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SF 웹진을 마치면서:  반성과 교훈 ㅡ장강명님

  월간 SF 웹진이 2001년 3월호를 마지막 호로 기간으로는 1년 6개월, 회수로는 17호를 발간하고 폐간됩니다. 하루 평균 100 페이지뷰가 발생하여, 총 페이지뷰는 10만회를 넘었고, 게시판 글은 2000개 가까이 올라왔습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아껴주셨습니다. 저 개인으로서는 웹진 운영이 늙어서까지 오랫동안 기억될 뜻있는 경험이자 추억이었고, 저 자신을 위해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체 SF 팬의 입장에서 볼 때, 월간 SF 웹진은 동호인들만의 공간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했고, 따라서 SF 저변 확대에는 거의 이바지하지 못했습니다. 오프라인 행사나 동인지 제작 등 가시적인 성과는 전혀 없고, 웹 상의 회지 활동도 근본적으로 아무런 전략이 없는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1년 반 동안의 활동도 개인 PC의 하드 디스크에 정리되는 것 외에는 뚜렷한 결실 없이, 마땅한 상속인도 없이, 그냥 한때의 흐뭇한 기억으로만 남게 됩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운영자였던 저의 판단 착오나 노력 부족도 있었고, 여건상 어쩔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으며, 시도를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또다른 SF 웹진이나 SF 사이트를 만들고자 하시는 분을 위해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 동안 웹진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과 잘못한 점, 또 잘했다고 생각되는 점 등을 적어보았습니다.
  월간 SF 웹진의 시작, 웹진의 방향, 웹진 운영, 게시판, 웹 커뮤니티와 팬덤 등을 소주제로 제가 당시에 생각했던 것과 지금 생각하는 것, 그리고 시도해보았거나 실수한 점 등을 솔직하게 썼습니다. 그러나 제가 식견이 짧아 사실을 엉뚱하게 해석하거나 저도 모르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라도 뜻있는 분은 이 글을 읽고 반면교사로라도 활용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기에, 감히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반나절 동안 급하게 써서 글이 다소 두서가 없는 것과, 평어체를 양해바랍니다.
 
  ⊙ 월간 SF 웹진의 시작
  월간 SF 웹진을 처음 구상한 것은 99년 9월이었다. 9월에 멋신 번개가 있었는데, 참석자는 나, 까리용님, 정년철님, 김정선님, 강현석님이었다. 거기서 우리나라 SF 현실에 대해서 한탄조로 시작해서 공상적인 대안으로 끝난 이야기가 오갔는데, 까리용님과 정년철님은 SF 팬들의 힘으로 각각 출판잡지와 동인지 출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지금 시점에서도 그러한 활동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2, 3년 후에도 출판잡지나 동인지 출판은 요원한 일일 가능성이 크다.
  대신 나는 웹진 정도라면 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거품을 뺀, 혼자 힘으로도 운영이 가능한 웹진 정도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웹진을 만들면 도와달라고 까리용님과 정년철님에게 부탁했는데, 실제로 정년철님은 그 후 세 달 가량 웹진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나는 이삼일 정도 웹진을 도와줄 사람이나 내 여유 같은 것을 조금 생각해보다가 결국 웹진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 당시에 이미 SF 웹진으로는 정직한님, 지정훈님, 유창석님 등이 주축이 된 ‘위어드’가 있었는데(정직한님은 ‘위어드’는 웹진이 아니며 소식지라고 함), 위어드는 부정기적인 업데이트와 다소 작은 규모라는 단점과, 대신에 모든 기사가 위어드 편집진이 만든 인터뷰, 번역, 리뷰 기사로 위어드가 아닌 곳에서는 볼 수가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따라서 새로 만들 웹진은 정기적인 업데이트를 차별성으로 내세우고, 위어드와 같은 인적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대신(웹진 창간 전에 웹진을 위해서만 글을 주겠다는 믿을만한 사람은 정년철님, 하드리안님 둘 뿐이었다. 웹진 창간호 기고기사는 이 두 사람에 내 글을 포함하여 세 사람이 모두 아홉 편의 기사를 썼다), 각 통신망의 SF 동호회나 SF와 인접한 동호회(이를테면 영화 동호회나 X-파일 소모임 등)의 글을 갈무리하여 웹진 기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별로 낙관적으로 계산하지 않아도 매달 위어드 정도의 분량은 업데이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상돈님이 그 즈음에 새로 웹진을 만든다면 KSFA의 자료들을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기존에 KSFA에 올라온 글들을 재편집한다면 사람들이 굳이 웹진을 보러 올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KSFA에 올라오지 않은, 통신망의 최근 1달 동안의 글들을 위주로 웹진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통신망 여러 군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글들을 읽기 위해서 웹진으로 오지 않을까 싶었고, 또 좋은 글을 가리는 데 드는 시간비용감소 효과도 매력으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9월 초에 웹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약간 불안해하면서 광고를 하다가, 10월 1일에 창간호를 냈다. 