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댄 시먼즈 지음, 최용준 옮김, 열린 책들 2011.11.10

댄 시먼즈의 {일리움}, {올림포스} 연작을 읽으신 분들은 (특히 {올림포스}까지 읽으신 가련한 분들이야말로) {히페리온의 몰락}을 손에 들어 펼치기 전에, 혹은 {히페리온}의 짜릿한 현기증을 체험하는 와중에 벌써, 치과 진료대 위에 누워 입을 벌린 것보다 백 배는 더 아찔한 불안감을 경험하셨을 텐데요, 다행히도 {히페리온의 몰락}의 결말은 마치 의사가 잠깐 불을 비춰보더니 ‘충치 하나 없이 깨끗하신데요, 그냥 가셔도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예상 외로 멀쩡합니다.

멀쩡한 결말이라고는 해도 댄 시먼즈는 결말 보는 재미로 읽는 작가가 아닌 듯 합니다. 슈라이크의 정체라든가 아우스터의 목적, 헤게모니 연방의 운명, (가장 중요한) 순례자들의 순례의 귀결 등은 밝혀져 봤자 좀 시시하고 실망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모든 것들이 명백하게 밝혀지고 매듭지어지기 전까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호기심을 유지시키는 작가의 글솜씨가 놀랍습니다. 아우스터 침공 전의, {히페리온}에서의 멸망 직전의 세계 묘사도 근사했지만 그건 맛보기에 불과했고 연방의 파멸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히페리온의 몰락}의 긴박감과 박진감은 혀가 내둘러질 지경입니다.

댄 시먼즈는 양자 텔레포트나 인공지능, 인류 진화 등 첨단 소재를 맛깔스럽게 잘 다루면서도 기본적인 관점은 러다이트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올림포스}와 {히페리온의 몰락}에서 모두 특이점 이후 기술들은 수상하고 사악한 것이며, 인류는 마침내 안락하고 편리한 기술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롭되 빈곤한, 개척주의적 전근대 사회ㅡ문명 재부팅을 선택하곤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은근히 서구중심주의적이고 유일신교적인 성향을 보이는 걸 보면 꽤나 기독극우보수주의적인 작가일 것 같은데 {히페리온의 몰락}에서는 부시 정권들의 막장 삽질인, 잘못된 정보로 인한 병신 같은 전쟁을 벌이는 모습이 너무나 실감나게 펼쳐져서 마치 2001년 이후의 작품인 줄 착각이 들 정도(실제로 읽던 중 맨 앞페이지의 판권란을 확인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인 것은 좀 흥미롭습니다. 뭐, 전반적인 가치관이 보수적이라고 정치적으로도 꼭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또, 엄밀하게는 부시가 보수인 것도 아니겠고요..

여담이지만 뒷표지 일러스트는 딱 주일회보 풍이지 않습니까? 라헬을 안고 있는 바인트라우브의 뒷모습은 꼭 무슨 십계를 내려받는 모세나 이삭을 들고 우는 아브라함 삘입니다…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폴라북스 2011.11.15

{파머 앨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고 합시다. 질문한 사람이 SF팬이라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응, 필립 딕이야.’ 끝.

그렇지만 상대가 SF팬이 아니라면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문득 난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슨 말부터 할 수 있을까요? 강제 징집으로 화성 등을 개척하는 UN? 황량한 외계 환경 속에서 환각성 인형 놀이에 중독된 식민지 개척민들? 인형 놀이 세트와 환각제를 끼워파는 거대 기업? 거대 기업에서 유행 예측 업무를 담당하는 미래 예지자? 그가 징집을 피해 정신병에 걸리기 위해 들고 다니는 휴대용 자동 정신분석의? 혹은, 다른 태양계에서 신상을 가지고 귀환한 벤처 사업가? 그가 가져온 새로운 환각제에 얽힌 외계인들의 음모?

