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2010년 하반기에 웹진 m에서 벌어졌던 해프닝 둘ㅡ

하나. 8월 중순, 자유 게시판 : 모 게시판에 {정의 소녀 환상}에 대한 길고 현학적인 글이 올라온 것에 대해 한 유저가 과연 그 작품이 평론을 받을 가치가 있느냐고 한탄하는 글을 자유게시판에 올리자 웹진 편집진 중 한 명이 덧글로 대중문화 비평 전반에 대해 비속어를 섞은 공격을 가한다ㅡ‘빌어먹을 텍스트 꾸겨넣을 공간에 뮤지션 사진이나 하나 더 박아주지’ 등. (익명의 아이디에게 평론과 감상문도 구별 못한다는 지적을 받자 저승 그림 걸어놓고 ‘악플 달면 지옥 간다’는 식으로 정신 승리한 후일담은 생략하자)

둘. 9월 말, 비소설 리뷰란 : 모모 커뮤니티 등에서 나온 무크지에 대한 리뷰. 길지만 충실한 리뷰에 대해 재미있었던 건 무크지 편집진 중 한 명이 직접 장문의 덧글을 단 것. 온라인 리뷰의 특성을 살려 리뷰어와 편집인 사이에서 발전적인 논의가 이어졌다면 바람직했겠으나…현실은 시궁창이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어른의 사정ㅡ그냥 원고료가 없어요, 하면 되지 굳이 5덕 어휘를 쓸 필요가?ㅡ이 있었다’, ‘얼굴이나 좀 봅시다’, 운운하는 지지부진한 변명으로 일관되었다.

두 에피소드 모두 장르 소설 팬덤에 퍼져있는 비평 혹은 평론에 대한 신경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손꼽을 만 하다. 그러니까 평론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선망, 그리고 동시에 과도한 자기방어와 부정.

이 흥미로운 정신 상태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 먼저 정리 하나 하고 넘어가자. 평론이 도대체 뭘까?

평론 (評論) [평ː논]
명사
사물의 가치, 우열, 선악 따위를 평가하여 논함. 또는 그런 글.
¶ 지금도 신문 잡지에 익명으로 발표하는 그의 수필이나 평론을볼 수 있다.≪심훈, 영원의 미소≫/지금까지 제가 읽어 온 평론들은 선생님 소설에 대해 우호적인 것 못지않게 적대적인(?) 것도 많았습니다.≪이문열, 시대와의 불화≫

출처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그렇지만 사전적 정의 가지고 썰 푸는 건 초짜들이나 하는 뻘짓이니까 실제 현실에서 평론이 어떻게 사용되는 지 보자.

이른바 문단이라는 것의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기준 중 하나인 일간지 신춘 문예에서, 평론은 시와 소설, 수필, 동화 등과 함께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한 마디로 문학 장르 중 하나라는 말. 이게 좀 재미있어지는데, 문학 평론은 그 대상이 문학 작품인데, 그런데 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하느 문학 평론이 다시 문학 장르의 하나에 들어간다는 소리. 그럼 평론에 대한 평론도 가능하겠네? (네 그렇습니다. 메타 평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요점을 짚어보자면 평론은 창작물 개개에 종속되거나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된 하나의 창작물이다. 대개 해외번역소설들의 권말에 붙은, 그러므로 작품과 저자에 대한 홍보 의도가 전혀 없다고는 결코 주장할 수 없는, 따라서 결과적으로 본문에 일방적으로 종속된 ‘해설’이나 ‘역자 후기’에 익숙한 장르소설 독자들이 꿈꾸는 평론은, 실제 평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물론 주류 문단의 시집이나 소설에도 해설이 붙기는 한다. 이른바 주례사 비평. 그런데, 그렇다면 주류 문단의 저희들끼리의 주례사 비평은 비웃고 흉보고 깔보면서도, 은근히 자신들에게는 해주기를 바라시는 건가? 변태아냐)

평론의 독립성, 독자성에 무지한ㅡ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한 결과가 선망과 부정으로 나타난다.

까놓고 말하자면, 그들은 문단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르에ㅡ혹은 작품에ㅡ혹은 작가에게 칭찬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평론이라는 잘은 모르지만 뭔가 대단해 보이는 형식을 통해서. 그렇지만 평론은 칭찬이 아니며, 제대로 된 평론이라면 해당 작품 혹은 해당 작가를 면밀하고 세심하게 살펴보고,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관점을 통해 장점과 단점을 포함한 다양한 특징들을 추려내고, 평론가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 예의 자기 방어와 평론 부정이 시작된다…

자기 꼬리를 맹렬히 뒤쫓으며 꼬리치는 개. 그들은 결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은 모르고 있으니까요.