이렇게 속도를 내서 작업을 한 것은 잘한 일이기도 했지만 무모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내 스타일이 한번에 할때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므로,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계획하고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방식으로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덤벼든 일이었기에 자칫했으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웹 디자이너 장정원님이 웹 디자인을 해주신 것이나 장정원님의 소개로 아칼님이 서버를 제공해 준 것이 제일 큰 행운이었다. 만약 이런 행운이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무료 홈페이지에 어설픈 디자인으로 개장을 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웹진 성공의 절반은 장정원님 덕이라고 생각한다.
  장정원님, 아칼 고영빈님, 하드리안 이승우님, 정년철님, 이수영님 등이 내가 웹진을 만든다고 하자 아무런 조건 없이 웹진 창간을 도와주셨고, 그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빈 말이 아니라,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분명히 웹진은 창간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분들이 의구심을 가지고 방관적인 자세로 지켜볼 때(사실 그게 당연하다) 이분들은 역시 의구심은 가지셨을 테지만 그래도 도와주셨다.
  반면에, 서둘러서 잘된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처음에 웹진을 만든다고 할 때에는 호의적인 사람들조차 염려를 하였다. 그렇다고 그런 염려에 대해서 나한테 명쾌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런 염려를 설득이나 공감대 형성으로 극복하느니, 차라리 무턱대고 창간호를 만든 다음에 일을 더 크게 벌이자고 생각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꼭 그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동진형, 고호관님, 박상준님, 고장원님, 홍인기님 등은 웹진을 오픈한 다음에 알게 되었거나 아니면 웹진 창간호 이후부터 글을 주기 시작하였고, 웹진에 대한 지지도 처음 창간호와 2호를 넘기고 나서부터 비로소 단순한 격려에서 어느 정도의 신뢰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다소 주제넘게 이야기하자면 요즘같은 저조기에 SF 동호회나 팬들이 어떤 행사를 기획할 때에는 조직이나 행사 이름 등 다소 비실제적인 일에 토론하느라 초기의 팔팔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는 ‘개발독재’ 식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한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웹진이나 웹 사이트 개설과 관련해서 당시 내가 깨닫지 못했던 점이 몇 개 더 있다. 우선 쉽게 생각나는 것은, 지금은 웹진이라는 개념이 별로 참신하지도 않고 이미지도 좋지 않지만, 그래도 1년 반 전에는 그게 유행의 끝물을 타고 있었다. KSFA나 위어드가 다소 활동이 차분해질 당시에 월간 SF 웹진이 창간된 것도 행운이었다. 또 컨벤션 준비 행사 등을 통해 4대 통신망 회원들이 서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된 점이나, 통신망 활동이 지금보다는 활발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운영자인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다음은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들이다. SF 팬들은 다소 배타적인 경향이 있다(인정하자). 그래서 팬덤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외부인, 가이진(외인), 뭐 심하게 말해서 어중이 떠중이로 간주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영리업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SF 동호회에서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웹진이나 웹사이트를 만든다면, 아무리 그 사람이 의욕적이라 해도 생각보다 호응을 덜 받을지도 모른다. 나는 6년 정도 하이텔과 천리안의 SF 동호회에 가입이 되어 있었고, 그런 점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학생이라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다지 SF 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었고, SF에 관한 한 별로 이렇다 할 색깔이 없었다. 다소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자면, 고장원님의 SF 질문상자에는 관심은 있지만 막상 참가하기는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나이 어린 SF 팬 중에는 상당수 있지 않을까? 