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ff-line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듀나 외, 사이언티카, 2010.12.31

김린 씨의 [우주와 그녀와 나]는 (만일 이 글을 SF로 분류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SF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SF입니다. 도대체 왜 SF에서 도나 기가 나와야 합니까? 물론 어느 정도 유사물리학적 근거라도 갖춘다면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이 소설의 설정은 그냥 우리가 지하철역 입구에서 종종 만나는 도나기 수준일 뿐입니다. 그리고, ‘외계’는 ‘외교’와 치환 관계에 있는 어휘가 아닙니다. 다만 소리의 유사성에 의존해 외계학과나 외계관, 외계고시 같은 괴상한 조어를 만들어 늘어놓는 부분은 작가가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갖추고 소설을 썼는지 의심스럽게 합니다. (언어의 정의가 뭔지는 아십니까?) 늘 하는 말이지만 SF는 단지 베갯머리에서의 짧은 착상으로 책상머리에서 금방 쓸 수 있는 장르가 아닙니다. 그 밖에 플롯의 메인 뼈대는 이우혁의 라미드 우프닉스, 캐릭터는 (본문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일본 만화 {은하철도 999}에서 빌려왔을 뿐이니 별로 할 말이 없군요.

백상준 씨의 [시공간-항(港)]은 괜찮은 SF 단편입니다. 너무 평범해서 덧붙일 말이 없지만, 한국 SF의ㅡ특히나 크로스로드 게재작들의 수준은 평범하기도 힘들 정도고, 작가가 과욕을 부리지 않고 주제의 한정된 규모에 맞게 분량과 플롯, 설정, 캐릭터 조형을 잘 맞췄습니다.

듀나의 [수련의 아이들]은 이 앤솔로지의 백미입니다. 대중문화 전반의 진부하고 통속적인 휴머니즘 따위는 무심하고 시크하게 발로 차버리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휴머니즘ㅡ인간을 넘어선 우주적 휴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현대 한국사회의 추악ㅡ하다기보단 그냥 시대착오적으로 촌스러운 모습이 가감없이 반영된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대표적인 촌스러움들ㅡ외모지상주의적 차별, 비정규직 문제, 허울 좋은 다문화 사회의 암묵적인 인종 편견, 무능하고 시대착오적인 남성들ㅡ위로 담담하고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미래 생명체들의 독백과 함께 마침내 이야기 전체가 미래-우주로 날아오르는 결말은 그동안 작품 내외적으로 많이 보였던 작가의 한국 사회에 대한 염증ㅡ듀나는 특히나 현정권 이후 작품 내외-온오프라인에 걸쳐 정치 사회적 언급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건 아마 현정권 이후 노골적으로 촌스러워진 한국 사회에 대한 혐오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요ㅡ이 마침내 한 편의 SF로 잘 승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현중 씨의 [물구나무서기]는 SF로서는 탈락이지만ㅡ결코 투시력 자체에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닙니다. 투시력 정도야 (통속적) SF들의 흔한 정통 클리셰죠. 다만 그걸 ‘관측 행위만으로도 물질의 상태가 결정될 수 있다는 양자론의 코펜하겐 해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학설을 제시'(148쪽)하는 쪽으로 끌고 가버리면 소설은 안드로메다 은하를 향한 장대한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ㅡ소설로서는 꽤 읽을 만한 작품입니다. 특히 ‘물구나무 서기’의 개인적 체험과 투시력으로 인해 실패해버린 인생, 그 인생에 (외부로부터) 주어진 마지막 기회 등과 교묘하게 얽은 구성은 마지막 진술이 감동을 자아낼 수 있도록 탄탄하게 뒷받침해줍니다.

김창규 씨의 [백중(百中)]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해외 수준을 국내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작품입니다. 기본적으로 추리 소설에 기반한 플롯은 무리 없이 기능하고 있고 주인공(다분히 하드보일드의 스테레오타입스럽지만)이나 부주인공 인공지능(이쪽은 형사 버디물의 스테레오타입?) 모두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다만 굳이 제목이나 부주인공 이름을 ‘백중’이나 ‘서낭’ 등으로 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남는군요. 작가의 과학기술 창작문혜 수상작 [별상]에서처럼 한국 SF임을 강조하기 위한 불필요한 딱지처럼 보입니다. 꼭 김창규 씨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말 나온 김에 언급하자면, 한국 SF란 그저 조선 시대 어휘 한두 개 빌려오는 수준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적 SF라는 게 과연 굳이 필요하냐는 문제가 논의되어야 하겠습니다마는) 이쪽은 이미 판타지 쪽에서ㅡ혹은 근래에는 라이트 노벨 쪽에서도ㅡ많이 이야기되었으니 이만 줄입니다.

조나단의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는 90년대 초반 PC 통신 시절 SF 동호회 회원 창작란에 올라오던 수준에서 많이 벗어난 단편이 아닙니다. 물론 작품 자체의 완성도ㅡ구성이나 나레이션 등ㅡ는 좀 더 나을지 모르겠지만요.

