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ff-line

 이언 뱅크스 지음, 김민혜 옮김. 열린책들(2011.05.10)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이언 뱅크스의 컬처 시리즈 장편입니다. 권말 역자 후기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플레바스를 생각하라}가 특이점 이후 유토피아라 할 컬처의 이면을 다룬 다소 어두운 작품이었다면, 이쪽은 컬처의 쉬운 대척점이라 할(우리에게는 다소 불쾌하게도, 서구인 특유의 동양에 대한 편견이 투영된 듯한ㅡ아, 그런데 약자를 억압 착취하는 걸로 모자라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불안과 스트레스의 해소 대상으로 삼아버리는 야비하고 야만한 모습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보는 거 같아 편견이라고만 하기 뭣하군요), 야만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매혹으로 넘쳐나는 아자드 제국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결국은) 뼛속까지 컬처인인 주인공의 모험이 아자드 제국의 그림자 속에서도 다소 밝고 활기차게 진행됩니다.(물론 어디까지나 이언 뱅크스 톤에서의 ‘밝고 활기차게’입니다) 야비한 핸디캡이 적용되는 게임판에서 승승장구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째 {앤더의 게임}을 떠오르게 합니다만, {엔더의 게임}이 결국 몸으로 하는 스포츠였다면 이쪽은 머리로 하는 스포츠ㅡ가장 직접적으로는 체스를 연상케합니다(이언 뱅크스는 바둑은 몰랐을까요?). 이언 뱅크스의 상상력은 지금까지 출간되었던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대수학자}, 그리고 {말벌 공장}과 {다리} 등을 통해서 그 화려함과 정교함, 퇴폐스러움이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게임의 명수}는 기존의 작품들을 통해 형성된 독자들의 기대치에도 부응할 뿐더러 처음 이언 뱅크스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작품입니다. alt. SF의 취향에는 {플레바스를 생각하라}와 {대수학자}에 미치지 못했지만, {게임의 명수}가 금년도 국내에 소개된 가장 인상적인 웰메이드 모던 스페이스오페라일 것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겁니다. ({심연 위의 불길}이요? 내년에나 나오겠죠, 뭐!)

 

  아서 클라크 지음, 심봉주 옮김. 황금가지(2011.05.20)

1권에는 20대에 쓴 첫 단편 [유선 전송]을 비롯한 초기작들부터 이른바 SF 황금기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전에 출간된 단편전집 3, 4권의 ‘하얀 사슴’ 연작에서 코믹 SF작가로서의 아서 클라크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반쯤 곤혹스러워하면서 환호했을 국내 독자들이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듯 한데, 특히 초기작일수록 아시모프스러운 맛이 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데뷔작만 가지고 봤을 때 가장 성숙했던 건 역시 하인라인이었고, 아시모프나 클라크는 풋내 풀풀나는 팬덤 보이들이었던 거 같군요. 대략 1945년을 기점으로(이 해에 발표한 단편은 없지만) 아서 클라크는 가벼운 아이디어와 허풍스러운 문체를 버리고 SF 창작에 대해 보다 진지한 자세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구조대(1946)], [어둠의 장벽(1949)], [수호천사(1950)] 등 인상적인 단편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흔히 아서 클라크에게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 단단하면서도 투명한, 건조하면서도 서정적인 비전은 전집 제2권(1950~1953)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군요. [파수병(1951)], [달에서 보낸 휴일(1951)], [지구의 빛(1951)], [두 번째 새벽(1951)], [과학의 패배(1951)], [잊혀진 이름, 푸른 별 지구(1951)] 등 많은 단편들에 아폴로의 달 착륙 이전 SF들의 우주에 대한 순수한 동경과 희망, 슬쩍 비치는 불안한 그림자마저도 매혹적인 이상이 감동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객관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거장다운 원숙함이 잔뜩 풍겨나오는 이전 출간본들ㅡ특히 전집 제4권(1960-1999)에는 못 미치지만, 아서 클라크의 팬들에게는 이 풋내 나는 초기작들이 오히려 더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on-line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김창규 지음, 네이버캐스트(2011.06.03)

시내버스에 올라탄 중학생이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고 외칩니다. “나는 누구인가?” 단말기가 대답합니다. “학생입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이 이후로 단말기의 대답을 자신의 유일하고 영원한 정체성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중학생의 이야기가 이어진다면 계속 웃어주기 힘들죠. 주인공이 겪는 고통은 작위적이고 과장되어 있어 공감하기 힘듭니다. 장애인에게 장애 자체보다 장애에 대한 다른 사람들-사회의 편견이 더 힘들다는 것은 무심한 비장애인들도 머리로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바입니다만, 그 사회적 편견을 오로지 국가의 등록으로만 형상화한 건 결과적으로 장애인의 고통을 피상적이고 타자화시켰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비틀린 설정이 전반적으로 사실감을 많이 감소시켰고요. 기술적으로 현재의 의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그리고 여타 지난 세기의 고전적 SF에서도 큰 무리 없이 묘사되었던 사이버네틱스 의족이 (스팀펑크에 경도된 미치광이 과학자가 만든 것도 아니고) 전기 모터 대신에 증기기관이라도 넣었는지 냉각에 애로가 많고ㅡ일단 그렇게 발열이 심한 기계는 내구성과 안정성에도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자칫 다리라도 꼬고 앉았다가는 멀쩡한 다른 다리도 태워먹겠군요(아, 그보다는 동석이 모자부터 시작해서 맘에 안 드는 년놈들을 불타는 로우킥으로 지져버리고 다니는 데 딱이겠는데요), 그리고, ‘박물관에서 입장권을 살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온갖 전자음과 녹음된 목소리가 장애인 처지를 일깨워 주’도록 큰소리로 울리게 하는 장애인 복지 제도라는 건 너무 작위적이지 않습니까? 그 사회는 아마 지하철 노인 우대권을 주면서 ‘늙다리’ 피켓을 항상 들도록 하고 장애인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세우면 ‘여기 병신 하나 추가요~!’하고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겠군요? 게다가, 차별의 실상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데다 차별의 원인을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묵인하고 있는 어떤 기준이 존재하며, 자신이 그 기준에서 어긋나지 않는 ‘정상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비정상인’을 가려내기 좋아한다는 사실’로 직설적이고 요약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너무 도식적입니다. (어휴, 푸코 날비린내)

alt. SF에서 내심 좋아하는 국내 작가이니 장점을 좀 짚어보자면, 남자친구인 동석의 어머니와 만나는 장면이 MBC 아침 드라마들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든지, 나노머신 재활실험에 참여하는 과정의 어설프기가 KBS 메디컬 드라마들의 오글거림에 맞먹을 기세인 것만큼은 꽤나 인상적이긴 합니다.

 

 [겨자씨] 듀나 지음, 크로스로드 2011년 7월호

듀나의 신작입니다만,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중심이 되는 극적 사건 없이 그저 상황 설명으로 시작해서 상황 설명으로 끝나는 밋밋한 플롯이나 거의 건성으로 쓴 것 같은, 마치 작품 자체가 아니라 시놉시스에 불과한 느낌을 주는 요약적 서술, 원래 듀나의 SF들이 어느 정도 그랬다치더라도 새롭거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이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소재들만 콜라주한 것 등이, 본격적으로 까는 것이 곤혹스러울 정도로 철저하게 부실해서 오히려 뭔가 놓친 것이 있지 않을까 당황하게 됩니다. 어쩌면 듀나는 외계인들에게 납치되었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듀나 게시판의 봇이 써낸 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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