젊은 장르인 탓에 원로라는 호칭은 못 붙이겠고, 하여간 한국 장르소설 태동기부터 활약한 중견 장르소설가 모모 씨가 모 출판사에서 새로운 장편 계약할 때 조건으로 국문과 교수의 평론을 받아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이쯤되면 웃기만 할 수는 없는 희극이자 웃지 않을 수도 없는 비극이다. 장르소설 팬덤 전반의, 인문학적 소양 부족으로 인한 촌극이랄까. 그래도 학부 시절 국문과 밥을 먹은 20º 씨 등이 그나마 문단과 평론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세련되게 유지하고 있을 뿐, 다수의 장르작가와 독자들에게는 주류 문단의 인정을 받아내고야 말고픈 욕망이 잠재되어 있는 듯 하다. (이것은 어쩌면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뿌리부터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줄기든 가지든 이파리든 쉽게 가려낼 수 없는 서구에 비해 이식될 때부터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문예소설과 통속소설의 이분법 위에서 철저히 타자화되어왔던 국내 장르소설은 자신의 독자적인 시선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바깥의 확고한 주체ㅡ주류 문단의 눈을 통해서야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욕망의 구체적인 한 발현에 대해서는 전술한 m웹진의 비소설 리뷰 기사에서 상세하게 다루었으니 생략하고, 언제부터인가 시나브로 만연해 있는 기묘한 표현인 ‘장르 문학’이라는 낱말에 대해서만 잠깐 짚어보고 마무리하자.

문학은 소설, 시, 수필, 평론 등의 상위 개념. 그러면 장르 문학은 장르 소설, 장르 시, 장르 수필, 장르 평론을 포괄하는가?

아니. 아는 게 소설 밖에 없어서, 문학은 소설을 좀 더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표현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뿐인 걸. 그러니까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토막극. 근데 언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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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하지만 불가피한 첨언 : 이런 글에는 대개 ‘그럼 대안이 있냐, 대안을 대봐라’ 운운하는 반응이 나오기 십상인데, 사실 대안은 비판적인 성찰 없이는 나오기 힘들고, alt. SF는 성찰은 애초에 포기하고 어떻게 하면 비판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만 고민하고 있는 웹진이다. (필요하다면 비판을 위한 비판도 당연히 감행하겠다)

다만, 하나쯤 덧붙이자면, 모 출판사에서 예전에 주류 문단의 기성작가 몇몇을 SF로 전향시켜 한국 창작 SF를 활성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적이 있었던 것을 상기해보시라. 그 출판사의 다른 야심찬 기획들과 더불어 허언장담으로 끝났지만, 실현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조금 멀리 가지만 윤대녕이 {사슴벌레 여자}로 SF 운운했던 걸 생각해보자. 딱 4대강 살리기가 실제로는 4대강을 어떻게 만들지랑 똑같은 발상. 윤이형 씨가 {백만 광년의 고독}에서 빠졌던 건 현명했다. 국내 창작 SF의 토대가 조금만 더 단단히 다져진다면 외부로부터의 유입이나 외부와의 조우도 긍정적이겠으나, 아직은 정립되지 않은 본질을 흔들어 흐려버릴 염려가 다분하다. 비단 창작 뿐 아니라 비평도 마찬가지. 잘 훈련되어 정교한 문단 비평과 제대로 만난다면 국내 창작 SF도 한층 더 발돋움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장르소설에 익숙치 않은 문단 비평의 섣부른 접근은 일부 게으르고 욕심만 많은 평론가의 손쉬운 일회성 먹이로 이용당하고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 (예 :  작가세계 2008년 겨울호에 수록된 [장르문학에 대한 오해와 편견 – 그는 왜 『키메라의 아침』이 SF가 아니라고 주장하는가?]로 잘 반박된, 비평가 박진 씨의 허접한 평론) 그렇다면 대안은? 글쎄, 대안이라고 별 게 있을까? 다만, 외부의 기성 권위를 손쉽게 빌려 자기만족에 빠지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그리고 장르 내부의 고질적인 친목질ㅡ’좋은 게 좋은 거지’ 혹은 ‘우리가 남이가’ 따위 정신 상태로 일체의 비판적 비평을 거부하는(예 : 링크 ‘과학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따뜻한 눈으로 보지는 못할 망정’ …희대의 명언이로다)ㅡ의 유혹도 뿌리치고 묵묵히, 한 줄 한 줄 정직하게 스스로 느낀 바를 정리하고 함께 나누는 것. 비록 학문적 연마가 덜 되어 거칠더라도 장르 팬덤 안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난 담론과 안목만이, 우리의 작은 묘목이 뿌리 깊고 열매 많은 거목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한국 창작 SF는 근 몇 년 사이에 미세하지만 끈질기게 자라났고, 이제 필요한 것은 다양한 관점에서의 활발한 평가와 의견 교환을 통해 보다 그 폭이 넓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alt. SF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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