홍인기님이 SF 사이트를 만든다고 한다면 SF만화 팬들은 다소 시큰둥하게 느낄 수 있지도 않을까? 또는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스타트렉이나 엑스 파일 팬, 또는 메카닉이나 게임 팬이 관심사를 넓혀 SF 사이트를 만드는 경우 말이다. 그런 면에서는 무난한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만약 누군가가 SF 웹진을 나중에 다시 만든다고 한다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할 일들일 것 같다. 문제를 극도로 단순화시키면, 학생이라 시간 여유가 많으면서, SF 동호회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고, 게임이나 메카닉, 또는 스타트렉과 같은 특정 TV시리즈보다는 서적 위주의 SF에 관심이 더 많고 대체로 무난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만약 그런 사람에게 내가 장정원님을 만난 것 같은 행운이 없다면, 그 후보는 html이나 웹 디자인에도 실력이 있어야 하거나, 웹 디자이너를 돈을 주고 고용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을 다 고려해보면 당시에 나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이런 것들이 처음 사이트를 열 때에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처음에 사이트 질을 높여서 독자들의 신뢰를 빨리 얻는 데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할 거다.
 
  ⊙ 웹진의 방향
  처음에 웹진을 만들 때에는 웹진의 성격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도 없었다. 당시에는 웹진의 질도 별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것보다는 페이지뷰를 올리는 데에 관심이 더 많았다. 애초의 계획은 SF 포탈 사이트와 비슷한 것이었다.
  페이지뷰를 올리고, 기사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 내가 생각한 방법은 위에 말했듯이 각종 소모임이나 관련 장르의 SF 관련 글을 ‘발굴’해 오는 것이었다(제대로 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리고 반대로 그런 장소에 SF 웹진을 광고하고, 아는 검색 엔진에 모두 웹진을 등록시켰다.
  한편으로는 내가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고, 예상도 하지 못한 변화가 천천히 일어났다. 웹진 창간 이후로 3개월~6개월 이후에 게시판 위주로 일종의 웹 커뮤니티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애매모호한 성격의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공동체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즈음에는 처음 웹진을 창간했을 때만큼 의욕도 많지 않았고, 연재기사와 기고기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비평란, 영화란, 소식란의 글들의 질에 대해서 회의도 약간 갖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생각해도 월간 SF 웹진에서 중요한 부분은 기사란이 아니라, 게시판인 것 같았다. 나도 웹진 게시판이 점점 좋아졌고, 마침내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이상하게도 그렇게 되자, 오히려 게시판에는 거의 글을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계획은 마침 귀찮던 참에 자동 폐기되었다. 이것을 방향 선회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에 만들려던 잡탕식 포탈 사이트와 조회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웹진 광고를 여기저기에 하고 다닌 것을 중단한 것은 사실이다. 좋은 기사를 읽히게 하고 싶어서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업데이트를 해서 웹진이 살아있는 사이트가 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별 근거는 없지만 업데이트가 게시판에 자극이 되었다거나, 웹 커뮤니티에 리듬감을 주지는 않았을까 멋대로 추측해본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저절로 생격난 지금 웹진의 묘한 성격을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 웹진의 성격이 다소 폐쇄적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일반 팬들의 모임과는 달리, 자기반성적이고, 또 토론에 있어서 관용이 있다는 점은 좋은 특징으로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포장을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뭐냐하면, 내가 게을러졌다는 것이다. 비평란이나 영화란 기사수는 나날이 줄어들었고, 업데이트를 위한 업데이트를 했고, SF 동호회 밖은 돌아다니지 않았다.)
  웹진 카운터가 IP 추적이 되었거나 사이트 내부 페이지뷰를 계산할 수 있었더라면 유용한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웹진에 하루에 오는 사람이 몇 명인지, 열독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있다면 웹진이 웹 커뮤니티 비슷하게 되었다는 주장의 증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뒤의 [웹진 운영]에서 다시 이야기해보겠다.
