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의 1, 2권 출간으로 마침내 완간된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은 권수나 권당 쪽수, 무엇보다 중편부터 엽편까지 분량도 다양한 수록작들의 편수를 생각하면 한 번에 개관하는 것이 무모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서 클라크가 SF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특히나 1969년 달착륙을 정점으로 하는 미국, 소련의 우주 탐사 경쟁과 단순히 겹쳐지기만 하는 것이 아닌 활동 시기를 생각해보면 주마간산격으로나마 한 번쯤 해볼 만 한 일일 것입니다.

 

1937~1939

아서 클라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로 흔히 언급되는 올라프 스테플든이 {최후와 최초의 인간들}을 발표한 것이 1930년, {이상한 존}을 발표한 것은 1934년입니다. (34년에는 아시모프와 클라크 모두 큰 충격으로 회상하는 스탠리 와인바움의 [화성의 오디세이]가 발표된 해이도 하군요) 그리고 아서 클라크가 첫 단편 {유선전송}을 쓴 것은 1937년, 의미심장하게도 캠벨이 <어스타운딩 스토리즈>의 편집장에 취임한 해입니다.

1937년

[유선전송] : 아서 클라크, 하면 {유년기의 끝} 의 장대한 스케일과 서정적인 감성, {라마와의 랑데부}의 치밀한 상상력과 우아한 위트가 떠오르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단편입니다. 왜냐하면, 끝내주게 유치하고 허접하거든요. 얼개는 미래의 서술자가 과거의 독자에게 신기한 미래 세계 이야기를 조곤조곤 시시콜콜 들려주는 형식인데, 참으로 유치하고, 결말은 나름 문명 비판적이고 기업 냉소적인 반전으로 마무리 짓고 있는데 눈 뜨고 봐주기 힘들게 허접합니다.

물론 이건 작품이 발표된 시기와 작가의 연령을 무시한 전적으로 무식한 혹평일 뿐입니다.  E. E. 스미스가 유치한 우주활극 {우주의 종달새}로 인기를 얻은 게 불과 10여 년 전이었고, 그것도 건즈백 이후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본격 장르소설화가 착착 진행된 SF의 핵심지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에서 아마추어 팬진에 소설을 보내던 갓 스무 살의 애송이였던 게 당시 아서 클라크였으니까요. 클라크의 본모습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건 1946년의 (저 유명한) [구조대]부터입니다. 그 이전 작품들은 뭐, 90년대 국내 PC 통신 SF 동호회 창작란 읽는 기분으로 읽는 게 제맛이죠.

1938년

[우리는 그렇게 화성에 갔다] : 활기 차고 유쾌한 어조는 와인바움을 연상시킵니다. 영국식 유머가 허풍스러운 서술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격이 너무 떨어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지구에서 퇴각하라] : 전반적으로 썰렁하지만 흰개미들의 오버테크놀러지에 대한 묘사에는 클라크 특유의 솜씨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유명한 제3법칙을 연상시키는, 숭고미에 가까운 경외감을 가장 적절한 시점에서 간결하지만 적절한 필치로 가장 적절하게 터뜨려 버린달까요.

1939년

[백일몽] : 형식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특히나 결론(결말이 아니라)도 그렇고, SF라기보다는 짧은 에세이에 가까운데 수록된 이유를 알 수 없네요.

 

1941~1945

2차 대전 중 Royal Air Force에서 radar instructor and technician으로 복무하던 시기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클라크의 본모습이 {구조대}를 전후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어쩐지 군대 가면 사람이 된다는 속설이 떠오르…

1942년

폰 브라운, V-2 로켓 발사에 성공한 해입니다. 그 소식이 클라크에게도 전해졌을까요? 전시의 군대에서 클라크는 그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각성] : 이 해에 발표된 두 작품은 기이하게도 프레드릭 브라운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맛이 나는 짧은 단편들입니다. [괴짜]보다는 [각성] 쪽이 훨씬 수월하고 대중적입니다.

[괴짜] : 이쪽은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향취가 나는 엽편입니다. 불가해하지만 나름대로 맛깔스럽습니다.

1945년

이 해 10월, 클라크는 잡지 Wireless World에 정지위성을 통한 통신 중계의 아이디어를 발표합니다. SF 창작에 있어서도 클라크 스타일을 완전히 확립한 해입니다.

[허점] : SF에서 종종 보이는 서간체(?) 단편입니다.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지만 결말의 반전을 잘 살리는 형식입니다.

[구조대] : 90년대 초에 박상준 씨 편역의 {멋진 신세계}에서 한 쪽 분량의 줄거리 요약을 읽은 것 만으로도  ‘감동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어’졌다가 마침내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온전한 단편을 읽으며 종교적 엑스터시에 가까운 감동을 맛본 올드팬이 저 혼자만은 아니겠지요? (오글거리는 내용에 맞게 듀게체 좀 써봤습니다)

기법 면에서는 기술적으로 디테일한 클라크 특유의 묘사가 다소 건조한 느낌도 없지 않은 안정적인 어조 속에서 치밀하게 전개됩니다. 내용 면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굴의(?) 기술적 낙관주의.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던 때에 나온 단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1946~1953

2차 대전 후 the British Interplanetary Society의 의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전반기에는 일반적이고 고전적인 SF들이, 후반기에는 점점 우주 여행이 몽상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내려오면서 보다 다큐멘터리적 정밀함으로 우주 탐사를 서술해나가는 클라크 특유의 작품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1946년

[기술적 오류] : 자체로는 재미있는 단편이지만, 이번 특집의 맥락에서는 특별한  의의를 찾기 힘드네요.

