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로 정리된 것은 (도식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예전에 행복한 책읽기 출판사 홈페이지의 창작 연재 투고 게시판에도 올라온 적이 있는, 홍인기 씨의 아마추어 SF작가가 지켜야 할 점들이 있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좀더 간략하고 분명하게, 가장 치명적이고 뚜렷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해 봅시다.

1. SF를 모른다.

SF를 단편 하나도 아예 안 읽고도 SF랍시고 쓴 듯 한 글들을 읽는 것만큼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또 있을까요.

영화나 만화 혹은 게임 등 다른 갈래들을 통해 쌓아올린, SF에 대한 피상적이고 왜곡된 관점만 가지고 소설로 들어오면 볼썽사납고 꼴불견스러워지는 게 당연하죠.

1) 매체 차이를 무시한다.

똑같이 SF라는 딱지를 달고 있지만 SF소설과 SF영화, SF만화, SF게임은 각기 다른 장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서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시각적 이미지 중심의 영화와 만화, 문자 언어로 된 서술 기반의 소설이라는 매체 차이도 있거니와 출발은 소설이 조금 앞서고 영화, 만화, 게임 등으로 영향을 주었다고는 하더라도 그 후로 수많은 세월동안 각기 발전하며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많이 다른 모습이 되었지요. 슈퍼 히어로물 만화나 영화가 SF로 분류되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SF도 ‘소설’이라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이고 당연한 점마저도 무시한 채 영화나 만화, 게임 좀 본 거 가지고 자신도 SF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눈을 더럽힌 사람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지요. ‘전혀 의도한 기색 없이’ 중간에 뒤바뀌는 시점이라든가 최소한의 개연성마저 상실한 플롯, 마분지 두께만큼의 깊이도 날려버린 인물들을 가지고 외계인이니 로봇이니 닳고 닳은 소재만 넣어서 빈대떡 부쳐먹듯 후딱 써낸 글들은 이미 본지 리뷰란에서도 많이 씹어온 터입니다.

2) 클리셰에 무지하고 코드에 무식하다.

닳고 닳은 소재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SF를 읽은 게 별로 없으니 SF에서 이미 반 세기 이전에 써먹었던 소재나 주제를 마치 자기가 처음 생각해낸 양 의기양양하게 졸작을 들이미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랑스산 대머리 아저씨의 싸구려 소설들을 저명한 유럽 소설 전문 출판사에서 ‘상상력 속에서 탄생한 기상천외한 미래, 그리고 역설 가득한 과거의 이야기’ 등의 뻥을 쳐서 팔아먹고 있는 세상에서 너무 순진하고 원론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담과 이브’ 타령이 아직도 툭툭 튀어나오는 거 보면 아, 여러분들이 살고 계시는 세계는 제가 살고 있는 세계와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군요. 여러분들의 세계를 존중해드릴 테니 제발 여러분들도 제가 살고 있는 세계 근처로 얼씬하지 말아주시겠습니까? 하고 정중하게 부탁드리고 싶어집니다.

앞으로 특집 기사로 한 번쯤 다룰 예정입니다만, SF라는 명칭을 ‘과학 소설’로 부를 때, ‘소설’이 엄밀한 의미에서 ‘서구 근대 소설’에 국한되지 않는 것처럼 ‘과학’도 엄밀한 의미에서 ‘서구 근대 과학’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현대 과학으로 밝혀진 사실과 원리 안에서만 소설을 쓴다면 나오는 결과물은 정말로 재미없을 것입니다. 하드 SF의 대명사로 국내에 소개된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마저도 치밀하게 구축된 고중력의 외계 행성이라는 배경 위에 정작 올려진 건 숱한 스페이스오페라들에서 보인 것과 마찬가지인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무늬껍질만 벌레인’ 외계인들입니다. 아시모프의 로봇들이 아무리 ‘로봇 공학 3원칙’이네 ‘양전자 두뇌’네 하는 과학적으로 보이는 용어들로 치장을 했어도 작품 안에서 실제로 그려진 모습은 중세 유럽 전설의 골렘이나 호문쿨루스와 별 다를 바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 그런 점에서 ‘과학 소설’에서 ‘과학’이란 ‘SF의 코드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SF라는 하나의 서브 장르가 성립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SF의 코드들이며, SF의 역사는 SF의 코드들이 생성되고 변주되며 갱신되고 사라진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고요. 그런데 SF를 하나도 안 읽어 봤으면서도 SF를 쓰겠다는 우리의 용자들은 그냥 서술자의 서술이나 인물의 대사에 과학 정보만 많이 긁어다 붙이면 SF가 되는줄 아는 분들이 많다니까요.

