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트위터에 이번 특집 계획을 올렸을 때 이런 반응이 있었습니다.

이번 기획을 처음 구상했을 때에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시사성 있는 이슈도 없고, 다른 기획이 마땅히 생각나는 것도 없어서, (지난 번 마이클 크라이튼 특집처럼) 땜빵용 기획이나 다름 없었지요. 언젠가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할 게 아시모프니까요. 짚고 넘어갈 부분은,

첫째, 이미 그동안 충분히 소개될 만큼 소개되었으며,

둘째, 현대 SF의 흐름에 비하면 너무 낡았으며,

셋째, 한정된 국내 장르 출판 자원을 낭비한다는 점입니다.

때마침, 열린책들 출판사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각각 장편 {신들 자신}과 단편집,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낸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갑자기 시사성까지 갖춰지는군요. 한 번 들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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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동안 아시모프의 SF들이 번역된 역사를 훑어봅시다.

국내 아시모프 번역 출간 목록 (스크롤 압박 주의)

뭐 이리 많아? 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제 그만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요?

아시모프 SF의 양대 산맥이라 할 ‘로봇 시리즈’와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90년대 초와 2000년대 초에 각각 한 번씩 총 2회 출간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출간된 것이 대충 십여 년 전인 2002년, 2003년입니다. 십 년에 한 번 꼴로 치면 슬슬 다시 나올 때가 되긴 했네요.

그런데 정말 십 년에 한 번 씩 낼 가치가 있을까요?

‘로봇 시리즈’는 1권 {강철 도시}와 2권{벌거벗은 태양}까지는 근사한 걸작입니다. SF와 추리가 기막히게 균형을 이루고 있고, SF로서도 추리소설로서도 손색이 없지요. SF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고전입니다. 하지만 이후 시리즈는 오리지널의 경이와 감동에 찬물을 끼얹는 불초 속편이죠. ‘파운데이션 시리즈’ 는 조금 더 심해서, 오리지널 3부작도 좋게 말해서 그럭저럭 심심할 때 읽어줄 만한 SF입니다. 무엄하게도 ‘로봇 시리즈’에게 발을 뻗는 후편들은 최악이고요.

{강철 도시}와 {벌거벗은 태양}이 그 가치에 걸맞는 디자인의 단행본으로 나온다면 두 손을 들고 환영하겠습니다. 그 거지 같은 시리즈에 파묻혀 있을 필요가 전혀 없는 걸작이니까요. 하지만 ‘파운데이션 시리즈’라니요? 트위터에서는 오리지널 3부작이라면 참겠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면 참을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기본 발상인 심리역사학은 결코 대하 장편에 적당한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다만 거시적인 인류 사회의 변천을 다루어야 하니 중편 이하 수준으로 담아낼 수도 없고 좀 두툼한 한 권 정도의 분량이 적절했겠죠. 필자를 포함해서 70년대 전후에 유년기를 보낸 한국 SF팬의 대다수는 결국 아시모프의 아이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테니, 어린 시절의 애정을 되살려, 자신의 대표적인 장편 두 시리즈를 무리하게 묶어 ‘아시모프 은하계’를 만들려 했던 노욕을 눈 감아준다고 하더라도, 오리지널 ‘파운데이션 3부작’도 솔직히 말하자면 인문학 컴플렉스가 있는 이학 박사 출신 작가가 인간 사회의 복잡성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고전 물리학의 틀에 우겨넣어 뭔가 대하역사물스러워 보이고 싶은 작품을 뽑아낸 괴작 아닙니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의 영향이 이야기되지만 로마사를 언급하기에는 미국 장르소설 특유의 개인주의와 영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분량에 걸맞게 은하계 전체에 퍼진 인류의 변동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장대한 스케일을 구축하는데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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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질문 하나. 국내 출판 시장에서 장르 표딱지도 없이 장르 밖 독자들에게 잘 팔리는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스타일이 가장 비슷한 SF 작가는 누구일까요.

평면적인 캐릭터와 단조로운 플롯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어 성공한 작가라면 단연 아시모프입니다.

일반인들은 모르는 장르 내부에서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혹평도 대개는 그 소설적 빈약함과 스타일의 구태의연함, 아이디어의 진부함에 초점이 맞춰지죠.

아시모프는 물론, 베르나르와 류가 다르긴 합니다. 아시모프의 소설적 빈약함이나 스타일의 구태의연함은 당연히 40년대 SF계와 2000년대 SF계 사이의 시대적 차이를 염두에 둬야 공정하겠고, 아이디어 면에 있어서는 아시모프는 베르베르와 비교하는 게 모욕일 정도로 폭넓고, 깊고, 날카롭습니다.