{파머 앨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의 인상은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필립 K. 딕의 장편 SF들 중에서 {유빅}에 가장 가까워 보입니다. {유빅}이 한없이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리얼리티의 붕괴 앞에서 개인의 의무와 윤리를 묻는 작품이었다면 {파머 앨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은 마찬가지로 붕괴되는 리얼리티 속에서 무기력하고 나약한 개인의 회개와 속죄를 다룬 작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유빅}과 함께, 국내에 소개된 필립 K. 딕의 작품들 중 가장 진지한 소설들이랄까요. 전형적인 스페이스오페라 혹은 올드 SF적인 조악하고 평면적인 배경 위에서 고도로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절실하고 절박하게 다뤄지는 기상천외한 광경은 SF史 전체를 통틀어도 오로지 필립 K. 딕에게서만 볼 수 있는 장관입니다.

필립 K. 딕에게 익숙한 독자들은 “필립 딕이 또 시작이야!” 혹은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필립 딕이지!”를 외치며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SF. 필립 K. 딕에게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 형이하학적이고 물신주의적인 하드 SF빠들이나 근대 소설의 리얼리즘 세계관 신봉자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이게 무슨 SF야/이게 무슨 소설이야!”를 합창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이게 바로 소설이고 SF지’라고 주장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퇴물도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느 쪽이든 필립 K. 딕이 현대 특유의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느낌을 SF의 비전을 통해 놀랍도록 생생하게 구체화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입니다.

 폴 앤더슨 외 지음, 최세진 외 옮김, 오멜라스 2011.11.25

[조라고 불러다오]는 목성의 묘사가 너무 터무니 없는데다가 심령투사기, 심령학 같은 사이비 학문 용어가 난무하니 도저히 눈 뜨고 지켜보기 힘듭니다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나 주인공의 불굴의 의지는 인상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선집의 다른 모든 수록작들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너무 많이 오래되어 남은 것이 별로 없는 작품입니다. 시간의 세찬 격류 속에 흩어져버린 매력을 다시 되살려 상상해보는 것은 거의 SF 고고학이라고 할 만 할 것입니다.

[유니버스]를 포함한 장편은 이미 봤지만 처음 세상에 나왔던 대로 한 토막만 끊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군요. 하인라인은 청소년용 SF와 성인용 본격 SF 사이의 경계가 가장 흐린 작가이고, 어떤 면에서는 SF의 본질 중 한 측면을 잘 보여주는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끝없는 얼간이들의 행렬]은 우민화와 인구 증가가 재미있게 결합된 작품입니다. (그러고보니 아이디어가 둘 다 좀 수상쩍군요) 물리학과 생물학의 모든 원칙을 전부 갖다버린 레반트만 소크 마취 같은 엉터리 설정이 눈에 거슬리지만 결말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합니다.

[기념할 만한 계절]은 SF 클리셰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금방 기본 아이디어가 보이는 작품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닥다리고풍스런 걸작 선집 수록작답게 이 작품은 시치미 뚝 떼고 느릿느릿 천연덕스럽게 자기 행보를 계속합니다. ‘이상한 관광객’들의 정체는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들의 목적이나 작품의 결말은 짐작할 수 없어 읽어나가는 긴장감은 적절히 유지되고, 무엇보다 ‘이상한 관광객’들의 ‘이상한 소품’을 만들어낸 상상력만큼은 망설임 없이 감탄이 나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으시시한 제목과는 달리 귀엽고 코믹한 아나키즘 SF입니다. 아이디어와 플롯에 비해 분량이 조금 과한 게 아닌가 싶지만, 나름 지루하지 않고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방황하는 씨’멜의 연가]에서 우리는 코드웨이너 스미스가 매혹적인 작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플롯은 과도하게 작위적으로 비틀려 있고 기본 아이디어는 헛점이 많으며, 인물들은 평면적인데다가 행동에 개연성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분량 안에서 상상력을 폭주시켜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분위기에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 부분은 이상하게도 필립 K. 딕을 떠오르게 합니다. 소설적 개연성이나 리얼리티, 과학적 정합성 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들의 작품들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과학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든 문학이 무슨 지랄을 하든 상관 없이 시대를 초월한 고요하고 깨끗한 자리에 놓여 있는 듯이 보입니다.