정보라 씨의 [사랑 그 어리석은]은 {가타카} 감상문으로 시작해서 스토커에 관한 세 줄짜리 사회면 단신으로 끝나는 이상한 글입니다. SF적 장치는 사람 사이의 직접 대면이 철저하게 제외되고 문자 기록이 남는 간접 교류만 허용되는 사회라는 것 뿐인데, 장 마르셸 트뤼옹의 {돌의 후계자} 정도의 설정이 아니라면ㅡ이쪽도 그닥 현실성은 없지만ㅡ게다가 작중 묘사를 보면 현실성은 제로에 가까운, 그야말로 책상 위의 설정에 불과하고, 스토커의 심리 역시ㅡ물론 그런 인간 쓰레기들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야 없지 않겠지만ㅡ다분히 선정적이고 과장스럽습니다. (남성들을 구제 불능의 강박적 찌질이 사이코로 치부하고 나면 속 편합니까?) 스토커의 이상 심리를 단순히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원인으로 돌리는 것 역시 그 혐의를 짙게 합니다. 읽고나면 잠시 불쾌할 뿐 그 이상의 반응은 나오지 않는 글입니다.

나병우 씨의 [달에게는 의지가 없다]는 의도와 기획은 좋았지만 실제 작품으로의 형상화가 미흡했습니다. 서문을 비롯해서 많은 서평들이 도시 기층민-이주 노동자의 알레고리를 읽고 있지만, 실제로 본문 안에서 그것이 제대로 형상화되어 있는가를 말하자면, 확언하기 힘듭니다. 주인공의 상황은 고향에 가족들의 생활비를 송금하고, 마침내 궁극적으로는 목돈을 모아 금의환향하기를 바라는ㅡ결코 이 불친절하고 폭력적인 사회에의 정착이 아니라ㅡ불법 이주 노동자의 현실과 겹쳐지기 힘들고, 주인공의 파멸 역시 불법 이주 노동자나 도시 기층민의 현실ㅡ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대변한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그냥 친구 따라 달에강남 끌려간다는 오래된 속담을 다시 말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요.

설인효 씨의 [전화 살인]은 거의 소설에 대한 예의가 없는 소설이니 넘어갑시다.

박성환 씨의 [관광지에서]는 핵심 갈등이 화자의 내적 갈등인데, 갈등이 주제로 연결될 수 있는 함의가 화자의 서술을 통해 너무 직설적으로 제시되었고 갈등 자체도 그다지 끝까지 밀고 올라가지도 못했습니다. 불가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들 하긴 하지만, 대충 미소 한 번 합장 한 번으로 때우는 건 [재灰와 이름] 이래로 너무 안이한 결말입니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듀나(이영수), 자음과모음(이룸), 2011.01.20

멀게는 98년부터ㅡ정말 까마득하군요. 인터넷이 아직 문자 텍스트와 저용량 사진 파일 투성이였던 시절 아닙니까ㅡ2003, 2005, 2007, 2008년 등을 지나 가장 가깝게는 2010년작까지 대략 지난 10여 년 간 듀나의 행보가 만화경처럼 펼쳐진 단편집입니다. 저자 스스로 권말 후기에서 ‘농담’이나 ‘콩트’라고 부르는 소품들이 상당 수 포함되어 시간 날 때 한 편씩 가볍게 즐기기 좋은, 좋은 SF 단편집입니다. 그 중에서도 [소유권], [정원사]는 전형적인 듀나 단편이고,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안개 바다], [디북]ㅡ특히나 [디북]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수작입니다. 현재 국내 SF계에서 가장 첨단을 달리는 작가는 여전히 듀나라는 사실을 [안개 바다]와 [디북]은 차분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 on-line

 [장군은 울지 않는다] 라퓨탄, 웹진 크로스로드 2011년 3월

외계인들이 아이의 모습을 빌려 지구 정복을 시도한다는 내용은 진부하기 짝이 없습니다. 존 카펜터 감독의 Village Of The Damned(원작은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이 가장 유명하겠고 박성환의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도 근래에 국내에서 나온 카피본일 뿐이죠. 물론, 동일한 주제 혹은 소재라도 (특히나) 장르소설에서는 어떻게 변주해내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독자성을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이 소설은 도입부에서 쌍둥이 사이의 기괴한 관계에 초점을 맞춰 독자의 흥미와 관심을 유도하고, 무당과 굿을 넣어 한국식 SF라는 것을 쓸데없이 강조한 다음(도대체 무당이 왜 외계인들을 눈치채죠? SF 맞나습니까?), 중반부에서는 영재 학교로 배경을 옮겨 보다 스케일을 확대하고, 배경 설정을 대충 풀어놓습니다. (영재 학교는 말만 영재 학교지 학급 구성이나 수업 진행 등이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일반 학교와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작가의 고민이 부족했군요. 외계인들이 지구에 오게 된 설정도 굉장히 허술하고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쪽은 작가의 고민이 아예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말 역시 성급하고 허술한데, 이 외계인들은 아무래도 지구에 오면서 몸만 아이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정신도 유치하게 퇴행한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임태운식의 가볍고 진부하고 생각 없는 개그물입니다.

그때 잠겼던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몽둥이를 든 남자선생님이 호랑이처럼 사나운 눈으로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이 노무 새끼들, 어린것들이 벌써 담배에 싸움박질이야!!”

정도는 잠깐 웃겼습니다만 소설은 개그 콘서트가 아니잖습니까? [우주복]은 소품이었지만 괜찮았고(기분 나쁜 웃음을 꽤 자아내는 블랙코미디 호러 SF였습니다), [시공간 항]도 나쁘지는 않았지만([우주복]보다는 못했고), 이 작품은 셋 중에 제일 떨어지는군요. 작가가 [우주복]의 퀄리티를 다시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세 편의 글을 비교해보자면 어쩌면 이야기의 규모나 분량이 늘어나면 아직 작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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