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대니얼 H. 윌슨 지음, 안재권 옮김, 문학수첩 2011.12.15

결론부터 말하자면(결론만 말하고 싶기도 한데), SF가 아니라 썰렁한 싸구려 모험 활극입니다. 책소개 및 광고에서 줄기차게 써먹는 작가의 이력은 실제로 본문의 디테일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아시모프의 로봇들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니 말 다 했지요, 뭐. 로봇 공학적 디테일들 대신에 작가가 이 책에 잔뜩 채워넣은 것은 러다이트적인, 기계에 대한 인류의 해묵은 공포감입니다. 아니,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면 제멋대로 살아움직이는 인형들에 대한 원시적인 주술적 공포감이 될 수도 있겠군요. 이 소설의 플롯은 전반부는 호러 스릴러, 중반부는 포스트홀로코스트 서바이벌, 후반부는 밀리터리 어드벤처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세 부분 모조리 재미가 없어 그야말로 안습입니다.

이 소설의 기본적인 문제점은 소설이 갖추어야할 최소한의 깊이 혹은 두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와서먼 교수가 아코스를 만든 이유는 아예 알 수가 없고(그냥 미치광이 과학자?), 아코스가 인류를 제거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너무 얄팍한데다 진부하고(결국은 환경보호?), 자유로워진 안드로이드들이 인간들을 도와 아코스에게 맞선 이유도 알 수가 없습니다.(나는 악역이 싫어요?) 그러니까 잔뜩 겉멋 잡고 허세부리기는 했지만,  결국은 여드름 투성이 십대 초반 사내아이들의 파괴욕망과 영웅심리 등의 소망충족용 병정놀이극 시나리오에 불과합니다. 뭔가 비장하게 폼을 잡고 나서지만 정작 역량 부족으로 최종 전투씬은 보잘것없고 볼품없기 이를 데 없어 읽다보면 문득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군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책을 읽고 있나 심각하게 회의하게 됩니다.

가장 적절한 요약은 아마 터미네이터 4편의 조악한 10대 백일몽 버전 팬픽션, 정도가 될 것인데, 사실상 이 점이 이 작품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SF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참신함이나 개성이 전혀 없으니까요. 인류와 기계의 진화에 대한 전망은 피상적이고 얄팍하기 이를데없고, 과도하게 영웅 만들기식으로 띄워주는 등장인물들은 실제로는 해낸 일이 별로 없어 실속도 없고, 쓸데없이 가족 단위로 뭉쳐 놓아 ‘기계에 맞서는 인류’의 대표성이나 전형성이 매우 약합니다. 작품 전체 구조는 전쟁 이후 ‘영웅’ 코맥 월러스가 기계 측의 데이터 베이스를 참고해서 그간의 경과를 기록으로 남기는 형식으로, 기계들이 수집한 동영상 자료 및 편집자 코맥이 전해들은 일화 등을 나열해서 일종의 유사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을 보여주는데, 앞서 이야기했듯 중심 인물들이 너무 제한되어 있어 다양한 시점에서의 총체성 재구성이라는 기법 특유의 기능이 전혀 살아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2011년 마지막 리뷰에서 SF도 아닌 책 한 권만 이렇게 구구절절히 씹어야 되는 alt. SF의 신세야말로 정말 안습이로군요.

WEB

  설인효 지음, 크로스로드 2011.12~ 2012.1

설인효 씨는 웹진 크로스로드를 통해 이전에 발표했던 [진짜 죽음]이나 [전화살인]으로 충분히 낯익은(?) 작가여서 당연히 일말의 기대마저 포기한 겸허한 자세로 두 달에 걸친 이 신작을 대했습니다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것 이상의 허접함을 새로이 보여주니 감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 판단이 가능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과학적 현상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현재 우리의 가장 빠른 우주선은 빛의 속도의 1%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비행체는 우리에 비해 약 50에서 최대 80배 정도 빠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상당한 속도지만 결코 외계행성에서 우리에게 도착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그들은 아마도 웜 홀을 통과하여 공간을 이동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건 사이비 SF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대사죠.

1) ‘우리가 모르는 과학적 현상’ : 현대 과학의 한계 운운하면서 자신의 과학적 논리 빈약을 어물쩍 넘어갈 핑계를 대고,

2) ‘현재 우리의 가장 빠른 우주선은 빛의 속도의 1%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비행체는 우리에 비해 약 50배에서 최대 80배 정도 빠른 것으로 보입니다.’ : 별 근거도 없이 대략적인 숫자를 설정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하다가 망합니다. 1, 2년 사이에 도착할 우주선이 광속의 0.5에서 0.8배로 움직이고 있다면 대략 지구에서 0.5광년에서 1.6광년 사이에 있는 거고, 그 거리에서 ‘주변 천체를 상대로’ ‘상당히 강력한 화력’으로 ‘군사 작전’을 펼 정도면 수많은 천문대들이 기존의 망원경들로도 충분히 관측할 수 있을 텐데 무슨  새로운(근데 별로 안 새로운) 전파 망원경의 데이터 처리 조작으로 인한 전지구적 사기극 운운합니까? 어디서 약을 팔아?

3) ‘따라서 상당한 속도지만 결코 외계행성에서 우리에게 도착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그들은 아마도 웜 홀을 통과하여 공간을 이동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 그렇죠! 마지막으로 논리적 비약 정도 하나 살포시 한 번 더 날려줘야 제대로 사이비 SF죠!

사실 이 소설을 씹는데는 다음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칸트가 살던 곳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이야기가 있지. 그만큼 철두철미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었거든. 아마 허투루 한 이야기는 아닐 거야.”

히틀러는 개를 매우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있죠. 그만큼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는 거거든요. 아마 유태인 학살은 사실이 아닐 거예요. 이게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할 소리에요?

학부 교양 수준 정치학 썰을 장황하고 지루하게 펼쳐대다가 뜬금없이 내미는 결말이라는 게 권력욕 강한 윗대가리 몇 명 숙청이 고작입니다. 시스템은 놔두고 사람만 바꾸면 된다는 티없이 순진무구한 무개념 앞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군요.

작가가 무슨 죄겠습니까,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하고 아무 거나 실어주는 잡지가 문제겠죠.

아, 좀, 제발 삼류라도 좋으니까 SF를 내놔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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