 존 W. 캠벨 외 지음, 박상준 외 옮김, 오멜라스 2011.11.25

이미 읽은 작품들은 다시 안 읽기로 했는데([유니버스]와 [아기는 세 살], [타임머신]), [거기 누구냐]는 처음 한두 페이지를 무심코 넘겨보다가 결국 다시 다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걸로 리뷰 끝.

이라고 하면 화내실 테니 몇 마디 덧붙여보죠. 캠벨의 스토리텔링은 (당대의 SF들이 대개 그랬듯이, 그리고 아시모프는 결국 극복하지 못했던 바) 굉장히 서투르고 낡은 것입니다만(탐험대장이 대원들에게 지금까지 함께 있는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친절하고 생생하게 설명해주는 도입부를 봅시다. 우스타 쿄스케라면 대원들 중 하나 말풍선을 넣어 “와! 독자들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알게 해주려는 친절한 설명이군요! ;-P”라고 넣었을 법 합니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는 인간 의식의 가장 어두운 곳을 고압선으로 찔러대는 듯한 무언가가 담겨 있습니다. 그 부분을 밝히기 위해서는 SF보다는 호러의 문법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스티븐 킹이 ‘죽음의 무도’에서 이 부분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진 않군요)

[대담한 신경]은 반드시 다 읽은 뒤에 권말 해설을 봐야 합니다. alt. SF는 SF 독자 여러분의 안전한 독서를 위해 12월 31일에 이 부분을 갱신해놓겠습니다.

(12.31 추가분)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대담한 신경]을 읽으면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SF에 눈이 좀 밝은 독자라면 금새 작품의 분위기가 꽤 고색창연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조금 더 지나 사건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배경이 되는 과학/의학적 기술은 터무니없이 황당무계해지는데 서술하는 어조나 플롯은 여전히 진지하고 성실한데다 꽤 탄탄하니 일종의 시차 혼돈, 멀미가 엄습해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공장에서 인공 방사능 원소들을 만들어내는데, 이름이 생소할 뿐더러 용도가 해충 구제입니다. 이야, 방사능 덕에 벌레 안 먹은 깨끗한 농산물, 참 맛있겠어요! 이윽고 사고가 터져서 방사능 화상 환자들이 날라져오기 시작하는데, 의학적 처치들도 좀 수상할 뿐더러, 점점 드러나는 사태의 진상 및 그에 대한 대응책들이 하나같이, 주옥 같이, 거지 같기 이를데 없습니다. 작품의 행방은 점점 SF가 아니라 의학 드라마+스펙터클 재난물로 빠져버리고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의 터무니 없는 우연성을 눈 질끈 감고 못 본 척 외면해주자면) 해결책이 제시되고 실행되는 (작게는 요르겐슨의 치료부터) 과정은 SF적 재미의 모범 답안 같은 느낌입니다. 게다가 “[대담한 신경]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42년이다. 그러니까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가 영국에서 가동을 시작한 1956년보다는 물론이고, 1945년의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원폭보다도 앞선 것이다.”라는 권말 해설을 읽어보면, 아!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어지고 맙니다.

[아기는 세 살]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번에 안 읽었습니다. 이 부분도 추후 (언젠가는) 갱신하겠습니다.

도대체 [타임머신]같은 불멸의 고전에 대해 추후에라도 다시 리뷰를 덧붙여 갱신할 필요가 있을까요?

[양손을 포개고]는 아주 좋은 SF입니다. [거기 누구냐]가 SF보다는 호러에 가깝게 어둠 속의 무의식적 공포를 건드린다면 [양손을 포개고]는 SF답게 밝은 대낮의 이성적 공포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단적으로, [거기 누구냐]에서 대원들이, 복제 괴물임이 밝혀지기만 하면 방금 전까지도 동료로서 이야기하던 존재를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장면을 기억해 봅시다. [양손을 포개고]에서 주인공들은 우아하고 합리적으로, 대항할 기계를 조립합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과연 인간-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지를, 버섯 구름이나 미친 로봇, 시체를 기워만든 괴물에 의지하지 않고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질문하는 작품입니다.

WEB

이번 호 ‘크로스로드’ 게재작은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