1947년

[표류] : 기묘한 외계 환경에서의 기묘한 외계 생명체를 간결하면서도 묘사하는 클라크의 솜씨가 멋집니다. 발상과 스토리, 끝맺음이 모두 클라크의 이름에 합당하게 차분하고 우아한 단편입니다.

[내부의 불꽃] : 멀게는 [지구에서 퇴각하라]에 기댈 수도 있는, 클라크 특유의 주제 중 하나ㅡ우리 곁에 이미 있는 또 다른 지성체ㅡ가 잘 표현된 작품입니다. 동일 주제에 대해 다른 작품들에서는 대개 긍정적으로 다룬데 비해 이쪽은 러브크래프트스러운 공포물로 그린 점이 이채롭습니다.

[유산] : 데이비드의 위기 탈출 장면은 {라마와의 랑데부}에서의 비슷한 부분(한계 속도)을 연상시킵니다. 우주 개발에 대한 클라크 특유의 굽힘없는 의지 역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황혼] : 특유의 서정적인 필치가 인상적인 소품입니다.

[역사 수업] : 클라크 특유의 장대한 조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결말의 유머는 다소 썰렁하고 전체 주제와 잘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만.

1949년

[덧없는 인생] : 클라크 특유의 서정적인 소품입니다.

[어둠의 장벽] : 클라크의 단편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대개 정상(인류 중심적인 표현이지만) 우주에서 (비교적) 정상적인 물리 법칙 안에서 노는 클라크의 작품 세계 속에서 가장 독특하고 기묘한 우주가, 하이 판타지를 연상시키는(물론 마법 같은 초자연적 요소는 없지만) 전근대적 세계를 배경으로 나타납니다.

[코마르의 사자] : 장편 {도시와 별}이 떠오르는 스토리입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여기저기 나타나 있지만 중편에 가까운 분량에 비해 이야기는 치밀하지 못한 느낌이지만요.

[잊힌 적] : 클라크의 단편치고 이례적으로 우주가ㅡ하다못해 달이라도ㅡ배경으로 나타나지 않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결말은 조금 비약적이고 현실성이 약하지만 마지막 문장의 박력은 멋집니다.

[숨바꼭질] : 클라크 특유의 하드한 상상력이 잘 발휘된 소품입니다.

[긴장 탈출] : 의외로 간과하기 쉬운 게 클라크의 심리 묘사 솜씨입니다. 아시다시피 아시모프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쉴 새 없이 울려퍼질 정도로 인물 조형이 작위적이고 평면적이고, 하인라인은 정반대로 지나치게 화려하고 극적이어서 오히려 사실감이 떨어진다면 클라크는 인간과 인간 심리를 바라보는 시각도 가장 원숙하고 깊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한 상황에서의 극단적인 심리와 행동을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1950년

[복수의 여신] : 1942년의 [각성]과 비슷한 발상에서 출발한, 그러나 보다 클라크적인 단편입니다. ‘은하를 지배하고 있는 온화하고 철학적인 문화’는 수많은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클라크 우주’의 핵심입니다. 클라크는 이성의 힘을 믿었고, 인류도 이성적으로 계속 발전한다면 본능적인 파괴욕을 극복하고 이상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이미 앞선 외계 문명들 중에는 그런 단계에 도달한 이들이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수호천사] : 더 무슨 말을 붙일 필요가 있을지?

[시간의 화살] : 대학원생 유머가 재미있습니다. 몇 안 되는, 당대 현재 지구를 배경으로 한 단편이군요. 물론 시간적으로는 수천만 년을 오가지만요.

[어둠 속의 산책] : 클라크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으스스한 단편입니다. 여름밤 작은 불 켜놓고 읽기 딱이죠. 그리고, 클라크의 단편들 중에서 (초창기의 허풍스러운 단편을 빼면) 사실적인 우주 탐사물 중 가장 먼저 나온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 : ‘하얀 사슴 이야기’ 연작 중 첫번째 단편입니다. 클라크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엉터리 물리학이 등장하는데, 이 연작 특유의 허풍스러운 재미의 첫 출발이니 그냥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죠.

[원주민과의 분쟁] : ‘하얀 사슴 이야기’ 두번째 단편입니다. 아무래도 썰렁한 전개의 결말을 감당하지 못해서 ‘하얀 사슴 이야기’로 급선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만, 기본 아이디어 자체는 진지한 SF들에서조차 곧잘 다루던 것입니다. 지구에서 전파 송출을 시작한 것은 우주 탐사보다 오래되었으니 지구에 접근하는 외계인들은 아마도 지구의 방송을 먼저 접할 것이라고, 그러나 그 지구의 방송물이란 것들이….

