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획에서 언급했다시피, PC통신 동호회→인터넷 사이트+개인 홈페이지→블로그로 이어지던 팬덤 내 매체 변화의 흐름은 이제 더욱 파편화된, SNS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블로그의 시대는 끝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예를 들어 블로그 전문 서비스 이글루스만 하더라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되던 2006년까지는 SF 팬들의 독서 감상들이 트랙백이나 덧글을 통해 꽤 잘 엮이고 있었지만, 2006년 이후로는 와해되어버렸죠), 이미 흘러간 시대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정리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때에 꿋꿋하게 남아 있는 작은 섬들에 대한 짧은 기념비입니다.

1. !wicked

http://ethar.toodull.com/

블로그 운영자의 신상 정보는 중요하지 않을 뿐더러 가볍게 언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오랜 SF팬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 PC 동호회에서 사용했던 닉네임도 예전엔 알았던 거 같은데 눈팅만 계속하다보니 어느새 편리하게도 까먹어 버렸네요.

태그 클라우드를 보면 아시겠지만 찰스 스트로스를 비롯해서,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영미 최신 SF에 대한 정리가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뭐 구태여 외국 동향에 사대주의적으로 목맬 필요야 없겠지만, 그리고 최신이 마치 최선인 양 맹목적으로 떠받들 필요야 없겠지만, 이 분야의 앞선 흐름들이 어디에 어느 만큼 도달했는지는 이 분야를 좋아하는 한, 심지어 이 분야에서 감상을 넘어 창작을 할 경우에는 당연히 필요한 정보들입니다. 게다가 이제 조금 숨통이 트였다고는 해도 해외 근작들의 번역 출간이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한ㅡ이 상황은 아마 앞으로도 운이 좋아봐야 겨우 변화가 없거나 최악의 경우 다시 예전처럼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ㅡ원서를 직접 읽고 성실히 정리, 소개해주는 이런 블로그들이야말로 국내 창작 SF의 질적 향상에 눈에 띄지 않아도 소중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실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주관적 감상을 통해 걸러진 인상이라 자칫 허상일 가능성도 간과할 수는 없지만, 포스트들에서 소개되는 최신 해외 SF들의 흐름을 보면 현재 국내 작가들 혹은 작품들을 가지고 ‘해외에 내도 될 정도’ 운운하는 건 정말 무식한용감한 과찬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2. SF 별점 다방

http://sfstarcafe.tistory.com/

SF 작가이기도 한 박성환 씨의 SF 평점 블로그입니다. (일 년 가까이 개점휴업 상태인 블로그를 소개하게 되어 죄송하지만, 원래 소개하고자 했던 이글루스의 한 블로그에서 기사화를 사양해서 땜빵으로 때우게 되었습니다. 별점 다방이라도 없었으면 이번 호 특집은 날아갈 뻔 했습니다. ;;;)

말 그대로 국내에 출간된 SF들에 대해 전체 평점인 5점 만점의 별점과, ‘재미’, ‘감동’, ‘SF’의 다소 투박하지만 직관적인 세 가지 세부 지표로 평가하는 블로그입니다. 초기에는 예전에 출간된 SF들을 재고 정리 수준으로 쏟아낸 다음, 차근차근 신간들을 성실하게 평가하더니 몇 번의 이사 끝에 결국은…

아마 이 블로그의 가장 큰 미덕은 (신간일 수록 후한 별점 인플레이션이 없잖아 보이지만) 정직하고 솔직한, 가차없는 평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평가 자체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솔직한 주관은 오히려 가식적인 객관보다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아마 그게 바로 블로그라는 매체의 가장 기본적인 장점이었겠지요. 공사다망하신 줄은 짐작하지만 본 기사가 별점 다방에 다시 업데이트가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3. rani’s ORCHID ROOM

http://blog.naver.com/spikebebob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네이버 블로그입니다. 앞의 두 블로그에 비해 (물론 ‘!wicked’도 SF 외의 포스트들ㅡ특히 음악 관련ㅡ도 많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다 더) SF에 관한 포스트의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고 심지어 일상 관련 포스트들도 있어 기사화를 허락하실지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허락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전문성이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SF 관련 포스트들의 목록을 잠시 살펴보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 The Bloody Battle of Broccoli Plain . by 듀나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 크로스로드 SF 컬렉션 ④ by 듀나 外 9人

별의 계승자 . Inherit The Stars by 제임스 P.호건 ㅣ 이동진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② : 우주적 공포 by H.P.러브크래프트 ㅣ 정진영 옮김 

그림자 잭 . JACK of SHADOWS . by 로저 젤라즈니 ㅣ 이수현 옮김 

여름으로 가는 문 . The Door Into Summer by 로버트 A. 하인라인 ㅣ 김혜정,오공훈 옮김

유, 로봇 . U, ROBOT by 정희자 外 9人 from 황금가지

얼터너티브 드림 . Alternative Dream by 듀나 外 9人 from 황금가지 

이 블로그가 얼마나 보석처럼 소중한 곳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해외 번역본은 물론이고 특히나 몇 안 되는 국내 창작 SF들에게 이렇게 성실하고 성의 있는 반응을 보여주는 블로그를 요즘 들어 더 찾아볼 수 있을까요? rani’s ORCHID ROOM의 운영자도 출판사들의 서평 이벤트에 종종 참여하고 있는 건 알지만, 인터넷 서점 서평란을 더럽히고 있는 여타의 무성의하고 무식한데다 게으르기까지한 서평 이벤트 중독자들의 피상적인 감상들ㅡ심지어는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작가와 출판사, 표지, 심지어 장정이나 종이질까지 출판사 홍보 문구를 그대로 읊는 작자들도 있죠ㅡ에 비하면 군계일학이라 할 만 합니다.

팬덤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상호교류를 통한 지속적인 뽐뿌질이겠죠. 끊임 없는 상호 구매 충동과 그 실행을 통해 시장을 살리고 장르를 살리고 작가를 먹여살리고 개인의 인생이 행복해지고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나아가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오버해서 죄송합니다.

비록 블로그의 시대가 저문다고 해도, 어딘가에서는 다시 또, 또다른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SF 독자들의 진지하고 솔직한 의견 교류가 이어질 것입니다. 그건 아마 고립된 행성들의 지성체들이 전자기학을 어느 정도 배우면 당장 우주를 향해 전파를 쏘아올리고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안테나들로도 우주 먼 곳들을 훑기 시작하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할 것입니다. 조금은 고독하고 쓸쓸하고, 조금은 또, 간질간질하게 재미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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