  웹진의 방향에 대해서 하이하바님, 홍인기님, 동진형, 그리고 그 외의 분들이 많은 지적을 해주시고 또 충고도 해주었다. 내가 시도해보려고 했던 것도 있다. 지금부터는 그런 것들을 써보겠다.
  먼저 하이하바님이 생각한 웹진의 방향부터.
  웹진 초기에 하이하바님이 멀리 일본에서 메일을 여러 통 주셨다. 대체로 요약을 하자면 웹진이 SF 대중화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감상문 모집이나 창작물 모집, 기타 등등의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는 것과 설문조사 게시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나, 게을러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점점 나 자신이 SF 웹진의 폐쇄적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에 드는 커뮤니티에 마음을 빼앗겨 점점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하이하바님은 “웹진이 단지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취미활동의 연장이 아니라면 이러한 작업은 꼭 필요합니다”라고 메일을 주셨는데, 나는 그냥 SF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SF 웹진은 어쩌면 벗어났을지도 모를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의지가 없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지금의 웹진 형태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감상문 모집은 뭐 하더라도 창작물 모집과 같은 것은 운영자의 의지가 있으면 해볼만한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의 운영자는 한번쯤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그 다음은 홍인기님의 견해를 보자. 인기님은 실제 출판 잡지가 그러하듯 웹진이 보다 뚜렷한 성격과 방향성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관련글은 아직도 게시판에 있으니 살펴보시길)
  글쎄, 여기에 대해서는 나는 그다지 할 말이 없다. 인기님의 주장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너무 이상적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적용을 시킬 방안도 언뜻 떠오르지 않고, 나 자신이 그다지 색깔이 있는 편이 못 된다. 또한 그런 일을 하기에 편집장으로서의 역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SF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그런 식으로 웹진을 운영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는 글 자체가 드물다. 게다가 당장 웹진의 운영이 장기적으로 보장된 것도 아니므로, 그러한 방법이 과연 비용효과적일지도 의문이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웹진이나 웹 공동체가 여러 개라면 서로가 뚜렷하면서 다른 성격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하나밖에 없는 웹진이라면 그냥 무색으로 남는 것이 남지 않을까 한다. 웹진이 뚜렷한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는 실제로는 고려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SF가 활성화된 미래의 SF 사이트 운영자는 꼭 고려해보시길.
  마지막으로 동진형의 도움. 이것은 동진형 뿐 아니라, 웹진 초기의 정년철님도 말씀하셨던 것이다. 내가 멋대로 확대해석하면, 이런 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웹진이 지금처럼 통신망에서 글을 ‘긁어모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저널리즘으로 작동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동진형은 고유성 화백을 인터뷰하거나 {복제인간}을 실을 수 있는 데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사실 인터뷰 기사는 동진형이 80% 이상을 쓴 것이다. 그 외에도 동진형은 그런 기획을 여러 개 추진하려고 했지만 내가 바빠서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정년철님 역시 인터뷰 기사 같은 것을 웹진에서 기획해보자고 했다. 또는 아예 기획기사를 만들거나, 매호마다 뉴스위크처럼 하나의 이슈를 여러 각도에서 여러 사람의 필진이 다루어보자고 했다. 고호관님도 해외기사를 보다 의욕적으로 여러 소스를 가지고 싶다고 해보았지만, 내가 게을러서 결국 해외의 SF Weekly 기사를 번역하는 데에 그치게 되었다. 동호회 소식 같이 간단한 것도 제대로 꾸준히 보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대단히 실망스러웠다). 나 역시 국내 소식을 처음에는 약간의 논평과 함께 SF팬의 입장에서 다루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신문 스크랩에 그치게 되었다.
  때로 이영님 인터뷰와 같은 것을 시도해보았지만, 역시 위의 작업들은 1명이나 2명만으로는 하기가 힘들다. 적어도 1명이 하려면 시간적 여유라도 많아야 한다. 그러나 4학년이 되고, 과대표가 되고, 또 졸업작품을 하거나 신문 연재를 하거나 하면서 시간에 계속 쫓기던 나는 그런 여력이 없었고, 그렇다고 맡아서 해줄 사람도 없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미래의 독편장은 이 부분을 꼭 신경써주었으면 좋겠다.
