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황혼의 들판}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2011.09.02)

지난 세 권 동안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청년은 아버지가 되었으며, 이제 시리즈의 마지막 제4권에서 아버지는 죽음을 앞둔 쇠약한 몸으로,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사건들의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돌이켜보면, 도시가 움직이며 서로 잡아먹는다는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설정으로 잘도 달려온 셈입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회적 진화론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견인도시는 애초에 논리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소재이지만, 스팀펑크 팬시물의 아이콘이라 할 프로펠러 비행선과 톱니바퀴 잠수정, 초고대 문명의 비밀병기 등등이 난무하며 독자들이 이성적으로 숙고할 여유를 애초에 앗아가 버립니다. 그런 점에서 정말로 이 시리즈는 잘 계산된 롤러코스터입니다. 공들여 구축한 조연들이 버려질 때는 가차없이 버려지고, 주인공들은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헤어지고 엇갈리고 오해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며 갈등을 고조시켜 나가지만 플롯은 항상 끓어올라 폭발하기 직전에 해결 국면으로 매끈하게 빠져나갑니다. 조마조마하지만 독자가 견딜 수 없을 정도까지는결코 가지 않는 것은(그리고 그럼으로써 주제면에서도, 우리들을 결국 파멸로 몰고갈 이 시대의 이 미친 광기에 대한 기괴하면서도 흥미로운 은유가 될 수 있었을 ‘도시진화론’이 결국 얄팍한 장식에 머물고 만 것은) 결국 청소년층을 기본 타겟으로 한 모험 SF라는 한계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모험이 시작될 때는 소년과 소녀였던 주인공들이 마지막 권에 이르러 지난 세월의 모든 상흔들을 가슴 깊이 삭여내며 인생과 역사에 대한 소박하지만 진실된 깨달음에 도달하는 모습은 눈물 겹고 가슴뭉클합니다.

(작품 외적으로는 제1권이 출간되었을 당시, 뒷이야기들이 제대로 계속 나올까 미심쩍었던 작년 2월이 아련하기만 하네요. 역자와 출판사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축하드리지만 블로그들마다 스토킹하며 역효과 내는 트래쉬트랙백 마케팅은 제발 갖다 버리세요.)

 {와인드업 걸} 파올로 바치갈루피 지음, 이원경 옮김, 다른(2011.09.10)

석유 고갈과 생태학적 재난으로 지구 전체가 파멸 직전에 내몰린 미래를 태국을 중심으로 매우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작중에서도 언급되지만 서구 제국주의 침탈사에서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했던 태국을 배경으로 설정한 절묘한 선택은 사건이 진행될 수록 의미심장해집니다. 특정 인물에게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지 않는, 그리고 사건 대신 사회상에 초점을 맞춘 (마치 저인망으로 긁어대듯한?) 서술 때문에 전반부 내내  혼란스럽고 지루할 수 있지만 투수태엽 소녀의 꽉 죄어 있던 태엽이 마침내 튕겨나가면서 급진전되는 플롯과 사건들의 폭발은 내내 억눌려 있었던 만큼이나 짜릿합니다. 총체적인 사회 묘사와 각기 나름대로 개성있는 등장 인물들의 형상화, 뚜렷한 플롯과 다채로운 서브 플롯 등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그야말로 수준급입니다.

하지만 SF로서의 재미는? 글쎄요, 휴고상을 받았으니 해외에서는 대중적인 재미도 인정받은 셈이지만, 국내 독자들의 입맛에 잘 맞을지는 모르겠군요. {와인드업 걸}이 보여주는 세계는 그다지 새로운 세계가 아니며 게다가 태국에만 한정지어져 있어 즉각적인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충족시켜주지 않습니다. 플롯도 세계의 회복이나 멸망처럼 시원하고 화끈한 것이 아니라 세계 일부의 현상태 유지에 불과하니 답답하고요. 석유 고갈 등으로 문명 수준이 후퇴한 탓에 신기하거나 재미있는 소품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결말에 도달하는 방식도, 플롯의 급전도 모두 지극히 인간적일 뿐 SF 특유의 장대함이나 기발함이 없고요. 대중 소설로서도 그다지 재미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액션은 제한적이고 화려하지 않으며, 화끈하기보다는 비장하고 처절합니다. 출판사 책소개에서는 밀애라든가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투수태엽 소녀가 당하는 성적 학대들은 그야말로 고문과 다름 없어 불쾌하기만 하고요. 뚜렷한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나 영웅적인) 주인공 한 사람에게 의지해서 읽어나가는 대중 소설의 독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감정 이입이나 대리 만족도 가능하지 않지요.

이 모든 것이 결국 해외 SF의 최신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면 흥미로운 질문이 생겨납니다. 한국의 SF 독자들은 과연 얼마나 이 소설을 즐길 수 있을까요?

(태국과 태국을 둘러싼 동남아시아의 모습이 꽤 그럴 듯 해서 작가의 출신이 궁금한데 출판사와 역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군요. 인터넷에서 설렁설렁 검색해본 결과로는 미국에서 출생한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모양입니다. 대학에서 아시아에 대해 공부하고 여행도 다닌 모양이고요.)