1951년

[바다에 이르는 길] : [머나먼 지구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스토리입니다. 과학의 발전에 따른 인류의 분화, 떠나는 자들과 남는 자들 사이의 이야기는 별과 별 사이의 아득한 거리만큼이나 애틋한 서정이 배어나옵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기술적 디테일에 치중한다면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에서는 보다 자유롭게 서정이 뿜어져 나오는 군요. 특이나 이 작품은, 아서 클라크의 작품들 중에서 틴에이저 삼각 연애물을 보게 될 줄이야…

[파수병] : 이후의 장대한 서사시를 (힘들지만) 일단 외면하고 작품 자체만 바라보자면, 그래도 혹은 그럼으로써 더욱 훌륭하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짧은 분량 안에서 전반부는 근미래 디테일한 달 탐험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그런데 돌연, 아득한 시간, 공간 너머의 은하계 고등 문명들의, 그리고 그 아래 마치 풀 한 포기 같은 지구와 인류의 이야기로 비약합니다. 이 짧은 단편에서 그 장대한 서사시가 출발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달에서 보낸 휴일] : 본격 여성 계몽 SF. 클라크 본인의 귀염귀염한 서문은 보기만 해도 빵 터집니다. 스토리는 마치 우주 관광 안내 홍보물처럼 차근차근 조곤조곤히 진행되며, 주제는 결말 부분에서 노골적으로 언급됩니다. 노골적인 계몽적 태도가 다소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시대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구의 빛] :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 떠오르는 중편입니다. 지나치게 도식적인 아시모프나, 노골적이어야 할 경우에는 무례하리만치 노골적인 하인라인과는 다르게, 클라크는 서로 대립하는 두 주장을 모두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승리의 환희는 패배의 울분을 바탕에 두고 울려 퍼집니다.

[두 번째 새벽] : 필립 풀먼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작품입니다. 언듯 보기에는 동물 판타지 같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역시나 하드할 대로 하드한… 가장 비슷한 맛으로는 49년의 [어둠의 장벽]이 떠오르는군요. SF 특유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과학 기술의 본질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새롭게 고찰한 수작입니다.

[과학의 패배] : 클라크가 작심하고 쓰면 제대로 된 블랙코미디 하드SF가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아니, 그의 유머 감각 근간에는ㅡ영국식 유머가 대개 그렇듯 블랙코미디가 깔려 있는 걸 새삼 확인해주는 작품일 뿐일 수도..  이 단편이 별도로 수록되기에 가장 적절해 보이는 국내 SF 단편집은 당연히, 고려원의 {코믹SF걸작선}입니다. (또한 당연히, [마치, 마술처럼]의 옆입니다)

[잊혀진 이름, 푸른 별 지구] : 일본에서 원자폭탄이 터진 지 5년, 냉전 이후 첫 대규모 충돌의 와중에서 나온 단편입니다. 45년 이후로 나온 SF들의 염세적 미래관에 익숙한 눈에는 그저 그런 단편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 훑어온 클라크의 작품들에서는 유독 눈에 띄는 시각입니다. 그만큼이나, 결말의 씁쓸함은 더욱 배가됩니다.

[세상의 모든 시간] : 어린 시절 문고본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이야기를 몇십 년 지난 후에 제대로 다시 읽게 된 기쁨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군요. 분위기나 주제는 바로 앞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간마저 멈춰버리는 초기술이 클라크 특유의 필치로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그려집니다.

1953년

아시모프와 처음으로 만난 해라는데, 알게 뭡니까. 클라크가 아시모프를 처음으로 만나준 해 정도? 그보다는 {유년기의 끝}이 발표된 해라는 게 백억천만 배는 더 중요하겠죠. 본격적으로 물 오른 거장의 작품들을 살펴봅시다.

[90억 개의 이름을 가진 신] : 클라크의 단편들 가운데 종교적 성향ㅡ(티벳) 불교에 대한 호감ㅡ이 드러난 대표적인 작품으로들 꼽습니다만, 작품에서 묘사되는 부분은 아무리 일반 불교에서 많이 갈라져 나간 라마교라 하더라도 사실과 너무 다르며, 결국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종교적 가치에 대한 재고찰 같은 수구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클라크의 작품들이 종종 그렇듯) 현재 인류의 지식으로 가닿을 수 없는, 저 너머의 미지의 우주의 가장 기묘한 가능성에 대한 겸허함과, 그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상상과 탐구의 즐거움입니다. 비록 이 단편에서는 조금 오싹한 분위기로 끝맺음되었지만요.

[사로잡힌 영혼] : 일상적인 자연 현상 이면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가장 극적이고 (장대한) 기묘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기생충] : 짧고 작은 단편이지만 스태플든의 클라크에 대한 영향력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421쪽에서 422쪽에 걸친, ‘오메가’와 그의 세계에 관한 묘사는 지극히 스태플든적이며, 동시에 지독히도 클라크적입니다. 클라크의 비전과 서정은 (비록 그가 훨씬 더 능가하는데 성공했지만) 스태플든이 없었으면 가능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제5위성] : 클라크의 작품들 중에서도 플롯의 핵심 아이디어-반전의 기술적 디테일로는 가장 하드한 작품일 것입니다. 이 방향의 SF들 중 가장 우아하고 고상한 모범이랄까요. 아니, 어쩌면 고전주의 SF의 가장 완벽한 전형이라고 해야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명의 조우] : 가장 유명한 단편 중 하나인 [동방의 별]의 습작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하얀 사슴 이야기’ 같은 과장되고 가볍고 허풍스러운 단편에서조차도, 클라크의, 은하 안의 두 외계 문명 사이의 조우는 기본적으로 우호적이고 평화롭습니다. 어쩌면 대책없는 낙천주의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작품들이 나온 시기를 보면 같은 인류 안에서도 이념에 따른 증오와 불신이 극에 달했던 냉전기입니다. 그런 시기에 이성의 힘, 진보의 힘을 굳건하게 믿었던 클라크의 의지가 존경스럽습니다.