 
  ⊙ 웹진 운영
  미래의 독편장이 참고가 되도록 실제적인 정보를 몇 가지 적는다면, 내가 웹진 한 호를 업데이트 하는 데에는 평균 사흘 정도가 들었다. 꼬박 업데이트 한 작업에만 집중을 한다면 이틀 정도에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사흘이라는 수치는 매너리즘 속에서 작업을 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에서 썼듯이 제대로 된 웹진을 만드는 데에는 최소한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만약 창작물 공모라든가, 인터뷰 기사를 하려고 한다면, 충분한 준비와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한 달에 사흘 정도를 여유내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 처음 몇달은 할 수 있어도 날이 갈수록 그 사흘의 비중이 크게 느껴진다.
  웹진 운영에 있어서 어떤 부분은 분업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 같다. 따라서 편집진이 여러 명이 된다고 해서 그 숫자만큼 산술적으로 몇 배의 시간절감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작업설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분업에는 작업자들 간의 신뢰가 필수적인데, 팬 활동에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작업자를 신뢰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연재 원고가 펑크가 나거나 독촉을 받고 나서 깜빡했다고 지금 써서 보내주겠다는 정도는 귀엽다. 원고를 보내주겠다, 연재를 시작하겠다고 말해놓고서는 한 편도 보내주지 않은 사람도 있고, 어느 날인가부터 연락을 끊는 사람, 웹진을 맡아서 하고 싶다고 몇 번 만나서는 사람만 귀찮게 하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런 도움이나 충고도 주지 않으면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지시만 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웹진을 닫기로 알린 후부터 e-북 회사나, 유료 사이트, 또는 그냥 관심있는 사람들이 연락을 해왔는데, 한번 만날 때마다 반나절은 소요되지만 얻는 것도 하나도 없고 오히려 상대방의 설교를 듣는 것 때문에 불쾌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 월간 SF 웹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고 그냥 폐간하기로 결정한 것에는 부분적으로 그런 이유도 있었다. 1월 이후에 연락을 해온 사람은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수인계가 필요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자기가 직접 사이트를 만들면 된다. 월간 SF 웹진이라는 이름은 얼마든지 사용해도 된다. 웹 디자인도 장정원님께 사용 양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리 업체가 대안일까? 솔직히 별다른 수익모델도 없는 상황에서 회원수도 많지 않을 SF 사이트가 사업성이 있을 리 없다. 용돈도 벌지 못할 것이다. 독자들에게 돈을 받으려면 가치가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가치가 있는 정보를 제공하려면 노동이 충분히 투입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1명 정도의 생계는 책임질 수 있는 돈이 나와야 한다. 이메진 같은 형태가 가능성이 있는 건지 모른다. 아니면 백수가 하든가, 복지가의 도움이 있어야 하든가다. 뜻있는 사람들 5~6명 정도가 철저한 작업설계 하에 아무도 펑크내는 일 없이 일을 나누어 한다면 제대로 된 팬 사이트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창작게시판에 대해서 한 마디 해야겠다. 창작게시판은 완전히 실패했다. 처음에 게시판으로 전환할 때에도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기대 이상으로(?) 망했다.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창작물을 삭제하는 것은 힘들고, 가만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게시판 형태의 창작물 지원은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SF 팬 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창작물 관련 내용을 싣고 싶으면 자기가 직접 편집자가 되어 창작물을 고르든가(처음에 월간 SF 웹진이 그러했듯이), 공모를 하는 것이 좋겠다. 공모라고 해도 상금이나 상품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한다.
 
  ⊙ 게시판
  이번에는 게시판 운영에 대해 한 마디. 지금 회원제도 아니면서 월간 SF 웹진 게시판만큼 활발하고 수준높은 게시판이 인터넷에 또 있을까? (있으면 말고 ^^)
  그러나 그것은 웹진의 규모가 작고 참여자의 수준이 높았던 것에 더하여 운이 좋아서 얻어진, 바늘 끝의 균형과도 같은 것이다(적어도 내 인식은 그렇다).