그렇지만 2010년도에 여전히 아시모프를 베스트로 꼽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인 것도 사실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비교도 그런 점에서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설로서의 최소한의 완성도도 포기한, 습작 수준의 이야기에 날 것의 아이디어만 얹은 것에 ‘인간 세계에 대한 독특한 시각과 유연한 필치가 여전하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기발하고 환상적인 이야기 스무 개가 담겼다.'(인터넷서점 알라딘의 {나무} 책소개에서 인용) 같은 낯뜨거운 찬사를 붙여서 잘도 팔아먹는 국내 출판계의 현실은 개탄과 조롱의 대상임에 분명하지만,  동시에 (SF를 포함한) 국내 독서계의 한 부끄러운 증상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소설을 소설로서 읽는 게 아니라 어떤 지식의 수용 혹은 어떤 정보의 습득 혹은 어떤 아이디어의 감상을 위한 수단으로서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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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적으로 취향의 다양성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것이겠습니다만,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장르소설 출판 자원ㅡ시장의 크기나 수익률, 자본의 양 같은 물질적 자원이나 언론 매체 등의 관심, 사회 전반의 가치 인식 등 정신적 자원까지ㅡ이 여유가 많기만 하다면 아시모프를 골백번 찍는 게 무슨 문제겠습니까마는, 그렇지 못한 판국에 아시모프의 재탕 삼탕이 과연 한국 SF 계에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야 독창적이고 진취적인 작가가 나올 수 있는 것일지, 아니면 독창적이고 진취적인 작가가 독자들의 수준을 높여주는 것일지, 독자의 수준과 작가의 수준은 원칙적으로는 달걀과 닭의 관계 같은 것이겠지만, 외래 이식의 영향에서 거의 빠져나오지 못한 낙후된 한국 SF 소설계에서는 독자의 수준이나 작가의 수준보다는 번역되는 외국 작품의 수준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시모프의 SF적 성취가 아무리 드높다고 한들 그건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성취는 물론, 시간의 제약을 넘어 영원히 빛나기도 하는 것이겠지만(솔직히, 아시모프는 [전설의 밤] 한 편으로도 영원히 빛날 것은 분명하고, [전설의 밤]은 아시모프의 성취 중에서도 유독 높거나 특별하게 높은 편은 아닌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아시모프의 참된 가치를 알아보려면 역설적으로 아시모프 대신 다른 작가의 작품들이 다양하고 폭넓게 번역되어 나와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이번 특집의 제목은 “아직도 아시모프를 출간하십니까?”였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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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안목과 독자 대중의 안목 역시 닭과 달걀의 관계이겠습니다만, 지금까지 제대로 계몽된 적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출판사에게 계몽주의적인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게 또 슬픈 현실입니다. 무지몽매한 독자 대중을 계몽할 사명감이라니 모 출판사의 비장하고 우스꽝스러운 무크지 발간사가 떠올라 잘못 얘기했다간 큰일나겠다 싶어 등골이 오싹합니다만, 사명감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아시모프의 계속된 출간이란 올드팬들의 향수와 뉴비들의 게으름ㅡ결국 대중에게 이미 각인된, 검증되고 안전한 명성에만 묻어 가려는 안일함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출판사들에게 충분히 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굳이 아시모프입니까? 굳이 미국 SF의 황금기가 좋다면, 정말로 올드 웨이브가 한국 SF 팬들의 취향이라면  A. E. van Vogt 라든가 Clifford D. Simak, Cyril M. Kornbluth, Jack Vance, L. Sprague de Camp들은 왜 출간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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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도 깠고, 출판사들도 깠으니 독자들까지 마저 까고 끝냅시다. 이언 뱅크스의 {대수학자}나 댄 시먼스의 {히페리온} 혹은 피터 와츠의 {블라인드 사이트}는 이 땅에서 얼마나 팔렸을까요? 자나깨나 아시모프에 심심하면 빅 쓰리, 허구헌 날 젤라즈니와 르 귄, 아니라 봐야 겨우 테드 창만 무슨 신흥종교 주문 외우듯이 외우는 사람들. {블라인드 사이트}에 무슨 다채로운 종족이 나와요? 후기 인류 쪽이 오히려 다채롭지. 출판사의 보도 자료만 보고 읽은 척 하는 사람들. 서문이나 추천사만 똑같이 따라읊는 서평 이벤트 앵무새들. 아는 게 없으니까 소설 쪽은 입 다물고 영화가 어떻고 게임이 어떻고 만화가 어떻고나 떠들며 전문가연 하는 바보들.

아유, 생각해보니까 아시모프라도 읽는 게 대단해 보이긴 하네요.

평생 아시모프나 읽다 죽으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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