[다른 호랑이 ] : [90억 개의 이름을 가진 신], [사로잡힌 영혼] 등과 아이디어의 뿌리, 구조에서 비슷한 작품입니다. 마지막 한 쪽의, 논픽션 혹은 TV 시리즈 ‘환상특급’의 나레이션을 연상시키는 서술이 재미있습니다.

[홍보 활동] :  다음 단편인 [무기 경쟁]과 마찬가지로, 특징을 일부 공유하지만 매체가 다른, 영화/TV 연속극에 대한 SF팬 특유의 애증이 묻어나는 단편입니다.

 

1954~1956

본격적인 우주 탐사(혹은 우주 개발) 이전 마지막 시기의 단편들입니다. 제대로 결정적으로는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그러나 가장 상징적으로는 아무래도 스푸트니크 이후로, SF는 진정한 몽상의 무중력적 자유로움과 결별하고 현실화된 미래의 육중한 중력과의 불편한 동거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가장 근접한 사건으로는 (훨씬 임펙트가 약하지만) 화성의 운하가 뻥으로 드러난 일 정도를 꼽을 수 있겠군요.

1954년

[무기 경쟁] : ‘하얀 사슴 이야기’ 연작의 유쾌한  에피소드입니다. 전술했다시피, 텔레비전 SF 드라마에 대한 애증 사이로, 당대 고조되던 냉전과 군비 경쟁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이 쌉싸름한 맛을 돋웁니다.

[해저 목장] : 바다-자연-우주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 잘 나타난 단편입니다. 따지고 보면 바다 혹은 지하도 모두 가깝지만 먼 외계이고, 그 속에서 만나는 다른 지성체와의 교감은 외계 지성체에 대한 (그리고 인류와 절대 이성의 미래에 대한) 클라크의 거대한 낙관주의의 연장선에 놓여 있습니다.

[더 이상 아침은 없다] : 아서 클라크는 필요해질 때면 ‘하얀 사슴 이야기’ 연작에서 그렇듯이 대책없이 허풍스럽고 능청스러워질 수가 있고, 또 필요하다면 이 작품에서처럼 얼마든지 노골적이고 신랄하게 블랙 코미디를 뽑아낼 수도 있습니다. 여타 작품에서의 클라크의 관점과 다른 주제를 보면 냉전이 클라크의 낙관적인 비전을 얼마나 갉아먹었는지 헤아려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허 심사] : 역시나 재미있는 ‘하얀 사슴 이야기’ 중 하나이지만 흥미로운 부분은 (본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다시피 발상 자체야 기존의 많은 작품들에서도 나온 바 있지만) 활용처라든가 플롯과의 관계가 더글라스 트럼블의 영화 ‘브레인스톰'(1983)을 연상시키는 점입니다.

1955년

[망명자 ] : 영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SF가 아닐까요. 물론 미국 작가가 영국을 소재로 쓸 수도 있었겠지만, 영국인 클라크가 만들어 낸 미국인 주인공의 눈에 비친 영국 사회는… 아아 그만 둡시다. 우주를 향한 원초적 동경 앞에서는 국적도 신분도 어떤 구별도 있을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지 않습니까.

[동방의 별] : 새삼 리뷰할 필요가 있을지?

1956년

클라크가 스리랑카로 이주한 해이자 전 해에 발표한 [동방의 별]로 휴고상을 받은 해이자 장편 {도시와 별}을 발표한 해이기도 합니다.

[대박의 꿈] : 해리 퍼비스를 가볍게 압도해주시는 힌클버그 교수님 등장. 그러고 보면 ‘흰사슴 이야기’ 연작은 주제나 형식이 아시모프의 ‘아자젤 시리즈’와 유사한데, 두 작가의 스타일 차이가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클라크가 딱 30년 빨랐다는 걸 굳이 언급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반중력] : ‘하얀 사슴 이야기’ 중에서도 꽤나 단단한 상상력에서 튀어나온 작품입니다. 유사 과학 신봉자들에 대한 클라크의 따끔하면서도 연민 어린 시선이 볼 만 하네요.

[달을 향한 모험] : 단단하면서도 유쾌하고 신나는 엽편 연작입니다. 서문에서 클라크 본인도 언급했다시피 결코 만만하지 않은 조건이었는데 과학적 사실들에 기반한 자유로운 상상력과 간결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치가 만나 매력적인 SF 연작 엽편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평화주의자] : 정색하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냉전이 SF에 얼마나 비옥한 상상력의 토양을 제공했는지… 심지어는 유머의 텃밭조차도!