  얼마 전에 게시판에서, 바로 그 게시판 관리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내 방식대로 어떤 판사가 자기는 음란물을 보면 안다고 했듯이, 한명의 관리자가 인신공격성 글이나 광고들을 솎아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광고성 글은 알피님도 종종 지워주셨다). 내 생각에 내 기준은 그다지 편협하지 않았다고 본다. 라엘리안 관련글도 광고성이 없을 때에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내가 계속 삭제했던 글은 뭔가 악감정이 있는 듯한 사람이 상대를 지칭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게시판에 올린 글이었다(이를테면 이메진의 한 글이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내용의 게시물에 관련글로 ‘그런 엉터리 같은 **평이 여기에도 있다지’라는 식으로 한 문장을 달아놓는 등). 아마 읽은 사람은 얼마 없는 것 같다. 심각한 반발은 한번도 없었지만 나는 독편장(독재편집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홍인기님이라면 자유방임과 시장원칙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삭제했다는 공지도 없이 (내 마음대로 ^^) 그런 악성 게시물을 삭제하는 편이 더 잘하는 일 같다. 게시물의 조회수가 시장가격과 같은 작용을 한다고 믿기도 힘들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도 있다. 회원제도 아닌 인터넷 게시판에서 상대방의 정체도 모르는 채 자율적인 정화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조직적인 따돌림 같은 것이 가능한지,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그런가하면 회원제 게시판은 너무 삭막해 보인다. 회원제가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기껏해야 광고나 인신공격성 글이 사라질 뿐이지, 게시판 글의 수준이나 게시판 활동의 활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오히려 회원제가 아닐 때가 낫지 않을까. 비공개게시판 역시 같은 이유로 반대한다.
  지금도 나는 게시판에 계속 글을 올리는 한 사람 정도는 사라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광고글도 아니고, 나름대로 성의는 있는 것 같은 글이다. 지울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할까?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게 정답이다. 미래의 운영자가 운영하는 사이트가 규모가 커지면 SF가 무언지 물어보는 중학생도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자주 올 것이고, 숙제를 도와달라는 고등학생도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자주 올 것이다. 그런 점에 대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없다.
  뚱딴지 같은 결론인데, 사이트에서 게시판의 비중이 크게 차지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인 것 같다. 사이트가 커지면 커질수록. 노력으로 되는 일도 아닌 것 같다.
 
  ⊙ 웹 커뮤니티와 팬덤
  웹 커뮤니티나 팬덤 활동이 정말 한국 SF를 부흥시킬 수 있을까? 나는 팬덤 활동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한국 SF 부흥의 필요조건은 될 지언정 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SF 부흥을 위해서는 역시 창작 소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장 크기와 창작 소설의 관계를 닭과 달걀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시장 크기가 닭이라면 그 닭은 불임이고, 반대로 달걀이라면 그 알은 무정란이다(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게 순환논리로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된 창작 소설을 못 쓰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만 제공하는 것 같다.
  너무 길게 글을 써서, 쓰는 사람도 지쳤기 때문에 짧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만 쓰면, 웹 커뮤니티나 팬덤 활동으로 한국 SF를 부흥시켜야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어깨힘을 빼는 것이 사이트 운영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충고다.
  또 하나 권유하고 싶은 것은, 일반 SF 통신동호회처럼 친목 위주의 사이트가 되면 안 되겠다는 점도 있다. 가급적 친목 위주의 오프모임이나 채팅은 배제하는 것이 어떨까. 실제로 친목 활동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진지한 논의에 발목을 잡는 경우를 보아서 하는 이야기다.
  
  주제넘게 나 개인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미래의 독편장이 이 글을 무슨 바이블처럼 생각하는 것은 나조차도 바라지 않는다. 어쨌든 위에서 내가 열거한 점들을 한번 정도 고려를 해보고 미래의 독편장이 멋있는 판단과 전략을 세워줬으면 좋겠다.
  월간 SF 웹진에 관한 평가나 앞으로 만들어야 할 웹 커뮤니티에 관한 건설적인 이야기들이 게시판에서 토론이 되면 무척 기쁘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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