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ff-line

 {악마의 무기} 필립 리브, 부키, 2010.12.09 

필립 리브는 이번 편에서도 정리할 인물은 확실히 정리하고, 정리할 관계는 확실히 정리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금방 떠오를 정도로 동화적인 배경과 설정, 소품들을 가지고 그가 말하는 내용은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사랑이 얼마나 덧없는지(혹은 잔혹한지),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공허한지입니다. 이 맛깔나는 부조화. 작가는 거시적인 조망과 미시적인 조명을 적절히 섞어서, 세계의 거대한 변화와 그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며 웃고 우는 사람들을 거의 총체적으로 담아냅니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관 설정 자체가 불필요한 디테일은 모두 제거한 날렵하고 간결한, (다시 말하지만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의 저패니메이션적인) 일종의 현실 세계의 2차원적 캐리커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첨언하자면, 인물들의 성격도, 설정 자체는 캐리커처처럼 단순하고 다소 과장되었지만, 중요한 국면에서는 간결하면서도 박진감迫眞感 넘치는 기교를 자랑합니다. 예를 들자면, 헤스터 쇼.) 주요 등장인물들이 각각 거의 돌이킬 수 없이 결별하고야 마는ㅡ그러나 결국 다시 (적으로) 마주치게 될 것은 명백한ㅡ필립 리브 특유의 깔끔하고 냉정한 결말은 남은 4부의 번역 출간을 목마르게 기다리지 않을 수 없도록 합니다.

 {인구 조절 구역} 츠츠이 야스다카, 북스토리, 2011.01.15

작가가 SF를 많이(非SF도 많지만) 썼으며, 일단은 미래로 상정된, 지금 여기의 현실 세계와는 조금 다른ㅡ법률 제도 하나 정도가ㅡ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SF로 볼 구석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호에서 밝힌 바 있는, 츠츠이 야스다카에 대한 애정으로 계속 리뷰한다면)

극한으로 밀어붙인 터무니없는 설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들의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인상적입니다. 작품의 초점은 블랙 코미디로, 상술한 노인들의 몸부림은 위악적인 독설을 통해 읽기 난처할 정도로 희화화되어 버립니다. 인도주의와 문명을 가장하지만 실상은 경제적 손익이 최우선 목표인 야만적 현대 사회ㅡ와 현대인ㅡ에 대한 비판 또한 독설 속에 포함되어 문명 비판적 주제 의식도 엿보입니다만,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무한 경쟁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국민 개인에게 떠넘기는 신자유주의의 비열함을 폭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는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결말은 변혁에 대한 패배주의적 냉소와 소시민적 가치관으로의 회귀로 봉합되고 맙니다. 다만 극단적인 발상을 거침없이 퍼붓는 독설과 함께 끝까지 밀어붙이는 박력은 여전히 통쾌하고 후련합니다. 

 {민들레 소녀} 로버트 영, 리젬, 2010.11.20

늦은 리뷰입니다. 띠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바, ‘클라나드’라는 미연시 기반 애니매이션 등 일본 마이너 서브 컬처(한마디로 십덕 취향ㅡ하지만 이 단편집이 번역되게 된 결정적 계기가 그것이었다니 비웃을 일만도 아니긴 합니다) 팬들을 타겟으로 삼은 마케팅 덕분인지 SF 독자층의 주목을 거의 못 받은 비운의 단편집. 심지어 alt.SF도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집에서 만든 레모네이드처럼, 달콤하고 청량하지만 동시에 약간 김새고 가벼운(SF 함량이 2% 부족한?)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작가들 중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와 작풍이 가장 비슷한데, 그보다 조금 더 여리고 담백합니다. 예를 들어 [시인과 사랑에 빠진 큐레이터]의 경우, 브래드버리라면 세계에 대한 절망적인 거부와 혐오어린 저주로 끝났을 법한데, 이쪽은 미지근한 타협으로 끝맺어버립니다. 비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자면 아마도 작가로서의 치열함이 부족하다고 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알코올 중독자들도 독주 대신 주스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이 단편집은 그 때를 위한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표제작 [민들레 소녀]가 가장 빼어나고,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 [별들이 부른다]도 모두 고색창연하면서도 SF 특유의 감성과 서정이 잘 담겨 있는 단편들입니다. [파란 모래의 지구]는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를 떠올리며 미소지을 수 있는 재치 넘치는 단편이고요.