[육식 식물] : 사실 발표 시기순으로 정렬해서 그렇다고는 해도, ‘하얀 사슴 이야기’ 연작만계속 이어지니까 좀 식상하긴 하죠. 그렇지만 이 하이 블랙코미디는 그래도 일단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전집’에 수록된 단편들 중 가장 SF 순도가 적어보인다고 해도요.

 

1957~1969

더 말이 필요한 시기인지?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1호 발사합니다. 그리고 11월 3일에는 첫 우주 비행 생명체인 개(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니크(Sputnik) 2호가 발사되지요. 하지만 이 역사적인 사건들이 거의 마지막 석 달 사이에 일어난 탓에, 클라크는 역사적 한 해의 거의 대부분을 ‘하얀 사슴 이야기’ 연작을 쓰는데 보낸 것처럼 보입니다.

[주동자] : 해리 퍼비스가 본격 조연으로 등장한 이야기가 나오는 ‘하얀 사슴 이야기’ 단편입니다. 유쾌하긴 하지만 단순한 슬랩스틱 개그물이죠.

[어민트루드 인치 내던지기] : ‘하얀 사슴 이야기’

[궁극의 멜로디] : ‘하얀 사슴 이야기’

[지구의 다음 세입자] : ‘하얀 사슴’

[냉전] : ‘하얀 사슴’

[잠자는 숲속의 미녀] : ‘하얀’

[보안 점검] : 이건 분명히 54년의 [무기 경쟁]과 같은 수맥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단편입니다. 아니, 자신이 리얼리티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는 판타지의 오랜 공포증과 관련 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다시피, SF 업계에서는 그게 근거 없는 신경증이 아닙니다. 그러게 보자면 필립 딕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고 보니 제법 필립 딕 냄새가 나는 작품입니다?

[바다를 캐는 사람 ] : ‘하…’

[임계질량] : ‘하…’

[하늘의 저편] : 전년도의 [달을 향한 모험]이 마음에 들었던 독자라면 반가움에 잠시 몸을 떨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클라크의 또 다른 엽편 연작입니다. 전작이 보다 기술적 디테일에 충실했다면 이쪽은 클라크 특유의 서정으로 꽉꽉 채워져 있습니다. 한 편 한 편의 길이도 보다 짧고, 이야기의 밀도도 낮습니다. 편안하게, 머리 뒤에 손깍지 끼고,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처럼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빛이 있으라] : ‘하…’

1958년

1월 31일, 미국도 질세라  첫 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합니다. 10월 1일에는 NASA가 창설되고요. 클라크도 단편들을 쏟아냅니다.

[태양 밖으로] : 인간은 인식의 한계를 넘어선 대상을 경외하며, 그 순간 우러나오는 감동을 숭고미라고 부릅니다. 클라크의 작품 경향을 이야기할 때 유용한 개념들입니다.

[우주의 카사노바] : 외계로 진출한 인류의 분화로 인한 비극적 로맨스라고 하면 농담이고, 말 그대로 카사노바 캐릭터를 우주로 옮겨놓은 코믹 SF입니다. 결말의 반전을 위해서 플롯을 무리하게 비튼 점이 살짝 흠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짧고 유쾌하군요.

[머나먼 지구의 노래] : 51년의 [바다에 이르는 길]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항성간 항해에 대한 클라크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대항해 시대의 로망이 풍겨나옵니다. 아마도 해양 대국 영국의 역사적 분위기에 기인한 것이겠지요.

[가벼운 일사병] : ‘하얀 사슴 이야기’ 연작에서 불의의 사고로 뚝 떨어져 나온 듯한 가벼운 단편입니다. 제3세계에 대한 오만한 편견어린 시선이 조금 불편하군요. 중남미 여행에서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을까요?

[거기 누구냐?] : SF 작가들은 대개 고양이와 관련된 SF를 한 편 정도는 쓰도록 예정되어 있는 듯 합니다. [하늘의 저편] 중 한 에피소드를 연상시키는 이 짧은 이야기는 영국 특유의 으스스한 유령 이야기 분위기가 흥미롭습니다.

1959년

1월 2일에 소련은 처음으로 태양궤도를 공전하는 인공위성 루나1호를 발사합니다. 10월 4일에는 루나3호가 달 뒷면의 70%를 촬영하고요. 클라크의 심경이 어땠을지 미루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요람을 벗어나, 우주로] : 짧은 이야기지만 당대의 로망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 읽고 난 뒤에는 무심코 지나왔던 제목을 다시 되씹어보게 됩니다. 살짝 소름 돋은 상태에서요.

1960년

4월 1일에 미국은 거짓말 같이, 첫 기상위성인 타이러스(Tiro) 1호를 발사합니다.

[나는 바빌론을 기억한다] : 클라크가 본인의 이름을 내건 서술자를 등장시키고, 도입부는 그의 가장 유명한 (SF작가 외로서의) 업적이 언급됩니다. 다만, 2010년대에 읽자니 텔레비전 방송보다는 인터넷에서의 현황이 더욱 씁쓸하게 상기되는군요.

[시간이 말썽] : 거의 유일한 클라크의 탐정물입니다. SF의 묘미 중 하나는 미래의 언젠가 어디에선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문제를 미리 구경해볼 수 있다는 거겠죠.

