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 소담 출판사 2011.08.12

굳이 야후와 휴이넘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형식과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걸리버 여행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이른바 프로토 SF. 작가가 SF에 조예가 있거나 장르적 자의식을 가지고 쓴 것이 아니라, 60년대에 나온 작품임에도 서브 장르로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의, 자유분방한 의사과학적 상상력의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향연이 펼쳐집니다. 작품의 의미 구조는-이후의 영화화된 줄거리들과 더불어-크게 둘로 나우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동물화되어버린 인간들을 통한 인간, 인간성, 인간다움의 풍자, 그리고 인간화된 원숭이 사회를 통한 인간 사회, 사회 제도, 권력 구조의 풍자. 풍자보다는 조롱이나 희화화가 더 정확한 표현인데, 덕분에 심각하게 골머리 싸잡으며 읽을 필요 없이, 술술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계열 작품들의 장점이죠. 처음에는 액자식 구성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이야기에 몰입하기 힘들지만, 결말에서는 무심결에 무릎을 치며 탄복하게 됩니다. 영화에서처럼 비장한 맛은 없지만 사이다처럼 상쾌하고 톡 쏘는 이중 반전도 재미있습니다. 프로토 SF의 번역 출간은 한국에서는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조금 쉬운 수준이니, 이 쪽 계열의 재미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강추입니다.

 야나 레치코바 외 지음, 김창규 외 옮김. 행복한 책읽기 2011.08.19

이외의 표본이라고는 스타니슬라프 렘 밖에 없으니 무리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겠지만, 동구권의 SF는 어쩐지 검게 변색된 윤활유와 무딘 톱니바퀴 투성이의 크고 아름다운묵직한 기계 덩어리, 혹은 뿌연 유리창에(게다가 여기저기 금 간) 희미하게 떠오르는 광학 디스플레이 같은 것들이 잔뜩 떠오릅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은 대머리였다. 무거운 우주복을 48시간 이상 계속해서 입고 견디려면 그게 완벽한 머리 모양이었다. ‘ ([소행성대에서] 457쪽) 같은 구절들. 영미권 SF들이 티타늄이라면 이쪽은 단순무식한 납이랄까요. 묵직한 맛이 읽기 좋습니다. 아니, 그냥 맥주에 비유해도 되겠군요. 가볍고 밍밍한 미국 병맥주와 묵직하고 향기로운 체코 생맥주(여담이지만 영국 맥주도 좋죠, 미국 SF보다 영국 SF들이 어딘가 독특하고 야릇한 것처럼.) 작품들의 전반적인 수준은 영미권 최신 SF들처럼 도도하게 초월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외권 하부에 견실하게 머무르고 있어 이제 겨우 저속권에 진입하기 시작한 한국 창작 SF계에 희미한 희망을 준다고 할 수 있겠군요. (아, 쓰고 나니까 안습이네요) 아래는 수록작 개별 리뷰입니다.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페트르 헤테샤 & 카렐 베베르카)는 독특한 맛의 동구권 게임 판타지 SF입니다. 게임 접속자인 주인공이 연구소 연구원이라는 설정에서는 동구권 특유의 관료주의 비판이 맛깔나고, 게임 안에서는 지능이 있는 좀비 집단의 피카레스크적인 모험담이 재미있습니다. 게임-가상현실의 안과 밖이 서로 뒤섞이는 결말은 베르베르스럽지만 베르베르처럼 천박하거나 경박하지는 않습니다.

[영원으로 향하는 네 번째 날](온드르제이 네프)는 별로 상관 없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이 떠오르는 단편입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수학과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세계 사이의 기묘한 갈등. 결말은 체코 특유의 문학적 향취가 가득합니다.

[아인슈타인 두뇌](요세프 네스바드바)는 아줌마 SF로 분류할 수 있을 글입니다. ‘인생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 같이 나눌 때 오히려 풍요로워져요’ 같은 주제는 SF가 아니라 아침 일일 연속극(아, 여기는 막장 스토리 전문이었습니까? 그럼 갈 데가 없어지네요.)에 어울려 보입니다.

