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 SF의 지난 14호 특집 기사는 환상 문학 웹진 ‘거울’에서 낸 비평선 “B평”에 실린 최진석 씨의 글 ‘한국 장르문학을 둘러싼 정황: 장르 작가들이 문학상을 타기까지'(이하 ‘삐평’)에서 SF와 관련된 부분에 대한 SF 팬진으로서의 요약 소개 및 논평이었습니다. “B평”을 입수한 시점과 기사 마감일 사이에 그렇게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다소 거친 감이 있는 건 알았지만 두 달이나 지나 지난 1월 28일에 웹진 ‘거울’의 기획란에 ‘Re: 그래도 비평, 비평, 평론, 평론하실래요?-‘B평’에 대한 ‘비평’에 대한 반론'(이하 ‘반론’)라는 제목으로 최진석 씨의 반론이 올라올 정도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보러 갑시다 :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event&no=249

그러나, 막상 반론이라는 표현을 넣은 제목으로 올라왔지만  실제 내용은 본인의 글에 대한 뒤늦은 안내문 혹은 해설문 정도로 보일 뿐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나는 이 장에서 …했다.’ 혹은 ‘…에서는 …하고자 했다.’ 등의 표현의 반복이군요. (여담이지만 필자 자신을 ‘나’와 ‘작자’ 두 가지 호칭으로 나누어 두서없이 섞어 쓴 것은 보기에 좀 민망합니다) 물론 14호 기사의 무지몽매한 오독을 교정해주기 위해서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모니터에 ‘반론’을 띄워놓고 책을 다시 펼쳐보니 일리가 없지 않은 부분들이 없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반론’ 자체도 14호 기사가 ‘삐평’을 오독했다고 오독한 부분이라든가 14호 기사가 그렇게 읽을 만 하게 써놓은 ‘삐평’의 구절을 오독했다고 단정한 부분도 적지 않은데, 그렇지만 제대로 썼느니 못 썼느니, 제대로 읽었느니 못 읽었느니의 문제는 다루어봤자 잘 해봤자 말꼬리 잡기만 될 테니 넘어가고 좀 더 이야기해 볼만한 부분부터 추려서 이야기해봅시다.

1. 과연 ‘문단 문학’은 장르 ‘문학’을 무심하고 시크하게 모르고 있을 뿐이었고 ‘적극적인 혐오나 폄훼’는 장르 ‘문학’계의 피해 망상일 뿐인가없었는가?

물론 문단 소설가들이나 평론가들이 시청 광장에 불쏘시개장르소설들을 쌓아놓고 유해 도서 척결 구호를 외치며 화형식을 벌인 일은 없습니다.

‘삐평’에서는 “편견을 가진 적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지 내지는 무관심에 더 가까웠다는 의미에서다.”(335쪽),

그리고’해설문반론’에서는 “아울러 Alt.SF는 ‘다른 집 애들도 왕따 당한 적 있다고 해서 우리 애가 왕따 당하고 있는 게 우리집에서 허구적으로 설정한 대립 구도일 뿐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나는 2000년대 이전까지의 문단 주류가 SF/판타지에 대해 어떤 적극적인 혐오나 폄훼보다는 주로 무지나 무관심을 견지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335쪽) 사실상, 문단 주류에서 SF나 판타지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 했던 연구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예시로 들었던 실화소설이나 여성소설 장르들은 이미 70년대부터 ‘상업주의소설’이라는 이름 아래 주류 연구자들의 비판 대상이 되어 왔다. 이들에 비하면 SF나 판타지는 멸시를 받은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해볼만한 대목은, 2000년대 이후의 SF나 판타지 진영과는 달리 그들은 ‘장르문학’ 따위의 개념으로 스스로를 부르려 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라고 하고 있으니 최진석 씨도 물론 화형식 같은 진짜 적극적인 행위를 염두에 둔 건 아니겠고, 그렇다고 어디까지가 ‘적극적인 혐오나  폄훼’이냐는 말장난의 영역이겠지만, ‘무지나 무관심’의 바탕에는 ‘혐오나 폄훼’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하와 편견이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는 말해볼만 합니다.

