 멈춰서버린 유령들의 시간… 그 시절 출간되었으면 딱 어울리는(그러고보니 표지의 구린 느낌도 딱 그 시절 향취로군요) 작품이지만… {브레인 웨이브}는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명제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우리에게는 꽤 늦게 소개되었지만, 너무 늦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언제까지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 읽어볼 만 한 리뷰들 :

1. 모든 사람이 IQ 500! 그런 세상을 살아 보니… : 정소연 씨는 ‘가정’과 ‘질문’을 구분하여 {브레인 웨이브}가 좋은 가정에서 좋은 질문들을 끌어냈기 때문에 고전이 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좋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이 SF 특유의 거시적인 조망과 관점 속에서 만들어지는 부분에 대한 언급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들어둘 만 한 이야기입니다.

2. 폴 앤더슨의 <브레인 웨이브 Brain Wave>, 과학소설이 단절의 문학임을 일깨워준 고전SF : 고장원 씨는 SF가 (기술의 발달 등으로 인한) 기존 패러다임과의 단절에서 출발하는 문학이라는 특징이 {브레인 웨이브}에 잘 나타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대부분 동의할 수 있는 평이며, 생각이 다른 부분은 앞서 언급했습니다.

 {성스러운 침입} 필립 K. 딕 지음, 박중서 옮김, 폴라북스 2012년  3월

{발리스}를 읽고 어리둥절했던 독자라면(필립 K. 딕 팬들은 아니겠지만) 속칭 ‘발리스 3부작’의 제 2권인 {성스러운 침입}을 읽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의미심장한 도입부를 무심코 지나쳐버린다면 전형적인 필립 K. 딕의 SF 세상이 펼쳐집니다. 외계 변방 행성은 더러운 메탄 결정으로 가득 차 있고, 지구인들은 각자의 개인 돔에 틀어박혀 지구에서 전송해주는 라디오 방송이나 듣습니다. 그런데 돌연, 외계 변방 행성으로 밀려나 있던 야훼가 침대에서 하루종일 뒹굴대며 팝송이나 듣는 씹덕잉여에게 타오르는 카세트테이프 더미의 모습으로 현현하더니 시치미 뚝 떼며 신약 성서를 다시 쓸 시간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대목을 쓰면서 필립 K. 딕은 얼마나 낄낄거리며 웃었을까요!)

소설의 기본 틀은 복음서와 묵시록ㅡ신약의 처음과 끝을 적당히 자르고 이어 붙인 모습인데, 여기에 카발라 신비주의와 보네거트적인 정치 풍자 코미디, 필립 K. 딕 특유의 기억과 실재, 현실과 환각을 뒤섞은 플롯을 집어넣은 다음, 누가 ‘발리스 3부작’ 아니랄까봐 ‘생명 없는 껍데기 뿐인 세계에 침입해 들어온 진실의 계시’라는 소재를 넣으니 눈이 정신없이 핑핑 돌 정도로 멋지고 푸짐한 만찬이 차려졌습니다.