P.S. ‘화성인’을 ‘마틴인’이라고 번역하질 않나(마틴? 미틴? 미친?), 중간 중간 뜻이 막히는 이상한 문장들이 보여서 번역 수준이 의심스럽습니다. 정확히는 원문과 대조해봐야 하겠지만요.

§ on-line

 [클론] 박애진, 네이버캐스트, 2011.01.06

편집 담당자는 ‘박애진 작가는 SF란 외피 안에 현대인의 사랑, 갈등, 고뇌 등 현실적인 문제를 담아낸 단편들을 여럿 발표해 온 작가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역시 SF이지만 고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로 투영될 것이다.’ 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문외한들이 SF로 분류하는 박애진 씨의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SF가 아닙니다. 물론 특정 작품의 서브 장르 해당 여부를 확정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니 얼마든지 반론은 있을 수 있겠고, 서브 장르 사이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니(SF팬이 아닐 수록 SF가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박애진 씨의 글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SF를 포함해서) 대중예술의 서브 장르 명칭들은 표딱지일 뿐 훈장이 아닙니다. 그래도 양배추 코너에 배추가 쌓여 있으면 점원에게 말해줘야겠지요.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마음만 크게 먹으면 클론을 만들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기억까지 공유하는 성체 클론이 어떻게 결재만 하면 뚝딱 만들어져 배송되는지 기술적/공학적 디테일은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이러한 기술의 상용화에 수반될 사회적 변화도 절대 거론되지 않습니다. (물론 SF가 반드시 그러한 것을 다뤄야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파편적이나마 제시되는 작품 속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지금 현재와 동일한데 단지 기억과 개성, 자아까지 복사할 수 있는 클로닝 기술만 집어 넣어진 것은 터무니 없는 부조화로, 작품 수준을 소설에서 우화로 끌어내려버리고 맙니다) 그러고 보면 공간적 배경은 방 둘 짜리 작업실이 전부여서, 부조리극의 단순화되고 평면화된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며, 등장인물들ㅡ과 등장클론들ㅡ은 아예 인간이라기보다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아이디 혹은 MMOPG의 캐릭터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클론을 만드는 건 새로운 아이디 혹은 캐릭터 생성일 뿐이고요. (그렇게 보면 전체 줄거리는 아예 심즈의 짧은 플레이 기록에 불과해 보입니다. 수입과 집안 일손을 늘리기 위해 캐릭터를 늘릴 수록 플레이는 더욱 바빠지고 복잡해지죠.)

작품의 주제 역시 게임 심즈가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습니다. 인생은 먹고 자고 싸는 행위의 무의미한 연속이며, 수입의 증가나 지위의 상승, 보다 고가품의 쇼핑도 결국은 엔트로피의 무의미한 증가로 이어질 뿐입니다. 다만 눈여겨 볼 만 한 부분은 작가의 장기인 폐쇄적 독거인의 구질구질하게 디테일한 일상ㅡ네이버 캐스트 기준 처음 세 쪽과 맨 마지막 쪽ㅡ과 18쪽에서 20쪽까지 이어지는 여자들 특유의 골치아프고 미묘한데다가 찌질하기까지한 관계지향적 트러블들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묘사입니다. 장르소설에서는 기본적인 장르적 재미 위에 덧붙였을 경우 소설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요소지만, 장르적 재미가 결여된 상태라면 평범한 주류 소설일 뿐 그 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스페이스맨] 문지혁, 네이버캐스트, 2011.01.27