[스틱스](이르지 네트르발)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주제가 상이해서 당혹스럽습니다. 이 탐사 기지가 언제부터 세워져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데다가 후반부 시코르스키가 허무한 투신을 감행하기 위한 구성상의 필연성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소모되니 뜬금없을 수 밖에 없지요. 후반부는 {솔라리스}스럽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짝퉁스럽습니다. 게다가 ‘카파파’라든가 ‘오미크론 제로 입자’ 같은 신조어들이 작품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브래드버리의 그림자](프란티셰크 노보트니)는 좋은 단편입니다. 브래드버리에게 기댄 제목과 기본 발상은 자칫 작품을 과소평가하게 할 수 있겠지만 브래드버리보다는 스타니스와프가 떠오르는, 묵직한 작품입니다. 내부에 격실들을 보유한 탐사 로봇이 독특하고, {솔라리스}를 연상시키는 회한과 추억의 과거 망령들이 작품에 고풍스러운 풍취를 더합니다. 다만 화성이 그만큼이나 이질적이고 위험하고 독특한 환경으로 제시되는 것은 조금 어색하네요.

[제대로 된 시체답게 행동해!](야나 레치코바)는 사실상 SF보다는 판타지에 더 가깝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아있도록 만드는 기제가 특수 약품과 기계로 제시되는데, 마법과 약가루로 대체해도 크게 다를 바 없지요. 로맨스는 조금 뜬금없고 급격하며, 결말에서 제시되는 반전은 일찌감치 눈치챌 수 있어 반전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전반적으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비범한 지식](루드비크 소우체크)는 고려원에서 냈던 {코믹 SF 걸작선}이 딱 어울려 보이는 소품입니다.

[양배추를 파는 남자](스타니슬라프 슈바호우체크)는 짧고 단순하며, 영미권 SF에서 익히 다뤄 진부하다 못해 통속적으로 느껴지는, 전면 핵전쟁 이후 중세로 회귀한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스토리는 짧지만 강렬하고 결말을 빛내는 문학적 향취도 향긋합니다. 동일한 주제도 영미권 SF에 다룬 것과 영미권 외에서 다룬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차이를 만들어내는군요. 한국의 SF도 그럴 수 있을까요?

[집행유예](야로슬라프 바이스)는 SF 농도가 옅은 단편입니다. 외롭고 상처 받은 소년이나, 지치고 닳아빠진 사내의 심리를 깊이 파고 든 점은 인상적이지만 너무 문학으로 가버린 나머지 SF 읽는 맛은 밋밋하군요.

[소행성대에서](미로슬라프 잠보흐)는 단편집의 마무리로 딱 알맞은, 즐겁고 신나는 본격 SF입니다. 몸의 95 퍼센트를 기계로 대치한 사이보그의 모험담은 SF 바깥에서 상투적이고 피상적으로 읊조리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시각각으로 휘발되는 인간성에 대한 자아의 실존적 불안감이 소름끼치도록 생생하고, 인간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이보그란 상투적이지만, 우주 해적들과 벌이는 공간 전투는 오, 박진감 넘칩니다. 인간 의식과 기계적 무의식 사이에 놓인 긴급 프로그램도 재미있는 설정이고요. 상쾌한 결말까지, 즐겁게 읽기 좋습니다.

WEB

  [상가라도] 고장원 지음. 크로스로드 2011.08

고장원 월드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세계는 시간 여행이 가능해진 최첨단 미래 세계임에도 전근대적 욕망으로 들끓는 인간들이 득시글거리고 사회상은 딱 20세기스러운 21세기 한국 사회처럼 천박하고 야만스러우며, 위악적인 화자는 마치 무슨 ‘역사 스페셜’에라도 출연한 양 끊임없이 각주스러운 정보들을 본문에서 주절거립니다. (아니, ‘역사 스페셜’보다는 ‘인간 vs. 역사’ 쪽이 더 어울리겠군요. ‘저는 지금 삼국시대 가야 변방에 맨몸으로 떨어졌습니다. 우선 옷부터 구해야겠군요. 이 시대의 의복은 중국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아, 잠깐만요. 여기 우륵의 머리카락이 있군요. 유전자 덩어리입니다. 값 좀 나가죠. 일단 챙겨둬야겠어요.’ 운운)