플롯의 복잡하고 현란하기는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장편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띕니다. {화성의 타임슬립}이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도 복잡하긴 했는데, 그쪽은 세부적인 사건 서술 쪽이었고, 전체 구성이 이처럼 정교하지는 않았죠. 허브 에셔의 냉동 수면 중 회상이라는 역순행적 구성을 취했던 도입부를 지나고 필립 K. 딕이 거침없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액자 안의  과거 이야기가 다시 액자 밖의 현재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리곤 중반부를 지나서는 이매뉴얼이 지나의 세계로 들어가서 지나와 게임을 시작하며 다시, 허브 에셔의 삶은 가상의 세계로 재구축되고 이매뉴얼과 지나, 리비스, 일라이어스, 린다 폭스의 관계가 재구성되는데, 그런데… 그러다 갑자기, 다시 냉동 수면의 모티프가 돌아옵니다! 시리즈 전작 {발리스}가 작가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실재 현실 세계와 작품 속 허구 세계를 뒤섞었던 것에 비해서는 보다 온건하지만, 여전히 집요하게 리얼리티의 해체를 보여주고 있으며, 전작에서 리얼리티의 해체를 통한 혼란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혼란을 넘어서 우리는 과연 무엇에 의지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세계의 본질이 폭력이라는 관점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등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품의 문체 역시 {발리스}에 이어 여전히 차분한 진지해서, 지금까지 접하기 힘들었던, 필립 K. 딕의 성숙한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이 또한 작품이 던지는 질문의 절박함과 진정성을 보다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발리스 3부작’의 두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그리고 한 작가가 평생토록 동일한 문제 의식을 집요하게 추구했다고만 보기도 힘들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필립 K. 딕의 다른 작품들이 새롭게 읽히는 점은 정말 폴라북스 출판사에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필립 K. 딕의 여타 소설들에서 보였던 기계 인간들과 복제된 기억과 자아정체성의 문제들은 아마도 영혼을 잃고 폐색된 세계를 참된 세계로 알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풍자화이자 이런 우스꽝스런 풍경을 지적하고 고발하고 해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 중 하나는 394쪽부터 395쪽까지가 아닐까요. 특히,

‘”나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경찰관이 말했다.

라든가

경찰차는 그를 뒤쫓지 않았다. 그 경찰관은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같은 대목. 희극적인 톤으로 처리되고 있지만, 진정한 구원은 외부의 계시부터 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나 자신의 양심에 따른 선택,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간적인 소통과 믿음에 기반된 것이라고 필립 K. 딕은 말하는 듯 합니다.)

그나저나, 풀턴 추기경과 불코스키 행정관 부분은 확실히 풍자적 어조가 강하고, 중간 중간 신학적 농담(특히 380쪽부터 381쪽까지)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필립 K. 딕의 장편 중 드물게 가볍고 유쾌하며 풍자적인 작품”이라는 인터넷 서점의 해제는 좀 생뚱맞군요. 벨리알이 풀려나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허브 애셔가 악마에게 사로잡히는 절정부의 악몽 같은 서술은 꽤 제대로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 읽어볼 만 한 리뷰 :

<성스러운 침묵> 리뷰  릴레이 (1 / 2 /3 /4) : 고장원 씨가 {성스러운 침입}을 상당히 상세하고 예리하게 리뷰했습니다. 유태교 신비주의에 많이 기댄 인물 설정을 굳이 기독교의 (투박한) 성삼위로 읽어내는 게 적절할까 싶은 부분이 좀 걸리지만 본지도 신비주의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니 넘어가고, 그 외에는 본 기사가 좀 민망해지도록 꼼꼼히 잘 읽은 리뷰입니다. 소설을 읽으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 같이 볼 만 한 웹툰 :

성스러운 침입 by Boida : SF 작가 김보영 씨가 폴라북스 블로그에 올린 감상 웹툰입니다.