이건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될 지 난감하군요. 소설 자체로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콩트입니다. 이야기 솜씨도 좋고 전반적인 무게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가볍게 읽고 던져버리기 딱 좋…아니, 그렇지만 그냥 던져버리는 걸로 끝날 수는 없습니다. 잘근잘근 씹어야죠. SF 딱지를 달고 나왔는데, SF적인 면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우주 여행을 다룬다고 해서 모두 SF는 아닙니다. 특히나 이소연 씨 이후 우주 여행은 한국인들에게도 현실적인 무게감이 얹어져서, 지금 여기와 무관한 다른 시간/다른 공간의 상상적인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2008년 이후로, 한국인 주인공의 궤도 비행은 그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SF의 영역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 소설은 그냥 2008년의 그 이벤트를 거의 고스란히 그대로 다루고 있는데다, 엉뚱하게도 우주는 영계靈界로 나타납니다. 죽은 엄마가 우주에 있으니 로켓 타고가서 만나겠다니 이게 무슨 SF입니까. 더군다나 우주 여행의 객관적 실패-주관적 성공을 통해 죽은 친족과의 만남을 계기로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자아라면 칼 세이건의 {컨텍트}의 기본 뼈대를 고스란히 베껴온 셈인데, 외계 문명과의 접촉이라는 SF적 비전과 과학적 진지함은 뿌리 찾기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명학적 운명론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禹主人 우주인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성명학적으로 ’14수 : 남, 여凶 이산격(離散格), 파괴운(破壞運) 박약좌절(薄弱挫折), 번뇌실패(煩惱失敗), 가정불행(家庭不幸)이라고… 이런 이름을 외손자에게 붙여주다니 엄청난 외할아버지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태클 걸자면, 주인공의 성姓에 관한 반전은 결말을 위한 전환점으로 가볍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인데, 할아버지는 도대체 왜, 뭐하러, 그리고 어떻게, 태어난지 4년이 넘은 외손자의 성을 자기 성으로 바꿔놓았는지 모르겠군요. 게다가 주인공은 중고등학교에 대학교를 거치면서, 하다못해 놀이공원 아르바이트할 때에도 주민등본을 한 번도 안 떼어봤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태클 거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거겠죠. 쓸데없이 SF 딱지를 붙여놓은 탓에 진지해지는 사람이 지는 꼴이 되었습니다.

P.S. 리뷰 작성 후 다시 확인해보니 성 반전 관련해서 지적한 덧글이 하나 있었군요. 덤으로 하나 더 태클걸자면, ‘눈으로 까마득하게 보이는 별들이 골프공이나 야구공만한 크기로 보’이는 망원경을 일곱 살짜리 손자에게 사주다니, 할아버지 도대체 얼마를 지르신 겁니까. 앞마당에 아예 천문대를 세우셨군요?

 [플레그매틱 프렌드] 송종욱, 크로스로드, 2011.02

쓸데없이 영어로 똥폼 잡은 제목은 넘어갑시다. 그런 거 태클 걸자면 끝이 없습니다. 맞춤법 검사 기능 없는 메모장.exe나 아니면 손으로 썼는지 ‘이상한 점이 발견다. 애당초 기록있던 품목수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기본적인 맞춤법 오류도 그냥 넘어갑시다. 갈 길이 멉니다.

일단 소설로서 굉장히 허술합니다. 포스트모던적 실험도 아니고 기본적인 시점부터가 엉망진창ㅡ전체적으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인데, ‘서박사는 문득 어렸을 때 봤던 고전영화 K-Pax 가 떠올렸다’ 같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서술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닙니다. (아니, 게다가 또 목적어-서술어 호응도 안 되는 비문이네?) 맞춤법과 문장, 서술 시점 같은 가장 기본적인 형식적 요건부터 조악한 글은 진지하게 읽어주기 힘듭니다.