 {에스콰이어} 2011년 10월호 별책 부록  {멀티 버스}

잡지 부록이라지만 실질적으로는 올해 나온 (아마도) 유일한 국내 SF 단편집인데 [진화신화](김보영)가 그 맨 첫 수록작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의문입니다. 작가의 이름값은 인정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SF 독자들 사이에서의 이야기고, 작품 세계 자체는 일반적인 독자들이 SF에 대해서 갖는 선입견을 깨부수는, 차분하고 밀도 높은 이야기이니 진입 장벽이 좀 있지 않습니까. 가벼운 단편들로 시작해서 한참 흥 올랐을 때 작품집 중간 쯤에서 묵직하게 한 방 때리는데는 그만이겠지만… 그러니까 에피타이저 나올 순서에 스테이크가 올라온 모양새입니다. 작품 자체는 (여러 번 울궈먹은 작품이지만 alt. SF에서는 처음이니 잠깐 언급하자면) 세계의 작동 방식 자체는 판타지스럽지만 (유사)진화론적 용어로 어쩐지 SF스럽게 잘 포장한 재미있는 단편입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 세상의 조악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통찰하는 것은 SF만의 맛이고 멋이지요.

[안개 속에서](이수현)은 판타지 단편이었던 것을 SF 단편집에 옮겨 심으려다보니 겉칠과 밑바탕 사이가 좀 붕 떠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덧칠한 효과도 별반 나타나지 않고요. 아니, 오히려 역효과만 났지요. 덧칠로서 중간에 살짝 살짝 언급된 다른 지역의 이국적 풍경이 반전처럼 제시되는ㅡ주제와 직결된 마지막 장면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신비하게 느껴져 버리니 이를 어찌 합니까. 게다가 SF스럽게 그려낸 그 이국적 풍경도 논리 면에서는 그냥 판타지스럽습니다. 같은 행성 위에서 중력 차이가 그 정도로 발생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게다가 안개 고등어든 하늘치든 산란기 이동의 시작이라면서 알 혹은 정액 덩어리로 추산되는 거품질 물질들이 떨어져 내리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오류입니다. 산란지로 이동하기도 전에 출발하면서부터 산란 혹은 사정이라니 무슨 빨리빨리가 몸에 밴 한국산 고등어들입니까.아니면 조루? 마지막으로, 술집 분위기나 술집에 죽치고 있는 사람들의 대사 등도 술집 가본 적 없는 중고등학생이 머릿속으로 묘사해낸 듯이 현실적인 무게감이 전혀 없어 또한 작품의 완성도를 깎아먹습니다.

[모조 지구 혁명기](정세랑)은 영리한 단편입니다. 주제나 내용 면에서 욕심 부리지 않았고, 몇 분 동안 가볍게 즐기기 딱 좋은 읽을거리로 스스로 만족했으며, 덕분에 독자들도 충분히 만족해할 만 합니다. 발상이나 스토리 면에서는 다소 듀나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문장이나 감각은 듀나보다 가볍고, 발랄한 느낌이군요.

[얼음, 땡!](박성환)은 ‘아시발꿈‘ 한 마디면 리뷰 끝. …이 사실은 사실입니다만, 군말 좀 붙여보자면, 뜬금없이 {오즈의 마법사}의 한국판이 튀어나오는 부분이야 꿈에서 깨기 직전에 리얼리티가 붕괴되는 부분이니 그럴 수 있다치더라도(작품 외적으로는, 고무 링과 관련된 갈등이 그 이상 계속 지속 혹은 발전되기 힘들죠), 꿈 바깥-액자 바깥의 이야기의 해결 불가능한 내적 모순이 아주 거슬립니다. 꿈 안-액자 안 이야기가 21세기초-그러니까 바로 거의 지금 현대나 다름없는 근미래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꿈 바깥-액자 밖 이야기에서 꿈의 주인인 ‘지구인 기관사’는 정확한 시대 설정은 없지만 외계인들과 지구인들이 함께 초광속으로 날아다니는 먼 미래의 사람 아닙니까. 원래 다른 작품에서도 비약이 종종 보이고 내용 상의 오류도 툭툭 튀어나오는 작가이긴 하지만 무성의한 ‘아시발꿈’ 결말도 그렇고 이번엔 좀 너무 심했습니다.