 {물에 잠긴 세계} J. G. 발라드 지음, 공보경 옮김, 문학수첩 2012년 4월

지난 번에 번역 출간된 {하이라이즈}도 그 전에 번역 출간된 {크래시}보다는 SF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의견에 가깝기 때문에 넘어가고… 그러다보니 alt. SF에서는 처음으로 J. G. 발라드의 SF를 소개하는 셈인데,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물에 잠긴 세계}는 J. G. 발라드의 소설이 다 그렇듯이 백주의 악몽 같은 기괴한 이미지들과 병들어 극단적으로 뒤틀린 심리가 천연덕스럽게 진지한 문장으로 한 땀 한 땀 수놓아진 작품입니다. 처음 시작은 태양 폭풍과 지구 대기층의 격변으로 인한 이상 고온에 따른 극지방 해빙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 등 그럴듯한 배경을 까는데, 기존의 SF랑 비슷한 부분은 딱 거기까지. 그 다음부터 J. G. 발라드는 찰나에 불과했던 문명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대자연의 위력과, 이에 휩쓸린 현대인들의, 얄팍하기 이를 데 없었던 이성과 합리 밑에 숨겨져 있던 원초적인 심리들을 제멋대로 그려내기 시작합니다.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제시되는 것은 더위와 태양, 물의 과잉된 이미지이며, 이들은 문명 이전의 야만, 원시의 강렬한 유혹을 상징합니다. J. G. 발라드의 소설에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자신이 둘러싼 환경에 의해 변화되는 존재로, 환경이 각각, 모든 것이 시간의 중첩에 따라 동결되는 밀림, 방사능으로 가득 찬 해안, 사회적 계급에 따라 층별 위계가 정해진 고층 아파트, 일군의 정신병자들과 자동차 등 다양하게 제시되어도 그러한 작위적인 환경 아래에서 왜곡되는ㅡ혹은 본질적으로는 모두 원시/태초로 회귀하게 되는 인간 심리의 기괴한 캐리커처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발라드의 소설들을 SF로 분류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또한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요.)

J. G. 발라드는 SF에 대한 사랑을 가늠해보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SF라는 딱지가 붙은 것은 어디까지 참고 읽을 수 있습니까? (얼마나 SF에 미쳐 있습니까?) 어떤 장르이건 오래 묵은 애호가들에게 최후로 남는 재미라는 게 결국은, 좋고 나쁘고 우수하고 열등하고를 떠나 일단 독특하고 기괴한 것,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것들을 추구하게 되는, 가학에 가까운 변태적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J. G. 발라드는 그런 구미에 딱 흡족할 듯 합니다.

WEB

  [여자를 믿지 마라] 조나단 지음. 웹진 크로스로드 2012. 3월~4월

필립 말로의 고추장 버전에 릭 데커드 된장 버전 같은 걸 비벼섞은 듯한 주인공이 나오는, 판에 박힌 하드보일드 아류 플롯에 판에 박힌 사이버펑크 아류 스타일을 끼얹은 듯한 글입니다. 경찰은 싸구려 느와르 영화에서처럼 재수 없고 무능하기만 하고 여자는 싸구려 느와르 영화에서처럼 싸가지 없고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닳아빠진 스테레오타입들의 향연.

물론 장르소설이라면 적당히 닳아빠진 구석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읽어야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쌔삥하기만 하면 그게 장르소설입니까. 문학 작품이지. 그렇지만 이건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읽어야 뭘 좀 읽었다고 말할 만 한 걸 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닳아빠져 있으니 할 말이 없어집니다.

SF라면 적어도 한 구석 쯤은 좀 새로워보이는(‘새로운’ 것도 아니고 ‘새로워 보이는’ 부분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이 소설은 추리 소설로서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주인공이 사건 해결을 위해 필사적으로 모든 등장 인물을 의심하는 모습을 내면까지 모두 서술해놓고 마지막에 반전이랍시고 그 모든 걸 뒤엎어버리는 결말을 넣어버리니, 이건 뭐 모든 게 약 먹어서 헤롱거리는 퇴물 쓰레기 전직 형사의 뇌내 망상이어서 앞뒤가 하나도 안 맞고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이야기인 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입니다. (아니면 약 때문에 기억 회로가 완전히 망가져서 지가 저지르고 지가 수사하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말 되네. 아니, 그보단 작가가 약을 먹고 머리가…) 반전도 좋지만 일단은 전체적으로 앞뒤가 제대로 맞아야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될 텐데 이 작품은 소설은 커녕 제대로 된 이야기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작품 초입의, 황사에 찌든 미래 도시 서울의 풍경은 유일하게 근사했습니다. 좀 상투적이기는 해도 꽤 괜찮은 근미래 사이버펑크 하드보일드가 나올 법한 배경이었죠. 말이 나온 김에 말이지만, 괴상하게 비틀었기는 해도 한국인들 이름을 달고 나온 등장 인물들이 한국적 풍경을 배경으로 전통적인 한국적 소재인 남편의 난봉과 마누라의 질투, 전형적인 근대 한국의 문제인 도시 개발과 이권 다툼 같은 것들을 잔뜩 다루었는데, 한국적 SF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모르겠군요. 똥도 메이드 인 코리아 붙어 있으면 과연 고소한가요?