내용상으로도 문제는 끝없이 넘쳐납니다. 일단 세부적인 오류들ㅡ예를 들어 로켓과 위성, 탐사체도 구별 안하는 터프한 무식함은 그냥 넘어갑시다. 주인공이 외계인들의 호르몬을 느끼는 부분도 그냥 넘어갈까요? 호르몬은 내분비물질이잖습니까. 작가가 호르몬 호르몬거릴 때마다 아메바형 외계인의 체내에 삼켜져 호르몬을 투입당하는 등장인물이 떠올라 탁월한 코스믹 호러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만, 그래요, 여기까지 그냥 넘어온 거 그냥 넘어갑시다. 외계 지성체도 지구의 몇몇 생명체들처럼 암수 두 가지 성을 가지고 있다고 당연스럽게 설명하는 것도, 설정이야 작가 마음이니 그냥 넘어가고, 외계 생명체에게 알코올 수용액을 권하는 터프한 무신경함 따위야 우리도 터프하게 넘어가줍시다. 외계 생명체가 알코올 수용액에 지구의 일부 생명체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냥 넘어가면, 서로 다른 외계 문명 사이에 결혼 같은 동일한 사회 관습이 있다는 것까지도 같이 그냥 넘어가줄 수 있게 됩니다. 600광년 떨어진 별에서 원격 자폭을 시킨다는 설정도 그냥 넘어가죠. 전송기가 중계기 역할도 하는 거겠죠. 작가가 설명 안 하는 건 까짓거 독자가 설명하면 그만 아닙니까. 앞에서는 분명히 결혼기념으로 2개월째 금연 중이던 우리의 주인공이 뒤에 가면 “이놈의 자식! 그렇게 콧대 높이면서 괜찮은 여자들 다 차내더니만, 기껏 고르고 고른게 묵사발이냐!” 라는 말을 모친에게 들으며 천연덕스럽게 외계인과 결혼하는 것도 그냥 넘어갑시다. 이쯤되면 한 작품에서 이 정도 오타와 오류를 낸 작가에게 감탄할 게 아니라 이 정도 오타와 오류가 넘치는 작품을 싣기로 결정하신 ‘작품을 크로스로드에 게재하기 전에 심사한 아시아태평양 물리학저널의 심사위원들’의 드높으신 안목에 감탄해야겠습니다. 이런 글도 실어주셨는데 ‘역사학과 인문학을 몰이해한 상태에서 쓰어진 단순 마초영웅물이라고’  안 실어주셨었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베로스의 자칭 ‘프로파간다 SF’들도 곧 올라올 듯 합니다.

자, 어쨌거나 이제 드디어 우리는 이 작품의 핵심인, ‘인류 멸망의 위험 앞에서 원격 자폭장치를 탑재한 외계인들이 어떻게 인류와 합심하여 자국의 정부를 배신하고 자폭의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까요’ 문제-해결 구조 앞에 다다랐습니다.

…이것도 그냥 넘어갑시다. ‘또다른 숙청의 가능성은 접어놔도 좋다. 자폭코드는 발동순간 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자동삭제되기 때문이다. 확실한 은폐를 위한 조치가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처럼 작가 편의주의에 충실한 작위적 설정들 앞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웜홀을 통한 순간 이동 후 본체 처리 방식 등 앞에서 꽤 그럴싸하게 복선을 깔아 놓았기 때문에 좀 번잡해보이는 과정이지만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핵심이라 할 중심 문제-해결 과정에 별 무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면 그동안 넘어온 수많은 오류와 부실함 덕분에 이 작품에는 착공 당시부터 이미 허물어져버린 폐허 같은 잔해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P.S. SF는 책상 앞에서 떠올린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무작정 덤벼들 수 있는 만만한 장르가 아닙니다. 리얼리즘 소설 이상으로 현실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 소설 역시, 외계로부터의 메시지 수신부터 시작해서 외계인과의 첫 접촉, 외계 기술 이전과 관련된 협상, 이후 흑막이 드러난 다음의 사건 진행 과정 등에서 정치, 외교, 사회적인 배경 지식의 결핍으로 인한 순진무지한 구멍들이 수도 없이 뚫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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