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line

 독재자 – SF/환상문학 테마 단편선

SF와 非SF가 섞여 있으니 SF만 골라보자. SF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김창규 씨의 [파수]는 특유의 세련되고 날카로운 아이디어와 견고한 서술이 볼 만 하다. 다만 ‘세계를 한 번 들었다 놓는’ 느낌이 근사한 앞부분에 비해 죽은 사람의 영상이 비친다는 비과학적인 요소로 간신히 봉합하는 뒷부분은 다소 아쉽다.

정소연 씨의 [개화]는 SF의 냄새가 희미하다. 아마도 나노 기술을 기반으로 했을 식물적 이미지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재미있는 발상이긴 하지만.

김보영 씨의 [신문이 말하기를]은 국민을 호도하는 정부ㅡ와 주류 언론들의 후안무치한 헛소리가 공상과학급으로 허무맹랑함을 드러냄으로써 신랄한 풍자를 완성했다. 작가 특유의 부드럽지만 치밀한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냉소를 넘어 보다 진지한 고민에 이르도록 하고. 다만 결말은 그리 작품 전반의 밀도에 비해 조금 가벼운 느낌이다.

듀나의 [평형추]는 그냥, 듀나다운 SF라고 밖에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 우주 엘리베이터와 생체 보조전뇌, 암시장, 기업간의 첩보전 등 낡아빠진 클리셰들을 잘도 끼워맞춰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후반의 사이버 액션씬은 듀나치고는 의외로 역동적이고 활기 넘쳤고.

박성환 씨의 [입이 있다 그러나 비명 지를 수 없다] 역시 진부한 소재를 우려먹었는데 듀나에 비해 진부함을 잘 털어낼 정도로 재치 있지는 못했다. 서두에 한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자인했지만 제목부터 할란 엘리슨의 유명한 단편의 그늘 아래 놓인 것 역시 참신한 느낌을 많이 덜어냈다.

on-line

 2000년의 낮과 밤 – 방진하 단편소설

아, 제발 이제 그만. 이브나 아담 같은 고유명사가 등장하는 유사 SF는 이제 제발 그만 좀 나오시라. 질리지도 않습니까? (그런데 이 단편은, SF 외부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약 다시 쓰기 짝퉁 SF는 아니긴 하다. 그러니 차라리 이브 같은 낱말은 안 쓰는 게 나았을지도.)

그리고 이 소설은 꽤 괜찮은 SF적 시사점 하나를 던져주는데, 바로 정보와 매체에 대해서다.

미래 문명을 향한 메시지는 외계 문명을 향한 메시지와 동일한 문제에 봉착한다. 도대체 어떻게, 배경지식이 없는 청자가 기호해독할 수 있도록 정보를 기호화할 것인가? 비디오 테이프는 비디오 플레이어와 모니터가 있어야만 볼 수 있다. 이건 지엽적인 문제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정보는 가시광선 영역에 국한되어 있다. 그런데 가시광선이라는 말부터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다. 인간이 볼 수 있는 광선이라는 뜻이니까. 서로 다른 외계인들이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스타워즈, 서로 다른 외계인들이 조약을 맺고 무역을 하는 스타트렉의 스페이스오페라 세계를 벗어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자살할 수 밖에 없는 솔라리스 바다의 깊고 광막한, 진공과 같은 침묵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사이에 테드 창의 언어학 교실 등이 있긴 하지만, 테드 창의 외계인 역시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멀리 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어를 말하지 않을 뿐,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를 갖추고 있으니까.)

이렇게 따지고 보면 사실 미래 문명을 향한 메시지와 외계 문명을 향한 메시지가 봉착한 문제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미래 문명을 향한 메시지는 해답이 있다. 바로 인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배울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가르칠 수도 있다. 그 자신이 매체가 될 수 있는 거다.

매체로서의 인간상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면 훨씬 SF 맛이 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쉽게도 이 단편은 그보다는 한 시대의 짧은 만남과 이별을 그리는데 그쳤다. 레이 브래드버리처럼, 감상적인 면이 SF의 감동을 끌어올리는 작품들도 있지만, 한국 SF는 아직까지는 피상적인 감상성을 극복하고 SF의 핵심으로 파고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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