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line

 {블라인드 사이트}  피터 와츠 지음, 김창규 옮김, 이지북(2011.02.21)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 소개된 SF들 중에서 가장 단단한 SF가 아닐까요. 출판사의 무모함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관적 추산이지만) 기껏 300여 명 정도나 온전히 즐길까 말까한 작품을 번역 출간하다니, 거의 자선사업 수준이로군요.

[스포일러 경고 : 하지만 이 작품을 실제로 읽으실 리는 없으니 그냥 보시든가]

어쨌거나 alt. SF에서는 즐겁게 읽었습니다. 고대에 멸종된 인류의 변종인 흡혈귀를 유전공학으로 되살려 선장으로 삼고, 뇌수술로 다중인격을 만들어 낸 한 머리 세 가족 수준의 언어학자와 인공 기관을 너무 많이 달아서 로봇인지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생물학자, 로봇 병사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배신의 달인 무장 장교, 뇌 반쪽을 들어낸 종합가 등을 선원으로 한 우주선이 정체불명의 외계인에 맞서는 내용에 가슴 설레지 않을 SF팬이 있을지요. 게다가 별 하나를 통째로 잡아먹기 시작한 초거대 외계구조물은 방사능과 전자파 투성이라, 탐사대원들은 환각에 시달리고, 다녀올 때마다 우주선의 만능 공장에서 몸을 재구성해서 나와야 합니다. 태양으로부터 양자적 물질 전송을 받는 우주선은 자체 공장에서 각종 탐사기와 로봇 병사들을 합성해댑니다. 심지어 탐사대원들도 죽을 경우 대체 가능한 예비체들도 대기 중입니다. 그야말로 첨단 상상력의 향연. 그렇지만 이런 화려한 장비와 인원들도 외계에서 온 침입자 앞에서는 왜소할 뿐입니다. 텅 빈 줄 알았던 외계 구조물은 알고보니 인간의 뇌파를 읽고 인식 영역 바깥에서 움직이는 외계 생물들로 우글거리고 있었고…

댄 시먼즈나, (보다 정교하고 고급스럽지만 대중친화적인 면도 없지 않은) 이언 뱅크스라면 게걸스럽게 달려들어 신나게 읽어 치울 수 있을ㅡ그리고 포만감에 배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을 모던 스페이스오페라를 매끈하게 뽑아냈을 텐데, 그러나 피터 와츠는 불행하게도, 예술이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플롯은 뒤죽박죽이고 서술은 지극히 불친절하며, 미지의 외계 생명과의 접촉이라는 매혹적인 주제를 돌리는 엔진인 핵심 서사가 결정적으로 진부한 성장소설!!!!!!입니다.

1인칭 화자는 동료들이 위험해보이는 외계 구조물 앞에서 온갖 노력을 경주하는 동안 한다는 짓이 겨우 일벌레 아빠 타령, 아들 집착 엄마 타령, 헤어진 변태 애인 타령이나 늘어놓는 것 뿐입니다. 간질 발작의 치료를 위해 뇌 수술을 받은 주인공의 역할은, 더이상 기존 인류와 제대로 된 교류가 불가능해진 후기 인류 사이를 매개해주는 것입니다. 그는 상대방의 의식적 / 무의식적 신호를 잡아채어 스스로 인지할 수 없는 정보 처리 과정을 거쳐서 해독 가능한 형태로 변환합니다.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능력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그는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해 철저한 방관자이며 국외자로 존재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인식 능력 바깥에서 꿈틀거리는 외계 존재 앞에 선 탐사대 전체의 문제와 교묘하게 나란히 놓입니다.

피터 와츠는 주인공의 개인적 문제를 인류와 외계인의 만남이라는 거시적 문제로 확장 연결시켜 거시와 미시의 상호 보완 속에서 우주와 사회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야심찬 목표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소설의 결말에서 거시와 미시의 매듭은 힘없이 풀려버리고, 인간의 인식 능력 저편에 존재하는 외계 존재와의 접촉이라는 거시적 사건의 비중은 다만 주인공 개인의 삶에 대한 태도에만 간신히 영향을 미치는 수준으로 급격히 수축해버리고 맙니다. (이래서야 훨씬 싼 비용의 주관적 신비 체험과 다를 바가 뭐겠습니까. 그야말로 우주적 낭비입니다.)

그러니까 절반의 실패ㅡ그러나 달리 대안이 있나요? 아마 댄 시먼즈라면 시원한 액션물이나 말랑말랑한 드라마를, 이언 뱅크스라면 음모와 배신의 정치첩보물을 아니면 그 누구라도 그 어떤 틀을 얹어서든 이 뒤죽박죽의 혼합물 대신 익숙한 독자들을 그럭저럭 만족시킬 그저그런 장르소설 정도는 그러니까 아마도 써냈을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절반의 성공ㅡ피터 와츠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한 길을 의연히 걸었고 그 결과, 이 뒤죽박죽 혼합물에는 아마 지금의 우리 장르소설 시장에서라면 결코 두 번 다시 접할 수 없을 기묘한 맛이 숨어 있습니다. 낯설고 이상하고 불편하지만 한 번 맛들이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on-line

  [운수 나쁜 날] 박해로 지음, 네이버 캐스트(2011.03.04)

잭 피니의 ‘신체 강탈자’ 설정을 너무 고지식하게 그대로 따온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 식민지 상황이나 다채로운 인유는 일단 재기발랄해서 재미있습니다. 지엽적이지만 한동진 형제의 설홍주 시리즈 같은 마이너한 국내 장르소설들까지 훑어낸 정성과 재치는 맛깔스러웠고요. [B사감과 러브레터]까지 간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툭하면 상투적으로 끌어다 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조금 오버스럽고 작위적이고 상투적인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작가는 천연덕스럽게 염상섭의 {삼대}까지 (감히) 건드리더니 다시 현진건으로 돌아와 능청스럽게 [운수 좋은 날]의 SF 호러적 패러디ㅡ다시 쓰기에 성공합니다. 결말의 씁쓸한 맛은 근래 국내 장르소설들 중에서 단연 일품이군요. 전술한 바와 같이 아쉬운 점들이 아주 없는 건 않지만 읽을 만한 단편이고, 가장 야박하게 재어도 읽은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고]  조나단 지음, 웹진 크로스로드(2011.04)

 소설의 핵심은 거대한 시스템의 냉혹함을 접한 무력한 개인의 소시민성과 양심 사이의 내적 갈등인데, 이건 너무 상투적이지 않습니까. 주류 문단에서 골백 번은 판 주제인데다가, 장르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기로는, 마음에 안 들기는 어슷비슷하지만 차라리 듀나의 [죽음과 세금]이 스타일 상으로는 훨씬 낫겠고… 아니, 그보다는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에 대한 투박한 감상문 혹은 팬픽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너무 치명적인 문제로군요. 작품의 독립성이 심하게 훼손될 정도로 아시모프의 무게와 부피가 너무 커서, 손리 발리 오그라들 지경. 이런 걸 리뷰해야할지 회의가 들 정도입니다.

인구 조절은 훨씬 더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전작까지 돌이켜보면 납작하고 동글동글한 비행체에 대한 개인적 취향이 너무 강해서 그나마 남아있던 현실성마저 송두리채 날려 버린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단은 그럭저럭 읽을 만 했지만,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라기엔 작품 전체의 나머지 모든 문장이 죄다 낭비된 셈이 아닙니까.

웹진 크로스로드의 안목은 여전히 의심스럽군요. 설마 미라이 공업의 방식으로 원고를 심사하는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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