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남남성 잡지 ‘에스콰이어’의 2011년 10월호 별책부록 {멀티버스}는 꽤 재미있는 기획을 했는데요, 다름 아닌 수록 작가들의 프로필 작성을 다른 수록 작가들에게 청탁한 겁니다. 덕분에 희대의 친목질 조장 이벤트가 펼쳐졌는데요, 다 함께 썩소를 날리며 감상해봅시다.

21세기 본격 아부쇼 ‘나는 아부다’의 작가별 아부 순위는 크게 세 가지 지표로 산출했습니다. 각각  ‘띄워주기’, ‘친분과시’, ‘미사여구’인데요, ‘띄워주기’는 대상 작가를 얼마나 높이 평가 했는가라는 내용상의 지표, ‘미사여구’는 띄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식어를 동원했는가라는 표현상의 지표, 마지막으로 ‘친분과시’는 그렇게 띄운 상대와의 친분 과시를 통해 얼마나 은근히 자신을 강조했는가의 지표입니다. 나름 평가해보시는 것도 재미있겠군요.

어쨌거나 그래서 alt. SF의 점수는요,

곽재식->김보영

띄워주기1.0 친분과시0.0 미사여구0.5

SF 독자들 사이에서의 김보영 씨의 위상에 비하면 아부랄 것이 거의 없군요. 처음 두 문단에서는 SF와 김보영 씨의 작품 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박하지만 뭔 소린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고 마지막 문단에서 짤막하게 문장에 대한 평가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김보영 씨의 문장이 그렇게 문학적으로 눈에 띄는 편은 아니지만 문법이 정확하다는 식의 평은 너무 짜지 않습니까?

정소연->이수현

띄워주기1.0 친분과시0.5 미사여구0.0

이수현 씨는 아무래도 작가로서보다는 르귄빠번역자로서 활동이 더 활발하다보니 작가 소개로서는 사실 그다지 할 말이 많지 않습니다. 처음 두 문단은 본인 혹은 출판사에서 작성했을 법한 객관적인 사항만 나열하고 있고, 마지막 문단에서 개인적으로 들은 이야기와 개인적인 바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이 특집 자체의 의의에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만, 기대하시라…

이수현->정세랑

띄워주기3.0 친분과시2.0 미사여구1.0

‘띄워주기’에서 1.5점은 첫 장편 홍보 광고 때문이고, 특별히 과대 평가를 했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차분하고 정제된 문장’은 김보영 씨에게 더 어울릴 법한 수식어고, 정세랑 씨 문장은 (내용도 그렇지만) 밝고 가볍고, 봄날 놀이동산 풍선처럼 (좋은 의미에서) 붕붕 떠있지 않나요.

김보영->박성환

띄워주기4.0 친분과시2.0 미사여구3.0

아싸, 드디어 본격적으로 아부 나오기 시작합니다. ‘SF에 대한 가장 깊은 애정과 열정, 해박한 지식, 방대한 독서량’부터 시작해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비밀 사이트나 한정판 개인 제본을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다’를 지나 마침내 ‘한국의 호시 신이치’까지 가는군요.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독서량은 원서까지 아우르는 예전 올드팬들에게나 붙일 수 있을 듯 하고, 뭔가 대단해 보이는 ‘비밀 사이트’라는 것도 예전에 팬덤 출판사 책 하나 잘못 씹었다가 문 닫고 도망갔던 거 아닌가요.

배명훈->윤이형

띄워주기3.0 친분과시3.5 미사여구2.0

‘별로 SF가 아닌 걸 쓰고 있으면서도 ‘본격 SF’라는 말을 먼저 들이’미는 ‘어떤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긴 한데, 생각해보니 한두 사람이 아니군요. 뭐, 넘어가고, 윤이형 씨가 ‘분명히 SF를 쓰고 있’다는 말은 동의하기 힘듭니다. SF 작가라는 게 뭐 대단한 자격이 필요하거나 권위가 달라붙는 호칭은 아니고(본문에선 마치 그런 것 같은 인상이 살짝 묻어납니다만) 일단 글이 SF인 건 SF인 거고 SF가 아닌 건 그냥 딱 SF가 아닌 거잖아요. 윤이형 씨가 (특히 주류 문단 작가치고는) SF에 대해서 호감을 보이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주류 문단 작가님하께서 미천한 우리들에게 관심을 보여준다고) 감격해서 호들갑 떨 필요는 없죠.

정세랑->김창규

띄워주기3.0 친분과시2.5 미사여구2.5

‘아우라’부터 시작해서 ‘선생님’까지 미사여구도 장난 아니고,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인다는 아부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글입니다. alt. SF도 김창규 작가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이런 호들갑은 옆에서 보기에도 좀 머쓱하네요.

박성환->정소연

띄워주기2.5 친분과시2.5 미사여구1.5

정소연 씨도 작가로서보다는 번역자, 기획자로서의 활동이 더 활발한 편이어서 작가로서의 평가는 그리 후하기 힘듭니다. 때문에 작가 소개는 개인적 일화와 인물 평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네요. 전반적으로 큰 과장은 없지만 실속없고 공허한 말들로 일관했습니다.

김보영->곽재식

띄워주기4.0 친분과시0.0 미사여구3.0

차분하고 견고한 작품 세계와는 달리 과장스럽고 호들갑스러운 게 김보영 씨의 개인적 성향인 모양입니다. 느낌표와 ‘부르짖다’라는 동사로 강렬하게 시작하는 첫문장부터 ‘탁월한 유머 감각과 재치, 필력에다 방대한 지식과 깊은 전문성’, ‘은둔고수’, ‘작품의 파괴력과 대중성, 높은 완성도’, ‘작품이 발하는 빛이 눈부시니’까지 곽비어천가가 발하는 빛에 눈이 멀 지경입니다. 곽재식 씨의 글은 읽기에 우선 재미는 있지만 그건 코믹한 상황을 과장스레 꾸미는 입담 덕이 크고, 소설로서는 구성이나 문체, 인물이나 사건 등이 치밀하거나 안정적이거나 잘 짜여져 있는 편이 아닙니다. 소설보다는 이야기에 가깝달까요. 본격적인 SF로보기에도 무리가 많고요. 재밌으면 그만이지 대중 소설에 구성이나 문체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라는 반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만.

정세랑->배명훈

띄워주기4.0 친분과시4.0 미사여구4.0

꺅, 아부력 스카우터가 터져 나갔습니다. 모든 지표에서 최고점을 찍었네요. 본문에서 아예 ‘마음껏 자랑하련다’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만… 다른 미사여구와 찬양은 개인적인 쪽이니까 잘 모르겠고, ‘배명훈이 한국 SF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군요. 폐쇄적인 SF 독자층을 넘어서 대중적인 독자들에게까지 유명해졌다는 점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쪽으로도 이미 듀나가 있고, 한국 창작 SF 자체의 깊이와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것은 김보영 씨나 김창규 씨 등 다른 작가들 아닌가요.

그래서 결과는요,

곽재식 1.5 (6위)
김보영 (9+7)*1/2=8.0 (3위)
박성환 6.5 (4위)
배명훈 8.5 (2위)
이수현 6.0 (5위)
정세랑 (8+12)*1/2=10.0 (1위)
정소연 1 .5(6위)

입니다. 압도적인 점수로 1위에 오른 정세랑 씨 축하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럼 여러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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