사찰이 조선 시대처럼 산 속에 들어가 있는 등의 역사적 오류(아니, 잠깐, 두메산골 법당이야 그렇다 쳐도 승려 단 둘이 사는 주제에 불공은 안 드리고 땅굴만 파고 살았나 난데 없는 지하 통로는 웬 말입니까, 도대체 이거 뭐하는 땡중들인 겁니까?)는 이 작품의 핵심은 아니니(역사적 재현ㅡ혹은 재현에 필요한 역사 지식의 과시에 지나치게 치중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일단 넘어가고, 노래면 그냥 무조건 노래인지 장르에 상관없이 작곡가,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의 유전자를 뒤섞으면 가야금 천재가 나온다는 부분도 지나치게 유전자 결정론적이고, 결정적으로 예술에 대해 지나치게 무식한단순한 일반화가 아닐까 싶은데(성악가랑 판소리 명창이랑 도대체 얼마만큼 재능 상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게다가 유전자 짬뽕의 결과가 왜 하필 가야금? 극 중에서 묘사하는 걸 보면 거의 피리로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재규어 준이치 수준입니다. 가야금이 아니라 앰프 잔뜩 단 신서사이저에요.), 이것도 뭐 부수적인 부분이니까 넘어갑시다. 달에서도 부동산 투기를 벌이는 경악스런 한국인의 실상이나 여기에 장단을 맞춰주는 대기업 대리인(“잘 묻어두면 대박이 나겠던데요” 이건 뭐 껍질만 외국인이군요), 유전자 조합 결과 태어난 아이를 사실상 노예 계약으로 묶어놓는 전형적인 한국 아이돌 산업스러운 미래 ‘예술계’의 참상 등등도 다 주변적인 거니까 넘어가기로 하면…

핵심은 소녀가 먼 과거로 돌아가 역사적 인물과 사랑에 빠지고, 시간 여행 특유의 제약으로 필연적으로 이별하며, 이별을 통해 성숙하게 된다는 꽤 그럴싸한 플롯인데, 이게 앞서 말한 핵심이 아니고 부수적이고 주변적인 것들이 죄다 가리고 덮고 어지럽히고 더럽혀서 제대로 살아나지를 못했습니다. 게다가 성숙의 계기란 게 고작 시간 여행의 결과 불가피한 유산이라니… 아니, 이 시리즈의 전통은 여주인공이 과거에 떨어져 아이 가지고 현대에 돌아오다 유산하는 게 되는 겁니까? 거 되게 기괴한 전통이네요. 시간여행물이 아니라 시간낙태물?

결말은 결말이라고 쓴 건지 모르겠네요. 위악적으로 느껴지리만치 역겹도록 이해타산적인, 환쟁이가 아니라 삼류 마초 장돌뱅이의 독백으로 끝맺는 건 도대체 반전의 묘미만 추구한 공허한 형식적 조작입니까, 아니면 인생사 다 그런 거고 돈이 최고라는 교훈의 전달을 위한 장렬한 외침입니까?

이 리뷰가 불쾌한 느낌을 준다면, 실제 작품은 훨씬 더 불쾌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페이스 보이] 박형근 지음.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 2011.08.12

SF라고 부르기에는 망설여지지만, 어쨌거나 귀엽고 영리한 단편입니다. 음모론은 아무리 우주를 배경으로 외계인이 등장한다고 해도 SF와는 정반대의 논리이기 때문에 내공이 깊지 않은 한 건들면 건들 수록 SF로부터 한없이 멀어지게 되는 소재인데, 이 작품은 SF가 되고 싶은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듯 하니 별 문제가 안 되는겠군요. 외계인의 존재 여부나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 전체의 허구성, 아니, 애초에 우리가 생각하던 우주라는 것의 실상까지, 모두 한 남자의 귀엽게 비뚤어진 순정을 말하기 위해 끌어온 소재일 뿐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상표 등 외국 고유 명사가 남용처럼 느껴지지만 꿈처럼 몽환적이고 동화처럼 아기자기한 작품 전체의 분위기에는 오히려 어느 정도 기여하는 면이 있습니다. (언제쯤 네이버에서 제대로 된 SF를 읽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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