[혜성 속으로] : 우주 탐사 재난물. 아니, 본격 오리엔탈 스팀펑크 하드SF.

[이카루스의 여름] : 우주 탐사 재난물. 이쪽 계열 작품들이 (바로 앞 작품만 해도) 대개 문제-해결 플롯을 따르는데 비해(그리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의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반전에서 SF에서만 가능한 짜릿한 쾌감이 터져 나오는데) 이 작품은 재미있게도 주인공은 재난에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해결책은 썰렁하게도 외부로부터의 구조로 나타납니다. 그 대신, 그만큼이나, 소설 속 사건의 사실감은 극대화되고 어조는 논픽션에 가까워집니다.

1961년

4월 12일, 소련이 첫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Vostok) 1호를 발사하고, 5월 5일에는 미국 역시 유인 우주선 머큐리3호(프리덤7호)를 발사합니다. 정말 본격적인 우주 개발 경쟁의 시대입니다.

[떠오르는 토성] : 경쟁의 와중에도 우주 개발에 대한 회의론은 만만치 않았는지 이어지는 단편과 함께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거의 프로파간다 수준입니다. 다만 클라크가 그렇게 누군가처럼 단순하고 얄팍하고 노골적일리는 당연히 없고, 펄먼의 소년기 회상이 단적으로 그렇듯, 우주에 대한 인류의 원초적이고 순수한 동경, SF 독자들의 감성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필치가 인상적입니다.

[의원과 죽음] : 전술했다시피, 우주 개발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만일 스틸만 의원이 하크네스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정말 프로파간다 수준의, 진부한 인과응보물이 되었을 텐데, 그렇지 않음으로써 과학기술과 정치,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클라크의 문장들 중에서도 특히 시적입니다.

[에덴 이전에] : 클라크가 우주 개발 혹은 우주 탐사의 부정적인 측면을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외면한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보다는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서로 다른 생명체가 마주쳤을 때의 수많은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로 많은 SF들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플롯으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하겠지만… 어쨌거나 외계의 기묘한 생명체에 대한 하드한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증오] : 무한한 우주 앞에서 이념과 패권주의에 따라 조그만 행성 하나 위에서 반목하고 갈등하는 인류의 무한한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고발하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 클라크의 감성이 가장 낭만적으로 표출된 단편입니다. 차갑고 단단한 인상과 달리 클라크의 작품들에서는 초자연적 현상 혹은 초능력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꽤 많습니다. 과학의 범주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의 프로토 SF의 계보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까지도 없이, 과학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SF의 본질 상 초능력이나 초자연적 현상(혹은 존재)을 포괄하는 유사 과학적 요소들도 장르 안에서 중요한 코드 중 하나였습니다. 하드 SF의 대명사인 아서 클라크도 과학적 정합성과 극적 필요성 사이에서 언제나 후자를 택했다는 사실은 SF에 대한 선입견 혹은 편견 중 하나를 교정해주는 의미심장한 예입니다.

1962년

2월 26일, 존 글렌 중령이 미국 최초로 지구궤도 비행에 성공합니다.

[견성] : 작품 말미에서 클라크는 극적인 연출을 배제한 채(심지어 사건의 핵심을 직접 서술하지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만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깊은 감동을 자아냅니다.서문에서 밝히다시피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단편이겠지만, 막막한 우주 앞에서 지구라는 작은 행성 출신인 인류에게 지구의 동식물만큼 정다운 벗이 어디 있을까 하는 것이 클라크의 단편들 면면에 흐르는 동물관입니다.

[소용돌이 II] : 다시 또 우주 탐사 재난물. 이번에는 문제-해결 플롯이 제대로 정석이고, 해결책은 47년의 [유산] 평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라마와의 랑데부}의 한 대목이 연상됩니다. (그쪽 둘이 하강이라면 이쪽은 상승이로군요) 문제-해결 플롯, 혹은 우주 탐사 재난물이라는 클라크의 작품군은, SF와 현실의 과학기술적 배경이 가장 밀착되었던 시기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숭이 가정부] : 동물에 대한 (수직적인 애정이 아닌 수평적인) 우정은 클라크의 작품들 중 멀게는 54년의 [해저 목장]부터 가깝게는 같은 해의 [견성]에서 이야기했으니 넘어갑시다.

[빛나는 것들] : 영화 ‘어비스’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심해는 제 2의 우주입니다. 꼭 스쿠버 다이빙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이 아니더라도, 클라크가 해양 SF를 몇 편 남기는 것은 굉장히 당연스럽게 느껴집니다.

1963년

6월 16일, 소련에서 첫 여성 우주비행사인 발렌티아 테레쉬코바가 보스토크(Vostok 6)에 탑승합니다. 클라크보다 2년 늦었군요.

[비밀] : 클라크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과학기술의 발달과 우주개발의 진행에 따른 인류 분화’의 가장 근미래적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작품에서는 동일 주제가 우애보다는 질시와 반목 가능성이 제시되는군요. 

1964년

마이클 무어콕이 ‘뉴 월즈’의 편집장으로 취임합니다. SF 내부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군요.

[태양으로부터 부는 바람] : 근미래, 내우주에서의 소소한 에피소드입니다. 그렇지만 결말에서는 돌연, (그러나 생각해보면 당연히 클라크답게) 영원의 시간, 무한의 거리로 플롯은 풀려나갑니다.

