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이터널 마일} 임태운 지음, 푸른 여름 2011.11.25

최악의 소설입니다. 고장원 씨는 22살 때 초고가 완성된 단편을 바탕으로 개작해서인지는 몰라도 이것만으로는 속단할 수 없는, 하여간 앞으로 꾸준한 발전이 기대되는 촉망받는 작가라고 실드를 쳐줬지만, 이보다 훨씬 낫다고 들고 있는 [이빨에 끼인 돌개바람]이나 [황제를 암살하는 101번째 방법]도 임태운 씨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는 마찬가지라, 아무리 좋게 봐도 발전 가능성이나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이는 작가입니다.

이 소설이 바탕으로 훔쳐 사용하고 있는 플롯은 ‘이벤트 오브 호라이즌’이나 ‘팬도럼’보다는 빈센조 나탈리의 영화 ‘큐브’가 아닐까 싶습니다. 배경이 우주선이라는 점을 지우고 나면, 무작위로 추출된 어중이 떠중이들이 각자 자신의 특기를 살려 온갖 덫이 놓인 거대 구조물 안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 드러나게 되지요. (자폐증이 있는 카잔과 귀머거리 엘보 사이의 유사성에 유념해봅시다. 임태운 씨는ㅡ다른 모든 설정에서도 그렇듯ㅡ자폐증이나 장애에 대해서 무지해서 헛소리만 늘어놓았지만요) 거기에 더해서 이 소설이 차용한 어법은 기묘하게도 무협지 혹은 환협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터엉, 탕, 콰지직, 으아악, 끄아악, 쐐애애액, 콰지직, 쐐액 쐐액 같은 의성어들이 느낌표와 함께 한 줄을 통째로 차지하니까요. 결과적으로, 두 요소 모두 작품의 독자성 혹은 품격을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뭐, 대중 소설에서 독자성이나 품격을 따질 필요가 있냐고 하면 할 말은 없죠. 대여점에서 꼬맹이들 푼돈 모으기에는 괜찮아 보이는 책입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몇 번이나 설정 오류와 빈틈이 보여도, 안 보거나 못 보면 문제는 없겠죠. 그러니까 재밌으면 그만이지? 그런데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는 걸 어떻게 합니까. ‘큐브’를 비롯해서 여러 영화, 소설, 드라마들에서 훔쳐쓴 요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구멍이 펑펑 뚫린 설정과 진부한 플롯, 유치한 어법은 내가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쳐들여서 이런 글을 읽고 있어야 하나 자문하고 앞으로는 내 삶을 보다 소중하게 여겨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 뿐입니다.

WEB

 [양 아저씨와 전파 소녀] 정희자 지음, 크로스로드 2012 2월호

과학 지식을 문학적 비유로 오용하는 몰상식하고 몰지각한 짓은 무식하고 무지하고 후안무치한 주류 문단에서나 저지를 만행인데 물리학 SF를 표방하는 웹진 크로스로드 창작 코너에서 이런 글을 보게되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군요.

주인공이 히키코모리 생활에 빠져든 이유는 굳이 명시할 필요가 없긴 한데, 지하실에서 매일 밥 받아먹고 똥 내놓는 비범하고 극단적인 히키코모리 생활에 빠져든 것은 작품 후반부에서 중요한 설정이니 이유가 좀더 분명해야 작위적인 느낌이 덜하지 않겠습니까?

전파에 대한 강박증이나 채널링이야 그러려니 싶지만 감마선 폭발 관련 부분은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니 언급 안 할 수 없군요. 도대체 무슨 감마선 폭발이 지구에 닿기 며칠 전부터 접근이 관측됩니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아니라 광속을 뛰어넘는 입자인가 보죠? 아니면 지구에서 몇 광년 떨어진 관측기가 관측했나요? 게다가 양자역학의 사고 실험을 극단적으로 무지몽매하게 왜곡한 평행우주론은 또 어떻고요? 김현중 씨의 [물구나무서기]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두 작품 모두 양자역학 신비주의 혹은 사이비 양자역하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거시 세계에서의 물리와 미시 세계에서의 물리를 혼동하여 괴상한 결말을 이끌어내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의 내적 필요에 의해서, 알려진 과학 법칙들을 뒤짚거나 뛰어넘으려면 독자가 설득되는 것에 동의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손잡이라도 내밀어 주어야 합니다. 이 소설은 그러한 손잡이 없이, 양자역학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사실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문장이 안정되어 있고 소설 구성이 탄탄하더라도 목표했던 감동을 유발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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