2. 과학을 모른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과학적 사실들 혹은 최소한의 내적 논리만큼은 지켜야하는 게 또 SF이니 좀 피곤하긴 하죠. 이 피곤함을 해소해주는 손쉬운 길이 바로 SF의 전통적인 코드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립 K. 딕의 SF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관심사 덕분에 심리학적으로는 꽤나 해박하고 치밀한 면을 보여주지만, 그 외의 과학적 요소들은 기존의 코드들에 기대어 쓴 부분이 많죠. 그냥 태엽과 릴 테이프 투성이의 로봇이 등장하고, 텔레파시를 통해 쉽게 영어로 들리게 말하는 외계인들이 등장하며, 로켓이나 우주선은 아무 생각 없이 별과 별 사이를 오가죠.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빨리 빨리식 편의주의에 맞춰주자면 기존의 SF 코드의 사용만으로도 SF의 ‘과학’ 부분에 대한 신경은 어느 정도 끄고 진행해도 되겠습니다만, 기왕 제대로 SF를 쓰자면 그런 코드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아야 제대로 조합해서 필요와 의도에 맞게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과학과는 멀리 떨어져 보이는 코드들도 생성될 당시에는 당대의 과학적 관점이나 이론이 반영된 결과물들이었습니다. (버로우즈의 존 카터가 화성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부분에 관한 설정이나, 미국 코믹스들에서 슈퍼 히어로들이 처음 탄생할 때의 설정들을 생각해봅시다) 결국에는 (최소한) 중고등학교 물리, 화학, 생물 시간에 가르치는 수준의 상식과, 그런 상식들을 토대로 한 과학적 사고에 대한 종합적인 관점은 어느 정도 서 있어야겠죠. 사이비과학들이 특히나 과학인양 횡행하며 혹세무민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나 필요한 부분입니다.

3. 세상을 모른다.

SF를 쓰기 위해서 필요한 건 과학 지식 뿐만이 아닙니다. SF에서 특정 개인만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절대 없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그러나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국내에서 나온 SF 중에서 그런 작품이 있었는지는 도무지 떠올려볼 수 없군요. 일반화시켜서 소설의 경우에도, 문학의 보편성이란 측면에서 특정 개인 주인공의 문제도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문제로 확대되기 때문입니다), SF라는 장르의 주된 관심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 사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인류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SF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스케일은 일반 소설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개인과 개인의 갈등이나 개인과 사회 사이의 갈등의 차원이 아닙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갈등, 우주와 인류 사이의 갈등이 주로 다루어집니다. 따라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 혹은 소재에 따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적 요소와 원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쓸 수 없죠. 일례로, 역사학이 어떤 학문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시간 여행이 가능해질 경우 역사학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쓸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SF를 쓰려면 정말 SF도 알고 과학도 알고 거기다 정치, 사회, 경제, 역사, 각종 학문까지 다 알아야 되느냐? 그거 다 알아보고 언제 쓰냐? 뭐, 이런 질문인지 반론인지 반박인지도 가능하겠습니다만, 모든 것을 다 알고 나서야 써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자기가 떠올린 발상,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에 필요한 사항들을 찾아보고, 알아내서, 제대로 쓸 수 있을 정도의 기본적인 바탕이 있으면 되는 거죠. 맨날 영화, 만화, 게임만 접하고 프랑스 대머리 아저씨 글이나 읽다가 ‘나도 한 번’ 식으로 되는 대로 떠올린 생각을, 기존에 다룬 소설들 없는지 찾아보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 생각해보지도 않고(혹은 생각해볼 줄도 모르고) 게으르고 멍청하게 쓴 글을 옹호하려고 그런 식으로 물어보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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