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신의 궤도} 배명훈 지음, 문학동네(2011.08.24)

냉동 수면과 항성간 여행, 행성 스케일의 휴양지, 인공적 신, 과학과 혼합된 신흥 종교, 우주적 존재로 변환된 인류 등 SF의 클리셰들이 대거 등장하고 시간적 스케일도 매우 장대하지만(시간적 스케일에 비하면 행성 하나가 망하고 안 망하고는 아주 사소해 보입니다), 소설의 기본 갈등은 은경과 경란의 이복 자매간 반목, 은경과 나물의 남주 여주 결연(삼각 관계는 필수)같은 아침 드라마적인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에 가볍고 쉽게 읽힙니다. 설정이나 짜임새, 인물 조형 등 기본적인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작가의 첫 장편임을 감안하면 다음 작품을 기대할 만 합니다.

  {종말 문학 걸작선1,2} 스티븐 킹 외 지음, 황금가지(2011.10.10)

(띠지 빼고) 뒷표지에 작은 글씨로 인용된 엮은이 서문 중에서 한 구절을 빼면 책표지 어디에도 SF라는 언급이 없지만 거의 모든 수록작이 SF인 앤솔로지입니다. ‘Stories of the Apocalypse’를 ‘종말 문학’으로 승화시킨 출판사의 업적이 눈에 거슬리지만 어쨌거나 ‘세계 종말’이란 SF가 다룰 때 가장 빛을 발하는 소재, 혹은 이야기를 SF 쪽으로 끌고 나갈 수 밖에 없는 소재이긴 합니다. 좋은 앤솔로지에도 꼭 있게 마련인 평작이나 졸작이 여기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꽤 두툼한 하드커버 두 권 분량의 22편의 단편들은 오래 간만에 좋은 SF 단편집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대부분의 수록작이 좋으니 졸작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고물수집(올슨 스콧 카드)], [빵과 폭탄(M. 리케르트)], [마을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방법(조나단 레덤)], 그리고 [그리고 깊고 푸른 바다(엘리자베스 베어)].

WEB

  [여행의 끝] 정보라 지음, 웹진 크로스로드(2011.10~11)

언어학 전공의 암호해독자(수학은?), 며칠 씩 계속되는데다가(에너지는?) 중간 중간 지구와 교신도 가능한(매질은?) 워프,  며칠 씩 워프한 모함으로부터 자력으로 지구까지 귀환하는(대기권 돌입까지!) 구명정 등 작위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엉성한 설정들이 오히려 펄프 SF 시절의 순진하고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연상되어 흥미롭습니다(애당초 전염병을 피해 각종 전문가를 태워 올려보낸 우주선에서 치료를 위한 별다른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든지, 워프 기술까지 개발된 세계가 현재 세계와 거의 동시대로 제시되는 부분부터 비평적 이성은 내려놓게 됩니다. 도입부 이후로는 시대를 나타내는 고유 명사를 배제하려고 애쓴 티가 나는데, 굳이 도입부에 미국 지명과 영어 대사들은 또 왜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 SF로서 엉성하게 느껴질 법한 부분을 빼면 전염병의 묘사가 재미있고 종말 이후 지구의 풍경도 볼 만 합니다. 최소한 읽고 나서 시간이 아까워지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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