‘멸시를 받은 축에도 못 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멸시하거나 비판할 만한 꺼리-국내 창작물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러면 왜 SF나 (본지에서는 지난 특집 기사에서도 그랬고, 별로 언급하거나 같이 넣고 싶지 않지만)판타지에서 그동안 국내 창작물이 나오지 못했는가, 혹은 나오더라도 주목받지 못했는가를 생각해야지, 그냥, 비판적 연구나 평론이 없었으니 폄훼나 혐오 없었던 거임ㅋ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14호 기사에서 구한말 SF의 국내 도입 양상이라든가 60년대까지의 번역 및 창작 실태를 언급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2000년대 이후에 SF에 관심을 갖게된 독자들은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는 온도차의 문제인데, 길게는 7, 80년대부터 어린 시절 ‘아동용’ ‘공상과학물’을 좋아하다가 청소년기 이후까지 계속 SF에 대한 취미를 키운 30대 이상 팬들이 사회적 몰이해를 겪으며 맺힌 한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도 ‘공상과학’이라는 표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지만, 단지 표준국어대사전에 ‘공상과학소설’로 되어 있으니 ‘공상과학’이 표준어고 맞는 표현이라고 우기는 건 잘못된 권위에의 맹종일 뿐입니다. 국어학자들이 SF가 뭔지 알게 뭡니까. ‘산파술’도 국어사전에 있는 단어니까 애 낳을 땐 국립국어원 가면 되겠네요?)

‘삐평’에서 비교 대상으로 삼은 실화소설이나 여성소설이 과연 SF나 판타지 같은 별도의 서브컬처 장르로서 동등한 비교 대상인가 역시나 문제입니다. 도대체 ‘삐평’의 필자는 장르소설을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실화소설이나 여성소설이 장르소설하고 대등하게 놓일 수 있으면 후일담 소설이나 농촌소설, 노동소설도 다 같이 비교해볼 수 있겠네요? 문단의 형식적 요건인 등단 절차를 (1번 출구말고 2번 출구나 3번 출구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거쳐서 등단한 작가들이 상업성이나 대중성으로 기울어서 내놓은 작품들이 잘 팔린 건 주류 문학 비평계에서 다뤄볼 일이지만 애초에 작품들이 창작되지도 않았고, 창작되어봤자 정식 등단 작가 출신이 쓴 것도 아니고, 게다가 잘 팔리지도 않았던 SF나 판타지 쪽에 주류 문단에서 참 폄훼나 혐오를 줄 건덕지가 있었겠고요.

장르소설 얘기나 계속해봅시다.

2. 한국의 SF 독자들은 어떤 기준에 따라 SF를 읽어야 하는가?

해설문반론’의 필자는 여기서 내용과 형식, 장르를 제대로 구별 못하고 있습니다. (혹은 의도적으로 안 한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한국문학과 타국문학의 차이는 서로 다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통해 서로 다른 사회ㆍ역사적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것들을 표현해낸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요소들의 차이로 인해 한국문학은 다른 나라의 문학과 어느 정도 다른 형태를 띌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의 문학들도 또 다른 나라들의 문학에 대해 그러하듯이(해설문반론)”은 일차적으로 내용에 관한 이야기이고, 뒷부분에서는 조금 확장되어 (형식주의에서 말하는) 내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형식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캐나다인 SF 작가 고드 셀라가 한국인 SF 번역가와의 인터뷰에서 “SF의 비유와 테마를 한국의 문화, 정치, 역사적 상황에 적용”시킨 작품을 기대한다고 했던 것은 또 어떠한가?(해설문반론)”도 마찬가지로 내용에 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내용과 형식이 긴밀한 건 사실이지만 이들이 장르와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건 아니죠. 서정시를 예로 들어봅시다. 한국 전통 서정의 맥을 잇는 근대시/현대시 시인들로 이야기되는 김억이나 김소월, 서정주, 박재삼의 작품들은, 이별의 정한을 주제/내용으로 하고 토속적인 소재와 시어들을 내용/표현으로 하며, 형식적 요소로서 민요조의 가락까지 사용하기는 하지만 모두 서구 근대 문학의 서정시 장르 안에서 한국적 내용과 형식을 보이는 것일 뿐 근대 서정시 장르의 틀 바깥의 무언가 새로운 틀을 만들어서 메이드 인 코리아 표딱지를 붙인 다음에 논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예를 들고 있는데, 실제로 국내에 소개된 렘의 작품들 중에서 영미권 중심의 기존의 SF 장르 틀과 완전히 다른 틀을 만들어 낸, “영미권과는 전혀 다른 문법으로 쓴”  게 있나요? {우주비행사 피륵스}나 {사이버리아드}는 주제가 다소 철학적 깊이가 있다 뿐이지 서구의 SF들과 동일한 코드, 클리셰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솔라리스}는 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특히나 후반부나 결말로 갈수록) 서구 SF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그 정도는 영미의 뉴웨이브 SF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일 뿐입니다. 렘이 서구 SF에 비판적이었던 것은 다소 오락성에 기울은 주제와 내용에 대한 불만이었고, 렘에게 열광한 서구 SF 독자들의 반응도 결국은 SF 장르의 문법 전체를 혁신한 새로운 메이드 인 폴란드 SF 장르에 반한 것이 아니라 천편일률적인 오락성 대신 철학적인 깊이를 보여준 렘 SF의 내용과 주제에 반한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옳지 않겠습니까.