 [전자인간] 황태환 지음, 웹진 크로스로드 2012년 5월

감사합니다. 좀 많이 웃었습니다. 영리한 단편입니다. 무리하게 욕심부리는 대신 짧은 시간 동안의 다소 지적인 오락거리로서의 본령에 충실했습니다.

거대 로봇은 SF에서도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치중되어 있는 소재인데 국내에서는 드물지 않게 소설에서도 보이는군요. 다양성의 일환으로 봐야할지 수용 과정에서의 편향의 결과로 봐야될지 애매합니다만 이 작품의 경우에는 큰 위화감 없이 소설이라는 매체에 잘 담긴 듯 합니다. 이건 아마도 작품 자체가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한 탓이 큽니다.

[여기엔 단순히 정보만을 카피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기술이 적용됩니다. 그 사람의 자아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일성을 유지한 채 전자의 형태로 치환하여 추출하는 겁니다. 때문에 이 시술을 받은 사람의 육체는 의학적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대신 그의 정신은 가상공간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리고 전기가 흐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같은 설명은 논리적으로 좀 거칠고 조악하지만 사이버펑크 아류들에서 많이들 돌려 쓰는 설정이니까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보다는 이 설정을 결말의 반전까지 끌고 나가는 솜씨가 꽤 괜찮지 않습니까?

[아, 물론 로봇의 재질은 현존하는 금속 중 가장 단단하지만, 블랙홀의 중력을 견딜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블랙홀에는 양성(良性)의 특이점이 있지요. 다른 부분보다 중력이 약한 지역 말입니다. 일전에도 몇몇 겁 없는 전자인간이 블랙홀의 양성을 이용해 타임 슬립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돌아오지는 못했습니다만, 제가 성공한 것을 보니 그들도 살아있을지 가능성은 높습니다.]

같은 설정은 솔직히 좀 아닙니다만, 작품 결말의 반전을 통해 다시 읽어보면 자연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전산학적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보다는

[대신 조금 아플 거예요. 삼십분 정도.]

“얼마나 아픈데?”

[지금 당신의 육체를 분석한 결과 불에 타죽는 것보다 두 배쯤 강한 통각 자극을 느낀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뭐?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떻…….”

라든가 특히,

곧 눈앞에 외부의 전경이 떠올랐다. 클래스가 보는 시선이었다. 촉수 같은 전선들이 꾸물거리며 다가와 내 팔과 다리를 휘감았다. 저항하려 했지만 김기호가 말렸다.

[동기화하는 중입니다. 몸에 힘을 빼세요.]

나는 그의 말대로 가만히 있었다. 방심하는 사이 항문으로 촉수가 밀려들어왔다.

“앗, 거긴 안 돼!”

같은 부분(그리고 이어지는, 로봇의 비행 조종 관련 부분 등)에서는 국내 창작 코믹 SF의 한 가능성이 살짝 엿보입니다. (상대 로봇의 이름이 의미심장하긴 한데, 모르시는 행복한 분들도 많을 테니 그냥 넘어갑시다.)

결말의 반전은 독창적이고 기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깔끔하고 산뜻해서, 이 작품을 단지 코믹 SF로만 머무르지 않게 합니다. 일전에 같은 지면에서 읽었던 [경계]를 다시 찾아봤을 정도로(그리고 당시 [경계]에서 작가에게 가지게 되었던 인상이 일신되었을 정도로) 근래 읽은 창작 SF 단편들 중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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