[오보에가 있는 토요일](윤이형)은 애초에 SF가 아니라서 여기서 뭘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에서는 신체를 에너지로 변환한다고 해놓고 몇 쪽 지나지 않아서는 소립자보다 작은 입자로 떠도는 것은, 뭐 현대 물리학의 에너지-물질 변환 끌어다 대면 못 할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소립자보다 작은데다 지성체이기도 한 입자의 존재’란 인간의 과학이든 외계인의 물리학이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설정이지 않습니까. 어쨌거나 지구인의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 지구인의 발성 기관을 가지고 오보에 소리를 내는 것도 괴이하고요.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당시 사건의 마지막 부분도 작위적이기 그지없습니다. 갑작스럽게 초공간 입구를 열어버린 상황에서 적국의 첩자나 살아남은 사람들이나 참 잘도 차례차례 변환기에서 입자 혹은 에너지로 변환할 여유가 있었겠네요? 그러니까 결국 외계인이네 초공간 항행이네 하는 것들은 모두, SF에서, SF 특유의 SF적 유사-리얼리티(혹은 작중 리얼리티)를 가지고 사용되는 SF의 코드가 아니라, 순문학 특유의 구리고 역겨운 환상적 장치에 불과할 뿐입니다. 30대 사회 부적응 히키코모리 신경쇠약 여성의 내면을 탐구하기 위해 끌어다 쓴 비유일 뿐이죠. 아니, 정말로 구린 건 이쪽이군요. SF 독자들에게 SF라면서 결국은 30대 사회 부적응 히키코모리 신경쇠약 여성의 내면 탐구에 지나지 않는 걸 들이미는 건 너무 하잖습니까.

[카일라사 ](김창규)에서는 우울증에 걸린 SF 작가가 어느날 문득 자신이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의 유명한 장군이었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우울증에 걸렸거나 안 걸렸거나 SF 작가들에게 유치하지만 매력적일 로망이 작품 속에서나마 실현되는군요. 그런데 로망 혹은 몽상의 실현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그 개인 혹은 그 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이상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심지어 해당되는 사람도 자신들의 로망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현되었을 경우에 즐거워할지 잘 모르겠네요. 넘어가서, 세계관을 봅시다. 일상-지구를 넘어선 실상-외계의 전투 묘사는 단편적이지만 꽤 스케일이 커서 잘만 하면 감질맛나게 재미있을 듯 한데, ‘헬륨을 들이마시고 중력을 가지고 놀면서 싸우는’이라든가 ‘서로 상대방의 몸을 찢고, 그 살점 안에 가득한 원자를 씹어 먹으면서 이 우주에서 저 우주로 뛰어다’니는 것 혹은  ‘행성의 배치를 재정렬하면서 우주전함으로 기습을 벌이고 시공의 틈새를 통과하면서 존재를 복사해서 동시에 여러 장소에 출동해서 싸웠던 다중백병전’ 등은 좀 너무 식상하고 유치하지 않습니까. 흔해 빠진 구닥다리 스페이스오페라식 서술입니다. 그 밖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과 1인칭 주인공 시점이 겹쳐지는 수법은 박성환 씨의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서 이미 봤던 거라서 마찬가지로 식상합니다.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서도 그다지 참신하거나 필연적으로 사용되진 않았지만요.

[앨리스와의 티타임](정소연)에서 우리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를 만나게 됩니다. 아, 물론 그 필명을 쓰지 않고, SF도 쓰지 않는 앨리스 셸던이긴 하지만요. 좋은 글은 작가가 즐거워하며 쓴 글이라는 흔해빠지고 낡아빠진 말이 있습니다. ‘잘 쓴 글은 작가가 잘 쓴 글이다’와 다를 게 뭐냐 싶은 말이지만, 이 작품에는 잘 들어맞는 듯 하군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팬인 작가가 팬심 가득한 손으로 쓴 작품답게 셸던 부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이라든지, 작가가 쓰면서 느꼈을 즐거움이 행간에 듬뿍 묻어나 독자마저 함께 즐거워하도록 합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에 대한 해묵은 심리적 갈등이 셸던 부인과의 만남으로 해결되는 과정이 약간 짧고 다급해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겨워 보입니다.

[읽다가 그만 두면 큰일 나는 글](곽재식)은 요약적으로 서술되는 우주 밖 우주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는데 일종의 액자처럼 이를 둘러 싼 ‘나’의 이야기가 액자 안 이야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아 어색합니다. 특히나 책 위에서 이루어지는 계산으로 우주를 창조하자는 결론은 좀 뜬금없죠. 액자 안 이야기에서도 아입자 가속기가 마치 만능 도구처럼 그려지는 것이작품 안에서 열심히 설명은 했지만 조금 비약적이며, 우주 바깥 프로그래머의 성향에 대한 두 가설을 소승과 대승으로 이름 붙인 것은 꽤 억지스럽습니다. 창조주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라면 차라리 기독교 철학 등에서 찾아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발자국](배명훈)을 ‘공각기동대’에 대한 오마주 혹은 팬 픽션으로 읽는 것은 명백한 오독이겠지만, 아주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2008년 초여름의 시청 앞 광장에 용산과 천안함을 겹쳐놓으니 유구한 SF사에서도 길이 빛날, 장중하게 암울한 디스토피아물…이 아니라 내가 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 식의 블랙코미디가 튀어나오는군요. 하려면 똑바로 하라고 정부에 건의하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결말에는 아예 ‘농담’이라는 소제목의 짧은 챕터를 삽입했는데, 이는 단편 구성 상으로는 다소 불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진담’ 챕터로 바로 끝맺는 것도 어딘가 맹숭맹숭하군요. 결말의 호흡 조절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는 옥의 티가 아니라 계륵일 듯 합니다.

WEB

이번 호에는 리뷰할 웹 단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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