현재 SF 장르의 틀, 문법, 코드, 프로토콜 뭐 무엇으로 부르든 간에 장르의 양상은 서구 특히 미국에서 형성된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전적으로 ‘미국제 SF’라고 별도로 딱지를 붙이고 뭔가 새로운 ‘메이드 인 코리아’ 표딱지가 붙은 새로운 장르 틀을 만들자고 하는 건 어째 티맥스 윈도가 떠오를 뿐입니다. 이 부분은 이미 판타지 쪽에서는 일단락된 논의로 알고 있는데 굳이 꺼내드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도깨비나 구미호나 처녀 귀신을 처넣고 등장인물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무당이 푸닥거리를 하게 만들어도 장르 판타지의 틀까지 혁신되는 건 아니고, 그런다고 해서 한국식 판타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안 그런다고 해서 한국식 판타지가 안 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대충 판타지 쪽에서는 얘기 끝나지 않았습니까?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이 쓴 글에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사회, 역사적 경험이나 한국의 문화, 정치, 역사적 상황에 적용된 테마가 나타나게 됩니다. 굳이 한국식 SF의 틀을 만들지 않더라도요. 흔히들 영미권 영미권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개별 작품들을 읽어보면 영국의 SF와 미국의 SF 사이에서도 주제와 내용, 표현 등에서 미묘하게 차이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이 정도 수준까지 정밀하게 내려오면 어차피 국가나 민족의 차이는 크게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개별 작가들의 개성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게 되지요.

불필요하게 한국식 SF의 딱지를 만들어 붙이려고 하는 것은 결국 무분별한 소재 지상주의만 불러오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SF가 아닌 작품들이 피상적으로 로봇이나 외계인, 양자역학 같은 단어 몇 개에 찌질한 한국 독신녀 히스테리나 히키코모리 오덕후 같은 거 집어넣고 ‘오오 한국식 SF 오오’거리게 될 수 있는 거죠.

14호 기사로부터 시작된 논의의 시발점인 ‘삐평’의 전문이 웹에 공개되지 않은 이상 더 세부적인 반론이나 질문에 대한 답변 혹은 재반론을 이 지면에서 계속하는 건 (앞서 말했듯이 애초에 말꼬리 잡기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든 데다가) 옆에서 보고 있는 alt. SF의 독자들에게는 별 흥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작업이 될 터여서 본지에서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14호 기사에서도 이미 밝혔지만 ‘삐평’의 전체 논지에는 큰 이의가 없고, alt. SF가 SF 팬진이니까 SF에 관련된 부분만 추려서 소개/첨언했을 뿐이었는데, 발끈한 기색이 느껴질 정도의 ‘반론’이 올라온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군요. 본지에서 종종 드리는 말씀이지만 거칠고 천박한 표현이나 무식하고 멍청해서 저지른 잘못으로 기분 언짢으셨던 점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B평”에 대해 ‘非평이 더 적절한 제목으로 생각될 정도로, ‘비평’이란 말을 사용하기엔 부적절한 잡문들로 채워져 있다’고 한 건 사실일 뿐이니까 사과할 생각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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