[신들의 음식] : 여느 (클라크가 아닌 누군가라도 언젠가는 썼을 법한) SF 단편입니다. 어조라든가 이야기 제시 기법은 딱 클라크스럽지만요.

1965년

8월 18일, 소련의 위성 보스크쇼드(Voskshod) 2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처음으로 약 12분 동안 우주유영(space walk)에 성공합니다. 11월에는 프랑스가 자체 개발한 인공위성 A1을 발사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전화] : 신나는 단편입니다. 기존의 세계가 갑작스럽게 멸망으로 치닫는데 카페에서는 일군의 기술자와 학자들이 세계 멸망의 원인을 주제로 한담을 나눕니다. 대화 사이 사이 종말을 암시하는 소음들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마치 플라톤의 작품들에서처럼) 이성적인 대화의 향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등장 인물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없다는 듯이 마치 한담처럼, 초연하게 대화에 매진합니다. 젤라즈니가 [끔찍한 아름다움]에서 표현했던 절대적이고 우아한 美의 일단이 여기서 이미 흘러나옵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로, 아서 클라크의 작품 세계를 몇 개의 형용사로 요약하라면(머리에 레이저 총을 겨누고 강요한다면),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웠던 ‘관조’라든가 ‘초극’ 같은 단어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 ‘관조’의 심리적 거리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클라크의 거시적 조망. 우주를 바라본, 우주의 무한과 영원을 직시하고 자신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바로 본  다음의 세계와 삶은 결코 그 이전의 세계와 삶과 동일하지 않겠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클라크의 많은 작품들에서 관조적 묘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아니, 오히려 그럴 수록 클라크의 주인공들은 당면한 문제로부터 영원과 무한에 관한 투명하고 단단한 명상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장자가 떠오릅니다. 이건 아서 클라크가 중국 장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거시적 조망으로 하찮은 사물들을 바라봤을 때 사유의 방향은 대개 그쪽이겠지요.

[최후의 명령] : 냉전의 또 하나의 슬픈 SF적 반영입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당대를 호출하고 있어서 작품 자체의 중요성은 (냉전을 배경으로 한 근지구 우주 함대전의 가능성에 하악거릴 일부 설정 씹덕들을 제외하면) 그닥 크지 않습니다. 전면 핵전쟁의 결과를 결국 미국의 승리로 그린 것은 아무래도 당시 현실적인 고려의 영향이었겠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최후의 명령’을 만일 정반대의 상황에서 미국이었다면 어떤 식으로 내렸을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군요.

1966년

2월 3일, 소련의 루나(Luna)9호가 최초로 달에 연착륙 성공합니다. 인류 달착륙까지 D-3년.

[어둠의 빛] : 정치와 과학, 양심 사이의 드라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과학소설] : 재치있지만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은 짧은 단편입니다.

[재생] : 마지막 부분의 서술은 할의 전두엽 절제술을 떠올리게 합니다. 클라크의 우주 재난물 가운데서도 가장 끔찍한 결말이로군요.

1967년

4월 23일, 소련의 소유즈1호가 대기권 돌입후 지상에 충돌하여 우주비행사 1명 사망합니다. 최초의 우주비행사고이지만, 클라크는 이미 우주 개발의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재난들과, 감수해야 할 위험들에 대해 충분히 써놓았습니다.

[잔인한 하늘] : 우리는 이 작품에서 {낙원의 샘}의 단초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바꿀 테크놀러지의 대두, 그리고 그 배경으로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욕망.

[허버트 조지 몰리 로버츠 웰스 귀하] : 39년의 [백일몽]과 비슷하게, 플롯 없는 에세이에 가까운 짧은 글입니다. 다만, 전자와는 다르게, 허구적 요소가 (특히나 결말-혹은 결론에서) 강하게 드러나서 간신히 픽션의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성전] : 테리 비슨의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를 예감케하는 단편입니다. 규소 생물에 대한 SF들은 꽤 많겠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단편은 꽤나 독특한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클라크가 쓴 단편들 중에서도 특히나 컴퓨터 공학에 꽤 깊이 들어간 작품입니다.

1968년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해입니다. 그 때문인지 단편을 발표하지 않은 해로군요.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아폴로11호에 탑승했던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습니다.

 

1970~1999

마지막 시기입니다. 작품 수는 많지 않고 간격도 띄엄띄엄하지만 가장 원숙한 시선이 담긴 수작들이 당당하게 고개 들고 있습니다.

1970년

4월 24일, 중국이 최초의 인공위성 동방홍 1호를 발사합니다. 더 많은 나라들이 우주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하고, 이는 {2010:오디세이2}, {2061:오디세이3}등에 반영됩니다.

[중성자 조류] : 코믹한 터치로 간결하게 스케치한 우주재난물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클라크에게 우주 항해는 지난 세기의 원양 항해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1971년

4월 19일, 소련이 우주정거장 샬류트(Salute) 1호를 발사합니다. 10월 28일에는 영국이 자력으로 인공위성 블랙나이트 1호를 쏘아올려 세계 6번째 우주국가가 됩니다.

