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필립 K. 딕 지음, 박중서 옮김, 폴라북스 2012. 1월

필립 K. 딕은 그동안 국내에까지 번역된 수많은 작품들에서 작품 속 리얼리티를 부수는 신묘한 솜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발리스}에서 필립 K. 딕은 아예 자신의 삶 자체의 리얼리티를 부숴버립니다. ‘과학 소설’이란 모순 형용적인 명칭이 암시하듯 SF는 다른 장르소설들에 비해 특히나 관념적 사변을 펼쳐내기에 가장 적절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소설 안에서 소설 속 현실의 리얼리티를 붕괴시키고 해체하는 것과 소설 안에서 소설 밖 진짜 현실의 리얼리티를 해체하고 붕괴시키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생 그 자체가 SF인 필립  K. 딕은 그 심연을 무슨 도랑물 건너듯 성큼 건너 뛰어서 SF라고 부를 수도 없고 안 부를 수도 없는 기묘한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자전적 SF’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할까요? 가능하고, 실제로 존재합니다. 바로 이 작품입니다. 멀고 간접적으로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죽은 쌍둥이 누이 제인에 대한 필립 K. 딕의 강박증적 집착부터, 가깝고 직접적으로는 ‘2-3-74’라 스스로 이름붙인 분열증적인 신비체험 등에 이르기까지 필립 K. 딕의 생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소설은 그저 그런 사이키델릭-히피-뉴에이지 잡동사니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피상적으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제목들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뮬라시옹 같은 알쏭달쏭한 철학 용어들의 광고판들 아래,  좀 더 깊게는 복잡한 플롯이나 특히 예측불허의 반전 등을 특징으로 하는, 국내에도 이제 제법 많이 소개된 장편과 단편 작품들까지도 넘어,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특히나 격동적이었으며 그만큼이나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시대를, 태생적인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결코 태만하게 외면하지 않고 세계와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을 직시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평생 SF를 사랑했던 한 사람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라면 이 소설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는 것만큼 가슴 떨리는 독서 체험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이영수(듀나) 지음, 자음과 모음(이룸) 2012. 2월

듀나가 새로운 것을 말한 적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편은 결코 아닙니다. ‘링커’ 우주에서의 새로운 모험담들 역시 기시감과 미시감이 묘하게 뒤섞여 있는데, 무엇보다 할리우드 고전 영화들과 고풍스런 구미 소설들에 지나치게 기댄 묘사들이 특히 진부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를 생각해보면, 개인 취향을 최대한 끌어 모아서 그 상상력을 지탱해낸 것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도 합니다.

게으른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들의 작은 피난처인 독립 구조선 ‘제저벨’의 선원들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링커’ 우주 내에서 거의 고립되어 있던 행성에서 ‘링커 우주’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리라는 꽤나 장대한 스토리를 형성합니다만, 개별 에피소드들이 좀 산만하게 모여 있는 편이어서 표지에 주홍 글씨로 써 있듯이 장편 소설로 보이기보다는 그냥 연작 단편집처럼 개별적으로 읽는 재미가 더 쏠쏠합니다.

{태평양 횡단 특급}의 [미치광이 하늘]부터도 그런 기미가 보였고, {용의 이}에서 표제작이 특히 그랬습니다만, 최근 듀나는 환각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의 시적인 제시에 힘을 쏟고 있는 듯 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시드니] 도입부의 ‘마리아 부츠’ 이야기와 ‘베수비오 지하족’ 이야기, [레벤튼]의 ‘보석 같은 나비들’ 이야기, [호가스]의 42호의 ‘자필 원고’ 이야기와 특히나 ‘로즈 셀라비에서의 울릭세스의 모험담’ 같은 것들. 그 사변적이고 도발적인 이미지들이 다소 가볍고 작위적으로 젠체하는 듯한 어조나 툭툭 튀어나오는 할리우드 인명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을 읽을 만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파올로 바치갈루피 지음, 나선숙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2. 2월
파올로 바치갈루피는 지금까지 장편 하나({십브레이커}까지하면 둘)와 단편 하나가 국내에 소개되었을 뿐인데 무리한 일반화일 수 있지만 작품 세계가 촘촘하고 빽빽하게 하나로 뭉쳐 있어 보입니다. 대개 한물간 떡밥 취급 받는 석유 고갈 이후의 지구ㅡ’매드 맥스’ 외에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SF 작품이 있는지?, 유전공학의 첨단화가 오히려 악몽이 되어버린 생태계. 재미있는 것은 바치갈루피의 작품들에서는 이 상투적인 파국들이 그야말로 인류 전체의 파국으로 치달아 진부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파국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 종말 이후의 세계에 적응한 사람들의 세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말해놓고 보니 인류가 무슨 바퀴벌레 같군요.)

그리고 종말 이후의 세상은 종말 이전, 현재의 세상을 되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와인드업 걸}에서 생태학적 재앙 이후의 태국이 결국 현재의 태국ㅡ더 일반화하자면 서구 제국주의로 피폐해지고 왜곡된 제3세계의 사회 구조의 SF적 반영이었던 것처럼, {십브레이커}의 선박해체꾼들은 지금 현재의 아시아,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들에 무차별적으로 버려지고 있는 산업 폐기물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인물군에 세세히 초점을 맞춰 종말 이후의 사회를 제법 총체적으로 재구성해낸 {와인드업 걸}에 비해 {십브레이커}는 아무래도 청소년물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중반 이후부터는 극적인 긴장감이 늘어지고 결말 역시 상투적이고 진부하게 대충 마무리되고 맙니다. (절정 부분에서 좀 패륜적인 고어 씬이 등장하긴 하지만요.) 그냥 쉽게 비판하기로는, 주인공들의 모험이 결국 개인적 차원의 변화로만 이어졌을 뿐 세계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테드 창의 견해를 빌리는 게 제일 적절할 듯 합니다. 마찬가지 청소년 주인공들이(이후 시리즈가 계속되며 청년에서 중장년까지 성장-노화하긴 하지만) 등장하는 ‘견인 도시 연대기’에 비하면 특히나 이 단점은 두드러집니다. SF가 반드시 세계의 변화를 그려야만 한다고, 의무를 지울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의 예를 이 작품에서 확인해보니 가급적이면 그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군요. (그나저나 툴은 도대체 왜 나왔다 들어간 겁니까?)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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