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ff-line

 로렌스 블록은 좀 쌩뚱맞지만 해리 터틀도브부터 마이클 무어콕, 프리츠 라이버까지 SF 쪽에서 명망 높은 작가들의 중단편을 수록했다. 그래봤자 마이클 무어콕과 프리츠 라이버의 수록작들은 SF가 아니라 팬터지지만. -_-

 1권에 이어 하인라인, 스터전, 베스터, 브래드버리, 하인라인 등 그야말로 거장들의 총출동인 단편선. 무엇보다도 대니얼 키스의 오리지널 중편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이 눈길을 끈다.

§ on-line

 왕의 노래-고장원 (웹진 크로스로드) : 역사학 등 인문학 전반에 대한 무지 혹은 오해와 편견이 작품의 완성도를 많이 저해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관광이 아니라 학문 탐구일 바에야 굳이 화가의 기록화 같은 불완전한 시각 자료가 필수적일 필요가 없고, 역사학 연구는 인접 국가간의 정치적 경제적 이권 다툼의 수단만이 아니며, 개별 사실에 대한 지엽적 관찰 기록이 아니라 구조적 본질적 분석과 해석이 중요하다는 것 등을 무시하고, 심지어 역사학을 선무당 학문이라고 부르니 말 다했다. 게다가 남녀관은 너무 신파적 남성지향 판타지의 냄새가 짙고 (여자가 남자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이를 갖는 것이라니), 배경 혹은 제재인 고구려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며(고구려 왕의 후예들이 중국 경제계 정ㅋ벅ㅋ), 미래 세계 묘사 및 스토리 전개에 관련된 정보들을 화자의 내적 독백이나 등장 인물 사이의 대화로 무지막지하게 직설적으로 쏟아내는 전달 방식 등은 역사와 문학 사이를 가로지르는 흥미로운 미스터리물이 될 수 있었을 하나의 가능성을 거의 완전히 매장해 버렸다.

 

 다시 한 번 크리스마스-전혜진 (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문학) :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을ㅡ그리고 어쩌면 [동방의 별]도, 혹은 중동에서의 크리스마스와 외계인이라면 조 홀드먼의 [Angelof Light]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소재 수준이지 뭐ㅡ언급하지 않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단편-혹은 짧은 중편. 하지만 클라크의 대명제에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섞어넣으면서 이 작품은 어느 정도 독립성, 고유성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한국적 SF란 어떤 것인가? 라고 할 때 대답은 혹은 반론은 다양하겠지만, 세계 문학 속에서 한국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생각해볼 수 있는 점들 : 한국의 독특한 근현대사적 체험ㅡ제국주의 중에서도 특히나 야만했던 피식민지 경험과 냉전으로 인한 준국제전적 전면적 내전, 경제적 압축 성장과 제3세계식 군사 독재, 민주화 경험 등ㅡ의 문학적/소설적 반영이란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가장 사실적寫實的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다. 얼토당토 않은 조선 시대 코스프레 따윈 갖다 버려라. 한국이 아직도 조선인가? 아니면 고려? 고구려? 고조선?

특수성 외에도 보편성을 덧붙여 언급해보자면ㅡ카톨릭과 SF는 전통적으로 궁합이 잘 들어맞는 편이다.

왜 하필이면 가톨릭일까? 이 책들의 대부분은 영미권의 비가톨릭 작가들에 의해 쓰여졌다. 타고난 문화적 환경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왜 SF 작가들은 가톨릭교에 그렇게 끌리는 것일까? 왜 개신교 SF라는 장르는 없는 걸까?

그건 가톨릭교의 성격 때문인 듯하다. 가톨릭은 신비주의적으로 보일 만한 기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성적인 종교이다. 현대 과학으로부터 스토리를 연역해가면서 환상적인 이야기에 도달하는 SF라는 장르와 이상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1000여년에 걸쳐 서구 정신을 지배해왔으며 그만큼이나 자주 근대 과학과 충돌해왔다는 전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듀나, 조선일보 ‘성 밖에서’ 칼럼, {영혼의 빛} 서평 中 (2001.11.03)

이 작품 역시 전통적인 카톨릭 SF들의 계보를 계승하며, 한국적 SF의 차원을 넘어서 일종의 보편성을 획득한다. 결말에서 전율하는 것은 꼭 한국 독자들만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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