[재결합] : 클라크 특유의 거시적 스케일은 장자의 우화들을 떠올리게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 작품에선 특히나, 일사의 작은 편견과 차별을 일순간에 뒤집어버리는 거시적인 조망이라는 점이 잘 나타났습니다.

[지구 통과]  : [신의 망치]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클라크의 마지막 우주 재난물입니다. 한 개인의 임박한 죽음과 무심할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우주의 대비가 깊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메두사와의 만남] : 도입부의 에피소드는 조금 늘어지고 튀는 구석이 없잖아 있지만 이후 목성 탐사와 결말의 반전을 위해서는 필요성이 인정됩니다. 목성의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원숙의 경지에 이른 거장의 솜씨가 느껴집니다.

1972년

{라마와의 랑데부}가 발표된 해입니다.

1973년

5월 14일, 미국이 우주정거장 스카이랩(Skylab)을 발사합니다.

1975년

7월 17일, 미국과 소련이 아폴로-소유즈 도킹 시험에 성공합니다. 장편 {지구 제국}이 발표된 해입니다.

1976년

7월 20일, 미국의 바이킹1호가 화성에 착륙해 지구에 사진을 전송합니다.

1977년

[격리] : 고작 체스 정도 가지고…

1979년

은퇴작으로 이야기되었던 {낙원의 샘}이 발표된 해입니다. 

1980년

7월 18일, 인도가 자력으로 인공위성 로히니를 발사해 일곱 번째 우주 국가가 됩니다.

1981년

4월 12일, 미국이 최초의 유인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를 발사합니다.

1982년

{2010:오디세이2}가 발표된 해입니다.

1984년

11월 8일, 미국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승무원이 우주에서 처음으로 위성 수거 및 수리공사를 진행했습니다. SF쪽에서는 윌리엄 깁슨이 {뉴로맨서}를 내놓은 해이기도 하죠.

[기세창] : 클라크 본인이 의식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들 중 유일하게 신의 실재를 다룬 작품입니다. 마지막 문장의 박력은 [90억 개의 이름을 가진 신]을 연상시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유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1986년

1월 28, 우주왕복선 챌린저(Challenger)호가 발사 직후 폭발하여 7명 모두 사망하고, 2월 20에는 소련이 우주정거장 미르(Mir)를 발사합니다.

[증기기관 워드프로세서] : 닐 스티븐슨의 {크립토노미콘}(아마도)의 한 대목이 떠오르는 소재가 등장합니다. 스토리 면에서는 찰스 셰필드의 [내 마음 속의 조지아]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고요.

[황금빛 바다에서] : 클라크의 글에서 우주는 바다로, 바다는 우주로 자유롭게 모습을 바꿉니다. 클라크가 코멘트했듯이, 가장 직접적으로는 미국의 우주 군사화에 대한 가벼운 풍자물이지만,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의 영원한 상징인 황금이라는 소재는 작품의 메시지를 좀더 깊고 넓게 확장시킵니다.

1987년

{2061:오디세이3}가 발표된 해입니다.

1990년

4월 24일, NASA와 ESA이 협력하여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Discovery)호에 허블우주망원경을 실어 발사합니다.

1992년

[신의 망치] : 클라크 단독으로 내놓은 실질적인 마지막 단편입니다. 클라크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 HAL9000의 선한 버전이라 할 (그리고 오히려 이쪽이 클라크의 비전에 걸맞는 모습입니다)  ‘다비드’가 매력적이고, 종교에 대한 클라크의 개그가 재미있습니다. (이제 과학적 정밀함이나 거시적 상상력은 그만 언급합시다)

1997년

9월 11일, 미국의 화성 탐사선 서베이어호가 화성 표면을 2년간 정밀 조사하기 위해 화성궤도를 선회하기 시작합니다. 울궈먹기의 정수 {3001:최후의 오디세이}가 발표된 해이기도 합니다.

[와이어 연속체] : 스티븐 백스터와 공저한 작품입니다. 2차 대전에서 초광속 여행까지의 기술 도약은 조금 무리한 비약으로 느껴지지만, (그리고 클라크는 자신은 데뷔작 [유선 전송] 후 염두에 두고 있던 기본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코멘트했지만) 그동안 클라크가 보여준 미래와 우주에 대한 순수한 꿈과 열정, 인생과 인류, 인간에 대한 세심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1998년

1월 29일, 16개 나라가 국제 우주 정거장 건설 계획에 서명하고 11월 20일에는 최초의 국제우주정거장(ISS)시설인 러시아 다목적 모듈인 자랴(일출)가 발사됩니다. 그리고 아서 클라크는 Knight Bachelor 작위를 받습니다.

1999년

[이웃을 교화하기] : ‘네이처’지에 처음으로 게재된 SF 단편입니다만, 작품 자체의 질보다는 아서 클라크의 명성 때문에 가능했겠죠. 45년의 [구조대]에서 보여줬던 인류에 대한 낙천에 가까운 낙관적 전망이 최후의 단편에서 (냉전마저도 종식되었음에도) 부정적이고 우울한 비관으로 끝맺게 된 점은 안타깝습니다.

2001년

4월 28일, 최초의 우주관광객인 미국인 사업가 데니스 티토가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TM32’ 우주선에 탑승합니다. 현실로 돌아온 아서 클라크의 비전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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